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임상수, 2012

 

 

(영화의 결말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1.


돈의 맛은 어떤 맛일까. 여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짠맛에 가까운 맛일 것이다. 짭조름한 땀의 맛. 돈이라는 것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돌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그것이 쾌락의 땀이든, 고통의 땀이든 간에)이 그것들에는 아마도 깊숙이 배여들어가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아마도 그래서 같은 짠 것인 돈과 소금의 어떤 비슷한 점을 유추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소금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너무 많아지면, 그것은 우리의 일부분에 악영향을 미치고 망가뜨린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그 짠맛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그것에 길들여진다. 그리고 그것은 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비슷해진다. 돈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돈은 우리를 '망가뜨리고', 우리는 결국 돈에 '길들여진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보통의 돈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임상수의 영화 <돈의 맛>에 나오는 윤회장(백윤식)의 집 금고에 가득 쌓여있는 반질반질한 새 돈뭉치들, 그것에서도 짠맛이 날까.

임상수의 전작 <하녀>의 느슨한 후속편, 혹은 스핀오프, 혹은 이본(異本)인 이 영화 <돈의 맛>은 <하녀>처럼 인상적이지는 않으나, 꽤나 흥미로운 시작을 보여준다. <하녀>는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는 여자를 보여주면서 시작했고, 카메라는 수직하강하여 땅 위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는 잠깐의 흥미거리 이상은 아니었다. 그것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돈의 맛>은 마찬가지로 윤회장과 그의 비서 주영작(김강우)의 수직하강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그러나 이 수직하강은 돈을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하강이다. 하늘에서 돈가방을 들고 내려오는 왕의 강림. 그리고 그들은 차를 타고 그 돈을 전달하러 유유히 가는 중이다. 말 그대로 유유히. 그리고 동시에 임상수는 흥미롭게도 다른 차들을 그저 달리는 불빛들로 처리해버린다. 그 빠른 이동과 대비되어 유유히 달리는 이 윤회장. 그것은 아마도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하나는 윤회장은 다른 차들처럼 그렇게 한푼의 돈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 달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윤회장의 눈에는 아마도 실제 다른 차들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점. 인간이 타고 있는 자동차가 아닌 그저 수평으로 내달리는 불빛으로. 

2.

그래서 윤회장의 집에서 주영작의 동선을 따라 펼쳐지는 영화 초반부의 씬들은 꽤 흥미롭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윤회장의 집은 참으로 흥미로운 공간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집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진 이 집은 집보다는 거대한 갤러리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들, 그러니까 하녀들은 흥미롭게도 갤러리 직원들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의 갤러리와 다른 점은 이 갤러리의 양식을 정확히 짚어내기가 꽤 어렵다는 점이다. 모던한 장식들과 동양적인 여백의 공간, 복잡한 이중계단과 심플한 벽면이 혼재되어 있는 이 공간은 고전예술과 현대예술이 만나고 서양의 것과 동양의 것이 조인트 콘서트를 하는 공간이다. 그 맥락을 알 수 없게 짬뽕된 이 공간은 그래서 도리어 키치적이 되어간다. 그것의 상징은 아마도 윤회장의 장인, 즉 백금옥(윤여정)의 아버지인 노회장의 모습일 것이다. 그 부의 끝에서 만들어진 그 키치, 그 우스꽝스러움(그래서 현실세계의 모 회장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쁘띠'의 상징이 되어 귀여움을 받는 것인가).

물론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들을 찍는 방식, 그리고 그것에서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얻게 되는 어떤 심상에 관한 부분이다. 나는 초반의 이 장면들이 어떤 동물원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으르렁대는 동물원의 맹수들처럼 이들 가족들은 세상을 향해 으르렁댄다. 돈만 밝히는 것들, 어떻게든 우리 돈을 뜯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저 아랫것들, 교수고 정치인이고, 사업가이건 간에 모두들 똑같아 돈이라면 환장들을 하지. 그리고 그 맹수들을 우리는 사육사 주영작의 안내에 따라 차례로 관람한다. 그러나 이 관람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들을 저  멀리서 지켜본다, 관찰한다는 것이다. 이 초반부의 씬들이 흥미로운 것은 그 내용적인 면보다도 임상수는 관객을 이들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보도록 허락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동선은 그들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대부분 설계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그들을 우러러보거나, 아래에서 내려다본다. 즉 우리는 그들을 감시하는 입장이 되거나, 아니면 '피핑 톰'이 된다. (이 영화에는 동시에 감시카메라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것도 여러 차례.) 이는 물론 우리와 그들의 어떤 계급적 차이를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이로써 우리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일종의 불유쾌한 경험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 <돈의 맛>이 상당수의 관객들에게 불유쾌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어떤 특정의 장면들이 낳은 효과도 있겠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관객을 일종의 몰래 숨어서 보는 자, 때로는 감시하는 자로 만들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감시가 유쾌할리가 있겠는가. (아마도 임상수의 의도는 후자쪽,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들을 감시해야 한다,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3.

