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이 나온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가상의 발문을 쓰고 싶었다. 나는 사실 서른이 되기 전, 정성일에 관한 책을 쓰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책이 곧 나올 예정이란다. 놀랍게도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평을 써 왔지만, 처음 내는 영화비평집이란다. 그와 그의 글은 우리 시대가 보호해줘야한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이 시대에, 더욱 더. 평범한 블로거의 오마쥬) 

1

 오늘, 정성일을 기억하는 자는 누굴까. '씨네클럽'을 경유하며,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의 추억으로 밤을 지새우는 세대들? 서강커뮤니케이션센터를 밥먹듯이 드나들며, 영화학교 서울을 기억하고, 무슨 말일지는 모를지라도, 귀하게 구한 '삐'자 비디오에 담긴 예술 영화에 환호하던 느낌을 간직하던 세대들? 나는 그 세대가 아니라서, 그 세대의 영화 문화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함께 멀뚱멀뚱 굴렁쇠 소년을 보던 7살 소년에게 '영화'는 비디오였던 세대, 강시와 환영도사, 수라왕과 후레쉬맨, 헐크호간과 레슬매니아의 추억이 '곧 영화를 보던 시절'이었음을 고백하는 나에게, 사실 정성일의 진가를 제대로 판단한다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성일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평다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제 영화저널리즘 바닥에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영화학'의 그물 속에서, 우연히 걸린 학문적 열정의 논리로 여기저기 찔러보는 자들의 언어만이 횡행한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  지식꾼밖에 안 된다) 매년 신춘문예의 심사소감엔 논문이 아닌 영화비평을 보고 싶다는 지적이 올라온다. '영화'는 '학'이 됨으로써, 영화와 인간의 관계를 가깝게 했는가? 우리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까칠하게'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의 존재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괜한 대중과의 싸움 같고, 영화에 대한 패배주의적 시각은 이상한 '취향 존중'속에서 갈등 회피를 조장한다. 그러나, 외롭게 싸우는 단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정성일이다.   

 

 

야구계의 '괴물'이 류현진이라면, 영화계의 괴물은 정성일일 것이다. 그는 세상에 나온 모든 영화를 다 볼 기세로 영화로 하루를 시작하고 영화로 하루를 끝낼 것 같은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기뻐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분노한다. <로드쇼>가 서서히 망해 갈 무렵에, 나는 이 세상에 가장 저급한 영화 잡지가 <로드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로드쇼>의 초창기를 헌 책으로 구입했을 때, 어색한 '격문'들이 붙어 있었다. 이 사람 뭐지? 왜 이렇게 영화에 죽니 사니 하는거야?  그는 정말 영화 때문에 살고 영화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영화에 격분하고, 영화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늘 자신이 봤던 영화에 대한 황홀감으로 지금 평하는 영화를 사유했다. 그는 지식이 영화를 죽이는 걸 싫어했고, 영화가 영화를 살리는 '소생술'에 늘 고심했다. 그리고 대중에게 제발 이 소생술을 알아달라고 간구하는 듯했다.(최근 씨네21에서의 행보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그가 영화만 보는 인간은 아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볼 기세로 책을 '판다'. 그는 극장 밖에 일어나는 현실을 사유했고, 그것을 지독하게 영화 '안'에서 고민하려 했다.  사회에 만연한 인터넷 냉소주의를 우려하기도 했고(그는 우석훈의 칼럼집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추천사에서 이 부분을 밝혔다) 지성의 흐름을 헤엄치면서, 지식의 상영관에 나오는 언어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 언어들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이미지들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를 모른다면, '키노'는 알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친구들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백치들'이 커버였던 <키노> 몇 호를 끼고 다니며, 영화 동아리방을 들락나락거렸다. 나는 소심하게 친구들 잡지를 얻어 보다가, 알란 탐과 왕조현 사진을 선전하지 않아도, 이렇게 두터운 내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 놀랐다. 그 누구도 보지 않는 것 같지만, 어느새 하나, 둘 보이는 그 잡지. <키노>는 악명이 높았지만, 정성일은 그 악명을 애초부터 즐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영화에 관한 '순혈주의자', '순수주의자'인가? 그는 아마 이 명칭을 싫어하지 않을 듯하다. 영화는 영화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은 채, 그는 영화가 넘쳐나고, 영화 이야기가 넘실대던 시대에 오히려 우려를 표한다. 이것은 지극히 영화광 다운 태도이다.    

