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 속에 숨었어요 어린이 갯살림 2
도토리 지음, 이원우 그림 / 보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집에 도감이란 도감은 종류별로 구비하고 있다. 무언가가 궁금할 때 찾을 수도 없으면 답답하기에 되도록이면 도감은 준비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갯벌에 대한 도감은... 없다. 내륙에서만 살아서인지 별 관심도 없었고 계기가 생기지 않았다. 뭐든지,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계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하긴... 계기를 운운하는 것도 궁색한 변명이라는 생각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퍼뜩 든다. 왜냐면, 2년 전 쯤에 갯벌에 갔을 때 물이 빠진 갯벌에 무수히 솟아 있는 빨대 비슷한 것을 보고 궁금함을 넘어 답답함을 느끼며, 돌아가면 갯벌 도감을 꼭 사리라 마음 먹었지만 멜로 드라마의 결론이 뻔하듯 내 생활도 뻔하다. 돌아오면 잊는다는 거.

그 후로 갯벌을 더 갔지만 똑같은 일만 반복되었다. 간혹 갯벌과 관련된 책이 눈에 띄면 찾아보곤 갯지렁이관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냈다. 그러나 역시 집에 돌아오면 일단 상황종료다. 그러다가 이번에 어렵사리, 아니 큰 맘 먹고 책을 하나 마련했다. 어떤 책을 고를까 하다가 일단 사실적인 그림이 많아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면서도 너무 어렵지 않은 것을 고르다보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그래도 도서관에서, 모임에서 대부분의 책은 보았기에 대충 내용은 안다.) 워낙 보리 출판사야 세밀화의 원조에 어린이책을 정성스럽게 펴내는 곳이며 우리 것에 애정을 넘어 애착을 갖고 있는 곳이기에(본인, 보리 출판사와는 아무 상관없음) 의심할 여지가 없다.

책을 펼치면... 그렇다. 이 책은 넘긴다는 표현이 필요없는 책이다. 그리고 고상하게 책상에서 보는 그런 책이 아니다. 바닥에 배깔고 그저 한없이 늘어나는 책 한 쪽을 마냥 펼치다보면 바닥이 갯벌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온갖 뻘 생물들이 꿈틀댄다. 내가 보기에는 그게 그거 같은 게 종류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조개들, 징그럽지만 다행히 땅을 파기 전에는 볼 수 없는 갯지렁이들... 온갖 생물들이 총집합이다. 이렇게 갯벌의 단면을 보여주고 긴 종이를 그대로 뒤집으면 거기에는 갯벌을 위에서 본 모습이 나온다. 갯벌에서 무수히 많은 무언가를 보고 둘째가 징그럽다며 절대 밟지 않으려고 햇던 것이 날개갯지렁이 관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아이가 말이 많아진다. 솔직히 둘째가 밟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책을 펼쳐 놓고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갯벌이 생기려면 대략 80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 한반도 단기 역사보다 긴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진 갯벌을 우리는 지금 파괴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파괴하는 데는 10년이면 충분하다. 무엇 때문에? 단지 땅이 부족해서? 절대 아니다. 정치적인 욕심과 몇몇 사람의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서다. 독일은 갯벌을 보호하는 정책이 철저하단다. 사람이 들어가도 되는 곳과 지정된 길로만 가야 하는 곳, 그리고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나누어 관리를 한단다. 우리는... 자식의 체험을 위해서 어디든 마구 휘젓는다. 바닷물의 농도를 바꿔서 생물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말이다.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다고는 못하겠다. 이럴 때는 알면서도 은근슬쩍 그 대열에 합류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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