이러한 윤회장 가족 중에서 조금은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나미(김효진)다. 그렇다, <하녀>의 그 '나미'다. 지난 <하녀>를 보고 쓴 리뷰에서 나는 '나미'가 아마도 괴물이 되지 않을까,라고 썼고, 임상수의 의도도 아마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돈의 맛>과 관련한 인터뷰를 보니 본인도 나미가 괴물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의 충고에 따라 나미를 이 영화에서 조금 다른 인물로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나미도 사실 주영작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는 어떤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자신에게는 그렇게 인사하지 말라고 주영작에게 말하면서도 이는 한편으로 어떤 반응을 떠보는 것처럼도 느껴진다(아마 주영작의 머뭇거림도 그런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다른 종류의 인간들을 대하는 것, 그러니까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간다면 처음보는 동물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을 떠보는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아무튼 그것은 오해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어떤 (좋게 말하면) 지향점, (나쁘게 말하면) 체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미는 괴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괴물이 아니라고 해서 그녀를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여기서의 '인간'은 '니가 인간이냐!'라고 말할 때의 그 인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이른바 홍상수의 구분법을 쓰고 싶다. "우리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고 말할 때의 그 구분법, 그 인간.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늘 '찌질한 인간'들이 나온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우 우리는 그들을 찌질하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괴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찌질한 말을 내뱉고 찌질한 짓거리를 벌이는 '찌질이'일 뿐이다. 아마도 (초창기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홍상수의 영화에서 좀처럼 죽음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홍상수 영화 속의 인물들은 죽음을 마주할 용기마저도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도 '찌질이'라는 말이 나오며, 막판에 이르러서는 주영작은 자신이 찌질이라고 체념하듯 내뱉는다. 그러나 이 때의 '찌질이'라는 대사는 자조적인 맥락에서 내뱉어진 것이기는 하나, 그것은 관객에게 도리어 이 인물은 괴물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주영작은 그런 인물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살짝 갈등하지만, 결국에는 거울 뒤편에 돈다발을 쌓아두고,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저그런, 보통의 그저그런 인간, 결코 A급은 아닌, 그런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인간. (그러나 이것이 쉬울까.)

그리고 이것은 영화의 결말에까지 이어진다. 주영작과 나미의 비행기에서의 섹스씬. 이 섹스씬을 행복한 결말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 아래에는 에바의 시신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들이 막을 수도 있었던 에바의 죽음.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이 섹스씬을 보며 못내 마음이 불편한 것은 이것은 결국 어떤 자신들의 찌질함, 그 체념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에바의 관 속에는 주영작이 던져넣은 돈다발마저 들어있으니까. (에바가 그 돈을 보고 어찌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이들은 자신들의 '찌질함'을 추인하는 것으로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임상수(그리고 비슷한 이름의 홍상수)가 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도의 희망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도 싶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는 것.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고 다짐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결말이 께름칙한 이유는 이 마지막은 결국 재생산이기 때문이다. 나미와 주영작의 이 결합은 전개 과정은 다를지 몰라도, 결국 백금옥과 윤회장의 결합의 되풀이니까.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라고 윤회장을 말하는 백금옥도 처음에는 윤회장을 이렇게 만난 것이 아닐까. 나미와 주영작은 그들과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희망을 걸어봐도 될까.) 

4.

그렇다, 그런 세상이다.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세상. (그것과 관련하여 영화에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이 있다. 무례한 말들을 내뱉는 윤회장의 아들 윤철(온주완)과 싸우려드는 주영작. 겁을 먹은 듯이 보이는 그 아들을 주영작은 자신만만하게 차에서 끌어내리지만, 도리어 얻어터지는 것은 주영작이다. 그 (아마도 돈으로 만들어진) 싸움의 기술. 돈은 없지만, 주먹과 깡을 믿고 살아가는 사나이들의 세계는 이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다.) 그 거대한 지옥도, 최대한 좋게 말해 어느 정도의 '체념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자신의 몸에 불을 싸지르는 것으로 끝내버렸던 그 <하녀>에 가득한 체념과 이 <돈의 맛>의 같지만 다른 체념을 결국 결말에서 보게 되는 것. 그러니까 스핀오프, 혹은 이본.

우리의 최선은 결국 찌질해지는 것일까. 그 체념을 결국 받아들이는 것, 그러니까 그 체념한 자신을 견뎌내는 것 말이다. 그러나 물론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타인을 견뎌내는 것보다 자신을 견뎌내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니까. 그 견뎌냄의 끝에는 결국 인간이 되는 길이 있을까. 



덧.
이 영화를 본 서울극장 8관은 손님을 받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우퍼가 울릴 때마다 무대가 심하게 흔들리며 천둥치는 소리가 나는 데다가, 스크린 오른쪽의 일부분은 검은 얼룩이 크게 있었다. 서울극장 관계자는 빨리 조치를 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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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2-06-0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음은 보는 책들이 독자들을 아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많은데...이 영화도 그런 쪽에 속하나봐요. 영화관으로 달려가지는 못하더라도 챙겨보게 만드시네요.

맥거핀 2012-06-06 22:51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흥미롭게 보았다는 쪽에 가깝겠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저의 심리가 이상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네오 2012-07-06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영화 좋아합니다만 ㅋㅋ

맥거핀 2012-07-06 17:21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해요. 임상수의 냉소적 유머(와 분노) 좋아요.
 

 

이번 알라딘 1인시위를 둘러싼 몇 가지 단편적인 생각. 먼저 그 내용에 대한 견해를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전체적으로 크게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타이밍에서나 프레임에서나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좋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1인시위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일종의 고육지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1인시위라는 것은 정상적인 루트가 가능하지 않았을 때 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번에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뭐 그것을 마무리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되었는지를 이미 익히 보았으니까. 정상적인 문제제기 루트가 가능하고, 그것이 어떤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면 그런 방식을 취할 이유도 없겠지.

 

물론 1인시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편함을 만드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여러가지로 비판받을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다. (당연히 그런 것을 감안하고 시작하셨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것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고 보지만, 공격적인 대응, 폭력적인 비판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은 든다. 이번 경우는 온라인이지만, 예를 들어 오프라인에서라면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는 사람에게 그 내용에 대한 부분에 대해 반박을 하거나 논리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지만, 욕설을 하거나, 인신공격을 하거나, 계란을 던지고, 그 피켓을 뺏아 들고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필요할까. 그냥 지나치면 안되는 걸까. 적어도 그 시위로 인해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편 역으로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와같은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어쩌면 나와 같은 반응이 더 무서운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1인시위라는 것의 목적 중의 하나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이슈를 만드는 것이니까. 이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서재 내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면 알라딘 입장에서도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테지.

