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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주 와우북페스티벌에 들러 몇 권의 책과 함께 수잔 와이스만의 <빅토르 세르주 평전>을 들고 왔다. 러시아 혁명을 다룬 주요한 저작 중의 하나인 <러시아 혁명의 진실>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그다(이 책 <빅토르 세르주 평전>에는 원제에 충실하게 <러시아 혁명의 첫 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책날개에 붙어있는 그의 삶을 정리한 간략한 글은 어떠한 의미에서는 참 전형적이다. "러시아의 혁명 인민주의자 집안에서 태어난 세르주(본명 : 빅토르 키발치치)는 열다섯 살까지 벨기에에서 살았다. 고국 러시아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1919년, 스물여덟살 되던 해에 볼셰비키 당원이 되었으며 다양한 정치적 임무를 띠고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3년 독일판 10월혁명이 실패한 뒤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 좌익반대파와 함께했다. 언제나 정치적 반대파였던 세르주는 자본주의와 스탈린주의,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로 인해 평생을 핍박 속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결국 1936년 러시아에서 쫓겨나 파리와 마르세유를 전전하다가 지독한 가난과 생명의 위협 속에 1947년 멕시코에서 눈을 감았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그의 삶이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실패하고 몰락한 자의 초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태어났고(세르주는 어린 시절 딱딱하게 말라붙은 빵을 커피에 적셔 먹는 끼니를 서술했으며, 그의 동생은 쫄쫄 굶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아홉 살에 굶어 죽었다), 한 때 꿈을 가지고 혁명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그 혁명이 그 혁명을 지지해준 자들에게 적으로 돌아서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그 반대편으로 돌아서고자 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그가 결코 지지할 수 없는 것이 있었고, 아무 조직과 힘이 없었던 그가 오로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고할 수 있었던 모든 매체를 통하여 치열한 반대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진정한 혁명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그 와중에 그는 당연하게도 지독한 가난과 생명의 위협에 시달렸고, 결국 거의 지구의 반대편까지 쫓겨간 후에 숨을 거두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이야기. 아마도 영화로 만들고자 시나리오로 잘 정리하여 제작자의 책상에 정성껏 올려둔다고 해도, 두어 줄의 간단한 시놉만 보고도 그것은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지금의 이 때에 이런 것을 읽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다른 의미에서라면, 성공한 혁명가의 책, 아니 성공한 혁명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해도, 이보다는 훨씬 낭만적으로 보이는 다른 혁명가의 평전들 - 대표적으로 체 게바라 - 을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몰락한 혁명가의 생애, 아니 굳이 혁명이라는 말을 아예 없애버리고라도 몰락한, 몰락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흥미가 생긴다. 이건 무슨 이상 심리일까. 어쩌면 몰락해가고 있는 것들을 통해 나의 삶에 대한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으려는 당연한 심리일까. 



2.
몰락한 것은 한 러시아 혁명가의 삶 뿐만이 아니다. 매일 저녁 프라임시간에도 지금 몰락한 자들의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다. 그것도 비극물이 아니라 시트콤이다. 물론 그것은 김병욱의 새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이야기이다. 김병욱은 이번 시트콤의 키워드를 '몰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인터뷰했다. 물론 김병욱의 전작들에서도 몰락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였으며, 몰락한 캐릭터들도 가끔 등장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웃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몰락해 가고 있는 자들이 망가져 가는 틈에서 원래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김병욱의 이야기들은 꽤나 자주, 깔깔깔 웃음이 터지는 와중에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만들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서늘한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러 묘한 웃음들을 끼워넣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것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가 그의 시트콤의 주인공들에게 마지막 순간에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죽음이 아닐까. 김병욱의 시트콤들은 이제 웃음은 뚝!, 이라는 식으로 마지막 순간에 시청자들에게 당혹스러운 순간들을 여러번 선물하였다. 그것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끊어버릴 때도 그랬고, 전체 이야기를 종결해 버릴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 덕분에 시트콤에서 상쾌하게 웃는 것으로 끝내고 싶었던 많은 시청자들에게 원망을 받기도 하였다. 하기는 김병욱의 시트콤을 보는 시청자들이 가장 자주 되묻던 질문은 "이거 시트콤 맞아?" 였으니까.

