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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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모르는 척하는 것은 폭력이 아닐까”


우선, 가족 이기주의와 지역 이기주의의 범위를 넘어서서 국가 이기주의에서도 벗어난 저자의 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나와 다른 민족이라고, 이곳과 다른 먼 지역의 삶이라고 무관심할 수 있는 얘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줘서 왜 그들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미덕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하다. 베스트셀러는 시시할 거라는 나의 편견을 확 깨주었을 만큼.


‘예술의 가치는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서머싯 몸(소설가)이었다. ‘우리는 문학서적을 읽으면서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인격에 변화를 일으킨다.’라고 설파한 사람은 르 클레지오(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예술작품이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문학과 그것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휴머니즘일 거라고 믿는다. 이 책 역시 이것을 추구하며 여론을 환기시킨다.


지구 저 편에서 굶주림과 식수 부족과 전염병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저자가 5년간 다녔던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의 말라위와 잠비아, 시에라리온, 이라크 등 긴급구호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 준다. 저자는 긴급구호 요원(2001년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이 됨)으로서 그곳에서 식량을 나눠 주기도 하고 식수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혹자는 우리나라 안에도 불우한 사람이 많은데 굳이 알지도 못하는 아프리카의 사람들까지 도울 필요가 있느냐고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알게 된다면 그런 의문은 금세 사그라질 것이다. 그들 중엔 독이 있는 야생 콩을 여섯 번 삶아야 간에 치명적인 독이 빠진다는데 땔감이 없어서 세 번만 삶아 먹는 사람들이 있다. 또 에이즈에 걸릴 걸 뻔히 알면서도 돈벌이를 계속해야 하는 열여섯 살의 매춘부가 있다. 독보다도, 에이즈보다도 더 무서운 게 당장 굶어 죽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피해가 심각한 지역도 있다. 전 인구의 5분의 1인 1백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곳, 코노 지역이다. 반군들이 이곳을 노리는 것은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기 때문. 이곳에서 일어난 끔직한 사건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당시 열네 살이었던 자마엘에 의하면, 어느 날 새벽 한 무리의 군인들이 마을에 쳐들어와선, 마을 남자들을 한 줄로 세워서 한 사람씩 손목을 나무 등걸에 올려놓고는 코코넛 따는 칼로 내리쳤다고 한다. 손목이 완전히 잘린 사람들과 반만 잘린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걸 본 그는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속으로 기도했단다. 내 손목이 단칼에 잘려나가게 해달라고.


‘정의’와 ‘불의’가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우리는 정의가 마땅히 이겨야 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힘 있는 자가 이길 뿐이다. 그리하여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가 싸운 것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은 아무 잘못한 것도 없이 단지 가진 게 없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곳에선 혁명연합전선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다이아몬드가 있는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고, 어떤 곳에선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다.



한정된 구호 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 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놓은 것이다.<본문 중에서>


여기서 씨앗이란 곧 희망이다. 즉 희망이 있고 없고의 그 차이 때문에 한 쪽에선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다른 한 쪽에선 한 명도 죽지 않았던 것.



만약 그들을 돕는 일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위의 글이 그것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다. 자기네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걱정하고 뭔가 도우려고 애쓰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겐 삶의 희망이 될 테니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 월드비전(저자가 소속해 있는 민간단체)이라는 단체의 발생지가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것. 월드비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 고아와 미망인을 돕는 일로 시작했다는 것. 우리나라도 타국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래서 우리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에도 어려운 이웃이 있는데, 어째서 먼 나라인 한국을 도우려고 하는가’라는 말로 누군가가 제동을 건다면…. 또 한국을 돕는 일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제동을 건다면…. 이런 가정을 해 본다면 먼 나라 사람들을 돕는 일을 부정적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저)’이란 소설에 이런 글이 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이 소설을 떠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먼 곳이라 할지라도 배가 고파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폭력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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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혁 2009-04-0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논술선생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구요.. 선생님이 이런 글을 쓰셨다니 선생님이 정말 자랑스럽 습니다..앞으로 저희 많이 가르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