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때 어떤 글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것을 작가가 한 문장으로 나타낸 글.

이런 글을 쓰다니,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글.

고여 있는 내 생각을 한 번 흔들어 주는 글.

책을 읽다가 읽기를 멈추게 만드는 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글.

밑줄을 긋고 싶게 만드는 글.

어디에다 적어 두고 싶은 글.

생각에 자극을 주는 글.

나도 써 보고 싶은 글.

글감을 주는 글.

외우고 싶은 글.

 

 

위와 같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글 중 하나를 소개한다.

 

 

화가 지망생인 필립이 클러튼에게 “저 말야. 와서 내 그림 좀 봐주지 않겠나? 의견 좀 듣고 싶네.”라고 말하자, 클러튼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

 

 

 

 

 

사람들은 비평을 부탁하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건 칭찬뿐이야. 그뿐 아니고,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그림이 좋든 나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겐 중요하네.

 

아냐,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건,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야. 그건 마치 우리 신체의 기능과 같아. 소수만이 그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네. 그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 비평이란 화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걸세. 비평이란 객관적인 판단인데, 객관이란 화가와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404쪽.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는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405쪽.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는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여기서 ‘그림’을 ‘글’로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되겠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말이겠다. 이런 글을 읽고 나니, 누군가가 자기 글이 어떤지를 봐 달라고 할 때 곤란해지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방법이 있구나 싶다. 

 

 

....................

“사람들은 비평을 부탁하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건 칭찬뿐이야. 그뿐 아니고,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글이 좋든 나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글을 쓰는 건, 쓰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야. 그건 마치 우리 신체의 기능과 같아. 소수만이 그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글을 쓰네. 쓰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 비평이란 글쓴이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걸세. 비평이란 객관적인 판단인데, 객관이란 글쓴이와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우리가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

 

 

생각은 시간에 따라 변하므로 확신할 수는 없겠다. 다만 이 순간에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내가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은 게 아닐까 하고. 그러므로 글을 쓴 뒤에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쓴 글을 모아서 책을 낼 필요도 없겠다고.

 

 

글을 쓰면서 얻을 건 이미 다 얻은 게 아닐까 하고.

 

 

여러분은 어떠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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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3-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는 평론가를 거추장스런 존재로 생각하죠.서머싯 몸도 그랬고요.소설도 못 쓰는 주제에 이러니 저러니 우리를 비평한단 말이냐! 하는 반감입니다.<서밍업>을 보면 몸 특유의 독설로 평론가들을 발가벗겨 놓죠.

페크pek0501 2014-03-15 15:06   좋아요 0 | URL
ㅋㅋ 작가와 평론가가 앙숙인 경우가 많죠.
평론가들은 알고 보면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평론의 분야로 돌린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문학을 상당히 좋아하는 부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듯...
사람의 능력은 각각 다를 뿐이니까요. 창작 쪽으로 역량 있는 소설가도 비평 능력은 없는 경우가 있을 터이니...

좋은 주말 보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