(글쎄. 앞의 심리와 연결될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김병욱의 시트콤에서 그런 서늘한 순간들을 더욱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김병욱의 시트콤들을 어떤 시트콤을 대하는 느낌보다는 그냥 드라마를 보는 느낌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많은 시청자들을 '김병욱 안티'로 돌아서게 만들었던 바로 전작의 꽤나 비극적인 결말도 내심 속으로는 상당히 괜찮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결말을 본 후 주위의 하이킥 팬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겉으로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결말이야!, 라고 했었지만, 집에 와서는 그 마지막 회를 몇번인가 돌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몰락'은 이번에는 전면에 나섰다. 집안의 가장인 안내상은 절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로 내몰렸으며, 그 덕분에 아들 종석은 모든 것을 걸었던 아이스하키를, 그리고 딸 수정은 미국 유학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나 몰락의 이야기는 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얹혀 사는 계상의 옆집에는 청년 실업의 상태로 선배 언니에게 얹혀 살고 있는 진희가 있으며, 이 집의 집주인인 지원에게도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뭔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아직 캐릭터의 중심을 잡는 초반임에도 길바닥에서 누워서 자고,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툭하면 나타나는 빚쟁이들을 피해 집 바닥 땅굴로 공습경보를 받고 대피하듯이 달려가기도 하고, 조폭들을 피해 쓰레기통에 숨기도 하고, 사기 당하여 학교 공금을 날리기도 하는 등, 그간 다른 김병욱표 시트콤들보다 훨씬 더한 고초를 겪고 있는 중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몰락은 어떤 사건들보다도 이 캐릭터 자체에 더욱 밀착되어 일종의 징후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안내상은 별 것 아닌 일에 집착하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비굴해지는 성격이 도드라지며, 백진희의 경우는 그의 삶의 피곤이 중첩된 몽유병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것을 기이하게 만드는 것은 나레이션의 등장이다. 이 나레이션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사건을 설명하거나, 이들의 속마음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행동을 마치 인류학적 보고서를 써내려가듯이 차분하게 분석하고 설명한다(물론 이는 미래의 이적이 과거의 어떤 때를 회상하는 식이라는 이 시트콤의 거대한 액자와도 관련이 있다). 즉 이 시트콤은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이들이 보이는 어떤 '징후적인 신호'에 관심이 있다. 이 시트콤은 이 몰락한 시대의 징후를 잡아내 거대한 분석 보고서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이 몰락한 세기의 징후를 어떤 식으로 포착해 낼 것인가. 그리고 한편으로 이들의 몰락은 마지막에 극적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아니면 전작처럼 결국 몰락의 종말인 죽음에 이르게 될까.

3.
그리고 여기 한국프로야구에도 몰락의 거의 대명사가 되어가는 팀이 있다.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위업을 남긴 팀이자, 내 20년 가까이 되는 응원팀인 트윈스다.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고 하니, 뭔가 상당히 어려운 미션을 실패하는 것 같지만, 이 리그는 수십개의 팀 중에 달랑 몇 팀 포스트시즌 진출하는 그런 리그가 아니다. 8개 팀 중에 4팀 포스트시즌 나가서 뚝딱뚝딱 아장아장한 다음 우승팀 가려내는 그런 작은 리그다. 그런 트윈스를 보는 팬들의 심정은 뭐랄까, 9년 넘게 반등수 50% 안에 못들고 있는 그런 자식을 보고 있는 심정이랄까. 그런 트윈스는 올해는 더욱 기적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시즌 초중반까지 2-4위권을 유지했고, 초반 30승도 다른 어떤 팀보다 빨리 올렸음에도 결국 6위(그것도 공동이니 사실상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런 트윈스 상당수의 팬들이 바라는 것은 이번 야구 시즌이 빨리 끝나는 거였다. 망가져가고 있는 팀을 보면서 DTD니, 내려갈 팀이니 하는 비아냥을 더 듣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들도 있었지만, 이번 시즌이 끝나면 무엇인가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늘상 스토브리그에 가장 바쁜 것은 트윈스팬들이었고, 가장 설렜던 것도 트윈스 팬들이기는 했다. 그러나 올해는 여러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듯 했고, 마침 박감독의 사퇴 발표로 팬들은 올것이 왔다고 잔뜩 기대했다. 트윈스 홈페이지 게시판과 각종 야구 게시판에는 희망적인 꿈을 가득 담은 각종 카더라와 설들이 난무하였고, 팬들은 곧 거의 예정되어 있는 김연아 금메달을 생각하며 마지막 프리를 즐기자는 심정으로, 발표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올것이 왔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올 것이.

팬들이 분노하고, 그 분노를 넘어서, 허탈과 그에 따른 이탈을 예고하는 것은 단순히 원하지 않는 감독이 선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감독이 새로 부임하여, 나은 성적을 올리고,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킬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거의 기대하지 못하고, 혹은 기대한다고 해도 다른 면에서 분노하는 것은 일종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트윈스 팬들이라면, 몇년 동안 이어진 트윈스의 부진이 단순히 야구 실력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물론 야구 실력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야구실력이란 것이 결국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트윈스나 다른 어느 팀이나 기본 자원은 같다. 좁은 한국 고교야구가 그것이다). 그간 부임해왔던 정치적인 인사들과 아직 프런트 및 코치진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적인 인사들이 팀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조금씩 보아왔다. 그런 정치적인 인물들을 이번에 갈아엎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구단의 생각은 팬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학교로 따지자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관심없고 교장의 비위만 맞추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교사를 아이들 성적이 엄청 떨어져서 해고했다고 좋아했더니, 교장의 친인척이 와서 그 자리를 메우는 꼴이다. 옆 명문학교의 정말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교사들이 몇 명씩 놀고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역설적으로 팬들이 이번에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현재가 아니라, 우리 프로야구의 기원에 있는 것들이다. 군사독재의 선전용, 혹은 귀막음 도구로 재벌들의 결합으로 시작된 우리의 프로야구. 그 프로야구는 그들이 말한대로 결국 국민들과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시작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한국프로야구에서 구단은 결국 그것을 가진 기업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팬들의 목소리라는 것이 현재 전혀 들어갈 틈이 없게 짜여진 이 구조에서, 팬들의 바람이란 결국 헛된 카더라일 뿐이라는 것. 내 소유물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데 당신들이 왜 나서는가, 아마도 트윈스 구단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팬들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우승을 열망하지만 구단도 그것을 열망하고 있을까. 어쩌면, 뭐 우승...하면은 좋기야 한데, 뭐 안해도 항상 야구장에는 관객들 그득하고, 어차피 적자인 상황에서 야구단이야 일종의 홍보물일 뿐이고...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그리고 현재 트윈스 홈페이지의 회원게시판은 감독 선임 이후 며칠 째 오류를 핑계로 작동되고 있지 않는 중이다(뭐 어쩌면 엘지의 기술력이 이 수준일지도..). 그런 상황에서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수막을 들고 야구장에 갔다가 폭도로 몰리거나, 지나친 팬심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뉴스에서 듣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미 길들여져 버린 우리들은 오늘도 여전히 멍하니 야구중계를 튼다. 

