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테인먼트'라는 핑계로, 프라임타임을 '엉터리 맛집 기행'으로 메꿔버리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막장'이 싫어서, 차라리 아예 '막장'이라고 간주되는 tvn의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편이다.(이 무슨 해괴한 논리가?) 평소 <화성인 바이러스>를 꼭 챙겨보는 편인데, 또 최근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러브 스위치>란 프로그램도 꼬박꼬박 챙겨보게 되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잠깐 프로그램 형식 소개. 30명의 능력있다고 선전된 / 혹은 개성있다고 표현된 여성 심판단들이 있다. 이 심판단들은 마음에 드는 남성 출연자가 나오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한 회에 2명의 남성 출연자들이 등장하고, 그 출연자는 총 3번 선택 과정을 통해 최종 결정 과정을 통과하게 된다. 1차 선정 기준은 얼굴, 키, 옷 입는 스타일 등이다. 2차 선정 기준은 남자 출연자가 나오는 VCR을 보고, 그의 PR을 판단하는 것, 3차 선정 기준은 추가된 그의 여성 취향이다.
정말 비호감이면, 1차에 올 블랙 아웃 판정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제 방영분처럼, 일단 잘생기면 1차에 전원 합격 표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 보면 늘 느끼는 게, 사람이란 동물이 생각보다 참 섬세하다는 것이다. 수염이 어디에서 난 건 싫고, 어디에서 난 건 좋다는 둥, 슈트를 입을 때, 이렇게 코디를 했으면 좋겠다는 둥, 키는 어떤 정도가 적당하는 둥.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건 비단 여자의 몫만이 아니라는 거다. 나도 남자지만, 정말 '피곤할 정도로 세세하게 가리는'남자 또한 많은 것 같다. 여자의 키와 가슴 사이즈 문제는 예사이고, 혈액형 문제를 예민하게 꺼내는 사람도 있다. 나이는 몇 살 이하, 몇 살 이상도 측정되고, 어떤 직업이면 피곤할 것이다, 어떤 직업이면 괜찮다는 둥. 바로미터 자체가 무궁무진하다.
근데, 가끔은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미디어'가 구성하는 시선을 통해 사람들을 평가하는 건 아닌가 하고 판단하게 된다.(이건 내가 담론이란 것 자체를 신봉하는 사람이라 그럴수도 있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라, 미디어가 나를 그대로 재현해주는 게 아니라, 미디어에서, 특히 케이블 TV에 나오는 무수한 성인 드라마의 클리셰들을 학습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원 나잇 스탠드 후, 여성이 남성의 섹스 학점을 A,B,C로 채점하는 등등의 클리셰)
그래서, 잘 돌아다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소개팅 후기나 자신의 연애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진짜 우리 인생이구나 싶다가도, 이 사람 뭔가 드라마 흉내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래도 이런 섬세한 센서를 들고 다니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진리만은 의심받지 않더라.
"잘 생기면 다 용서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