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의 이중적 의미 : 슬래이브걸과 일상적 성사회학
프리가 하우그 외 / 인간사랑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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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코르넬리아 하우저가 쓴 '섹슈얼리티와 권력' 몇 구절들 / 섹슈얼리티의 표출을 억제하고 박해하는 현상을 일반적인 용어로는 '억압(repression)'이라고 명명한다. 이 용어는 모든 개인들이 성적인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는 가정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가정에는 인간의 성적 욕망이 생명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보는 생각이 깔려 있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처럼 욕망이 행동의 차원에서 억제당하고 금기의 대상이 된다면, 이러한 욕망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270쪽

푸꼬의 가설을 간략히 한두마디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섹슈얼리티란 오로지 담론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섹슈얼리티는 담론을 매개로 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며 섹슈얼리티는 안정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 조건에 걸맞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278쪽

푸꼬는 국가 기구(state apparatuses)가 얼마나 억압적인가 아니면 얼마나 관대한가를 검토하지 않았다. 그는 그 문제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억압'이란 개념 자체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억압 개념이 단지 법이나 규율만을 가리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억압 개념을 거부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억압 개념이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운동으로서 정의되는 한은 그 개념을 가지고 현실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권력 관계'를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푸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권력이 전개되는 모양'(the form of deployment of power)이라고 보았다. 그는 권력을 금지가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실천과 형식들에 쉽게 다가가에 해주는 힘이라고 이해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푸꼬는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권력에 대한 정의 - 국가를 통해서 규칙이 결정되고 법이 집행되며, 금지와 검열 / 이 중심이 되는 장이므로 권력을 국가와 관련해서 정의하는 것- 에서 출발한 이론적 모델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론을 폈다. -281~282쪽

푸꼬는 기존 모델의 대안으로서 힘들간의 관계란 견지에서 구성된 전략적 모델을 제안한다. 푸꼬는 "그리고 만일 법률적 체계가 권력의 - 유일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대표적 형식이라 하더라도 법률 체계는 새로운 권력 방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새로운 권력 방식이란 권력의 전개가 권리가 아니라 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범화에 의해, 또한 징벌이 아니라 통제나 국가 기구를 뛰어넘는 형식들과 매 수준에서 사용되는 수단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282쪽

푸꼬의 논증에 의하면 은폐나 침묵이 성적 억압을 역동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관찰하고 분류함으로써 성적 억압이 진전된다. 여기에서부터 대상은 논의거리가 되고, 바로 그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하나의 대상이 만들어진다.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쾌락이나 발견되지 않고 있었던 쾌락이 남김 없이 탐색의 대상이 되고, 각 개인들이 느낀 여러 종류 쾌락들에서 '추상화된 것'이 하나의 규칙으로 묶이게 된다. 그것은 개인에 외재해서 일어나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다시 개인의 내면에 '이식되는' 구조가 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섹슈얼리티가 만들어져 개개인의 육체와 쾌락을 잠식해 들어가는 길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다. 경찰, 학교, 철학, 법, 심리 분석, 의학 등이 육체를 대상으로 논쟁을 벌이고 토론하면서 차례대로 자리를 잡아나간다. 그렇게 되면 육체를 담론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삶의 영역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갖가지 제도나 기관들 내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로 인해서 섹슈얼리티가 생산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푸꼬에 따르면 이러한 잠식의 방법들을 한 마디로 특징지을 수 있다. -284쪽

즉 모든 사회 내 기관들과 제도들이 '거대한 외피를 갖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연결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육체의 자극, 쾌락의 강화, 담론에의 유인, 조종과 저항의 강화가 지식과 권력이 주도하는 전략에 호응하면서 서로 연관을 맺어 나간다. 푸꼬는 이 네트워크를 섹슈얼리티의 전개(deployment of sexuality)'라고 명명했다. 이 네트워크의 기능은 그것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구역들을 설정해내면서 섹슈얼리티를 조절해내는 것이다. -284쪽

우리는 푸꼬의 권력 개념이 지배와 권력이 같다고 본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배 관념이 억압 관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는 사실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또한 그는 뚜렷한 권력과 지배의 유착이 실제로는 환상이고 현실에 있어서는 권력은 권력대로, 지배는 지배대로 각기 다른 법칙에 따른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권력은 지배에 반해서 움직여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권력과 지배가 차이가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해방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탐색한다. -294쪽