 
    

4.
자꾸 몰락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더니, 몰락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는, 장정일 작가가 <빌린 책/산 책/ 버린 책 2>(이 책 역시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사왔다)에 쓴 "독서는 몰각과 자각, 이 양켠 모두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장정일 작가는 책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쾌락이란 어떻게 보면 모순되고, 서로 길항하는 두 개의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전체에 몰각됨으로써 얻는 쾌락이 있고, 전체와의 일체감 속에서 자신을 명료하게 느끼는 쾌락이 있습니다. 마약이나 알코올에서 느끼는 쾌락이 전자라면, 신비주의에 귀일해서 얻는 쾌락은 후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독서는 몰각과 자각, 이 양켠 모두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의 생각에 완전히 녹아들기도 하고, 그 속에서 반성적이 되거나 자각을 얻기도 합니다."

몰각과 자각,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는 않지만, 함경록 감독의 영화 <숨>을 보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예를 들어 <도가니>와 같은 영화가 몰각에 가까운 것이라면, 이 영화 <숨>은 자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는 기본적으로 몰각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은 있다. 스크린과 합일하여 충만해지는 상태적인 쾌락이 몰각이라면, 아마도 영화보기는 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숨>을 보고 나오면서 그것을 떠올린 것은, 이 영화 <숨>이 <도가니>와 가까운 이야기를 상당히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에서는 결국 장애인 여주인공의 결혼과 가정이라는 꿈이 외부의 선을 표방한 사람들에 의해 깨어지게 된다. (<도가니>를 아직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간 <도가니>에 대한 여러 글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도가니>의 명확한 선악 구분과 달리, 이 영화의 선악 구분은 상당히 모호한 데가 있다. <도가니>가 분노하게 만드는 영화라면, 이 영화 <숨>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즉 분노가 일종의 쾌락과도 맞닿아 있다면, 그것은 몰각에 가까울 것이고, 생각과 반성은 일종의 자각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나는 <도가니> 보다 <숨>이 더 영화적으로 낫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람들을 분노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는 영화가 사람들을 충분히 분노하게 만든다면(즉 몰각을 시도한 영화가 그 몰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면), 그것만큼 충분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 <숨>은, <도가니>와 그로 인해 이어져가고 있는 광주 인화학교를 둘러싼 일련의 진행들을 보면서 조금은 우려되는 부분들, 조심해야할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준다. 그것은 이 분노가 무엇을 위한,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분노는 나의 쾌락적인 만족감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광주인화학교 대책위에서 과도한 관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나, 학교 폐쇄를 우선으로 하고 있는 정부의 대책들을 보면 조금은 여러 생각이 미치게 된다. 그리고 또 동시에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아동이나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은 더더욱 조금은 조심스럽고 최대한 피해자들을 보호해가면서 사건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도가니>의 열풍 속에서 그런 조심스러운 접근을 또 조금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면서 했다.

아무튼 이 영화 <숨>은 굳이 <도가니>와 연결짓지 않아도 그 나름의 영화적 성취 속에서 또다른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윤리의 문제 역시 우리가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그 영화적 성취나 윤리의 문제는 혹시라도 쓰게 될 다음 포스트에. <도가니>를 본 사람에게 추천, 곧 내려갈 것 같으니 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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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10-09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전에서 시트콤으로 야구로 책으로 영화로....숨가쁘게 따라 읽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 중 어느 하나도 읽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만 이렇게 다양한 문화영역을 몰락이라는 주제로 꿰어가시다니... 놀랍습니다.

맥거핀 2011-10-10 18:23   좋아요 0 | URL
왠지 요즘 보고, 듣고 한 것들 중에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무리하게 연결해 본 글입니다. 사실은 다른 건 훼이크고, 요즘 트윈스 구단 때문에 너무 열받아서 쓴 글..이라는 게 더 정확한 사실에 가깝구요.^^;

노이에자이트 2011-10-0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혁명에 대한 책이 요즘 안 팔리죠.좌익반대파의 우두머리인 트로츠키 관련 서적도 잘 안 팔리는데 세르쥬 같은 사람의 전기가 팔릴 리가 없습니다만...