"우리는 주변에 이미 수없이 많은 영화에 관한 담론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사랑과 증오가, 풍자와 자살이, 패배와 절망이 서로 뒤섞여 알 수 없는 농담(?)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드문 사람! 그리고 세상을 점령해버린 것 같은 황당무게한 테크놀로지의 천년왕국론과,근거없는 비난을 일삼는 자해극들, 게다가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모르는 속임수는 심지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키노>1995.05.영화의 '지나간'100년' 키노의 '새로운'101년 中 -

 6 

'존재'를 둘러싼 갈등은 늘 논쟁의 중심에 선다. 영화 또한 그랬다. 영화에 대한 존재론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생 매체와 영화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왔다. 많은 이들은 이른 '수용'에 바빴지만, 정성일은 달랐다. 그는 '영화의 죽음'담론 뒤에 과연 남을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사뭇 폭력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그는 영화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의연하게 '영화의 죽음'담론에 대처한다. 그가 책에 '필사적'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그의 영화 인생을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정말 '필사적'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써 온 사람이다. 그렇기때문에 때론 과격하고, 때론 눈물겹다.  너희들이 안 하면, 나라도 하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는 영화의 종말, 영화의 죽음을 종용하는 담론들과 투쟁하면서, 영화를 외롭고 작게 만드는 매체들과의 사투를 잊지 않았다. 가령 비디오는 '시네마'의 황홀함을 점점 앗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비디오에 스며든 그 자본의 폭력성, '작품'에 대한 그 어떤 존중도 없는 무자비한 절단에 분노했다. 그리고 싸웠다.  

그리고 90년대 한국 영화 문화에 들어온 '컬트' 현상'의 기이함도 비판했다.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영화광의 덕목이 되어버린 시대를 슬퍼하며, 그는 아벨 페라라를 들먹거리는 좋아하는 '백과사전'식 영화매니아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들은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가? '진퉁'영화광과 '짝퉁'영화광의 대립? 정성일이기에 가능했던 진정성있는 문제제기였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격분하겠지만.) 정성일은 오늘날 시네필을 사유하며, '노트북 세대'의 시네필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 영화의 '서사'가 주는 흥분엔 관심이 없는 시네필, 오직 영화의 '정보'만을 흡수하고, 그 정보를 제대로 언급했는가, 아니었는가의 판별에만 관심있는 시네필, 그렇기때문에 그는 그것이 가짜 갈등이라고 말한다. 오직 남은 건 빈 덧글 끼리의 대립일 뿐. 인터넷 세대, 게임방 세대의 시네필,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VCR 세대의 시네필. 그는 지금 이 시대를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도, 끊임없이 영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매달렸다.   

8

그는 더 나아가 당신은 영화관에 가는 것인가? 영화를 보는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그는 이 질문을 아주 오래전부터 했다.  

