비밀 족보 책읽는 가족 57
송재찬 지음, 임연기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가 있다. 나도 무척 힘들고 피곤하고 특히나 몸이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내 옆에 나이드신 분이 있으면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일어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계속 고민하다가 그래도 일어서면 마음이 편하지만 모른척하고 잘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뒤통수가 따갑기까지하다. 처음부터 망설이지 않고 자리를 양보하기라도 하면 왜 그리 마음이 뿌듯하고 기쁜지 모르겠다. 이로써 천당 갈 구실 하나를 마련한 것 같아서...

이 책의 주인공 은익이도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려고 하면 괜히 마음이 안 좋고 심지어는 아프기까지 한다.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모른척 할 때도 그렇고 지하철에서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때도 그렇다. 이 정도는 평범한 사람들도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은익이의 경우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안 좋은 마음을 먹을 때마다 겨드랑이에 엄청난 통증이 시작되고 심지어는 여덟 계단을 뛰어내리기도 한다. 거의 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겨드랑이의 통증은? 맞다. 바로 날개가 나오려고 뿌리가 자랄 때 느끼는 통증인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은익이 아빠가 공부하러 간 프랑스에서 급하게 돌아와 가문의 내력을 이야기 형태로 쓴 것을 보여주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 즉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형태다. 또한 은익이가 생활하는 공간은 현대이고 아빠가 들려주는 공간은 아주 오래된 과거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넘나든다고는 할 수 없고 과거가 중간에 끼어 있는 형태다.) 이야기가 진행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제주도 사투리가 많이 들어 있어서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을 들은 셈이다.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는 많이 들어 보았고 주위에서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주도 사투리는 재미있어서 알게 된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투리를 보면서 제주도를 관광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도 여기와 같은 사람이 치열하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솔직히 책을 읽으며 중간부분에서는 지루했다. 익모 할아버지가 자신의 비밀을 알 듯 알 듯 하면서도 결국은 노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이라던가 커다란 바위로 날개사람을 조각하는 부분도 몇 년의 세월을 동일하게 서술하며 넘어가는 것이 점점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글쎄, 요즘의 빠른 문화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그래도 어쨌든 처음에 긴장하며 읽었던 것이 해를 넘기고 또 넘겨도 계속 비슷한 상황이 계속 되는 바람에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다. 지나치게 설명하려 하고 가르치려 한 부분이 약간 거슬린다. 마찬가지로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된 은익이가 현실에서 펼치는 활약 또한 지나치게 정의감에 불탔으며, 작가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이해시키는 데 '말'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좀 생략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었을 텐데.

'아기장수'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공간적 배경을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를 택함으로써 이쪽 사람들이 흔히 접하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힘든 시기일수록 누군가가 나타나 세상을 바꿔주길 기대하며 어느 곳이든 있는 아기장수 설화. 아마도 작가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벌어지는 부당하고 비열한 일들이 아기장수가 나타남으로써 사라지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