몇 년 전 중국의 트로츠키주의자인 왕범서의 회고록이 번역되었던데 이 책도 몇 부나 팔렸을지...여하튼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까요.

맥거핀 2011-10-10 18:41   좋아요 0 | URL
하기는 책을 싸게 판다는 와우북페스티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감안한다고 해도, 정가 18,000원의 책이 5,000원에 팔리고 있더군요. 그나마도 잘 안팔려 다른 책들보다 많이 남아있기도 했고, 다른 평전 시리즈보다 이 책이 더 유달리 싸기도 했구요.
말씀하신 책도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중국 트로츠키주의자 회고록도 번역된 적이 있었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10-10 22:45   좋아요 0 | URL
공산당 당수 하다가 트로츠키주의자로 전향한 진독수 평전은 절판된 지 20년이 넘으니 왕범서 것이라도 읽어야죠.요 몇 년 새 일본의 아나키스트들 전기도 나오고 그렇더라구요.역시 갈수록 세상은 발전하죠.예전엔 이런 책들 구경도 못하고 소문으로만 들었으니까요.

맥거핀 2011-10-11 22:23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노이에자이트 님은 어찌 그리 다양한 영역에 대해서 잘 아시는지..늘상 여러 가르침주셔서 감사합니다.

2011-10-10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1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파워블로그들에 대한 여러 문제점과 그에 대한 논의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여러가지 두서없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먼저 일차원적으로는 파워블로그라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파워블로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아이러니를 조금은 느낀다. 사실, 블로그라는 것의 처음 시작의 의의 중의 하나는 기존의 미디어 권력들이 가졌던 독점적인 발언권을 해체하고, 그 발언권을 무수히 많은 개인들, 시민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언론의 권력이동을 꾀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 그 블로그들 중에서 기존의 미디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권력을 행하는 소위 '파워블로그(거)'들을 볼 때에 느껴지는 그 씁쓸함의 정체는 뭘까. 어쩌면 그 씁쓸함의 비밀은 그 '파워'블로그라는 천박한 이름에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뉴스에 보니, 포털사이트들에서 파워블로거들을 선정할 때, 상업성을 배제한 블로그들을 선정한다고 하던데, 그런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우선 드는 생각은 상업성을 배제한다고 했을때 그 기준이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문제가 된 것처럼 블로그에서 특정 회사의 제품을 공구하는 것을 여기서의 '상업성의 기준'이라 한다면, 그것은 그에 뒤따르는 다른 질문을 낳지 않을까. 예를 들어, 그렇다면 블로그에 광고를 도배하는 수많은 다른 '파워블로그'들은 '상업적이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굳이 광고를 걸지 않더라도, 거의 제품에 대한 홍보와 리뷰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일부의 블로그 글들은 '상업적이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런 선정을 그만두는 것이 아닐는지. 개인적으로는 도대체 왜 그런 식의 블로그들을 선정하는 작업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직은 내가 모르는 몇 가지의 비밀들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일 게다. 

사실 이야기를 먼 곳으로 돌릴 필요도 없이, 이곳 알라딘의 블로그들을 보아도 이 상업성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하다. 예를 들어 별 의미가 없는 40자평으로 도배를 한 몇 개의 블로그들이나, 잔뜩 리스트만 올려놓은 블로그들을 내가 상업적이라고 비판한다면 나는 다음의 몇 개의 질문들에도 답해야만 할 것이다. 리뷰를 올리고, 혹은 때로 리스트를 올리고, (거의 들어오지는 않지만)  thanks to를 받는 것은 그렇다면 상업적이지 않은 것인가. 신간평가단이라고 참여하여 그 책들에 대한 리뷰를 올리는 것은 상업성과 무관한 것인가. 이달의 영화 리뷰에 뽑혀 알사탕(별사탕이던가?)을 받는 것은 상업성과 무관한 것인가. 알라딘에서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것을 지급해준다는 말인가.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특정의 인터넷 서점 블로그에 계속적으로 리뷰를 남기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상업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왠지 이것은 삼성 문제에 대한 대처들의 모호한 경계와 닮았다. 예를 들어 삼성을 비판하는 의미로 삼성 제품을 불매한다고 했을 때, 다음의 어떤 질문들. 그렇다면, 나는 삼성 TV를 버리고, LG 제품을 쓰면 조금은 나아지는 것인가. 아니면, 중소기업의 제품을 써야하는 것일까. 아니, TV를 아예 버려야만 정답이 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간에, 어쨌거나, 나는 여전히 이 블로그에 리뷰들을 (요즘에 들어서는) 아주 가끔 남기고 있고, 부수입들을 얻고 있다. 그래서, 상당히 양가적이고, 이중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블로그에 광고들을 도배하는 블로그를 보면서, 참 저런 블로그들은 뭐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리뷰가 이달의 리뷰로 뽑히는 것은 즐겁고, 우쭐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즐겁고, 우쭐한 마음의 어딘가에는 알사탕이 떼굴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걸까. 예전에는 뭔가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블로그들을 보면서, 여러 비판들을 마음껏 하기도 했었는데, 말은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내가 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 