 

다만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반응에 섞인 어떤 진보적인 가치들에 대한 것. 어느 곳에서도 주류가 되는 가치는 동시에 또 공격무기로 기능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극보수 사회에 가까운 우리사회에서 좌파라고 낙인찍는 것이 어떤 공격무기가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도리어 역으로 진보의 가치가 주류가 되어있는 이곳 알라딘 사회에서는 우파(혹은 가짜 좌파)라고 낙인찍는 것이 또다른 공격무기가 되는구나.

 

덧.

이 글이 또 하나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고,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나는 멘탈이 너무 약하다. 나의 서재에만 노출시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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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5-28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는 길에 인사 남기고 갑니다. 위 글의 입장이 저의 의견과 같으며 동의를 표하는 추천합니다.

2012-05-26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2-05-2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의 입장에 동감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기도 하고.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게 일정 부분 어떤 정치적 코드를 '잘 알지도 못하고' 써선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어요.

맥거핀 2012-05-27 12:27   좋아요 0 | URL
네..맞는 말씀입니다. '코드'라는 것은 좀더 주의해서 쓸 필요는 있겠죠. 괜히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까. (뭐 저도 엉망이긴 합니다만) 모든 논쟁에선 일종의 '프레임'을 잘 짤 필요가 있겠죠. 그러나 설혹 그렇다고 해도, 지나친 것이 지나치지 않은 것이 되지는 또한 않겠죠.^^

마녀고양이 2012-05-2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
즐거운 연휴되시기를 바래요.

맥거핀 2012-05-27 12:27   좋아요 0 | URL
어..벌써 연휴의 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들도 잘 보내세요.^^

2012-05-27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8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9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0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1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1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막차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거의 서울을 가로질러 집에 가까운 역에 도착하니 거의 1시 가까이 되었다. 달콤하고 비릿하고, 시큼하고 쾨쾨하고 향긋한 냄새가 뒤섞여 있는 막차에는 곳곳에 위험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두 종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술을 마신 사람들이거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중 나는 어느 쪽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술을 약간 마시기도 했고, 삶이 힘들기도 하(다고 생각하)니 그 둘의 교집합일까. 아니 그러고보면 이 사람들은 모두 이 둘의 교집합이 아닐까. 모두들 삶이 힘들어서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닐까. 혹은 어쩌면 그 반대일까. 술을 마셔서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일까.

 

2. 백분토론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DMB로 계속 백분토론을 보았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토론. 네 명의 참석자. 소위 '당권파'로는 이의엽 전 통합진보당 정책위 의장과 이상규 국회의원 당선자가 참가했고, 그와 맞서서 토론할 외부진보인사로는 진중권 동양대교수와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가 참가했다. 토론을 보다보니 분당사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의 생각은 단순한 입장차이를 넘어서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일단 토론 자체만 놓고 본다면 양쪽의 시각이 나름 각자 타당한 부분들이 있으며, 이해가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며, 절충할 부분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토론은 결국 핵심적인 것은 다루지 않고 있으며 외곽을 빙빙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곽을 빙빙 돌려고 하는 이 태도, 이 태도 자체가 그들의 입장차이는 결국 이 토론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 여기에서 모두 말하기에는 곤란한 것들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제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권투로 말한다면 외곽을 빙빙 돌고 있는 선수는 십중팔구 상대방보다 펀치가 약하거나, 믿고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카운터펀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의 권투일 경우에 그렇다. 만약 이 권투가 상대방이 쓰러지기를 원하지 않는 안타까운 권투 시합이라면 어떨까.) 하기는 백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메우기에는 그동안 파놓은 긴 시간의 골들이 너무 깊은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진중권 교수의 토론보다는 김종철 부대표의 토론에서의 말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이러면 이럴수록 지난 총선에서 진보신당에게 던져주지 못한 한 표가 정말 미안해진다. 그러나 만약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진보신당에게 한 표를 던질까, 그럴까. 

 

3. TOP밴드

토요일 밤마다 하나의 프로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만 되면 뭔가 다른 일이 생겨서 TV를 보지 못하거나, 보더라도 띄엄띄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프로가 끝날 때마다 나는 음악다운로드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고, 새로운 밴드의 이름을 검색해서 넣고 있다. (한달 다운로드 갯수도 거의 남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KBS에서 새로 시작하고 있는 <TOP 밴드> 얘기다. 지난 3회에 꽂힌 밴드는 'Sad Legend'라는 익스트림 메탈 계열의 밴드인데, 방송이 끝난 후 정보를 찾아보니 몇 가지 추가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이 밴드는 15년이나 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중견밴드라는 점(이들의 동명의 첫 앨범 'Sad Legend'는 한 웹진이 뽑은 90년대 베스트앨범 100위 안에 선정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방송 녹화 이후에 해체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번복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또 이 해체가 이 방송과 연관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방송을 보다보니 하나 아쉬운 점은 워낙 출중한 실력의 밴드들이 대거 참가하다 보니 이들의 진출과 탈락이 연주실력이나 완성도의 문제가 아닌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자주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심사위원 개인의 취향이 워낙 다르다보니 이른바 '그들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도 달라진다는 점. (내가 좋아하는 저 밴드가 탈락해서 너무 슬프단 말이야.)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신대철 씨가 자신의 취향을 끝까지 고집하지 못하고, 결국은 삐지고 만다는 것이 아쉽다. 대철 형님, 이제 그만 삐지시고, 말싸움과 논리에서 영석 형님을 이길 스킬을 빨리 연마하시길. 대철 형님이 삐질수록 나도 그만 슬퍼지고 만다.

