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보리스 디오도로프 그림,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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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 사람은 타인의 도움으로 사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작품이다.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천사가 인간으로 변신되어 가난한 구두장이 집에서 8년째 머물면서 겪는 이야기다.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천사는 하나님이 말한 세 가지 문제의 답을 알게 되는 날에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세 가지 문제란, 인간 안에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다.


첫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추운 겨울날, 가난뱅이 구두장이가 벌거벗은 젊은이(천사)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고 집에 데려온다. 그의 아내는 낯선 거지(천사)와 함께 귀가한 남편이 못마땅하여 화를 내다가 어느 새 이 남자(천사)가 가엾게 느껴져 계속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 천사는 인간 안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세 가지 물음 중 첫 번째 답을 구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구두장이 가게의 직공으로 일하게 된 천사가 한 신사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가게를 방문한 신사는, ‘1년을 신어도 찢어지지 않고 모양이 변하지 않는 구두’를 주문한다. 천사는 그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죽는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이때 두 번째의 답을 구하게 된다. 즉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었다. 그 신사에게 필요한 것은 구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 신을 슬리퍼였는데, 그 신사는 자신이 잠시 후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한 여인이 쌍둥이 아이들의 구두를 맞추러 가게에 왔을 때 이어진다. 천사는 그 애들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두 아이의 생모가 아니었다. 생모는 6년 전 쌍둥이 딸을 낳은 후 죽었다. 그때 천사는 아이들의 아버지도 죽고 없는데 홀어머니마저 죽었으므로 고아가 된 두 쌍둥이가 살아가지 못할 거라고 추측했었는데, 6년 뒤에,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맡아 정성을 다해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여인은 이웃집 사람이었는데 생모가 죽자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우며 살았던 것. 천사는 이때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우친다. 이것이 세 번째 물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다.


6년 전,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었는데, 바로 쌍둥이 아이들을 낳은 여인(생모)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게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즉 생모를 죽게 하는 게 천사의 임무였다. 그 명령에 따르기 위해 그 여인에게 가 보니, 방금 쌍둥이 아이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 여인은 천사가 자신의 영혼을 데리러 온 죽음의 천사인 줄 짐작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 천사님! 제 남편은 숲 속에서 혼자 일하다가 나무에 깔려 죽어 며칠 전에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나는 형제도 없고 큰어머니도 또 할머니도 없기 때문에 갓난아기를 돌볼 사람조차 없습니다. 제발 내 영혼을 불러 가지 마시고 이 아이들을 제 힘으로 키우게 해주세요. 부모 없는 아이들은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사는 차마 그 가엾은 여인의 영혼을 빼앗아 가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다시 분부하여 할 수 없이 여인의 영혼을 빼앗아 갔던 것이다. 결국 여인을 죽게 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처음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천사는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모든 사람 각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은 사랑(타자의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은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나는 특히, 하나님이 말한 문제 중 두 번째 문제인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라는 점에 생각이 길게 머문다.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그날의 죽음을 앞두고도 1년간 신을 구두를 주문한 신사의 모습은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다. 죽고 난 뒤 장례식조차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것은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단 하루라도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게 가능한 일이던가. 누군가가 땀 흘려 일해 지은 집에서 살고, 누군가의 노고로 수확한 쌀로 밥을 먹고, 누군가의 수고로 만든 옷을 입고 사는 나.


내 주위를 둘러보니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 등, 빈손으로 태어나 가진 게 아주 많다. 모두 그것들을 만든 타인의 덕분이다.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들을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누군가가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사회에 공헌한 것이 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그런데 나는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위해 살고 내 가족을 챙기는 일에만 급급해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만약 끝까지 그렇게 산다면 결국 개인이기주의와 가족이기주의로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 타인의 도움으로 이 만큼 누리며 살고 있는 나도 뭔가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 같은데….


사회 공헌이라는 것을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가 한 작은 일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도 역시 사회에 기여한 것이 될 터. 자원봉사를 하거나, 불우이웃돕기의 성금을 내거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면 모두 좋은 세상 만들기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 것이리라.


앞으로의 삶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독자에게 유익한 시간을 주리라 믿는다. 영국 속담이 떠오른다.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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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2009-10-2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데 그걸 잊고 이기적으로 살 때가 너무 많아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페크(pek0501) 2009-10-26 12:33   좋아요 0 | URL
옹달샘님은 착하셔서 아름다운 작품 쓰실 수 있을 거예요. 큰 성과 있으시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