사실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고, 좀더 가벼운 투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이야기가 다른 결로 빠진 것 같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 파워블로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왜 지금 무엇을 쓰는 걸까'라는 문제를 생각하고 싶었다. 그 파워블로거들도 처음에는 그저 뭔가를 쓴다는 사실이 좋아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이야기를 듣고 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을 것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그런 마음일까. 무엇인가를 쓰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눈다는 그 순수한 사실이 그들을 지금도 기쁘게 할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것 때문에 지금도 이 블로그라는 것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내 블로그 생활을 돌이켜 보면, 처음 시작은 '블로그인'이라는 사이트였고, 그 후에 네이버 블로그 생활을 꽤나 길게 했다. 그 때 블로그 생활이라고 해봤자, 주력은 락음악들을 올리는 것이었고, 그 외에 잡담을 올리고, 짧은 영화 감상을 올리는 것이 다였다. 그 이후에 좀 제대로된 리뷰들을 써보자 싶어서 시작한 것이 티스토리였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중간에 '씨네21' 블로그에서도 잠깐 티스토리의 글들을 옮겨 놓았었고, 알라딘에서는 영화 리뷰를 10개인가 올리면 적립금을 준다기에 시작했고, 어쩌다보니 여기에도 지금까지 글들을 옮기고 있다. (그러고보면 알라딘에서의 시작이야 말로 철저한 '상업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도리어 알라딘에만 쓰는 글들이 있고(이 글을 포함하여), 티스토리보다 여기에 훨씬 더 자주 들르게 되었다. 

티스토리보다 알라딘에 훨씬 더 자주 들르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에는 글을 올리면,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그리고 몇 마디 이야기라도 나누게 되니까. 티스토리의 경우 꾸준히 들러주시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도 요즘은 블로그를 거의 안하시고, 트위터를 주로 하시는지라, 당장 티스토리를 그만둔다고 해도 별 죄책감이 없다. 그러나 알라딘은 매우 상업적인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즐겨찾기등록: 16명'이라는 우측의 표시와 아주 가끔 늘어가는 추천수와 꾸준히 들러서 글 읽어주시고,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몇몇 이웃 분(제가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겠지요?)들을 뵈면 뭔가를 자꾸만 써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추천수나 즐겨찾기 숫자에 민감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분 나의 어떤 욕망과 연결된다. 그것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다. 사실 예전에 '씨네21' 블로그에 글들을 옮기게 된 것도 거기에 글을 올리면, 거기는 아무래도 날카로운 눈들이 많은 곳이니 누군가 나의 글들을 발견하고 신나게 까주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게 되었고, 즐겨찾는 사람이 1명 생길 때까지만 버텨보자 싶었는데(거기도 알라딘과 비슷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결국 버티지 못했다. (블로그를 그만두게 된 것은 사실 '씨네21' 측이 블로그 운영을 함에 있어서,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는 측면도 있었다. 그리고 요즘에 보니 결국 블로그 쪽을 일방적으로 닫아버렸다. 현재 '씨네21' 사이트에서는 블로그와 관련된 어떤 링크도 없다. 예전에는 블로그 글들을 일방적으로 사이트 메인에 올리더니, 관심을 못 끄니 한마디로 블로거들을 '팽' 한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가끔, 그리고 자주 이 블로그에 들러 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을 보면 참 감사하다. 그것이 어떠한 내용의 글이 되었건, 내 글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가장 감독을 비참하게 만드는 영화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영화다. 줄줄이 별 0개의 20자평이 달린 영화라 해도, 아무 20자평도 달리지 않는 영화보다는 감독을 기쁘게 만들 것이다. 글도 당연히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몇몇 그런 블로그들을 알고 있다. 정말 괜찮은 글들이 올라오는 블로그였는데, 그 블로그에는 아무 댓글들도 없었고, 블로그 주인은 어느날 슬며시 블로그를 닫고는 어디론가로 없어져 버렸다. 영화 <경>에 나왔듯이 그들은 없어졌다기보다는 그저 더 이상 '검색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검색되지 않음'에 쓸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쓸쓸함에는 나에게 느끼는 쓸쓸함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무언가 열심히 댓글을 남겨주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어쩌면 파워블로그 100위를 뽑네, 어쩌네, 알라딘에서도 서재의 달인이네, 어쩌네 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있을 것도 같다(글의 초반에는 비판 비스무리하게 해놓고, 이제는 옹호하고 있으니 글이 어째 점점 병맛으로 가는 것 같다). 우리들 모두는 검색되지 않음을 두려워하니까. 100위 안에 들어서 어떻게든 이곳 어딘가에 자신의 블로그 이름을 남겨놓고 싶으니까.  

.............................................. 