 

(개인적으로는) 아무튼 진출한 밴드들보다는 늘 탈락한 밴드들에 더 관심이 간다는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점. (예를 들어 저번에 1회에 탈락한 '밴딩머신' 꽤 마음에 들던데.)

 

4. 극장

최근에 거의 영화관에 가지 못했다. 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는 숀펜이 늙은 락스타로 나왔던 <아버지를 위한 노래>. 그 영화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저 너무 아름다운 얘기들이 '말로만' 나오는 영화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니라고만 말해둔다. "두려움이 늘 우릴 구하죠.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단 한 번이라도 두려움을 느끼지 말아야 할 순간을 선택해야 하죠."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은 이럴 거야'라고 말하는 나이에서 '인생이 그런 거죠'라고 말하는 나이가 되어간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좋은 얘기만을 들으러 극장에 가지는 않는다. 좋은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차라리 '힐링 캠프'를 보는 편이 낫다. 극장에서는 (스스로) 가장 보기 두려웠던 것,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보아야 하는 것, TV에서 볼 수가 없는 것을 보는 편이 낫다. 그리고 그 이후에 좋은 생각은 내 머리 속에서만 비로소 만들어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를 보다가 영화를 보며 뭔가를 메모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영화제에 가면 가끔 보는 풍경이지만, 일반 극장에서 보니 꽤 새롭다. 다만 나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면은 있다. 뭔가를 메모해둘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면서 하는 메모라는 것은 필시 영화가 끝난 이후에 어떤 것이 기억에 남지 않지 않을까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리뷰에 남기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되서 하는 것일텐데,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라면 결국은 그것은 글에 쓸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머리 속을 비우고 비우고서도 기억에 남아 괴롭히고 있는 것, 아마도 그것이 뭔가 이야기할 만한 것일 것이다.

 

지난 번에 '마이 백 페이지'를 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보지 못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 (합법)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다운로드 해두었다. (물론 아직 보지는 못했다.) 어떤 누군가가 리뷰에서 이 영화에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영화 필모에서의 '두 번째' 인상적인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첫 번째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를 떠나보내고 갑자기 길 한가운데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을 길건너편에서 찍은 씬이다. 그 씬을 보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가슴아프게 그리고 때로는 매몰차게 떠나보낸 어떤 것들에 대해 얼마나 기억했던가. 그의 두번째 눈물,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매우 기대가 된다.    

 

5. 서평단

이번달의 인문, 사회, 과학, 예술 파트(정말 적을 때마다 느끼는건데, 너무 범위가 넓다)의 도서로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가 선정되었다. 서평단 담당자님의 각고의 노력에는 무한히 감사를 표하는 바이지만, 선정된 책이 그렇게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마이클 샌델의 책은 3권 정도를 보았는데, 이 저자의 책은 더 읽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었고, 강신주의 책은 나도 추천하기는 했지만, 사실 5권 중에서 가장 안되었으면 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뭐, 어차피 룰에 따르기로 하고, 서평단에 지원한 이상, 성실하게 읽고, 성실하게 써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그러다보면 마이클 샌델(자꾸 '마상달'이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이게 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탓이다)에 대한 나의 견해가 바뀌거나, '김수영 전집'을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지. 다만 한 가지, 우리 인문 서평단 대장님인 가연님의 추천도서가 한 권도 선정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선정의 공정성은 확실히 확보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했다(이 정도 농담은 괜찮겠죠, 가연님..;).

 

하기는 책에 대해서 더 말할 것도 없는 게 일단 문제는 나니까. 하도 오랫동안 책 리뷰를 안 써서 어떻게 책 리뷰를 써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뭐 꼭 책에 대한 것만은 아니고, 다른 글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오늘도 스마트폰으로 타인의 영화 리뷰를 보며 아 글은 이렇게 썼어야했는데...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쓴 리뷰인 영화 <아르마딜로> 리뷰는 이렇게 써야했다. 글 '아르마딜로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 2010): 일상의 전쟁' (블로그 '제5영화관') 뭐 그렇지만 이 분은 전문가니까. 최근에 후덜덜했던 전문가의 다른 글로는 '씨네21'의 정한석이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 대해 썼던 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씨네21 851호 전영객잔 '무엇이 영화입니까')

 

6. 술

이제 거의 술이 다 깼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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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5-23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중 페이퍼인데 어떻게 이렇게 차분차분, 조근조근할 쓸 수 있는거죠?

마이클 센델을 마상달이라고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건, 그게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영향 때문이라는건 완전 공감돼요. 제가 마상달을 떠올린건 아니지만 '구하라'의 팬이라면 웬지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 유투브에 있는 '구하라'도 보셨죠?

영화 볼 때는 아니지만 GV할 때나 강연할 때는 저도 좀 적는 편이에요. 영화를 보고 남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편이 더 나은데 남는 것의 디테일한 면들이 잘 기억이 안 나서 적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대사로 영화를 만들었구나 싶었던건 '인류멸망보고서' 김지운 감독 작품이었어요. 임필성 감독 부분은 신나고 재미있었는데. 실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를 풍자하는 감각이나 봉준호 감독을 데려다놓고 어떻게 저런걸 시킬 수 있을까 싶은 것까지 모조리 보기 좋더라구요. SF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맥거핀님은 잠이 안 와서 이 페이퍼를 쓰셨다지만 읽는 저로선 와, 나도 불면증이 있었음 좋겠다 싶을 정도로 즐거웠답니다. 물론 제가 잠 안 자고 써도 이런 좋은 페이퍼를 쓸 깜냥은 안 되겠지만. ^^

맥거핀 2012-05-23 21:01   좋아요 0 | URL
감사할 따름입니다. 술 마시고 쓰니, 좀더 조심하게 되서 그런걸까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술 마신티 내지 말아야돼..뭐 그런거.;

아..그거 구하라 진짜 재밌어요. 보는 내내 시종일관 키득거릴 수 밖에 없는 그런 내용들..특히 그 인도춤+노래 나오는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병맛과 풍자의 적절한 조화랄까요.

