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억지로 참고 모르는 척 해줄 때가 있다 / 혹은 많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전혀 모르는 척 하고 듣는 쪽이다. 그러다보니, 친구나 지인이 A라는 이야기를 할 때, A가 예전에 읽어왔던 책의 내용이었다는 것을 감지하거나,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를 통해 알고 있던 정보라 해도, "아, 진짜?"라고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많이 아는 사람이란 건 물론 아니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나 대할 때, 거부하거나 싫은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게 과한 칭찬을 해주는 성격을 가져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할 때가 많다. 아마 이런 성격의 연장 선상에서 "아,진짜?"라는 내 표현도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똑같진 않지만,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읽으면 이런 스타일의 사람을 묘사한 랑시에르의 언급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그리 생각보다 못된 사람이 아니라고 좀 합리화하고 싶은 건, 상대방이 너무 열성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논할 때, "어, 그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긴데.."라고 내가 말하면, 그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을까봐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점이다.  

밤 11시가 넘어, 갑자기 순대국이 먹고 싶어, 집 근처 순대국집에 갔는데, 두 남자가 축구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희화화시키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뒷담화가 펼쳐졌는데, 순대국을 먹으면서 귀동냥을 좀 하다보니, 한 사람에게서 유난히도 "아, 진짜?"란 표현이 자주 나왔다. 그리고 그 표현을 듣는 쪽인 사람은 쉬지 않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스윽 한 번 쳐다봤을 때, "아, 진짜?"라고 하는 사람의 얼굴이 너무 환해서 왠지 나와 같은 과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하얀 치아를 드러내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고 나서,  고추 하나를 씹었다.  

"아, 진짜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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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9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있는 걸 모르는 척 하기는 참 쉽지 않은데...
얼님은 진짜 믓지세요^^

얼그레이효과 2010-06-09 00:57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마기님.^^;;(그냥 평범남입니다.) 오랜만에 순대국을 먹었더니, 속이 뻑뻑하군요. 콜라 한 캔의 힘을 빌려야겠다는. 켁.

비로그인 2010-06-09 01:00   좋아요 0 | URL
순대국 먹으면 속이 퍽퍽해요?
나두 순대국 먹어봤는데...ㅋㅋ

얼그레이효과 2010-06-09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뻑뻑하더군요.^^;

알로하 2010-06-0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거의 모르는 체 해요. 친한 친구면 바로 안다고 얘기하는데 친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냥 다 들어주는 편. '아 진짜?' 이것도 엄청 자주 쓰는데 전 이게 다 저의 귀차니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얼그레이님의 말씀에 기대어 합리화 좀 해야겠네요.^^

얼그레이효과 2010-06-10 16:51   좋아요 0 | URL
너무 합리화하시면, 언젠가 친구들이 "내 이야기 듣고 있지? 내가 뭐라고 그랬어! 말해봐!"하고 물어봅니다.ㅎㅎ 조심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