쓰다보니 글의 결론을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형적인 병맛이다. 처음에는 왠지 요즘에는 리뷰를 잘 쓸 수가 없어서, 가볍게 아무 이야기나 하자, 그리고 한 달에 한 개 올린 리뷰로 2달 연속 이달의 영화리뷰를 받으니 참으로 민망해서, 뭐라도 쓰자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는 점차 산으로 가고, 어떻게 끝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도 원래 하려던 얘기는 뜬금없이 하자. 몇 개의 메모들을 쌓아두고 있는데, 뭔가 리뷰 같은 것을 왠지 쓸 수가 없다. 영화를 보고 와서 바로 쓰면 좋으련만, 여차저차 자질구레한 이유로 조금씩 미루다가 결국 나중에는 영화 내용이 기억이 안나고, 메모의 맥락을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못 쓰게 되는 악순환이 점차 늘어만 간다. 지금도 한 영화 5개 정도가 그런 식으로 쌓여 있는 상태고, 책 <사유의 악보>는 오래전에 책을 다 읽고, 메모에도 무엇인가 잔뜩 적어두었는데, 여전히 무엇인가를 쓰지 못하고 있다. 반딧불이 님께 꼭 쓰겠다고 한 공언(?)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평가단이라고 받은 책인데 꼭 무엇인가는 써내야하지 않겠냐는 다짐이 있다. 

김혜리 씨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 <방랑기>(위에서 말한 영화 5개 중에 하나다)를 보고 남긴 글에서 첫머리에 반성하고 있다고, 나는 지금 너무 많이 먹는 대신에 너무 안쓰고 있다,고 남겼던데, 이 말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당연한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김혜리 씨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고, 너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다. 글쎄. 이렇게 말하게 되면,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무엇인가를 자꾸 쓰고자 하는가. 왜 지금도 뭔가를 쓰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글쎄. 아무튼 아주 오랫동안 뭔가를 조금씩 쓸 수 있었으면 좋겠고,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내 글을 읽어준다면 기쁠 것 같아서...라는 대답은 대답이 될까. 그냥 나는 가늘고 길게 갔으면 좋겠다. 가끔 정말 엄청나게 공력이 들어간 것 같은 글들을 보며(사진도 엄청 들어가고..) 저런 글들을 따라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곧 포기하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다. 몇 개의 글들은 그렇게 써볼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런 다음 아마도 곧 나는 지쳐서, 더 이상 별로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그런 다음은 어쩌지?...라는 그 공포. 그러니, 그저 가늘고 길게. 내 스타일대로, 읽을테면 읽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그래도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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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8-11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워블로그에 대해선 엄청나게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있어서, 누구라도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있어도, 끝맺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역시.. 몇 번인가 썼다 지웠다 임시저장은 되어 있으려나. 하는 상태. ^^

제가 생각하는, 지향하는 파워블로그는 '상업적'인 것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블로그에 '파워'를 더해주고요, 더 나은 포스팅을 생산하게 하지요. 그러니깐, 블로그 포스팅 하는 것이 '일'이라면, 그건 당연히 더욱 전문적이고,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포스팅이 되는거죠. 뭔가 꼬여버린 우리나라의 소위 '파워블로그' 들 말고, 전문적인 해외 파워블로그들처럼요.


맥거핀 2011-08-11 11:23   좋아요 0 | URL
고견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이드 님의 '상업적'과 제가 말하는 '상업적'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글의 가치로서의 어떤 ‘상업성’이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즉 글 자체의 가치,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간 포스팅 그 자체의 상업적 가치 말입니다. (다만, 그것이 상업적이 되어야만, 그 글이 퀄리티가 올라가게 된다는 것에는 부정적입니다.) 예를 들어 제 글이 엄청나게 퀄리티가 좋아져서, 미래에 언젠가 제 글이 상업적으로 팔린다면 기쁘겠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를 들어 지금의 일부 블로그처럼, 이 글을 보려면 이 정도 광고는 감수해라는 식의 광고 도배를 ‘상업성’이라고 부른다면, 저는 그 ‘상업성’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예전의 한 블로그에서는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성형의 만연을 걱정하는 포스팅이었는데, 키워드 광고기법(맞나요?)을 쓴 탓인지, 그 밑에는 성형외과 광고가 즐비하게 붙었더군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동시에, 블로그 포스팅의 퀄리티를 높이려는 노력 없이, 다른 상업적인 이익을 낼 방도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블로그들도 마찬가지구요. 말장난이라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블로그의 최후의 목적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좋은 포스팅(글)을 써내는 것’이어야겠지요...작가들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글을 쓰지만, 결국 모든 작가들의 최종의 꿈은 불멸의 명작을 써내는 것인 것처럼요. (말씀하신대로 ‘파워블로그 문제’에는 여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나 보네요.^^ 아무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이드 2011-08-11 23:03   좋아요 0 | URL
상업적이 되어야 퀄러티가 올라간다는 것은 그것이 일인 경우에, 예를 들면, 제가 꽃일을 하고, 꽃에 관한 포스팅을 올린다면, 그건 부지런한 일반인이 따라올 수 없는 전문적인 포스팅이 되겠죠. 전문적이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서 팔로워들, 즐찾들, 이웃들이 많아지면, 저의 포스팅은 '광고' '홍보' 효과가 있는 것이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겠지만, 보여지는 이미지.를 생각한 유익하고 올바른(?) 포스팅을 내킬때마다가 아닌, 꾸준히 일로서 하게 되는거.

그런것이 제가 생각하는 상업적인 것입니다.