저는 영화끝나고 스맛폰에 메모를 남겨놓는데, 생각의 속도를 손이 못 따라가서 거의 저만 알아볼 수 있게 엉망진창 오타로 막 남겨놔요. 그래서 나중에 보보면 꽤 재밌죠. 이상한 내용도 많고.

아..그리고 인류멸망보고서를 본 몇 안되는 관객이시군요. 확실히 김지운 감독의 그 작품은 좀 너무 설명조였어요. 근데 그 3번째 작품에서 TV뉴스 씬 같은 것은 김지운 감독이 또 연출했다고 하니까요. 그 뉴스에서 나오는 유머들 진짜 웃기지 않았나요. 저도 나름 괜찮게 즐거운 마음으로 봤습니다.^^

Shining 2012-05-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말로만 나오는 영화. 촌철살인의 멘트군요.
저는 서서도 자는 사람이라 잠이 오지 않는 밤은 정말 낯설어요;
새벽에 쓰는 글도 이렇게 정갈하시다니, 전 한낮에 써도 흐지부지-_ㅠ

맥거핀 2012-05-23 21:10   좋아요 0 | URL
저는 감동이나 깨달음이란 건 결코 말로는 얻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결국 화면을 보는 것이니까. 이야기가 하나도 없고, 말이 하나도 없어도 아름다움은 오죠.^^

카스피 2012-05-2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100분 토론을 보니 100분이란 시간이 넘 짧더군요.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 당권파 두분이 직접 나왔는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면 어땠나 싶더군요.

맥거핀 2012-05-24 00:17   좋아요 0 | URL
뭐 사실 이번뿐만이 아니라 100분토론은 늘 약간 짧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해요. 정작 중요한 얘기는 못하고 끝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만 이번 사안같은 경우는 양쪽이 정작 할 얘기는 피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조금은 받았어요. (김종철 부대표 같은 경우가 좀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듯 한데, 그거 참..어렵고도 역사가 긴 이야기겠죠..)

반딧불이 2012-05-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록까지 딸린 잠 안오는 밤이라니! 좋아요. 좋아. ㅎㅎ

맥거핀 2012-05-24 23:26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벌써 이제 금요일이 오네요. 금요일도 잘 보내시고, 주말도 잘 보내세요.^^

아이리시스 2012-05-2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맥거핀님은 술을 마셔도 깨고 주무시는 분이신가 봐요ㅋㅋ 술 마시면 보통 잠이 더 온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요. 한 잔 하시고 잠이 안 와야 우린 맥거핀님의 이런 얘길 들을 수 있네요. 맨날맨날 잠 자지 마요!!!

그런데 :)

선정된 인문분야 도서..제가 꼽은 것도 없어서 어쩐지 실망.. 전에 소설에서 인문분야로 바꿔 지난번에 한 번 떨어지고는 왠지 귀찮아져서 관뒀는데(솔직히는 읽을 자신이 없고 리뷰 꼬박꼬박 쓸 자신이 없어서..) 이후로 자꾸 인문분야 도서가 궁금해요^^

맥거핀 2012-05-24 23:30   좋아요 0 | URL
어..방금 전까지 아이리시스님 블로그에서 댓글달고 있었는데..
네..근데 왕창 마시면 쓰러져서 잘자요.ㅋ 조금만 마셨더니 몸에서 알코올을 더 내놓으라고 잠을 안재우나 봅니다.

서평단이라는 거 책에 자꾸 불만가지기 시작하면 못할거 같아요. 그러니 아무 생각없이 좋다고 생각하고 써야죠.^^ 서평단 하세요. 그래야 제가 더 리뷰를 자주 보죠.ㅎㅎ

아이리시스 2012-05-25 00: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건 맥거핀님이 받을 책이니까 이렇게 말한 거지, 서평단 2년 가까이 하는 동안 한 번도 책 불평해본 적 없어요. 처음엔 일주일에 두 권씩 신간을 임의선정해 보내줬는데 그때도 리뷰는 가능했었고, 한 달에 추천 두 권으로 바뀌었을 때는 인간이 참 간사하다 싶었어요. 그냥 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제 내가 보고싶은 책 안됐다고 맘속으로는 실망까지 하는구나.. 그때부터 이미 안해야겠다 했었다는.. 그런데 떨어지길래 아, 내 맘 들켰구나 했죠.아하하. 그때 주로 소설리뷰를 써서 인문에서 떨어졌던 것 같아요. 나 이전에는 인문도 했었고 잘할 수 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지금도 출판사에서 책 많이 받거든요. 써논 리뷰가 많아서 이벤트 신청하면 주로 되는 편이에요. 이것도 참 운이 좋은 건데, 그나저나 제가 맥거핀님 리뷰를 보게 돼서 완전 좋다는^^

맥거핀 2012-05-26 01:32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2년이나 서평단 했었구나...나는 그만 깨갱합니다.ㅋㅋ 그러게요. 저도 아주 예전에 아무 책이나 막보내주던 시절(?) 서평단했었는데, 이제는 추천을 받아서 하니 훨씬 더 나아졌는데도, 책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군요. 뭐 아무튼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볼 작정입니다. 근데 저는 리뷰를 잘 쓰는 게 목표이 아니라, 제 시간에 쓰는게 목표라는..퀄리티 같은 건 없음ㅋ

마녀고양이 2012-05-2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합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발견하고,
신나게 보는 중이랍니다. 그전까지는 TV가 디지털이 아니라서 못 봤는데
하드 디스크에 넣어서 연결해서 보는게 아주 손쉽더라구요. 덕분에 한동안 못 본
좋은(?) 영화들을 잔뜩 받는 중입니다... 500원에서 4000원 사이더군요.

