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억지로 참고 모르는 척 해줄 때가 있다 / 혹은 많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전혀 모르는 척 하고 듣는 쪽이다. 그러다보니, 친구나 지인이 A라는 이야기를 할 때, A가 예전에 읽어왔던 책의 내용이었다는 것을 감지하거나,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를 통해 알고 있던 정보라 해도, "아, 진짜?"라고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많이 아는 사람이란 건 물론 아니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나 대할 때, 거부하거나 싫은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게 과한 칭찬을 해주는 성격을 가져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할 때가 많다. 아마 이런 성격의 연장 선상에서 "아,진짜?"라는 내 표현도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똑같진 않지만,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읽으면 이런 스타일의 사람을 묘사한 랑시에르의 언급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그리 생각보다 못된 사람이 아니라고 좀 합리화하고 싶은 건, 상대방이 너무 열성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논할 때, "어, 그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긴데.."라고 내가 말하면, 그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을까봐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점이다.
밤 11시가 넘어, 갑자기 순대국이 먹고 싶어, 집 근처 순대국집에 갔는데, 두 남자가 축구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희화화시키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뒷담화가 펼쳐졌는데, 순대국을 먹으면서 귀동냥을 좀 하다보니, 한 사람에게서 유난히도 "아, 진짜?"란 표현이 자주 나왔다. 그리고 그 표현을 듣는 쪽인 사람은 쉬지 않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스윽 한 번 쳐다봤을 때, "아, 진짜?"라고 하는 사람의 얼굴이 너무 환해서 왠지 나와 같은 과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하얀 치아를 드러내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고 나서, 고추 하나를 씹었다.
"아, 진짜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