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11회 세계문학상 대상작의 작품은 고양이 집사들에겐 깜짝 놀라고도 남을만한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고양이를 잡아 먹은 오리>라니. 오리가 진짜 고양이를???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1억원 고료 소설의 내용은 그 상금과 상관없이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뒤흔들만큼 충격적이었는데 의외로 그 첫문당은 담담하게 그리고 평이하게 시작된다.

 

p7 불광천에는 오리가 산다

 

로 시작해서 바로 다음 문장이 '돈이 없다'이다. 삼단논법에 따라 그리하여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오리를? 이 아니라 아무 상관 없는 이 두 문장이 합쳐져서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이야기다. 2012년 8월 통장엔 1764원 밖에 없던 시절, 월세조차 내지 못해 마지막 통첩을 받아야 했던 33세의 남자는 일당 5만원짜리 일거리를 잡기 위해 해치아파트 1305호 노인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p14 오로지 오리만. 되도록 선명하게. 얼굴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도록

 

찍어 오는 것이 그의 임무. 노인이 기르던 고양이 호순이를 불광천 수많은 오리 중 한마리가 홀랑 잡아 먹어버렸단다. 그것도 노인이 보는 눈 앞에서. 그 원수의 얼굴을 잊지 못해 오리를 잡고야 말겠다는 노인은 그가 하루 종일 찍어오는 오리들의 사진을 보며 범인 색출에 나섰다. 아불싸. 혼자가 아니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던 여자도 노인에게 고용되어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형편에 쪼들려가며 소설을 쓰던 남자와 증권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주식으로 전재산을 다 날려 버린 여자는 매일매일 불광천에 나와 오리들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가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그놈이 그놈 같고 저놈도 이놈같은 얼굴 속에서 그때 그 오리를 찾는 일이란 바늘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낙타를 찾는 일과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노인을 위해 호순이와 똑같은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다.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바에야 살아있는 것으로 둔갑시킨다면 노인이 이 소모적인 일들을 다 그만 둘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노인의 꼬맹이 손자가 동참했고 다른 마음이긴 했지만 노인의 아들도 동참했다. 손자와 달리 아들은 아비의 돈이 목적이었지만.

 

떵떵거릴만큼 잘 살던 노인은 아들로 인해 재산을 다 잃었다. 병으로 아내도 잃고 오리 때문에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도 잃었다. 말년운이 이토록 박복한 노인에게도 볕뜰날이 오려는지 핏방울 하나 섞이지 않은 두 남녀와 가족인 손자가 그를 걱정하며 그를 위한 연극에 나섰던 것이다. 그들은 동물병원, 보호소, 인터넷 카페 등을 뒤져서 호순이와 똑같은 고양이를 찾아내고 돈에 눈이 먼 아들을 시켜 오리 한마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노인 앞에 그들을 들이밀었다. 제발 그가 그만두어주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노인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오리와 고양이만 쳐댜볼 뿐. 그리고 그는 우문현답을 솔로몬 왕처럼 내렸다.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는지,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는지, 둘 중 하나로 결판이 나야 나도 다음에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겠다"라며. 둘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단다. 이보다 현명한 답이 또 어디 있을까. 오리와 고양이는 현명하게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존의 길을 찾았고 노인의 집에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은 의문 하나. 정말 호순이는 오리에게 잡아 먹혔던 것일까? 세상에는 고양이를 잡아 먹는 오리도 있단 말인가? 이 의문은 대체 어디서 풀어야 한단 말인가. 동물농장에라도 제보해서 그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난감하네. 정말 난감하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로의 인형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사실 영화로 보면서 그닥 감흥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작가의 이름을 쉽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운명계산시계],[신의 달력],[궁극의 아이]등을 읽으면서 내게 장용민이라는 이름 석자는 믿고보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시시하지 않게 풀어가는 정성 가득 들인 플롯과 제프리 디버처럼 공들여 쓴 흔적이 물씬나는 방대한 양의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부지런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불로의 인형은 기원전 210년으로 되돌아가 진시황이 죽은 후 항우와 유방이 만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 미스터리와 실마리를 교차하며 그 재미를 배가시키는 이야기 속에서 3국의 역사를 뛰어넘는 그 무엇을 발견해내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성공적인 삶을 자축하던 가온에게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진 것은 그가 막 췌장암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서였다. 자신의 미래를 좀먹는 암덩어리와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의 죽음. 어느 쪽이 더 그에게는 스트레스였을까.