밤의 지하철은 너무 숨막혀요, 힘들구요.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

맥거핀 2012-05-27 12:32   좋아요 0 | URL
네..뭐 그 정도라면 다운받아 볼만하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집에서 보는 즐거움도 꽤 있잖아요. 집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보는 것이 더 좋은 영화들도 꽤 있고..^^

밤의 지하철은 일단 너무 오묘한 향취들이 나서..힘들어요.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사실 술 마실 시간도 별로 없어요. 마녀고양이님도 건강관리 잘 하세요.^^
 

 

 

 

아르마딜로,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 2012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가 들어있음)

 

 

이 영화 <아르마딜로>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 최전선 아르마딜로 캠프에 가게된 덴마크 병사들의 6개월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들의 출국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귀국으로 끝을 맺는데, 캠프에서 이 덴마크 병사들을 위협하는 것은 주민 속에 섞여 게릴라전을 행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이다. 처음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훈련과 정찰 속에 무료함만을 느끼던 그들에게 곧 몇 차례의 적과의 조우가 이어지고, 급기야는 적이 설치한 IED(급조폭발물)에 의해 동료들 몇이 부상과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무료함과 지루함만이 가득했던 그들의 내부를 적에 대한 복수심과 분노가 대신 채우게 되고, 그런 감정 속에서 그들은 다시 적과 일전을 벌이고 적을 격퇴하고 돌아오게 된다... 줄거리만 보게 되면 언뜻 극영화처럼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의 형식만을 빌린 극영화가 아니고, 그렇다고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실제의 인물과 실제의 전쟁이 등장하는 완전한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영화는 보는내내 혹시 극영화가 아닌가,라는 기이한 착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음악이다. 이 영화는 거의 시종일관 내내 음악과 음향효과들이 가미되어 있다. 보통 상당수의 다큐멘터리들이 음악의 사용을 대체로 자제하는 반면, 이 영화는 일부의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배경음악 및 음향효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인 이 음악과 음향효과들은 영화의 내내 관객의 정서를 흔드는 효과를 낳는다. 즉 이 음악과 음향들로 인해, 우리는 이 장면의 정서적 분위기를 미리 습득하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즐겨 사용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트리거는 대체로 주인공의 이별이라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며,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튀어나오는 귀신이 아니라, 그 장면에서 발생하는 음향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서는 영화의 스토리를 우리가 특정의 방향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관객의 정서를 특정의 관점으로 밀어붙이는 음악은 이른바 적극적 구축의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사용되는 방식이기는 하나, 이것은 보통의 다큐들에 비해 상당히 과도하다는 인상을 준다. 다른 하나는 인물의 곁에서 매우 근접하여 찍는 카메라이다. 영화 내내 우리는 인물들을 상당히 가까이에서 만나며, 그들의 대화를 매우 가까이에서 듣는다. 상당수의 다큐멘터리들이 인물과 약간의 거리를 두며, 그들을 관찰하는 입장을 취하는 반면에 이 카메라는 인물의 가까이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으며, 우리가 마치 그들의 일부가 되어 그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듯한 착각을 전해준다. 이것은 정찰이나 전투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병사들이 총을 들고 뛸 때, 카메라도 그들을 따라서 같이 흔들리며 뛰고, 인물들이 총알을 피해 재빨리 엎드릴 때, 카메라도 급히 땅으로 처박힌다. 또 병사들이 갑작스런 적의 출현으로 혼란에 빠질 때, 카메라는 어지럽게 흔들린다. 즉 우리는 멀리서 그들의 전투를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병사들의 일원으로 실제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지막 하나는 이 화면의 구성방식이다. 영화 내내 또하나 흥미로운 것은 상당수의 다큐멘터리의 일반적인 샷, 그러니까 화면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 형식의 장면이 거의 없다.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그런 장면은 중간에 전투에서 부상당해 병원에 있는 병사의 인터뷰 딱 한 번이었는데, 나머지 장면들은 누군가와 이루어지는 대화들이거나, 전투 장면, 정찰 장면, 브리핑 장면들이다. 영화에 절대 등장할 수 없는 화면 바깥 속의 누군가(예를 들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보통의 극영화에서 당연히 배제되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이 장면들의 구성은 상당히 의도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극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이 서사의 구조 방식이다. 이 서사는 전형적인 극영화의 구조 방식이다.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 혹은 새로운 도전으로 파병에 지원하는 병사들(발단)-처음에는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나, 점점 몇 가지의 사건들로 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키워가는 병사들(전개)-IED에 의한 공격으로 아군 병사들이 사망하고, 극도의 분노 속에서 이어진 적과의 전투에서 적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병사들(절정)-처음에는 자신의 행동들을 영웅시하며 합리화하려 하지만, 왠지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병사들(결말). 이러한 이야기들은 상당수의 전쟁영화들에서도 몇차례 활용되었던 서사 구조이며, 뭔가 극적으로 짜여졌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누군가는 이것은 그렇게 짜여진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들이 차례로 일어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장면을 영화에 포함시키고, 포함시키지 않을 것인가는 당연히 감독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물론 거기에 어떤 류의 음악을 붙일지 역시 감독의 선택이다. 자 한 가지 이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예를 들어보자. 어떤 감독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 대한 다큐를 만들기로 한다. 그는 24시간 내내 당신을 촬영했지만, 영화를 보니 모든 장면은 당신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 뿐이며, 영화의 마지막은 조용히 이를 닦고, 잠자리에 드는 당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영화의 제목. "수다스러운 OO씨의 하루" 아마도 당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 시끄러운 인간은 잠잘 때가 유일하게 조용할 때구만." 자 이 영화를 본 당신은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이 영화 <아르마딜로>라면 이런 것이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 들어가기 전 적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병사의 모습이 나온다. 이 결정적인 전투의 직전 이렇게 생각하는 병사만 있었을까. 왜 이 장면이 굳이 결정적 전투의 전에 선택되어 이 위치에 들어가 있는가.)

