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남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만약 어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상대에게 선물 공세로 환심을 사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것은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상대가 선물을 준 ‘사람’이 아닌 ‘선물’만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돈이 들지 않고 효과도 만점인 것.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답을 구해 본다. “특별히 예쁘거나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랑 받는 방법은 만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의식적인 아부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과 어울리는 순간을 즐기고, 무엇보다 그들이 과시하는 능력을 즐기는 것이다.”

 

 

러셀에 따르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은 ‘상대가 과시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자기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 연인에게 열광했던, 또는 현재 열광하는, 또는 미래에 열광할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우리가 친구보다 연인에게 열광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연인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멋지게 봐 줌으로써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니까.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화자는 연인인 상대의 두 앞니 사이가 벌어진 것을 장점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예쁘다고 느낀다.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치아의 완벽성을 독창적으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보았다. 나는 그녀의 치아 사이의 틈에 그냥 무심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예뻐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눈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두 앞니 사이의 틈’에서도 독창성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게 바로 연인의 눈이다. 그래서 자신을 최대한으로 아름답게 보는 ‘연인’이 그렇지 않은 무심한 ‘친구’보다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TV 드라마에서 딴 여자와 바람피우는 남편의 단골 대사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그 여자는 나를 남자로 느끼게 해 줘.”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 여자는 남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던 나를 남자로 느끼게 해 줘.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남자로 말이야.’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아내와 함께 있는 것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을 잘 봐 주는 사람이 좋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무조건 그 사람이 자신을 잘 봐 주기 때문인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매력 때문이리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똑같은 조건이라면 자신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정도로 매력적인 두 사람이 있다면 그중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다. 우월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니까.

 

 

이런 예를 들어 본다. 만약 자신이 중학교 때의 성적은 상위권에 속하고 고등학교 때의 성적은 하위권에 속한다면 중학교 동창회와 고등학교 동창회 중 어디를 가고 싶어 할까. 두 동창회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있다면 어디로 발길을 돌릴까.

 

 

답은 뻔하다. 중학교 동창회에 갈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열등하게 보이는 자리보다 우월하게 보이는 자리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인정해 주지 않는 친구보다 인정해 주는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상대가 ‘당신을 만나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 같아.’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면 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누구나 자신을 초라하게 보는 사람을 싫어하고 자신을 멋있게 보는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1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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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인용문)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
“특별히 예쁘거나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랑 받는 방법은 만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의식적인 아부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과 어울리는 순간을 즐기고, 무엇보다 그들이 과시하는 능력을 즐기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치아의 완벽성을 독창적으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보았다. 나는 그녀의 치아 사이의 틈에 그냥 무심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예뻐했다.”

 

 

 


두 권 모두 내가 아끼는 책이다.


특히 《런던통신 1931-1935》는 요즘 재독하고 있을 만큼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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