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모신다는게 썩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간 같이 살던 어른도 아니고 갑자기 모시고 살자면 피차간에 눈치보고 참고 배려할 일이 어디 한두가지랴.
배앓아 낳고 키워준 친정부모와도 붙어있는 시간이 좀 길다 싶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말싸움이 빈번한지라, 내게도 시부모모시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은 누구보다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나없이 인생은 한시절 젊으면 나이드는 것이야 피할수 없으니, 나아닌 다른 사람의 늙음에 야박해진다면 어찌 내 늙음을 위로 받을수 있을까...
지난 두어주동안 건우아빠와 나는 시아버지 모시는 일로 파생된 견해차와 세대차로 인해 조심스럽게 날이 서 있었다.
부모모시는 일이야 당연한 도리이나 뜻하지 않게 고향에 남은 막내의 차지가 되어버린 의무와, 그에따른 적절한 경제적 비용과 책임의 분담을 요구하는 아랫동서에게 집안에서 유일하게 적극 동조하는 꼴이 돼버린 내가 눈에 보이지 않게 까칠한 상태를 드러내면서 건우아빠는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다.
아주버님댁에 다녀온 주말이후, 자식들이 생활비를 일부 나누어 정기적으로 동서에게 보내주어 최소한 노인 모시고 사는데 경제적부담까지 줄수는 없다는 내 주장은 아들며느리 사이에서는 썩 달갑지는 않으나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부모에 대해 더 애틋한 딸들은 쉬 받아들일수 없는 눈치였다.
자식이 부모모시는거야 당연한 일인데 모시기도 전부터 돈이야기가 왠일이냐는 정서적 괘씸죄랄까...
딸들은 이문제를 두고두고 씹었고, 시간이 지나며 나이가 나보다 한참이나 위인 그들이 사실은 조금씩 위선적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결혼 십년이 훌쩍 지나도록 한번도 내뱉지 않았던 시누이 험담을 애들아빠에게 뱉었다.
나: 딸들도 자식인데, 아버님 용돈 보내드린다고 생각하고 많이도 아니고 우리 하는거 반만 나누어 보내주자는게 그리 무리야...
건우아빠: 여기서 딸들도 자식이라는 말은 하면 안돼. 딸들은 아들보다 아버지에게 받은 것도 적고, 며느리인 당신이 할말은 아니라고 봐...
나: 그러게... 그렇다면 며느리가 딸에게 할말이 아니라면, 딸이 며느리에게 나는 받은것 없으니 이건 무조건 며느리끼리의 의무다 이러며 잘하네 못하네 하는 건 할말일까? 그리고, 아들이 더배우고 덜배우고의 문제는 내가 결혼하기 전의 문제야. 그렇다면 그문제는 부모님과 당신형제들이 나랑 결혼하기전에 다같이 한집에서 살고 자랄때 해결봤어야할 문제이지, 그걸 왜 지금 내가 이해해야하지?
건우아빠:...
나: 과거의 일을 이번일에 대입시키는건 웃기는 일이야. 원칙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공정히 적용해야 설득력이 있지...
건우아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수 있다는거지..
나: 가치관으로 판단할 문젤까?
건우아빠: 누나들은 아들이 자식으로서 당연히 할일에 왜 이유가 많은지 받아들일수가 없을뿐이야...
나: 그가치관엔 동의할수가 없고, 나는 친정부모도 오갈데 없으면 같이 사는게 맞다고 봐. 그리고 이럴경우 가장 약자는 노인이야. 어차피 세상이 노인이 약자로 사는 시절인데 지금 우리가 복고주의로 회귀를 한다고 아버님이 마음편할일이 아니라면 현실을 인정해야지. 그리고 내형편이 전적인 부담은 어려우니 그중 아주 일부만 도와 달라고 한것 뿐이야.
건우아빠: 제수씨 부업이라고 봐야할정도의 돈이라고 생각이 드니, 계산적이라는거지...
나: 어차피 모시고 살거면 초반에 현실적인게 낫지않아? 언제부터 얼마를 보내줄건지 서로 처음부터 짚어두면 노인 모시며 드는 비용에 혼자 속끓이며 얼굴붉힐 필요 없고. 어차피 같이 살사람이 돈때문에라도 불편한 마음이 더해지는 건 나눠주는게 당연한거 아냐? 그리고, 그게 그렇게까지 큰 비용일까? 모두들 당사자라면그돈에 그렇게 홀가분하게 시어른하고 같이 살겠다는 마음일수 있을지...좀 솔직해봐라. 말로만 우리아버지,우리아버지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 며느리 괘씸하다는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거 아냐? 아버님입장이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 딴 문제던지...
얘기가 이쯤돼니 경상도사람도 아닌 남자가 자자는 한마디만 툭 뱉고 들어가길 두어차례...
그 두어차례이후 조심조심 날을 세운 내 눈치를 보며 그는 종종 침묵했고, 나도 덩달아 말을 걸지 않았다.
침묵을 잘 못참는 나는 평소 건우아빠가 입을 닫으면 없는 애교를 동원해 여지없이 화해를 시도했건만 이번 만큼은 꿋꿋하게 입을 닫았다.
그리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내리 이틀을 그는 술과 안주를 거하게 준비하곤 술먹자는 전화를 했다.
첫날 집에 있는 소주와 맥주 설중매에 와인까지 깡그리 비우고도 다음날 또 비슷한 양의 술을 사왔다.
비록 안주불문에 두주불사라고는 하나 이틀을 내리 마시고 난후의 머릿속과 뱃속은 가히 가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일의 원인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술자리 두번으로 공을 내게 넘겼다는 안도감까지 보인다고 생각하며, 이걸 한번 더 휘저어 하고 생각하는 내가 사특한 것일까....
세대차이인지, 그도 아니면 강가와 김가의 건너기 어려운 심연탓인지 어설픈 술로 봉합한 이 문제는 술밑으로 일단 가라앉았다.
이제 그가 내게 넘긴 공은 그냥 좋게좋게 넘기라는 것이고, 졸지에 낀세대 혹은 낀처지가 돼버린 내속만 말이 아니게 되었다.
세상엔 왜이리 일도 많고 술도 많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