권력 관계는 확실히 제도나 기구들 내에 실체를 갖고 있으나 그 제도나 기구는 국가를 초월해서 확장되는 '권력의 공간'을 구성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푸꼬의 견해에 동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국가의 전략적 범위라는 한계 내에서 포괄되어 있다. 그로므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권력, 국가, 지배를 분석/ 적 차원에서 따로 구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294~295쪽

우리는 규범의 체계에서 개인들이 자신을 스스로 사회화(이것이 규범의 효과이다)시키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 방식이란 간략히 말하자면 규범적 권력을 불일치 정도를 평가하고, 수위를 결정하며, 특정성을 고정시키고, 차이를 분명히 밝히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규범적 권력이 동질화라는 효과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모든 개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개인들로 만들어내는 똑같은 표준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개인성(individuality)을 파악할 수 있다. 개인성은 표준에 동조하는 어떤 부분들과 표준에서 일탈된 어떤 부분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화의 문제는 지식('지식은 권력이다')의 가능성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편재하는 표준에 대해서 보다 엄밀한 지식을 갖게 되면 갖게 될수록 개인차가 생길 가능성은 보다 커진다.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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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 당대총서 13
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 당대 / 2000년 10월
절판


70년대 후반부터 비판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과 분단현실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주목해야 할 전환은 한국을 '제3세계'의 시각에서 파악하려는 사고 / 방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제3세계라는 인식은 세계를 하나의 체계제로 상정하고 세계체제는 중심과 주변(또는 반주변)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변은 중심에 종속되는 관계에서 발전해 왔다는 데 주목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세계체제는 현실적으로 수세기에 걸쳐서 형성되어 온 자본주의 세계체제이며, 따라서 근현대의 한국사회 구조 또한 자본주의 세계체제, 특히 일본 및 미국과의 관게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34~35쪽

80년대 한국 사회과학 연구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한국사회 또는 한국 자본주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국자본주의 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논의는 단순히 학계나 언론계뿐 아니라 이른바 '운동권' 내부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이 논쟁의 주요 논점의 하나인 사회구조와 사회모순의 평가 내지는 성격 규정이 운동 주체세력 설정, 투쟁대상 규정 , 운동 노선 정립 등과 같은 전략, 전술을 결정해야 하는 당면한 사회변혁운동의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40쪽

80년대 초에 정성진, 조희연, 이대근 등은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던 종속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한국경제는 대외의존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며 더욱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에 포섭되어 자본, 기술, 자원 등 모든 재화를 중심부에 의존시키는 종속성을 심화시켜 왔다고 논한다. 한국은 중심부와는 이질적인 사회구성체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자본주의, 즉 주변부자본주의에 편성되어 있으며 정부는 이러한 종속적인 발전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더욱더 권위주의적인 억압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주변부자본주의론(주자론)'의 주장이다. -40~41쪽

이에 대해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의거하고 있던 박현채, 조민, 정윤형 등은 종속적일지라도 자본주의적인 한 그 내부에 자본주의 원리가 관철된다는 전제하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자론은 한국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와 모순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성격을 인식하지 못한다, 해방 후의 한국사회는 주변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국가독점자본주의(국독자론)'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였다. 즉 박현채 등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광공업부문이 GN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등 경제규모가 급속하게 확대됨에 따라 일정한 자본축적이 이루어져서 독점자본이 성장한 것을 강조하며, 주자론과는 달리 계급구조에서도 산업노동자가 도시빈민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로부터 운동론으로는 반제, 반독점, 반독재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 민중, 민주혁명의 단계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41쪽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80년대 말부터 엄청난 어려움에 부딪혀 새로운 전개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의 재벌기업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서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문화와 소비가 시대의 관심사가 되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라는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명제는 어느새 잊혀가고 있었던 것이다.-92~93쪽

90년대 한국의 사상적 특징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한 각종 포스트주의와 문화이론 등이 폭발적으로 유행한 것이다. 논단에서 논의의 중심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에서 푸코, 데리다, 리요타르, 보드리야르 등의 프랑스사상으로 옮겨갔고 언급되는 어휘는 자본주의, 계급, 노동, 국가 같은 난해한 것에서 육체, 욕망, 문화, 지식, 권력 등과 같은 포스트모던한 것으로 바뀌어갔다. 자본주의, 계급, 노동, 국가 같은 어휘는 오히려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말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담론'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들어서부터다. -157쪽

