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환문총
전호태 지음 / 김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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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망언은 계속 되고 있다. 한 방에 잠재울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우리 역사를 정부가 아닌 국민들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독도는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다. 하지만 그 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우리가 관심 가져야할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또한 나 스스로조차 부끄럽게도 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지난 삶에 대해 이젠 좀 관심갖고 살아야하겠기에 그 용맹했던 고구려의 역사부터 되살펴 보기로 했다.

 

"두 번 그려진 벽화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비밀의 문/환문총]은 울산대학교 박물관장 및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전호태 교수의 글이다. 그는 한중일 통틀어도 이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찾을 수 없을만큼 '고구려 고분벽화'분야의 최고봉이다.

 

영화 '미이라', 소설'람세스'를 통해서 이집트의 무덤 속은 익숙하면서 또한 여러번의 전시를 통해 중국 진황제의 무덤 속 용병들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우리는 우리네 선조의 무덤 속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가슴 뜨끔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무덤 속 그림인 고분 벽화는 그들의 내세관, 종교관, 우주관이 담긴 아주 중요한 사적 자료다. 그러면서 동시에 장의미술의 한 장르이기에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앞으로 500년 뒤,1000년 뒤, 이젠 무덤조차 남기지 않는 우리들은 후세에 어떻게 기록하여 우리의 사상과 생활, 문화 전반을 남긴다는 것인지...물론 무덤 외의 기록창고들이 산업의 발달로 산재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토록 멋스럽게 그리고 칠하고 정성을 더한 기록물을 더이상 이 땅에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반대로 하나의 무덤이 완성되기까지 그 장식을 담당하고 기록을 담당했을 벽화 속에 담긴 그림을 통해 조상들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 그것을 찾아 나는 글을 열심히 읽고 또 읽어야 했다.

 

p161  사람마다 길 아닌 길을 찾다가 길을 놓친다고 했다

 

고구려 환문총은 두 번 그려졌다. 한 번 완성된 그 그림들을 회로 덮은 뒤 그 위에 다시 완전 다른 그림들을 새로 그려냈다. 잘못 그렸던 것일까? 처음에는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완전 다른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고 흥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벽화의 주제를 바꾼 결정을 한 이는 누구일까? 처음 그린 이와 두번째 그린 이는 동일인물일까? 권력층은 모두 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일까? 그 그림을 통해 무덤 속 주인이 후세에 남기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수많은 의문들이 책장을 넘기는 사이사이 뇌를 스쳐지나갔고 그 즐거운 상상들이 머릿 속을 헤집고 다니며 읽는 내내 상상의 즐거움까지 더해주었다.

 

이 글은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졌다. 환문총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점별로 분류하여 고구려 시대, 일제 강점기 환문총 발견 전후 시대, 해방 후 벽화 조사에 나선 남북한, 중국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시점에서 벽화를 바라볼 수 있도록 잘 쓰여졌다. 그래서 사실과 상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어 이야기의 풍미를 더했다.

 

압록강 중류와 혼하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간 고구려. 그 용맹함을 '광개토대왕','연개소문' 같은 드라마 속에서만 국지적으로 만나 볼 것이 아니라 더 적극성을 띄어 이런 소설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독자층이 좀 더 두텁게 형성되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이 책을 시발점으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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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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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기업은 '인재경영'에 힘쓴다. 경영과 마케팅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조선이라는 나라는 과연 인재경영에 탁월했는가? 묻는다면 최하위 점수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초대 수장인 이성계에게 속삭이면 그는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앉지 않을까.

 

조선은 여러모로 틀이 강하고 닫힌 국가였다. 그 울타리는 백성을 보호하기에는 너무 물렀으며 재능을 방출하기에는 너무 억압해대는 잣대의 울타리였다. 물론 노비출신도 그 재능이 하늘을 찌르면 면천되기도 하고 때론 녹봉을 먹게 되기도 했는데 15c세종대왕 시대 과학자였던 장영실은 '대호군'이라는 벼슬에 올랐고 목효지는 풍수학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며 화공 이상좌는 <송화보월도>를 후세에 남겼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의 신분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더 많은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중 장영실은 열 여섯의 나이에 가뭄이 든 마을에 물을 퍼올리기 위해 "무자위 설계도"를 그려냈고 왕의 후광을 입고 여러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p125  하늘은 결코 성심을 다해 간절히 노력하는 인간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다큐멘터리 pd인 진석은 루벤스의 그림 속 한복 입은 남자에 대한 특집 방송을 구상 중이었는데 우연히 마주친 엘레나라는 외국인 여성으로 인해 그림 속 남자에 대한 큰 실마리를 얻게 된다. 엘레나 꼬레아. 정감가는 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엘레나는 조상이 먼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오랫동안 보관되어져 온 비망록의 내용이 궁금해 진석에게 접근했는데 건네 받은 진석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비망록은 여러 글자로 적혀져 있었다.