해외 블로그 중에서는 잘 알려진 '사토리얼리스트' 과 같은 블로그나 제가 자주 가는 디자인, 데코, 책, 뉴스 블로그들이 그 카테고리에 들어가구요. 우리나라에선 롤모델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맥거핀 2011-08-12 00:32   좋아요 0 | URL
네..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일종의 '강한 의무감'을 말씀하시는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그냥 좋아서 쓰는 것이 아닌,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포스팅을 생산해내는 것..

제가 외국블로그 쪽은 잘 몰라서, 어느 정도 퀄리티를 의미하시는지는 감이 조금 덜 오지만,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전히 어떤 의문이 남기는 합니다. 그것이 그렇다고 해서 퀄리티가 창출된다고 볼 수 있을까..도리어 그런 일종의 의무감과 책임감이 매너리즘을 만들어내고, 도리어 포스팅의 질적저하로 이어지지 않을까..(일부 국내의 파워블로거들이 걸어가는 길을 보거나, 혹은 일부 소위 전문가들이 어느 순간 이상부터 매너리즘에 빠진 글을 양산해내는 것을 보면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운 문제겠지요..

cyrus 2011-08-1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와닿네요. 댓글은 안 달더라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한 명일이지라도)
읽어주게 된다면 참 좋겠죠. 글 쓰는 맛도 나고요. 저도 작년에 처음 블로그할 때
서재지수, 추천에 좀 민감하게 반응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차츰 변하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겁이 나면서도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어요. 맹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독서를 하면서 경험을 흔적에 남기는 글쓰기의 목적 자체가 전도되어버리거든요.
그리고 저 이외에도 서재 이웃분들도 그런 마음을 한번쯤은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작년부턴가 아예 서재지수랑 즐겨찾기 수를 확인할 수 있는 거를 비공개로 해버렸어요.
이게 최선의 방안이지는 모르겠지만,, ^^;; 저나 이웃분들이나 서로간에 수치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었답니다.

어쨌든 많이 부족한데도 댓글이라도 달아주시는 이웃분들 보면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제가 이웃분들에게 직접 서재에 들리지 못한 저의 나태함 때문에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역시 온라인 관계 역시 오프라인만큼 오랫동안 유지되는게 어려운가 봅니다. ^^


맥거핀 2011-08-12 00:46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글에도 썼지만, 다른 분들 블로그에도 많이 가서 댓글도 남기고, 글도 좀 꼼꼼하게 읽어보고 그래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한편으로는 반성하게 됩니다. 때로는 댓글을 남길까 하다가도, 괜히 주저되기도 하구요. 몇 번 왕래가 있는 블로그들도 그러한데, 처음 보는 블로그는 더더욱 그러기가 쉽지 않구요.

저는 처음에 여기 왔을 때, 글 추천수 같은 것은 도대체 왜 있을까 싶어서, 거의 다른 분들 글들을 읽어도 '추천' 같은 것은 누르지 않고 그랬는데요. 제가 이후 어느 순간부터 그거 한 개 올라갈 때마다 꽤나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다른 분들 글 중에서 좋다 싶은 것은 꼭 잊지 않고 추천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경계를 하고 있기는 하지요. 추천수가 많다고 꼭 더 좋은 글도 아닌데(다른 분들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제 글끼리 비교해보면요), 왜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까...라구요. 그래도 알라딘만의 재미있는 시스템이라 생각해서 굳이 거부감은 가지지 않으려 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실 들러주셔서 한 마디 해주시면 늘 고맙지요. 저는 다른 분들께 잘 못하는데, 블로그에 굳이 찾아와 주셔서 의견 남겨주시는 거니까요. 물론 cyrus님도 감사드리구요. 좀 다른 얘기지만, 제가 위의 글에 공력이 많이 들어간 글 운운하며, 저는 그렇게는 못 쓴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때 중에 하나가 cyrus님 블로그에 들를 때에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cyrus님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때가 있어요. 이렇게 한편한편 공을 들이시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 아예 안 쓰시면 어쩌나 하구요. 하하..오지랖이지요? 부담감 가지시라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저, 좋은 글 편한대로 많이 써주세요. ^^

2011-08-11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2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의 트위터 한마디. 

정말 맞는 말이다. 동시에 아주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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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6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8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9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9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8기 활동 종료 페이퍼

사실 짤막한 이 글은 <사유의 악보> 리뷰를 올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 구질구질한 몇 가지의 이유로 나는 책을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이고(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겨우 읽는 척을 하는 중이고), 그 '홀가분한 마음'이라는 친구를 곧 만나게 될 성 싶지는 않다. 그러니 9회초에 야구장을 빠져나와 응원팀을 저주하며 오징어다리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는, 혹은 영화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마감시간에 쫓겨 대충 리뷰를 적어 올리는 꼴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먼저 올려야 할 듯도 싶다. 물론 어쩌면 그로 인해 9회의 멋진 역전을 보지 못한 채, 다음날 스포츠신문에서 기사를 읽고 뒤늦은 환호 및 급탄식을 올리거나, 영화의 멋진 결말을 다른 사람의 글로 보아야 하는 씁쓸함을 맛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뭐 나같은 자에게 따르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결말일 것이다.

