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두 사람은 사냥하는 법, 물고기를 잡는 법, 폭우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오두막을 짓는 법, 먹을 수 있는 과일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밀림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었다. (책 53쪽에서)
소담스럽게 쌓인 눈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겨울이 가고 있다.
열흘동안 책을 싸고, 책꽂이를 새로 맞추고 다시 제 자리를 찾아 정리하면서 2월의 마지막을 분주하게 보냈다. 이번에는 필요 없는 책은 버리거나 친구들에게 나눠 주려고 마음 먹었지만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대부분의 책들은 먼지만 털어 다시 나의 책꽂이로 돌어갔다. 이번에도 찾기 쉽게, 같은 책을 다시 구입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제대로 정리해보자 마음 먹었지만 게으름과 피곤함 때문에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어 버렸다.
책이 엄청난 짐이 될 수 있음을 온 몸으로 체험한 시간들이었다. 책정리를 핑계로 한동안 책도 읽지 못했고 덩달아 알라딘에도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2월달에 읽으려 했던 책들은 대부분 3월로 미뤄야 겠다. "작가란 무엇인가?"와 "꼬리치는 당신"을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집어들었다.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 흐름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쉬었더니 오히려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다시 읽으며 정리했다.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읽을 게 없었다. (책 75쪽에서)
밀림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자연의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노인은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는 수아르 족 인디오의 말을 떠올리며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책 130쪽에서)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가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책 46쪽에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니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책 180쪽에서)
문을 열면 물씬 풍기는 나무 향기와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들 그리고 아끼는 책들과 클래식 음악이 은은히 울려 퍼진다.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나오면 언제나 메모할 수 있는 예쁜 노트와 잘 깎여진 연필도 있다. 힘들었지만 정리하고 꾸며놓고 보니 나름 마음에 드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커다란 창을 통해 비와 햇빛 그리고 바람도 다 느낄 수 있으니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새로운 공간은 설레임과 동시에 낯설음도 준다. 쏟아져 버릴 것 같은 책들과 정리 불가했던 잡다한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던 예전의 공간에 비하면 넓고 훌륭한 공간이지만 아직은 적응이 필요하다.
사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아마존 밀림을 개발하려는 백인들과 그곳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원주민과 연애 소설을 읽는 한 노인 그리고 암살쾡이의 이야기이다.
아마존 밀림 속 엘 이딜리오 마을에 사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원주민 수아르 족과 생활하면서 그들에게서 자연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아내을 불임으로 인한 온갖 소문에서 벗어나고자 아마존 밀림에서 그들은 죽자살자 열심히 땅을 일구어 갔지만 우기를 겪으면서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악몽을 반복한다. 그곳에서 자연에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사냥하는 법, 물고기를 잡는 법, 폭우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오두막을 짓는 법, 먹을 수 있는 과일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밀림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었다. (책 53쪽에서)
백인 밀렵꾼들에게 새끼와 수컷을 잃은 암살쾡이의 잔혹한 복수와 자연이 자신에게 허락한 모든 것에 자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인의 연애소설 읽기가 묘하게 어우러진 소설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오만하고 하찮고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에 더 크게 감동을 받았다.
내가 이런 아마존 밀림에서 홀로 살아 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까 ?
우선은 아직 한번도 제대로 읽지 못한 성경 한 권과 어려워서 읽다 포기한 책들을 좀 가져가야 할 듯 싶다. 그리고 노인처럼 몇 권의 연애소설을 가져 가고 싶다.
폭풍의 언덕, 안나 카레리나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알랭드 보통의 소설도 좋다.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과 단어 그리고 장면들을 반복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책읽기 방식... 많이 읽기 보다는 깊이 읽어야 하는데 아직도 유치하게 많이 읽기에 집착하고 있으니 참 부질없다.
며칠 남지 않은 2월은 좀 쉬면서 마무리해야 겠다. 그리고 3월달에는 다시 으쌰 으쌰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