 

가온은 평생 아버지를 미워했다. 떠돌이 광대의 삶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결국 죽고 나서도 배다른 여동생만 남겨놓았기 때문에. 그런 아버지의 죽음이었지만 자살이 아닌 타살의 흔적을 발견하고서는 남의 일처럼 곧바로 돌아서지 못했다. 그리고 배다른 여동생 '설아'가 보여준 아버지의 인형 컬렉션 속에서 그는 범상치 않은 인형 하나를 발견해냈다. 고대 중국의 유명 화가이자 발명가였던 백안 창애가 만든 인형. 그는 마주보기도 추악할 정도의 곱추였는데 그 재주는 또한 신통방통하여 진시황의 불로초 원정대에 요긴하게 쓰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처럼 간사하기 이를 데가 또 어디 있을까. 그의 재주를 몰래 써오던 '서복'은 그 옛날의 서복이 아니었다. 왕의 감투를 쓰고 점점 진시황을 닮아가더니 급기에 그 역시 불로장생에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불로초는 영생뿐만이 아니라 만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설이 있어 창애 역시 그 불로초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아내가 죽음으로 잉태한 자신의 딸이 곱추였기 때문에.

 

불로초의 위치를 발설한 전령을 살해하고 영주산으로 떠났던 창애는 다시 잡혀와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불지 않았던 그 비밀을 죽기 직전에 만든 여섯개의 인형에 기록하였고 그 인형들을 각각 여섯 제자의 손에 들려 아들에게 전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하지만 추적대에 쫓겨 여섯 제자들은 중국과 일본 등에 뿔뿌리 흩어져 버렸고 추후 그 여섯 인형이 모이는 '삼우회'를 십년에 한 번씩 열어 그 비밀을 확인하다 어찌된 영문인지 100년 전 갑자기 그 모임이 중단되어 버렸다. 그리고 100 여년이 지나서야 누군가에 의해 다시 초대장이 인형의 주인들에게 전해지고 말았는데......!

 

 

p167  여섯 개의 인형이 모이면 사달이 난다

 

 

죽은 아버지는 왜 여섯 개의 인형이 모이는 것을 그토록 무서워했던 것일까. 그가 알아낸 불로장생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 모든 비밀의 가운데 '설아'가 존재했다. 신선에게서 아비에게로, 아비에게서 자신에게로 전해진 불로의 힘. 아비를 끝내 용서하지 못했던 아들 가온과 아비에 의해 구해졌으나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고난 뒤 괴로워했던 설아. '천 년을 하루처럼 하루를 천 년처럼'라는 말을 남기고 바다로 사라진 설아와의 만남이 고작 10일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는 무섭게 몰아쳐 '읽는다는 것'에 전력투구하게 만든다.

 

정말 여섯 개의 인형이 모이면 늘 사달이 났다. 인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욕심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영상화 되면 어떨까 잠시 떠올려본다. 가상의 캐스팅을 해보고 몇몇 명대사들을 떠올려본다. 책으로 읽어도 즐겁지만 영상으로 즐겨도 즐거울 듯한 이 이야기가 묻히지 않고 수면으로 떠올라 많은 이들에게 보여졌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작의 탄생 - 2014 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
조완선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은 그 어느 문학상의 대상보다 훨씬 재미있고 알찼다. 역사적인 두 인물을 한 서적으로 교차시켜 그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영리함이 독자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탐정소설보다 더 스피드하게, 스릴러보다 더 짜릿하게 읽혀진 '걸작의 탄생'! 빽투더 '90대가 아닌 빽투더 조선시대로 되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매혹의 요소가 가득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역작 '장미의 이름'은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금서 하나로 인해 차례차례 독살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책 한 권이 대체 무엇이길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것인가. 짧은 소견으로 든 생각은 그러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책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금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항적 열망. 그리고 멈출 수 없는 호기심. 결국 이 두가지로 인해 죽음의 강을 건널 수 밖에 없었다. '걸작의 탄생'도 마찬가지였다. 책 한 권으로 인해 글쓴이 허균은 목숨을 잃었고 금서인 그 책을 뒤쫓던 연암 박지원은 위험에 처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던 그들조차 멈출 수 없게 만든 '호기심'. [교산기행]은 그들에게 그런 책이었다.

