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글>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


내가 다니는 미용실이 있다. 친정어머니의 단골 미용실이라 가게 된 곳이다. 미용사는 의외로 60대 노인이었다. 그런데 노인 같지 않게 머리 손질하는 손놀림이 능숙하고 솜씨가 좋았다. 파마도 커트도 잘 했다.


친척 결혼식이 있던 어느 날, 머리 드라이를 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아마 세 번째로 간 것 같다. 그날 그 미용사분이 내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왜 물으시냐고 했더니, 내가 참 특별한 분 같단다. 무슨 말인가 싶어, 뭐가 특별하냐고 물었더니, ‘보통 주부’ 같지가 않단다. 그러면서 “특별하게 멋있으세요.”하고 웃으며 말했다. 난 이건 그냥 나를 단골손님으로 만들고 싶어 기분 좋게 해 주려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 하고는 가벼운 미소로 응대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중3인 둘째딸에게 그 얘기를 들려 줬다. “오늘 이상한 소릴 들었는데, 미용실에서 엄마가 특별하대. 보통 주부 같지가 않대.”라고 했더니 딸이 무심코 “응 엄마 특이해.”하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 미용사가 한 말보다 딸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나, 평범하잖아. 내가 뭐가 특이한대?”라고 했더니 “내 친구들의 엄마들하고 많이 달라.”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봐, 뭐가 어떻게 다른지, 했더니 아이 말은 이러했다. “겉모습도 다르잖아. 다른 아줌마들은 다 뚱뚱한데, 엄마는 말랐잖아. 그리고 아주 다른 건 말투가 다르고, 말의 내용도 좀 달라. 나 혼낼 때도 선생님처럼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하잖아.”라고 하면서 덧붙였다. “우리 친구들도 엄마 보고 특이하대. 아줌마 같지 않대.”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거 좋은 거지?” 아이가 대답했다. “그냥 엄마의 개성이야.”


난 내가 다른 주부들과 다른 점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아는 척하며 어떤 점을 말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땐 나를 놀라게 한다.


그 미용사가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싶어 내가 미용실에서 했던 말을 더듬어 봤더니 이거였다. 커피 한 잔을 주시길래,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말을 했던 것. “커피가 참 맛있네요. 매일 마시는 커피지만 특별히 맛있게 느껴지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네요.”라고 했던 것. 이것밖엔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미용실에서 수다 떠는 취미가 내겐 없었다. 내가 한 그 말에 나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나의 역사와 지식을 반영한다’라는 말이 있다.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언어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자신의 글을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다. 그건 마치 자신의 일기장을 보여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하면 난 가끔 공포를 느낀다. 이 블로그에 올린 내 글들이 나의 일기와 같기 때문이다. 글은 아무리 자신을 미화시키며 쓴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문체는 곧 그 사람이므로.


나이 들어가면서 내가 점점 아줌마스러워진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가령, 쓰던 핸드폰이 고장 나서 핸드폰을 새로 사러 갈 때 두 딸들이 내게 새로운 기종을 권하는데, 나는 기존 써 오던 핸드폰의 사용방식과 가장 비슷한 것을 골라 산다. 새로운 사용방식을 배우기 싫기 때문이다. 점점 두뇌를 써야 하는 변화가 싫고 익숙한 것만 좋아한다. 이런 나를 보고 큰딸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아줌마들은 할 수 없어.”라고 한다. 난 “응 아줌마들은 할 수 없어.”라고 답하며 인정한다.


언젠가는 아줌마스러워지는 시간을 지나 노인스러워지는 시간에 이를 것이다. 나의 친정 부모님을 보면 쉬이 추측할 수 있다. 그날그날의 주식 변동이나 은행 금리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아시면서 핸드폰의 문자 사용법을 모르시고 통화만 하실 줄 아신다. 또 신문을 통해 세상일엔 밝으시면서 컴맹이시다. 두 노인만 살기 때문에 컴퓨터가 아예 없다. 이런 두 분들의 모습은 곧 나의 미래 모습이다. 먼 훗날 스마트폰을 지나 더 새로운 무엇이 나왔을 때 나 역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둔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가는 세월의 아쉬움과 늙음의 서글픔이 느껴진다. 그래서 ‘아줌마 같지 않다’라는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이 말에 의하면 내 개성이란다. 먼 훗날 노인이 되었을 때도 ‘노인 같지 않다’라는 말을 듣는 개성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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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위의 글을 읽은 독자에게


위의 글을 읽어보면 결국 자기 자랑의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줌마이면서 아줌마 같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는 듯하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의 공통점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난 점이 한 가지 이상 있다는 점이다. 잘난 점이 한 가지라도 없다면 잘난 척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이게 중요하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진짜 잘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뛰어나게 잘난 사람은 만인이 알고 있게 마련이어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 잘난 척할 필요가 없으므로 잘난 척을 하지 않는다. 재벌들이 돈 많다고 자랑하지 않는 것처럼.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면 그들은 열등감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잘난 척은 열등감을 은폐하기 위한 또는 자신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고로, 부자라고 자랑하는 사람들, 우수한 두뇌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미남 또는 미녀라고 자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들이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주자. 태어나서 고생하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인간의 삶은 얼마나 고독한가. 그런 고독한 삶을 살아내는 존재들에게 하하하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주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엔 고생하며 살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제일 편할 것 같은, 부모 슬하에 있는 청소년들조차도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졸린 눈으로 학교에 가서 딱딱한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고생을 한다. 지금 나보고 그런 학교에 다니라고 한다면 못 다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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