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막차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거의 서울을 가로질러 집에 가까운 역에 도착하니 거의 1시 가까이 되었다. 달콤하고 비릿하고, 시큼하고 쾨쾨하고 향긋한 냄새가 뒤섞여 있는 막차에는 곳곳에 위험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두 종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술을 마신 사람들이거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중 나는 어느 쪽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술을 약간 마시기도 했고, 삶이 힘들기도 하(다고 생각하)니 그 둘의 교집합일까. 아니 그러고보면 이 사람들은 모두 이 둘의 교집합이 아닐까. 모두들 삶이 힘들어서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닐까. 혹은 어쩌면 그 반대일까. 술을 마셔서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일까.
2. 백분토론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DMB로 계속 백분토론을 보았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토론. 네 명의 참석자. 소위 '당권파'로는 이의엽 전 통합진보당 정책위 의장과 이상규 국회의원 당선자가 참가했고, 그와 맞서서 토론할 외부진보인사로는 진중권 동양대교수와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가 참가했다. 토론을 보다보니 분당사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의 생각은 단순한 입장차이를 넘어서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일단 토론 자체만 놓고 본다면 양쪽의 시각이 나름 각자 타당한 부분들이 있으며, 이해가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며, 절충할 부분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토론은 결국 핵심적인 것은 다루지 않고 있으며 외곽을 빙빙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곽을 빙빙 돌려고 하는 이 태도, 이 태도 자체가 그들의 입장차이는 결국 이 토론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 여기에서 모두 말하기에는 곤란한 것들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제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권투로 말한다면 외곽을 빙빙 돌고 있는 선수는 십중팔구 상대방보다 펀치가 약하거나, 믿고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카운터펀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의 권투일 경우에 그렇다. 만약 이 권투가 상대방이 쓰러지기를 원하지 않는 안타까운 권투 시합이라면 어떨까.) 하기는 백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메우기에는 그동안 파놓은 긴 시간의 골들이 너무 깊은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진중권 교수의 토론보다는 김종철 부대표의 토론에서의 말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이러면 이럴수록 지난 총선에서 진보신당에게 던져주지 못한 한 표가 정말 미안해진다. 그러나 만약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진보신당에게 한 표를 던질까, 그럴까.
3. TOP밴드
토요일 밤마다 하나의 프로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만 되면 뭔가 다른 일이 생겨서 TV를 보지 못하거나, 보더라도 띄엄띄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프로가 끝날 때마다 나는 음악다운로드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고, 새로운 밴드의 이름을 검색해서 넣고 있다. (한달 다운로드 갯수도 거의 남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KBS에서 새로 시작하고 있는 <TOP 밴드> 얘기다. 지난 3회에 꽂힌 밴드는 'Sad Legend'라는 익스트림 메탈 계열의 밴드인데, 방송이 끝난 후 정보를 찾아보니 몇 가지 추가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이 밴드는 15년이나 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중견밴드라는 점(이들의 동명의 첫 앨범 'Sad Legend'는 한 웹진이 뽑은 90년대 베스트앨범 100위 안에 선정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방송 녹화 이후에 해체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번복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또 이 해체가 이 방송과 연관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방송을 보다보니 하나 아쉬운 점은 워낙 출중한 실력의 밴드들이 대거 참가하다 보니 이들의 진출과 탈락이 연주실력이나 완성도의 문제가 아닌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자주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심사위원 개인의 취향이 워낙 다르다보니 이른바 '그들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도 달라진다는 점. (내가 좋아하는 저 밴드가 탈락해서 너무 슬프단 말이야.)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신대철 씨가 자신의 취향을 끝까지 고집하지 못하고, 결국은 삐지고 만다는 것이 아쉽다. 대철 형님, 이제 그만 삐지시고, 말싸움과 논리에서 영석 형님을 이길 스킬을 빨리 연마하시길. 대철 형님이 삐질수록 나도 그만 슬퍼지고 만다.
(개인적으로는) 아무튼 진출한 밴드들보다는 늘 탈락한 밴드들에 더 관심이 간다는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점. (예를 들어 저번에 1회에 탈락한 '밴딩머신' 꽤 마음에 들던데.)