민족주의는 결코 하나의 확고한 이론도, 개념도 아니다. 민족이 그러하듯이 민족주의도 '현실'의 추이와 함께 변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이용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데올로기이다. 당연히 민족주의가 사회진보에 건전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관념주의로 빠질 때, 그것은 곧 보수반동, 국수주의로 후퇴할 위험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격동하는 역사를 살아온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민중이 정서적으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이데올로기로서, 역대 정부가 강요한 체제논리로서, 나아가 일종의 상업주의의 도구로서 끊임없이 이용되어 왔고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232쪽

사실 국민국가는 근대에 들어와서 생겨난 것이다. 이는 요즈음의 문화연구 등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허구성'을 띤 것이지만 그럼에도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실체'이기도 하다. 비록 국민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 할지라도, 앤더슨은 국민국가론을 반드시 내셔널리즘 비판으로 전개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서 국민(국가)을 구성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정치생활에서 가장 보편적인 정통의 가치라고 말하고 있다. 즉 국민국가는 상상의 공동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진공상태에서 떠다니는 공허한 존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국가에 얽혀 있는 갖가지 담론을 예의 주시하고 국민국가가 지닌 폭력장치나 타자에 대한 차이/ 차별화 기능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이며 또 어떻게 하면 정치권력이나 지배층에 이용되지 않는 아이덴티티를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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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자들은 정신 차렸다. 남초 사이트에서 남자들이 예전에 정신 못차렸던 것 중 하나가 '나쁜 남자'에 대한 정의였다. 그들은 '순수하게' '나쁜'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권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잘 알아가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이제 이 '나쁜'의 필수사항을 안다. '나쁜'은 우리가 뻔하게 알고 있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다. 이 '나쁜'을 채우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추면 좋은 능력과 그 능력에 달라붙은 물질들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오늘 처음 시작한 <파스타>를 보면서 점점 '나쁜 남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내 주위의 남자들이 아는 게 흥미롭다. 남자들은 이제 화를 버럭낸다는 것에서 자신이 충분히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을 버리고 있다. 그들은 '화를 낼 수 있는 남자'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습득하며 살아간다. 강마에(김명민)나 최현우(이선균)나 그들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위상학에 알맞는 캐릭터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구성된 캐릭터가 내뿜는 과시의 언어는, 그들이 그만큼 걸어온 노력, 혹은 성공을 갈망한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이기적으로' 재현한다. 남자들은 이제 여자들에게 굳이 '나쁜남자'가 진정 어떤 남자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지 않아도 된다. '버럭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권리의 행사가 그 누구에게나 자신을 왕자님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상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는 것을.   

버럭의 차가움과 그 버럭을 망각하게 만드는 순간의 따사로움으로 채워진 이 트렌디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어쩌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해 준 빈약한 확률의 로또인지 모른다. 이 로또, 텔레비전으로만 쳐다 보거나, 혹은 실제로 한 번 크게 당해본 후 , 미련 가득한 소주잔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술자리의 '희망안주'로 올려놓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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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 청소년 만들기와 길들이기
고미숙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5월
품절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적 기질은 생물학적인 보편적 특징이라기보다 문화적 산물, 혹은 역사적 산물이다. 이런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마가렛 미드와 필립 아리에스에 의해 세상에 던져졌고, 이런 문제제기 자체가 너무 낡은 것인지는 몰라도 청소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중략) 청소년기적인 기질의 탄생은 근대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 으며 근대 과학도 크게 공헌했다. 청소년들을 압박하는 사회적 요인은 더욱 강화되었고, 과학은 그들의 기질을 입증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냈다. 청소년기의 탄생은 바로 청소년기의 근대적 '기질' 발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기질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청소년을 다루는 장치와 방법을 고안해냈다.-16~17쪽

근대사회는 청소년들을 주변인으로 내몰았다.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미성숙하도록 프로그램화된 것이다. -46쪽