 

5개국어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글을 집필한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창작노트를 펼쳐보게 된다면 이런 느낌을 받게 될까. 아주 지적인 주인의 손때를 탔을 낡은 노트 속 글과 그림속에서 주인을 짐작케할 실마리들을 풀어가던 진석은 그가 혹시 역사속에서 의문스럽게 사라졌던 '장영실'이 아니었을까 의문을 품게 되고 그 의문은 진실의 조각들과 맞물려 현실이 되어 나간다.

 

현재의 진석과 역사 속 장영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이어지는 [한복 입은 남자]는 잘 짜여진 퀼트보처럼 서로 이야기를 보완하며 재미를 증폭시켜 나갔는데 특히 노비에서 왕의 신임받는 장인이 되어 함께 고뇌하고 필요품들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는 어느 회장님들의 성공서보다 더 가슴 벅차게 심장을 울렸으며 비천한 신분으로 아름다운 공주를 마음에 품은 대목에서는 그 결말이 뻔해 가슴시리게 만들었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대대로 노비로 살아가야할 팔자. 하지만 사람이 재산이라...인재를 알아보는 상급자들에 의해 발탁되어 측우기도 만들고 해시계도 만들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재능을 시기하는 자가 너무 많아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야했던 한 사내. 중국의 '장보고'로 불릴 정화대장과 함께 머나먼 바닷길을 건너 서양에 도착했을 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들은 과연 어느 만큼 놀라움을 던져주었을까. 그에게.

 

p416 좋아, 나를 인정해 주는 곳으로 가겠어.

 

장영실이라는 한 인간의 재능을 품기에 조선이라는 그릇은 너무 작은 그릇이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곳에서 그 뜻을 펼친 그는 갑인자를 전수해 구텐베르크로 하여금 인쇄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비차도를 본 다빈치가 후대에 라이트 형제로 하여금 비행기를 만들게 도왔으며 자격루는 서양에서 시계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게 만들고 있다.

 

천재 발명가 장영실. 우리는 신분이라는 족쇄로 인해 그를 잃었고 그는 사대부가 즐겨 입던 옷과 망건을 쓴 채 500년 만에 그림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연어가 그 고향으로 되돌아오듯. 역사적인 사실들을 추적하며 밤새 신나게 다빈치 코드를 읽어댔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한복 입은 남자를 숨이 멈춘 것도 모를만큼 정신없이 읽어댔고 정말 재미난 이야기를 발견했노라고 그 새벽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았다.

 

좋은 것을 소문내고 싶은 마음처럼 이 이야기는 신나게 누군가에게 소문내고 싶어지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 속에서 그의 표정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나를 찾아줘" ??  "나는 잘 있어"!!!

 

그는 분명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조국을, 자신을 아꼈던 사람들을.

그 마음이 충분히 담겨 읽는 내내 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앞에 인간이 만든 법과 틀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깨닫게 되어버렸다. 제도는 사람의 행동을 제지할 수는 있어도 그 마음을, 그 재능을 묶어두기에 턱없이 약하고 약한 것.

 

이 이야기가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된다면 나는 장영실이 정말 멋진 사람으로 캐스팅 되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날개를 달고 달아 이 재미난 이야기가 실제처럼 글로벌하게 퍼져나갈 수 있기를....! 내가 밤새 재미나게 읽은 그 시간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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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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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메이메이는 마약사범으로 검거되었다. 랴오닝성 톄링 시의 마약조직에 속해 총판장을 운영했던 남편과 함께 대마초를 피우며 행복해했지만 남편은 지난달에 처형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인데. 게다가 네 살인 아들을 교도소 안에서 키우면서. 그런 그녀에게 슈란은 누군가의 눈구멍에서 눈알을 파내라고 명령하고 아이의 목을 졸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대로 이행되었다.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행해졌다. 백원단이 정신조종능력이 있었으니 이건 간단한 일이었다.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뭘 시키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꼼짝없이 그들의 지시대로 행하게 된다는 소문처럼 들려오던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백원단 속으로 한국인 남자 시현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아내를 죽였던 그 남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복수를 할 수 없었다. 아내를 차로 치고 뺑소니친 그 남자는 이불회사에 다닌 아주 고단한 40대의 가장이었다. '미생'의 고단한 회사원들처럼 그 역시 고단한 영업 담당이었는데 그날도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시현의 아내를 치여 죽이고 도주했던 것이다.

