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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평점 :
인간의 능력은 개인차가 얼마나 큰지 생각할 때가 있다. 작가로 등단하고도 책을 내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작가로 등단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도 책을 내는 이가 있다. 그리고 등단하는 절차를 밟고 책을 내고 또 책을 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는 이가 있다. 이런 이를 보면 시기심이 나기보다 나의 곁에 가까이 두고 친구로 지내고 싶어진다. 내가 배울 게 많을 것 같아서다. 바로 알라디너 다크아이즈 님이다.
다크아이즈 님(김살로메 님)이 또 책을 냈다며 우편으로 보내 준다고 했을 때 난 그의 유능함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또 책을 내다니. 게다가 첫 번째 책은 <라요하네의 우산>이란 소설집이었는데 이번엔 일천 글자로 한 편씩 써 낸 산문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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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이 '2017년 세종도서 문학부문'에 선정됐던, 경북 포항에 살고 있는 소설가 김살로메의 첫 산문집. 작가는 작정하고 일천 글자로만 된 미니 에세이를 썼다. 작가가 찍은 십여 편의 사진과 함께 80편의 짧은 산문을 엮었다. 일상에서 느낀 가족, 이웃, 문학에 대한 순간의 심상을 캐리커처처럼 그려냄으로써 글 쓸 당시의 작가의 내면 풍경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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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이다. 글 한 편이 천 자라니까 짧은 에세이라고 하겠다. 읽기 시작하면 지루함 없이 금방 빠져들게 하는 장점이 있다. 나도 천 자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탄탄한 구성력과 빼어난 문장력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밑줄긋기
내 안을 적시던 말들이 누군가의 손톱 끝에 닿아 순간의 꽃물이라도 들일 수 있다면.(‘작가의 말’에서)
반면에 풍경으로 남는 이미지는 오래 각인된다. 고춧대를 뽑아내던 엄마의 등 뒤로 번지던 쑥부쟁이 향기, 장날마다 맨발로 신작로를 달리던 애꾸눈 총각의 구멍 난 셔츠, 깜짝 학교를 방문해 내 기를 살려주던 곁방 새댁의 자주색 주름치마, 어스름 안개를 뚫고 어깨동무 잡지를 자전거에 싣고 오던 둘째오빠의 처진 어깨. 이 모든 이미지는 명백한 풍경이 된다.(84쪽)
내 문장은 건조한 편이다. 소설을 쓸 때는 그나마 덜한데, 생활 칼럼을 쓸 때는 마음부터 건조해진다. (···) 담백하고 건조한 문장을 선호하는 취향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다. 다만 성마른 문장을 구사하는데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나면 기분 좋은 당혹스러움이 밀려온다.(221~222쪽)
웃음을 말하지 않는데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심장을 쥐어짜지 않는데도 가슴이 따끔거리는 것, 그것이 매혹적인 문장의 기본이다. 온갖 키치적 깃털로 장식하는 문장보다 담대하게 탈탈 털어버린 문맥들이 더 아름다울 때가 많다. 일견 무색, 무취, 무미하게 보이는 문장의 깊이와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이미 ‘문장 털기’의 느꺼운 노예가 되었다. 시인의 말을 옮겨 적는 손끝이 기분 좋은 예민함으로 떨린다.(228~2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