일제강점 말기로 접/ 어들어 법률이나 문서상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청소년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소년과 청년을 모두 훈육과 훈련, 규율의 대상으로 보면서부터다. 청소년을 아직 주체가 되기에는 미숙한 존재로 보고,충성스런 국민 만들기의 대상으로 삼으려한 것이다. (중략)학교제도를 포함한 갖가지 사회장치와 연령 발달에 대한 근대적인 아이디어는 미디어와의 공조를 통해서 생겨났다. 미디어와 일련의 제도는 청소년에게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덧씌웠고 서서히 주변인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이기 시작했다. / 이상 김현철-47~48쪽

이팔청춘과 청소년, 두 낱말은 같은 연령대를 지시하고 있지만, 둘을 에워싸고 있는 아우라와 표상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다. 전자가 자연적 생체 주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후자는 근대 문명이 부과한 아주 특별한 호명체계다. 쉽게 말해 10대의 어떤 인간을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와 더불어 수많은 의미의 계열이 그물망처럼 산포된다. 예컨대, 일단 그는 결혼이나 동거 따위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란 미성년의 주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절대 성욕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청소년과 성욕, 이 둘 사이는 멀면 멀수록 좋다. 아니, 숫제 청소년 따위의 성욕 따위는 없거나 없어야 마땅하다고 간주된다. (중략) 무릇 사회적 표상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과 욕망을 철저히 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청년기에는 욕망의 부글거림으로 몸부림치다가도 막상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청년은 순수할 거라는, 아니 순수해야 정상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 이게 바로 표상 혹은 호명체계의 위력이다. -59쪽

청소년의 존재 기반은 학교와 가족이다. 청소년은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효율적인 생산주체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교육의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는 세대이며 부모의 적극적(경제적)보호와 배려 속에서 대학입시를 향해 분투해야 하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청소년이라는 말 속에는 가족, 학교, 국가라는 개념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박혀있다. -60쪽

근대계몽기 민족담론은 모든 기호들의 차이를 봉인하는 블랙홀이자 초월적 좌표였다. 서구와 일제라는 대타자로 인해 국가와 민족이 발견되긴 했지만, 실상은 '텅 빈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발견과 동시에 부재를 감내해여 했기 때문이다.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를 표현해야 하는 역설에 처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족담론은 모든 기호들을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91쪽

순수함이란 달리 말하면 탈성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자면, 근대 이후 급부상한 가정교육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소년기의 성욕을 통제, 관리하는 것이었다. 위생담론이 적극 개입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이상 고미숙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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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들어오면서 느낀 1년 반동안의 고민들.. 이제 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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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 이후, 학문 시장에서 가장 기이한 '장르'를 꼽으라면 '문화연구'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왜 나는 이 장르를 사랑하면서도, '기이하게' 사랑하는가. 이제 그 속내를 밝히고 싶다. 나는 문화연구를 공부하러 오겠다는 똘망똘망한 후배님들을 보면 문화연구가 참 기이하다. 왜냐고? 문화연구는 최근 '지성의 시장'에서 사실 안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또 어떤 곳을 가 보면, 문화연구는 매우 활황 상태다. 문화연구에 통 뼈가 굵은 사람조차도, "야, 요즘 문화연구 누가 하냐?"라는 냉소적인 말을 한 지가 오래인데, 내 주변에는 "선배님, 문화연구를 좀 공부 하고 싶어서요. 대학원에 가려고 해요"라는 말을 꽤 많이 한다.