"그래서 우리가 여름에 영화를 보러간다고 말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에서이다. 그것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무더운 여름에 도시에서 외곽지역으로 이동해서 여가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냉방장치를 갖추고 시간을 낭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찾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만일 이분법적으로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관에 가는 것은 서로 다른 행위이다. " 

"사람들은 자동차를 끌고 영화관에 와서 팝콘을 사고 콜라를 마시면서 영화를 소비한다.실제로 영화는 그렇게 부주의하게 볼 만큼 친절한 담론의 양식을 갖고 있는 매체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주의한 상태로 만든다. 이렇게 부주의한 관객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영화는 스스로의 장점을 포기하고 구구절절히 설명을 늘어놓아야 하며,시선의 한계-체험을 버리고 이야기를 통해 기승전결을 일러주어야 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쉽사리 집중력을 상실하는 지속을 계속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해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넣어야 한다" 

                                                                           - TTL CINEMA CLUB 영화교실 2001.5.14, 영화관의 아우라?中

그는 약 십오년 전, 어떤 글에서 영화평론가는 '실패한 영화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나 이런 고백이 자기도 모르게 스노비즘으로 빠지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그래서 이 고백은 혹시나 같은 시행착오에 빠질지도 모르는 '미지'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격려이며 서둘러 고백하며 만일 피할 수만 있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길 기대하는 작은 희망에서이다. (중략) 

말하자면 영화평론가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서, 순진한 영화광과 진정한 영화광 사이에서 망설이는 사람이다. 또는 '실패한'영화광이다. (중략) 이미 고다르는 말한 적이 있다. 영화에 관한 이론은 불가능하다. 영화에 관한 이론은 언제나 영화 그 자체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물론 이런 것과 싸운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 구조주의에 관해서 이야기하거,페미니즘을 말하고, 정신분석학을 언급하고,마르크스-레닌주의를 주장하고, 실증주의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그저 책 몇 권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중략)하지만 번번히 그 노력을 실패로 이끄는 것은 여전히 고다르의 충고였다. 영화에 관한 이론을 영화가 아니 다른 것(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글쓰기에 의존하여)으로 시도할 때마다 거꾸로 글쓰기의 논리가 영화읽기와 노력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다.

                               - <비디오 무비>,1995,05. 어느 낯선 영화광으로부터 보내온 편지, 또는 영화를 다시 생각하며 中 - 

10 

다들 알만한 트뤼포의 시네필에 대한 이야기. 정성일은 시네필의 약속을 지켰다. 영화를 좋아하는 진정한 영화광이라면, 첫째, 영화를 두 번 다시 보고, 둘째, 영화에 대한 비평을 써보는 것이며, 셋째,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 그에게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일상다반사였을 것이며,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쓴다는 건 그가 아마 신체적인 한계가 올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셋째, 그는 드디어 자신이 감독한 첫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나는 문화에 대한 충성과 열정이 퇴색된 시대에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한 한 대목을 같이 나누고 싶다.  

오늘날 '문화'를 말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문화'란 기본적인 생활세계의 범주로서 등장한다.예를 들어,종교에 대해서 말할 때,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정말로 믿음을 갖고 있는'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생활양식'을 존중하여 종교적 의식이나 관행(의 일부)을 지키는 것뿐이다(유대교를 믿지 않는 유대인이 '전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부정한 음식을 금하는 율법을 지키는 경우 등)."내가 그것을 정말로 믿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내가 속한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라는 말은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부인된/치환된(disavowed/displaced)믿음을 표현하는 지배적인 양식인 듯하다. 문화적 생활양식이란, 산타클로스를 믿지는 않지만 해마다 12월만 되면 집집마다 또 공공장소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아닐까? - 13쪽

즉 '문화'란 우리가 정말로 믿지는 않으면서도 실천하는 모든 것, '진지하게 생각하지'않으면서 실천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이름이다.(얼그레이효과 생각 - '지칭하는 이름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 시대, 문화의 위상이 아닐까)과학이 이러한 문화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 역시 과학이 너무 진짜라는 사실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근본주의적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야만인',반문화세력,문화에 대한 위협으로 치부하는 이유 역시 그들이 겁도 없이 자기들의 믿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마침내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문화 속에 매개 없이 속해 있는 사람들,자신의 문화에 거리를 두지 않는 사람들을 문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 14쪽  <죽은 신을 위하여> 中 - 

이제 영화를 '믿는 '세대는 사라지고, 영화를 '관리'하는 세대만이 남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정성일은 이러한 시대에 고집스럽게 '시네필의 존재론'을 주창한다. 그는 최근 씨네21에서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며, 동료들과 함께 고민했다. 쌓여가는 담배, 시간을 잊은 시계, 자신들에게 황홀함을 안겨다 준 감독들의 세계관을 쉴새없이 주고받기.. 이제는 보기 힘든 영화문화 속에서, 정성일은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적대와 환대의 정치학을 계속하여 시도할 것이다.  