 

 

물론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조작을 했다거나, 어떤 편향된 시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이 전체 이야기를 어떤 서사적인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은 부수적으로 어떤 효과를 낳고 있지 않은가 묻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어 몇몇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장면 하나. 노트북을 연결하여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는 두 병사.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은 게임화면 외에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병사들의 시선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캐릭터를 총으로 죽이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듯한 병사의 모습. 그리고 다시 (게임 내에서) 총으로 받아치는 상대방 병사와 그의 시선. 이에 (총보다 더 큰) 소형무기로 더 크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트북 화면이 실제의 전투를 위해 조명탄을 발사하는 화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이렇게 읽힐 수도 있다. 이 하나의 컴퓨터 게임 안에서의 도발과 그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더 큰 대응은 이들의 전투에서의 앞으로의 대처를 집약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즉 그런 스토리를 관객들이 마음 속으로 스스로 만들어나가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장면 둘. 덴마크 공항으로 귀환하는 병사들과 가족을 다시 만나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한 병사의 샤워 장면.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얼굴을 두 손으로 비비는 병사의 모습을 비춰주며 서정적인 음악이 흐른다. 이 장면에서 병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부상당해 도망갈 수 없는 적들을 살해한 것에 대한 어떤 죄책감일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이 병사는 샤워를 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손으로 얼굴을 씻는(가리는) 병사의 모습과 서정적인 음악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불러일으키는가. 이 장면이 이 마지막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서사화가 낳는 부수적인 효과는 결국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감정과 그것을 보는 관객의 감정을 처음에 어느 정도 일치시켜 놓고 출발한다. 아르마딜로 캠프에 도착하여 반복된 훈련과 정찰 속에서 무료하게 지내는 이들 병사들은 어떤 재미있는 것(그러니까 적과의 전투)을 기다리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관객들 역시 이런 무료한 장면을 보러 이 영화관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즉 어떤 충격적인 것을 기다리는 이들과 관객들은 어느 정도 공유된 감정을 가진다. 그러던 이들과 관객의 감정이 벌어지는 것은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이후이다. 이들은 복수심에 불타 전투중 부상당한 탈레반들을 살해하며(이것은 좀 모호한 지점이다. 그 탈레반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였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들만이 알 것이다), 전투 후 브리핑 중에도 "최대한 인도적으로 처리했다"며 낄낄댄다. 이후 내부고발에 의한 감사가 이어지지만, 이들은 외부인의 시선(그러니까 아마도 관객의 시선)으로 볼 때는 자신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자신들은 해야만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떳떳하다고 항변한다. 이런 항변을 하는 이들을 보는 우리의 심리는 어떨까. 우리는 이들에게 동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서사화에 의해 최소한 이들의 행동의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서사화의 최소의 목적은 결국 주인공의 행동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본 서사를 통하여, 우리는 주인공을 응원하거나, 최소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성공한 서사라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실패한 서사가 아닌 이야기는, 이야기를 그리고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든다.

 

물론 이것은 부수적인 효과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가장 중심된 효과는 외부인들인 우리가 느끼게 되는 전쟁(전투)에 대한 어떤 잔상들일 것이다. 그것은 물론 많은 전쟁영화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전쟁영화들과 이 영화가 분명히 갈라지는 지점은 있다. 그것은 이 영화는 실제의 죽음을 보여준다는 것. 일반적인 전쟁을 다룬 극영화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적을 죽일 때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 중의 하나는 일종의 쾌감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화에서 (가상의 죽음이 아닌) 실제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시체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이 시체들을 바라보며 적어도 쾌감은 느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

 

 

 

덧.

어떤 분은 리뷰에서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하고 상영을 허가한 덴마크 정부가 대단하다고 하셨던데, 나는 대단하다기보다는 상당히 영리하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전쟁(전투)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비인도적인 행위를 포함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나도, 적어도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를 외부인의 시각으로만 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이에 반해 아직도 (국방홍보물 등에서) 적과 우리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하는 우리 정부는 얼마나 멍청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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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5-1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 이야기란 아무리 해도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국가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갔다고 해도 싸움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한다는 점에서, 결국 살상의 참극이 벌어져서 가해자가 된다 해도 그들 또한 다른 한 편으로 피해자니까요. 자기가 아니라도 어차피 누군가 한쪽이 한쪽을 죽였다는 점에서. 아 진짜 게임 같아요. 하나가 죽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는.

동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얘기했는데 군대에서 그렇긴 하죠. 적은 북한. 미국이라고 답한 애 바보된다고. 일단은 북한이 도발을 많이 하긴 하니까 맞긴 맞지만 조직적으로 그렇게 가르친다는 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멍청해요. 지금은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통하는 세상도 아니고..

특별히 수작이라고 포스터에 박아논 이유가 있을까요? 스크린으로 하는 전쟁체험인가..