2


문화연구는 어찌 보면 가장 불쌍한 지적 장르이기도 하다. 본인이 속한 기존의 '원-장르'에서 별 매력을 못 느낀 이들을 받아주는 섬, 그것이 바로 문화연구라 할 수 있을진대, 이 용병들은 그래서 더욱 열심히 '장르 파괴'와 '장르 해체'를 일삼으며, 횡단을 즐겨한다. '문화학'이라는 장르가 생겨나고 조금씩 그 꼴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문화연구라는 섬에 들어가려 하는 이들은 사회학도나 언론학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 또 최근에는 역사학의 호황을 등에 업고 국문학도들이 이 섬을 자주 찾는 것 같고, 서동진 같이 외롭게 '디자인 문화연구'라는 서브 장르를 개척해나가는 사람도 있다. 특히 언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커리큘럼 안에서 '대중문화의 이해'같은 것을 포섭시켰다는 이유로, 이 미디어가 담아내는 어마어마한 문화적 산물들을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미디어 세계가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소위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이름 아래, 미디어와 문화연구를 합한, '미디어 ․ 문화연구'라는 장르가 만들어졌고, 한국에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화연구'앞에 붙은 '미디어'라는 접두어 때문에 미디어 ․ 문화연구자들은 많은 곤혹스러움을 겪고 있다. 소위 전통적인 '미디어'의 범주 안에서 문화연구적 정신을 실현할 것인가. 내가 알고 배운 문화연구라는 것을 써 먹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문화연구는 잠시 주춤거리는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문화연구'라는 학제가 생기면서, 문화연구 스스로가 갖는 그 자율성이 학문의 제도라는 영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나타나는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형 같은 연구자는 이제 '미디어'라는 수사에 너무 한계를 짓지 말자고 자신의 논문에서 주장한다. 그는 미디어의 존재 범주를 확장시키자고 주장하며, 미디어는 단순히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매스 미디어로서 사유할 것이 아니라, 도시 문제의 연구를 통한 '범미디어주의'를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3

솔직히 말해서 이기형 등의 연구자가 미디어 / 문화연구라는 특정 장르를 더욱 확장된 의제로 끌고 싶어나가는 것은 문화연구의 문제라기보다는 미디어연구의 입장에서 일단 봐야 한다. 소위 미디어연구라는 것을 하면서 언론학 자체가 예전부터 갖고 있는 위기가 나는 계속 가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학, 즉 우리가 신문방송학이라고 부르는 이 장르는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을 걱정하여, 내뱉었던 그 선언의 상황 만큼이나 어렵다. 미디어연구자들은 신문이 어렵다! 방송이 난국이다! 이런 진부한 시대 선언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오히려 미디어 연구 자체가 어려우며, 난국임을 봐야 할 것이다. 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문화연구로 떠날 채비를 하려는가. 그것은 단순히 대중문화의 시대라는 핑계를 대기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는 권력이 있다. 더 나아가 지식과 권력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연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문화연구의 문제의식과 이에 비롯된 연구 주제들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애매하게 걸치고 있는 순응적인 젊은 연구자들의 의미 없는 '논문 찍어내기'도 일조한다. 미디어 연구에 사회가 죽었다. 미디어 연구에 권력 비판이 부재하다. - 더 노골적으로 말해 계급 문제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미디어연구에 남은 것은 '기술'과 '기능'뿐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미디어연구의 위기가 성찰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면서 문화연구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문화연구자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미디어연구의 전통적인 주제들, 혹 관례적 주제들 '대통령 연설문 조사' ,'대통령 후보 토론회 후보자들 수사 분석'와 같은 것들이 마치 문화연구자들의 연구적 태도로 '전이'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문화연구자들은 돌고 돈다. 그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차원에서 있는 그대로만을 억지로 끌고 가보자고 한다. 끝까지 절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문화연구의 위기를 타진하는 비평들을 보면, 이것은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연구라는 장 안에서 왜 자신의 연구를 인정해주지 않느냐는 '인정투쟁에 대한 하소연'에 가깝다. 그래서 문화연구를 사랑한다는 자들이 보여주는 문화연구에 대한 '성찰 게임'은 이미 관례화된 지 오래다. 다들 알다시피 문화연구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위기론을 맞은 기이한 장르이다. 이 장르는 위기를 맞으면서도, 그 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호황 상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술했다시피 이 장르는 참으로 기이하다.