 

'조선 천지간의 괴물'으로 불렸던 저자 허균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내였다. 역사 속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거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종종 걸음쳤던 것과 달리 당대 최고 명문가의 적자이면서 형제 자매가 다 문에 능하고 자신의 재능이 나라를 뒤흔들만큼이었으니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 금수저 인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초중년 운과 달리 말년운은 사납기 그지 없었다. 말도 안되는 모함으로 역모죄로 다스려져 여섯 조각으로 몸이 찢어지는 거열형을 당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조선 역사 속에서 훗날 복권되지 않은 이는 허균 하나라는 점이다. 그 죄가 얼만큼 큰 것이었길래. 과연.

 

우리는 여전히 허균의 '홍길동전'을 읽으며 성장하고 있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시대를 지났고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 허균의 삶이 이토록 비참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소설은 [홍길동전]을 쓰기 위해 홍길동의 발자취를 찾아 그의 활동지인 문경과 변산을 오갔던 '교산'과 교산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남긴 또 한 권의 기록물을 찾아 문경과 변산으로 교산의 발자취를 찾아 답보한 연암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씨실과 날실처럼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그 첫 출발점은 책쾌 조열이 '허균의 책'을 구해오마 약조하고 떠났다가 살해당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에 한껏 기대치에 부풀어 올랐던 연암 박지원은 어진 책쾌의 죽음과 그토록 갈망했던 책의 소재를 수소문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곳에서 또 다른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백년도 더 된 홍길동의 추종 무리들이 조용히 조선 땅을 떠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낙원이 바다건너 일본인지 자세히 그려지진 않았으나 계급이 없고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홍길동의 나라'를 염원하고 있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 세 말하면 입 아파질 소리였고 결국 떠나지 못했으나 자신의 뜻을 펼쳐볼 용기를 낸 허균과 결국 책을 얻지 못했으나 자신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던 연암의 뒷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한 세기를 사이에 두고 태어난 두 천재들의 보폭에 맞추어 글을 읽어 나가는 일은 독자에겐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즐거움도 함께 던져주어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고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그 세상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꿈만 꿀 뿐 그 세상을 이루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17세기에도 18세기에도 21세기에도 여전히 허균, 박지원 같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이 중요한 점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인 척 호랑이
버드폴더 글.그림 / 놀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드폴더의 그림 에세이는 따뜻했다. 색감부터 스토리까지. 고양이를 반려하고 있는 내게 '고양이인 척 호랑이'는 잇북이었고 고양이인 척 하는 호랑이와 호랑이인 척 하는 고양이가 비단 동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도 닮아 있어 낯설지 않았다.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동화에서는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가 기침을 크게 하는 아이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양이인 척 호랑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것 같았던 고양이인 척 하던 호랑이가 마침 호랑이인 척 하는 고양이를 만나 평생의 벗이 되는 이야기가 이 동화의 기본 줄거리다.

 

깊은 산속 외딴집에 사는 눈이 어두운 할머니 역시 외로운 존재. 외로움을 간직한 할머니였기에 숲 속에 작게 웅크린 아기 호랑이에 대한 가여운 마음이 물씬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할머니와 가족이 되어 쑥쑥 자라던 호랑이는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그저 힘이 센 고양이'가 아닐지도 몰라' 그러면서 완벽한 고양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내가 조금 큰 고양일까봐 무서워'라고 호랑이에게 고백해버린 고양이를 위해 서커스단에 침입하여 고양이를 구해내려는 호랑이와 그 호랑이가 위기에 빠졌을때 호랑이를 구해낸 고양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가족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행복하게 끝맺음 되었다. 다행이다. 이토록 특별한 우정을 사진 고양이와 호랑이의 따뜻한 이야기라니.