맥거핀 2012-05-14 15:46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이 리뷰 쓴다음에 다른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저랑 보는 시각이 꽤 다른 리뷰들이 많아서 어..내가 뭔가 잘못봤나..이러고 있었어요. 아무튼 전쟁이란 건, 그리고 거기에 나가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라는 것은 겉으로 보는 우리들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또 한편으로는 이들의 어떤 지나친 행동에 대해서 윤리적인 비난을 하는 것만이 맞는가,라는 생각도 했구요. 그니까 도리어 이 영화는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만큼 이들의 임무수행 과정을 잘 드러내보임으로써 이들을 그 비판에서 구하고 있기도 하다는 거죠.

우리는 무조건 선이고, 저기 나쁜 넘들이 있고, 그 넘들을 무조건 처단해야 하고...이런 식은 이제 앞으로 점점 더 먹히지 않지 않을까..생각이 됩니다. 뭐 하나를 만들더라도 이렇게 좀 더 세련되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스크린으로 하는 전쟁체험이라고 하셨는데, 그 표현이 꽤 정확해요. 최고의 수작이란건 오버지만, 다큐 부분에서 세계적으로 약간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인 것은 사실입니다. (뭐 그래도 저런식의 카피는 촌스럽네요.^^)

Shining 2012-05-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쿡티비에서 동시상영하던데요+_+

재밌네요. 사실을 택한 것이 리얼리즘인가, 사실을 비추는 것이 리얼리즘인가,는 불멸의 논쟁거리인 것 같아요. 저는 무지막지하게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늘 야비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어요. 지독하게 사실적인 사진들도. 이상하죠, 잘 만든 극영화는 어떤 쾌감을 주는데 말이죠_-?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화제에서 저의 추천작은 없습니다ㅠ 흑ㅠ 빈센트 미넬리의 작품이 재밌긴 했지만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흥미롭다는 평이기에 추천해드리긴..8편의 영화를 보고도 추천작이 없다니 안타까워요;

맥거핀 2012-05-18 01:31   좋아요 0 | URL
조금은 다른 맥락이기도 합니다만, 저번에 얘기하신 허문영 평론가의 책에 나온 지아장커가 했다던 이야기가 있죠. 구축(making)의 다큐멘터리와 기다림(wating)의 다큐멘터리..저는 이 영화는 명백하게 구축에 가깝다고 봅니다만, 마치 기다림의 다큐멘터리처럼 교묘하게 위장을 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게 조금은 갸우뚱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도 여러 평들을 보면 건조한 영화,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라는 평들이 꽤 있거든요. 근데 저는 도리어 글에도 썼지만,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그것이 너무 세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근데 그 견해는 재미있네요. 잘만든 다큐멘터리는 야비하다...감독이 특정의 방향으로 (지나치게) 유도하는 것에 느껴지는 거부감? 뭐 그런건가요?^^

아..추천작이 없다는 건 저 또한 심히 안타깝군요. 하긴 요새 같으면 추천작이 있어도 못볼 형편이긴 합니다만...

Shining 2012-05-18 11:46   좋아요 0 | URL
전쟁을 근거하는, 그것도 다큐멘터리가 드라마틱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_+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맥거핀님의 말씀이 어쩐지 이해가 됩니다.

좀 더 어릴 적 혹은 젊을적에(웃음)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다는 친구에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좋은 소재를 찾아내는 거 아니냐? 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궁금했거든요. 수잔 손택을 비롯, 사진에 대한 글을 읽은 상태에서도 다큐멘터리와 사진을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좋은(혹은 드라마틱하거나 논쟁거리가 될 만한) 소재를 찾는 것과 그것을 배열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큰 의미인지 아직도 확신은 못하겠어요. 다만 특정 장면을 삭제하거나 더하거나, 그것만으로도 분명히 감독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관객으로 나는 가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니까. 어쩐지 속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뭐랄까, 사실이 진실은 아닌데 말이죠.

속았나? 와 속았다. 중 어떤 것을 택할지 망설일 때마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비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라는 뜻인데 말이 왜 이리 길어졌죠ㅠ

맥거핀 2012-05-19 12:54   좋아요 0 | URL
물론 좋은 소재를 찾아서 그것에서 (언젠가) 나오게 되는 좋은 영상을 오랫동안 기다려서 만드는 것도 좋은 다큐멘터리의 미덕이겠지요. 근데 요즘에는 평범한 소재를 조금더 적극적으로 가공하여 새로운 관점을 보는 이에게 제시하는 다큐멘터리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아장커의 영향인가..라는 생각도 있구요. 예를 들어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이나, 이강현 감독의 <보라>같은 것도 그런면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극영화나 다큐멘터리나 관객을 속이는 것, 어떤 관점으로 유도하는 것은 같은데 저 같아도 다큐멘터리는 조금 더 '관점'이 아니라, 사실, 혹은 진실을 담아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실생활에서도 여전히 그렇지만, 수많은 관점들 중에서 비교적 진실에 가까운 것을 가려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맥거핀 2012-05-18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 커쇼의 <히틀러>가 오늘만 반값세일이라는 메일을 보고, 어쩔까하고 며칠만에 알라딘에 들어와서 여러이웃님들 글을 70%의 집중도를 가지고 읽으며, 계속 나머지 30%로는 고민중인데, 시간은 어느덧 한시간 반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살까, 말까...끙.
 
The Ting Tings - We Started Nothing - 소니뮤직 Must Listen 시리즈
팅팅스 (Ting Ting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두 번째 앨범이 나온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끌리는 것은 이 앨범. 버릴 곡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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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5-0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곡은 역시 어쿠스틱 버전이 제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