* 가장 좋았던 책 BEST 3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  한겨레출판사

조지 오웰은 분명히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그의 문장들은 꽤 오래전 쓰여진 것이지만,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그 문장들이 아직도 현실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조지 오웰의 통찰들은 지금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며, 대상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과 그것에 대한 적확한 묘사는 우리를 그 시점으로 데려다놓고, 다시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 글들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그 기본 바탕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조지 오웰을 단지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로만 기억하던 나에게 새로운 그의 면모를 보게 해준 책. 



反 자본 발전사전 / 볼프강 작스 외 / 아카이브

발전이라는 것의 모든 것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신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라고 누군가 직접적으로 묻는다면, 딱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소비적인 삶을 완전히 버리지 못할 것이고, 발전이 모든 부분에서 악이라고 자신있게 외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몇 가지의 다른 시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을 부인한다고 해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삶'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의 이 발전 레이스의 끝에는 확실한 공멸이 있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는, 적어도 아니 나는, 다른 삶에 대하여 지속적인 고민과 실천을 (앞으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칭 / 마커스 드 사토이 / 승산

수학자들의 세계는 완벽을 향한 여정이다. 완벽한 증명, 완벽한 정리, 그리고 완벽한 대칭. 그러나 이 완벽의 여정은 이 책에서 말하여지듯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완전한 대칭이란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눈에 보이는 완전한 대칭도 이 3차원 세계에서나 완전한 것이지, 다른 차원에서는 완전한 대칭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넓은 세계 앞에서, 경이를 표하며 최대한 겸손해져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저자의 글쓰기가 참 닮고 싶은 부분이다. 이 어려운 내용을 쥐락펴락하며 최대한 재미있고, 최대한 쉽게 전달하는 것.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먼저 여러번 반복되어 왔던 말이지만, 이 신간평가단의 카테고리를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될 필요가 있다. 물론 외부에서(즉 이 신간평가단으로서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알라딘 내부에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고, 외부에서 잘 모르는 현실적인 필요나 몇 가지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현실적인 필요'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전체 신간평가단의 구성이 어딘가모르게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누락되어 보이는 몇몇 부분들도 그렇고, 각 분야 밑에 놓여진 카테고리들도 조금 이상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일단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여러 알라디너들의 의견을 구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간평가단 내에서 어떤 식으로 의견교환을 활발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물론 이것에도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개입 되었겠지만, 현재와 같이 공간만을 만들어놓고, 평가단 개인의 자유로운 참여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는 몇 가지 작지만 나름 민감한 문제들이 개입된다. 참여를 가장한 강제성의 문제 혹은 신간평가단 담당자 님의 역할론과 같은 문제, 알라딘 서재 활동과의 연계와 같은 부분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동 시간대에 같은 책(가장 최신간)을 읽고 같은 공간에 리뷰를 쓴다,라는 이 좋은 조건을 만들어 놓고도 의견의 교환이 간단한 감상의 나눔으로만 그친다는 점도 아쉬운 감이 있다. 어떻게 이를 긍정적인 활발한 토론의 장으로 만들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몇몇 흰소리를 했지만,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분들과 신간평가단 담당자님. 그리고 여러 의견 나눴던 이웃 알라디너 분들. 좋은 리뷰들로 책을 다시 돌아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신 다른 신간평가단분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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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05-0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헉)달려오느라..
1.2위가 저랑 같네요..^^
아, 선정 이유가 넘 멋있어요. 제가 하고픈 말이었습니다..^^
맥거핀님, 포근하고 산뜻한 봄날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맥거핀 2011-05-04 18:22   좋아요 0 | URL
포근하고 산뜻..해야 하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해서 고민입니다.^^
서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인사를 주고받으니, 왠지 어색한데요..? 흐흐..;;

반딧불이 2011-05-0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신히 마지막 리뷰를 썼는데 써야할 페이퍼가 또 있군요.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매사에 애정이 느껴져서 참 따듯합니다.
에고..스마트폰으로 적느라.. 메일을 받으신다면서너개가 갔을것 같으네요. 죄송합니다

맥거핀 2011-05-05 20:02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마도 온라인상이라 그렇게 보이겠지요..;;) 반딧불이님은 마지막 리뷰도 올리셨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페이퍼 쓰시면 되겠네요. 글구 메일은 한통밖에 안왔습니다.^^

네오 2011-05-0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습니다~

맥거핀 2011-05-12 13: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앞으로 수고(?)해주세요.^^
 

얼마전 <리영희 평전>에서 읽은 20세기형 코미디

http://blog.naver.com/oneman64?Redirect=Log&logNo=90100365748

그리고 이것은 조금 더 코믹해진 21세기형 코미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4519.html



한국의 검사들은 50년이 가까워오도록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참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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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5-0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안면근육이 말이 아닙니다. 정말 코미디라면 좋겠는데 이게 현실이라는게 아득하네요.

맥거핀 2011-05-02 15:05   좋아요 0 | URL
말로는 '쥐20'을 외치는 위정자들의 현 수준이 딱 이거라는 거겠지요. 나름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인데, 어째 상태가 저 모양이신지, 참 미스테리합니다.;;

네오 2011-05-0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저는 그들에게 박수쳐주고 싶어요 혹은 쉴드쳐주거나~

맥거핀 2011-05-04 01:19   좋아요 0 | URL
음..그냥 포기하신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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