4. 극장
최근에 거의 영화관에 가지 못했다. 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는 숀펜이 늙은 락스타로 나왔던 <아버지를 위한 노래>. 그 영화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저 너무 아름다운 얘기들이 '말로만' 나오는 영화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니라고만 말해둔다. "두려움이 늘 우릴 구하죠.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단 한 번이라도 두려움을 느끼지 말아야 할 순간을 선택해야 하죠."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은 이럴 거야'라고 말하는 나이에서 '인생이 그런 거죠'라고 말하는 나이가 되어간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좋은 얘기만을 들으러 극장에 가지는 않는다. 좋은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차라리 '힐링 캠프'를 보는 편이 낫다. 극장에서는 (스스로) 가장 보기 두려웠던 것,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보아야 하는 것, TV에서 볼 수가 없는 것을 보는 편이 낫다. 그리고 그 이후에 좋은 생각은 내 머리 속에서만 비로소 만들어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를 보다가 영화를 보며 뭔가를 메모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영화제에 가면 가끔 보는 풍경이지만, 일반 극장에서 보니 꽤 새롭다. 다만 나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면은 있다. 뭔가를 메모해둘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면서 하는 메모라는 것은 필시 영화가 끝난 이후에 어떤 것이 기억에 남지 않지 않을까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리뷰에 남기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되서 하는 것일텐데,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라면 결국은 그것은 글에 쓸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머리 속을 비우고 비우고서도 기억에 남아 괴롭히고 있는 것, 아마도 그것이 뭔가 이야기할 만한 것일 것이다.
지난 번에 '마이 백 페이지'를 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보지 못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 (합법)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다운로드 해두었다. (물론 아직 보지는 못했다.) 어떤 누군가가 리뷰에서 이 영화에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영화 필모에서의 '두 번째' 인상적인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첫 번째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를 떠나보내고 갑자기 길 한가운데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을 길건너편에서 찍은 씬이다. 그 씬을 보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가슴아프게 그리고 때로는 매몰차게 떠나보낸 어떤 것들에 대해 얼마나 기억했던가. 그의 두번째 눈물,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매우 기대가 된다.
5. 서평단
이번달의 인문, 사회, 과학, 예술 파트(정말 적을 때마다 느끼는건데, 너무 범위가 넓다)의 도서로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가 선정되었다. 서평단 담당자님의 각고의 노력에는 무한히 감사를 표하는 바이지만, 선정된 책이 그렇게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마이클 샌델의 책은 3권 정도를 보았는데, 이 저자의 책은 더 읽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었고, 강신주의 책은 나도 추천하기는 했지만, 사실 5권 중에서 가장 안되었으면 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뭐, 어차피 룰에 따르기로 하고, 서평단에 지원한 이상, 성실하게 읽고, 성실하게 써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그러다보면 마이클 샌델(자꾸 '마상달'이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이게 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탓이다)에 대한 나의 견해가 바뀌거나, '김수영 전집'을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지. 다만 한 가지, 우리 인문 서평단 대장님인 가연님의 추천도서가 한 권도 선정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선정의 공정성은 확실히 확보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했다(이 정도 농담은 괜찮겠죠, 가연님..;).
하기는 책에 대해서 더 말할 것도 없는 게 일단 문제는 나니까. 하도 오랫동안 책 리뷰를 안 써서 어떻게 책 리뷰를 써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뭐 꼭 책에 대한 것만은 아니고, 다른 글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오늘도 스마트폰으로 타인의 영화 리뷰를 보며 아 글은 이렇게 썼어야했는데...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쓴 리뷰인 영화 <아르마딜로> 리뷰는 이렇게 써야했다. 글 '아르마딜로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 2010): 일상의 전쟁' (블로그 '제5영화관') 뭐 그렇지만 이 분은 전문가니까. 최근에 후덜덜했던 전문가의 다른 글로는 '씨네21'의 정한석이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 대해 썼던 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씨네21 851호 전영객잔 '무엇이 영화입니까')
6. 술
이제 거의 술이 다 깼다.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