이 기이함 속에서 이기형 등이 강조하는 '미디어'-'문화연구'의 관계. 그 딜레마에서 우리가 뜨겁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리고 논쟁이 필요한 부분은 사실 '문화연구가 왜 이 모양이야!"라는 구태의연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미디어연구라는 전통적인 장르에 기생하는 듯한 문화연구의 현실을 문제 제기해야 한다.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문화연구는 미디어연구에 잠식당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한 대통령 수사 연구와 같은 형태의 관례적 문화연구식 소재가 남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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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가 억지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파도의 정신'이다. 우리는 섬이 아니라, 파도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섬은 고립되어 있지만, 파도는 움직인다. 그러나 이 다이내믹은 정작 문화연구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문화연구자들은 자신들의 변덕을 문화연구가 지닌 급진적 맥락성이라는 좋은 용어로 갖다 붙이지만, 이 변덕으로 인하여 문화연구는 사실상 주인 없는 파티장이 되어버렸다. 연구자들이 스스로의 고민을 사회 문제의 '급변성'에 너무 예민하게 맞추다 보니, 사유의 깊이는 없고, 비평의 시선은 진부하고 또 진부하다. 문화연구자들의 변덕은 또 '쏠림' 현상과 연관성이 있다. 요즘 문화연구자들의 '쏠림'이라고 하면, 일부에서 보이는 '역사적 문화연구'다. 아마, 국문학에서 엄청나게 나오고 있는 한국 근대사의 성과에 관하여, 국문학을 한다는 친구들이 그 시대의 문화를 다루고 있으니, 정작 문화에 헤매고 있는 문화연구자들의 무의식엔 "어이쿠, 이것 큰일났구나"라는 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들이 역사에 관심 있어 '역사적 문화연구'를 하려는 건 아닌 듯 보인다. 그들에겐 오히려 "내가 문화연구를 하고 있다"는 생명 연장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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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의 위기에는 가장 중요한 세대 교체의 실패가 두드러진다. 양은경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문화연구의 형성'은 문화연구를 지식 장 안에서 세대적 대립으로 보는 데, 나는 이 구도에 공감이 간다. 소위 90년대의 아이콘이었던 사람들이 지식에 똥을 싸고, 욕을 하고 실컷 놀던 시대가 있었다. 덕분에 리뷰나 상상 같은 문화계간지들이 돌출하고, 홍대를 비롯해 롯데월드까지 모든 게 문화였고, 모든 게 연구일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똘끼'가 주는 임팩트가 사실 세대적으로 또 한 번의 대립을 걸치면서 나타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하여, 젊은 문화연구자들이 이런 세대와의 대립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문화연구를 한다는 이들은 90년대를 좌지우지하던 그들의 이야기에 쌍욕을 하지 못하고, 그들에 순응하고 그들에 환호하기 바쁘며, 그들의 추억담에 웃기 바쁘다. '2009년'에 문화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논문에 90년대가 문화의 시대였다라고 하는 그 대표적 수사가 인용되기에 바쁘지, 그것에 남다른 의미를 붙여보려는 시도가 없다는 점은 우리들이 얼마나 문화연구적 클리셰에 젖어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문화연구'라는 장르 내에서 어설픈 연민으로 뭉친 사회 문제에 대한 연대가 아닌, 그 연대를 더욱 키울 수 있는 분열과 논쟁이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논쟁을 하려는 이들이 없다. 왜냐하면 문화연구자들도 한국의 지식 시장에서 문화연구가 배고픈 장르임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오히려 문화연구를 취미처럼 대하기에. 갈수록 커져가는 문화연구자들의 옹알이는 사실 문화연구가 한국에서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다는 자조를 스스로 너무 떠벌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면서 문화연구 학회에 가보면 다들 문화연구 좀 사랑해달라고 난리다. 이 정도 되면 '한국문화연구의 종언'이라는 말을 꺼낼 때도 되었다고 본다. 생각보다 개판이며, 실제로 보면 더욱 개판이다.  

(어찌보면 최근 '무례한 복음'으로 90년대식 문화연구에 애정을 드러내시는 그 분께는 참 미안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마치 새로운 것처럼 강조할 때마다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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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고민을 갖고 계셨군요. 그리고 저한테는 어떤 말도 하시진 않으셨군요...ㅎㅎ 나중에 함께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이 생길 수 있을지도..(그리고 그러고 싶은 맘) 입학하면 학교에 계시나요? 종종 같이 얘기하면 좋겠어요.

얼그레이효과 2009-12-2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안하지만, 논문학기라 학교에 안 간지 오래랍니다.ㅎㅎ 저때문에 대학원 입학의 희망을 너무 빨리 소모하진 마시고,,충분히 겪어보고 나서..언젠가 서로 편하게 이야기 할 때가 오겠지요.^^ 문화학과 분들은 영롱씨에게 희망을 줄 분들이 많으리라 개인적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