 

요즘 외로운 1인 가족들이 서로 벗이 되어 살아가는 셰어하우스처럼 할머니 1인, 고양이 1마리, 호랑이 1마리는 셰어하우스에 모인 가족들처럼 특별한 가족으로 살았다. 어쩌면 조금씩 우리에게 묻혀져 있는 외로움, 두려움, 행복감을 그들 역시 똑같이 느끼면서.

 

트위터에서 인기몰이했다는 화제의 그림 동화, [고양이인 척 호랑이]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동시에 소개해주어도 각각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전연령을 위한 봄빛 동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집 아티스트 백희성의 환상적 생각 2
백희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345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

 

젊은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폴메이몽 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작가 백희성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아주 아름다운 소설을 한 권 완성했다. 낡은 두 건물에 얽힌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와 가족에 얽힌 비밀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미스터리한 스토리는 그간 잔인한 살인사건이 위주가 되었던 스릴러 미스터리와는 다른 분위기, 다른 느낌을 전하며 몽환적인 기분에 젖어들게 만든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누벨의 사무소에서 건축가로 일했던 건축가 백희성. 그는 때로는 주인공이 되어 때로는 전지적인 시점을 가진 작가가 되어 혹은 가장 먼저 재미나게 읽었을 최초의 독자가 되어 이야기를 밀가루 주무르듯 반죽해 나갔다. 처음 그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는 순간!

 

건축가 루미에르 클레제는 아주 싸고 낡은 집을 원했으나 워낙 비싼 파리 시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매물을 구할 수 없었다. 특히 가장 비싼 집들만 즐비한 시떼 섬안에서 구하는 일이란 차라리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 라는 것을 알고 거의 포기할 뻔 했지만 거짓말처럼 그런 집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백 년은 넘은 듯한 낡은 집. 그 집만큼이나 이상한 집주인은 먼저 그를 테스트해 보길 원했고 집주인 피터를 만나러 그가 거주중인 요양원에 도착했으나 그 곳에는 또 다른 이상한 건축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요양원 건물이 그것이었다. 중세 수도원 건물이었다는 그 건물은 의뢰인인 피터의 아버지가 근대식으로 리모델링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70년 전 건물을 수리하면서 그는 건물 안에 비밀의 요소들을 만들어 놓았으니....루미에르에게 내려진 테스트가 바로 그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었던 거다. 마치 코난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듯.

 

4월 15일의 비밀...

 

p351 세상의 모든 불편해 보이고 부족한 것들은 어찌 보면 깊은 사연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양원의 온실은 오직 4월 15일에만 완전해진다. 천국에 온 기분을 만끽하게 만드는 멋진 석양빛이 그 곳으로 온전히 스며드는 날이 바로 그날 이기에. 그리고 그 빛을 따라 간 종탑의 끝에서 루미에르는 아주 낡은 기록물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아나톨 가르니아라는 여성의 일기를. 그녀는 낡은 건물의 원 주인으로 남편과 사랑스런 두 아이를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여인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보금자리로 돌아와 죽음을 기다리던 그녀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피터의 아버지는 곧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여인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일으키기 위해 피터를 입양하기에 이르른다. 그날이 바로 4월 15일이었다. 비밀의 열쇠는 두 개의 일기, 두 채의 건축물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나톨을 사랑했고 피터를 사랑했던 건축가 프랑스와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장 행복했던 공간에 그 행복의 비밀을 감추어 두었다. 자신의 아들이 성장해서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2014년 12월에 읽은 온다 리쿠의 소설이 떠올려졌다. 문득-. 그녀는 [몽위]에서 '정말 두려운 것은 기억나지 않아'라고 했는데, 기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이지 않는 집]을 통해 나는 깨닫고 있다. 내게도 두 권의 소설은 아주 다르면서 '기억'이라는 묶음으로 함께 떠올려지는 이야기로 남겨졌다. 천재 건축가가 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그 아름다운 공간을 머릿 속에 그려보기를 수십번 반복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