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독서할 시간이 확 줄었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그랬다. 그래도 불평불만보다는 '남은 시간'의 소중함,같은 '자기계발서'의 고마운 상식을 내가 정말 읽고 그치는 것이 아닌, 삶에서 직접 실천해본다는 점에서 하나 위안 얻고 간다. 집으로 돌아오면 가방 휙 던지고, 일단 뻗기 때문에 나에게 '새벽'은 앞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오고 가는 긴 시간은 (물론 졸기도 하고 스마트폰 매만지며 지난 메시지 읽고 히히거리며 책은 옆구리에 끼고 있지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다. (아, 이 느끼한 문장을 삶에서 내가 직접 실천할 줄이야. 암튼.)  

# 1  

 

 

 

 

 

 

 

 

 

최근 완독한 책은  정상우의 《편집의 발명》(지식의 날개,2010)이다. '지식 편집자를 위한  12가지 생각도구'라는 부제처럼, 저자는 12가지 키워드를 통해 (엄밀히 말하자면)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런 책'이 갖는 특유의 너스레를 알고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여러분, 에디터가 왜 되고 싶으세요?  

A 항) 에디터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B 항)꼭 에디터가 아니더라도, 괜찮아요. 이 직업 정말 어렵구요. 박봉이구요. 배도 많이 나오구요. 건강도 해칩니다. 여러분이 한 번 간을 보시고 안 맞다 싶으면 다른 직업을 선택하셔도 좋습니다, 

와 같은 류의 이야기 말이다. 나는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너스레'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이런 '너스레'의 이중성을 비교하는 맛이 있다. '환영합니다, 당신은 지옥에 오셨군요'와 그 말의 진심 여부를 떠나서 지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너무나 뜨겁고 재미있게 가르치려는 사람의 친절.  

내가 늘 공부를 이런 식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런 '너스레'속에서 나오는 유머가 일종의 '경력'과 '권력'을 가진자들이 위안을 가장한 자기 자신의 위치에 대한 프라이드를 드러내는 것인지(이건 좀 적어놓고도 넘 진지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뭔가 '무의식'이라는 말을 끄집어내고싶을 정도의 더 깊이 있는 분석도 하고 싶다), 혹은 정말 '입문'하는 사람을 위한 단순한 /털털한 조언 정도인 것인지 마음 안에서 왔다리갔다리 한다.  

사실 《편집의 발명》이 '독한'(?) 너스레를 떠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언제나 이런 류의 책이 그렇듯) '창의성'을 독려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성한 지도 같은 것으로 독자를 인도하여, 그 지도의 통제 안에서 '자유'를 이야기하며, '뇌'의 활발함을 밀고 나가길 바란다.  그러나 이 '뇌'의 활발함은 늘 사람을 챙겨야 하는 것과 이어져야 하며, 삶을 챙기는 따스함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성공적인 전략'이 나온다는 것.  결국 우리가 이런 책에서 접하는 대답은, "그래요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질문이지요.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의 삶에서 편집을 하고 있는 겁니다"와 같은 것이리라.  

 

 

# 2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정민우의 《자기만의 방》(이매진,2011)이다. 저자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여전히 나도 이런 류의 구닥다리 사고는 갖고 있었나보다, 반성) 엄청난 논문 등재수를 자랑하는 '괴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논문은 논문의 세계일진대,라는 생각은 나의 뒷통수를 쳤다.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이 '책'으로 나온다는 것.이 과정은 단순히 내 석사 논문 주제 괜찮죠? 책으로 내면 어떨까요?에서 그치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의 문체, 그리고 단행본의 문체 이것을 함께 안고 다니니기가 참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런 점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점을 긴 프롤로그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들여다본다. (이것을 드러낸 것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머리말은 내가 하고 싶었던 몇몇 생각과 일치한다. 특히 이 책의 5페이지는 한국의 모든 대학원생들이 읽었으면 한다. 내가 조금 공개해볼까? 

석사 학위 논문이라는 종의 지위에 관한 의문 또는 의구심, 주변의 시선은 물론 나 자신의 잣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글을 내놓게 돼 조심스럽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석사 학위 논문은 많은 경우 멋모르던 학문적 열정의 쌉싸래한 추억이거나, 더 깊이 있는 학업으로 나아가는 중간 기착지로 이해된다.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의 학문적 자격 검증 정도로 여겨지며, 이때 권장되는 것은 기성 학계에서 통용되는 학문 언어의 모사다. 입 또는 손가락을 가졌다는 것이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말하기 / 글쓰기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부터, 나는 뛰어난 모사꾼이 되는 법을 연마하는 동시에 늘 그 모방의 실패 또는 잔여 지점에 고여 있었다. 회고적이거나 임시적인 석사 학위 논문의 일반적 지위는 과연 모방을 넘어 좋은 글, 좋은 논문이라는 기대치 않은 이상과 만날 수 있을까,라는(5) 질문은 지난 2년간 대학원생이던 내 구심적인 화두였다(6)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읽을 다른 대학원생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아마 정민우 씨처럼 '문화연구'를 하는 동료들의 어떤 질투심에서 모두 출발할 어떤 마음의 상태 말이다. "아,정말 부럽다"라는 말 속에 숨겨진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내 지도교수는 맨날 내 주제 무시하고..쳇'과 같은 반응도 있을 것이고, "아,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언제 이런 책을 내볼 수 있을까?"라는 정말 부러움을 느끼는 상태도 있을 것이다. 근데,난 후자는 별로 매력이 없다. 전자가 뭔가 찌질하고 병신 같아도 이게 사람이다,라는 쪽에 걸겠다. 이것도 겪어본 자의 너스레인가? 웁스.  

책을 다 읽으면 꼭 리뷰를 쓰겠다. 오늘은 몇 페이지를 넘길 수 있으려나. 부디 오늘도 앉아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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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06-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도 추천드립니다. ^^ 개인적으론 관련된 책들 몇 권 중에 이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6-25 22:10   좋아요 0 | URL
사놓고, 아직 몇 쪽만 들추었네요.^^ 읽어보고 샤샤샥 고민 털어놓겠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1-06-2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 독서 최대의 적은 갈아타는 것입니다. 흐름을 다 끊어먹어요.^^; 오랜만에 들러 댓글 남기고 갑니당^^

얼그레이효과 2011-06-25 22:11   좋아요 0 | URL
용산 급행을 타고 가면 시간이 빠른데, 그래서 빵가게님 조언대로 해보려고 한 번 그냥 다른 노선 타서 버텨봤네요 크크. 좋은 조언 고맙습니다~

게슴츠레 2011-06-2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문계에서 직장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제 저도 얼그레이님 블로그에 좀더 맘편히 올 수 있겠군요. 아니, 어떻게 일하면서 이리 많이 볼수있지라며 자학하려나...

얼그레이효과 2011-06-25 22:12   좋아요 0 | URL
크크. 고맙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오셔도 됩니다~!

2011-07-19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0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