"마무리 얘기를 하자면, 시네필이 영화에서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시네필의 존재만이 영화적 체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성립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만이 영화에서 매혹이란 게 뭔지 설명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영화적 순간이란 시네필의 동의어입니다." 

"오로지 시네필의 존재만이 영화학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영화학이 감히 그 매혹을 설명하려고 달려드는 순간 유명한 수술대의 교훈이 성립합니다.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 죽었어,라고 그렇게 시네필들이야말로 미라가 될 뻔한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시네필의 핵심 경험은 마법적 황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체를 알고 싶어서 20대 때 기호학,구조주의,마르크시즘,정신분석학 책들을 열심히 봤습니다. 얻은 교훈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아무리 열심히 봐도 거기에 답이 없다는 것, 두 번째가 사실 중요한 데 이 연구들의 공통된 목표는 이 마법적 황홀함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공부를 덮으면서 하게 된 결심은 이 마법적 황홀함을 방어야해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영화학에 대한 시네필들의 저항, 앞서 얘기한 '시네마틱'한 것에 대한 방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게 공부하지 말라는 말로 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략)우리는 시네마틱이라는 단어로 방어하고 공격에 저항하는 심정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씨네21>.2010.6.22.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中 - 

영화에 대한 믿음이 아닌, 영화 정보에 대한 믿음만이 하나의 '신앙'이자, 합리적 라이프스타일로 당연하게 자리잡은 시대에 정성일의 주장은 외롭고 또 외로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없어도 잘 살 것이다. 왜냐면,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책이 아직 도착하기 전 글이라, 책 속 내용이 없는 '발문'의 취지를 제대로 못 살린 글임을 밝힌다. 책을 다 읽고, 세세한 평가를 다른 페이퍼를 통해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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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0-08-10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정성일의 책이 드디어 나왔군요!! 예전에 인터뷰에서 책 낸다는 얘기는 진작에 들었던 거 같은데. 내일 다시 들어오겠습니다ㅋ

얼그레이효과 2010-08-10 23:57   좋아요 0 | URL
바라님, 반갑습니다. 저도 최근에 알았네요. 구입해서 읽고 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네요.

미지 2010-08-1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씨 글은 거의 음악의 경지죠... 책 얼른 사야겠습니다.^^ 영화가 개봉이 아직 안 되어 안타깝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10 23:58   좋아요 0 | URL
영화가 아직 참..일반 극장 개봉이 안 되었죠? dvd라도 나왔으면 하는데..음.

stella.K 2010-08-1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노>는 잡지라고 해도 거의 눈문집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노무 잡지가 글이 깨알 같이 박혔던지...
그런데 그게 없어졌다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ㅜ

얼그레이효과 2010-08-10 23: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인터넷에 pdf파일이라도 종종 떠다니던데..이젠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집에 몇 권 있다는 것을 위안삼습니다.

dorati 2010-08-1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노의 PDF들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user.chol.com/~dorati/kino 물론 99호 전부는 아니지만, PDF파일로 떠다니는 파일들은 여기가 시작이었으니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11 18:11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2010-09-11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헤는밤 2010-09-2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받은 감동이 다시금 살아나네요. dorati 님의 고급정보도 얻어가게 되어 기쁩니다.ㅎ
제 블로그에 원문 링크하였는데 괜찮을지요? ^^ 종종 찾아뵐게요.ㅎ

까만진주씨 blackpearls.tistroy.com

얼그레이효과 2010-09-27 18:2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