 

후회하고 뉘우치면서 한편으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벌을 피하고도 싶어하는 것이 정말 인간일까.

 

그는 결국 그 자리에서 남자를 죽일 수 없었다. 약간은 비겁하게 하지만 정말 인간다웠던 남자의 고백을 다 듣고 난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국 저런 존재인 것일까. 시현의 마음으로 돌아가 읽어도 독자의 마음으로 읽어도 참 답이 없는 고백이었기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소설의 모태는 천리안 '멋진 신세계'에 올리다가 중단한 저자의 옛 글이라고 했다. 제목도 지금과 달리 '끝'이었는데 그 제목탓에 끝맺음을 망설였던 것은 아닐까 싶어지는 제목이었다. 이야기도 약간은 달라졌다고 한다. '불사조 협회'가 '백원단'이 되고 중국이 아닌 베트남이 주요 무대였으며 주요 캐릭터 역시 달랐다고 했다. 하지만 모태가 된 정신조종능력은 이야기에 그대로 이어온 것 같았다.

 

소설을 두고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렇지 않으냐 판단하는 것은 아주 우매한 일 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흔하게 보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나 한국영화 역시 이미 도덕성을 잣대로 두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상상력을 우위에 두고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세상에 살면서 유독 소설 속에서 도덕적인 것을 따져 물을 필요가 뭐가 있을까.

 

정말 세상 어딘가에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인류가 있어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호모도미난스' 즉, 지배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 어쩌면 짜릿하게 어쩌면 좀 으스스하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무척이나 궁금했던 '흰원숭이'라는 표현. 구룡반도 주민들의 도시 전승에거 따왔다는 흰원숭이는 상상의 괴물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그 존재는 초자연적인 힘을 상징하는 존재여서 그 이름이 붙여졌던 것은 아닐까.

 

p333 결국에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세상 어딘가에서 그들이 살고 있다해도 세상은 한 판에 뒤집어지지는 않는다. 알고 있기 때문에 끝이 아니라 원점으로 돌려진 소설의 결말이 더 맘에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진화의 시작인지 진화의 한 단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타났으니 언젠가는 정말 이런 일들도 세상에 대두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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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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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엄마가 좋아하는 시집이었다. 서른은 이미 끝난지 오랜 시간이었을텐데, 엄마에게 서른은 어떤 나이였길래...혹은 서른의 의미를 나이 그대로의 30살이 아닌 서른 이후의 삶까지 포괄적인 의미로 다가온 것인지....모르겠지만 중년의 여성에게 그녀의 시집은 자작자작 젖어드는 가을비마냥 구슬프면서도 가슴에 박히는 그 무엇이되었나보다.

 

이렇게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최영미 시인이 [청동정원]이라는 소설을 낸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내용이 사뭇 가볍지 않아 두번 놀라고 말았다. 많은 작법서에서 '첫문장에서부터 사로잡아라'라고 하고 있지만 실상 그 첫문장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지만 [청동정원]의 그 시작은 시어도 아니면서 시각적 공감각화를 완성해내면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p7   4월에 이미 우리는 5월의 냄새를 맡았다

 

라니. 계절의 변화는 눈으로 제일 먼저 확인된다. 그런데 냄새를 맡았다니...5월의 냄새는 대체 어떤 향이라는 것일까. 카페보다 다방, 찻집의 간판이 더 흔했다는 1980년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군사정권과 자본가들 그리고 체제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이 살았던 시대를 함께 하지 않아 100%공감하긴 어렵다. 하지만 518  1주기를 맞이해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도서관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페이지를 눈으로 읽는 순간 그 모습들이 영화필름처럼 눈 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을 그 시절이 내겐 책 속의 한 장면이 되어 펼쳐졌다.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른 것 같지 않은데, 시대는 이처럼 많이 변해 버렸다.

 

시대가 암울해서였을까. 동혁의 학대를 참아내며 청첩장 돌렸으니까 결혼해야한다는 아버지의 대답에 반기를 들지 못해 애린은 결혼해야만했고 이혼했다. 지금 시대의 여성들이 들으면 코웃음치겠지만 소설 속 애린은 '집안의 치욕'으로 불리며 '데모했고 감방 갔다왔고 거지같은 놈과 결혼했다가 실컷 두드려맞고 이혼당한 여자'가 되어야했다. 가족 속에서조차.

 

p258 무엇이 지금 끝난 것인가?

 

정말 무엇이 끝난 것일까. 시대가? 사상이? 결혼이? 여성의 핍박받는 삶이? 타인의 시선이? 정말 무엇이 끝나기는 한 것일까. [청동정원]은 그냥 읽고마는 소설이 아니었다. 시인이 던진 화두는 가슴에 깊이 패여 생채기를 냈고 그 생채기 속에 삶이라는 빗물을 채워넣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왠인일지 그랬다. 그래서 나는 [청동정원]을 쉽게 손에서 놓질 못했다. 마지막 장에서 또 첫장으로 되돌아가는 되돌이표가 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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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뺑덕
백가흠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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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을 넘어 25금이라는 이 영화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전이 원작이라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궁금해서 책을 통해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너무 바른 이야기라서 너무 교훈적인 이야기라서 이야기를 비틀어도 별 재미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나면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어서 세상에 나왔다.

 

작가는 작가로 사는 시간이 더딜수록 잘 살아보려는 의지를 버렸다고 했는데, 마흔을 넘어 시작했다는 이 소설은 그래서인지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속의 이야기로 사람냄새가 잔뜩 묻혀져 있었다. 세월이 허락한 나이테가 묻어 있었고 착한 마음 이면의 욕망이 들춰져 있었다.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집착 후에 남은 것은 여전히 사랑이었다. 나는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이들의 관계를. 무척이나 위험했다. 또한 무척이나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나빴을 망정 천박하지는 않은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읽은 소설 [마담뺑덕]이었다.

 

[심청전]의 주인공은 심청이였지만 [마담뺑덕]의 주인공은 심학규였다. 영화를 본 이들은 뺑덕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은 내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학규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던 학규가 기증자로부터 두 눈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뒤 되찾고 싶은 시간은 가족을 찾는 일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자살해버린 아내가 아니라 그토록 자신을 경멸하던 딸 심청과 집착과 사랑을 반복하며 자신 곁에 머물던 애인 뺑덕. 그들은 머리카락 보일까봐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는 인연이 처음 시작되었던 s읍으로 향했다.

 

p13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보지 못해도 좋으니 다시 자기 곁으로 되돌려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길이는 짧아보여도 깊이는 깊어서 사람도 그 속에 쑤욱 집어넣어 없애 버리고 기억도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처음 s읍에 도착했을때 다방에서 그를 재워주던 뺑덕의 어미는 사라진지 오래. 로리타콤플렉스에 빠진 듯 어린 여제자들과 육체적 탐미를 즐기던 그는 대학에서도 잘리고 작은 시골로 내려와 글선생이 되어야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의 나락까지 미끌어져버린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제 탓이었지만 그는 반성을 모르는 나쁜 남자였다. 이 곳에서도 뺑덕 어미와 뺑덕이가 없었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어미와 자고 딸과도 육체적으로 얽혔으면서도 그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서울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p57 이제 나 기다리지 마. 나 너한테 다시 돌아갈 일 없어.

 

천벌이었을까. 시력이 점점 사라지는 시점에 뺑덕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를 간병하려는 건지 벌주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던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옛날 그가 잔인하게 그녀에게 퍼부었던 그 말 그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요량으로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그리움. 그건 분명 그리움이었다. 그 암울하고 떨치고 싶은 시절 속에도 그리워할만한 추억들이 숨겨져 있었다. 롤러코스터 타듯 인생의 굴곡을 거친 학규는 다시 눈을 떴다.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지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너무 늦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전. 그에게 눈을 기증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눈을 각각 한짝씩 받아 눈을 뜬 그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힘으로 누구를 의지하며 그는 살아가야 할까. 결말은 끔찍했지만 역시 고전적 교훈은 남겨졌다. 나쁜 놈에게 걸맞는 결말이.

 

책의 홍보문구처럼 효의 텍스트였던 심청전. 이제는 욕망의 텍스트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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