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는 오후 5시부터 5시50분까지 영어수업을 듣고 5시55분이면 유치원에서 연우를 찾아 셔틀버스에 자리를 잡고 엄마를 기다린다.
그런데 어제 오후 5시 20분쯤 건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시간이면 영어학원에서 한참 수업을 들어야하는지라 발신자번호를 보는순간 사고가 났구나 싶었다.
나: 건우야 무슨 일이 있니? 이시간에 왜 집에서 전화를 하지?
건우: 엄마 제가 영어학원을 들어가면서 집에서 들고 나간 우산을 접다가 잘못해서 우산살에 손가락이 찢어졌어요.
나: 많이 다쳤니?
건우: 피도 많이 나고 멈추질 않아서 선생님이 병원가라고 하셔서 집에 왔어요. 마침 아빠가 집에 와계시니까 아빠랑 응급실에 갈거예요. 그리고 제가 오는길에 연우도 데리고 왔으니까 엄마는 그냥 집으로 퇴근하시면 돼요.
나: 많이 놀랐겠다. 그와중에 연우를 데리고 오느라 수고했네. 그럼 아빠랑 병원 잘다녀와. 연우한테는 엄마가 좀있으면 퇴근할거니까 책읽고 있으라고 얘기해주고...
곧장 집으로 퇴근을 해보니 연우는 혼자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으며 잘 놀고 있었다. 워낙 혼자 책읽고 그림그리는걸 좋아하는 애인지라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건우는 제 동생이 읽고 그릴 것들을 착실히도 챙겨주고 나갔다.
나: 연우야, 이건 누가 다 챙겨줬어?
연우: 오빠가요...
나: 아빠가 아니고 오빠가?
연우: 아빠는 오빠손가락을 붕대로 감아주고 병원에 전화하셨구요. 오빠가 병원다녀올동안 이거 읽고 놀고 있으라고 챙겨줬어요. 사실은 나도 혼자서 찾아볼수 있는데요.
나: 오빠가 아픈데도 너를 열심히 챙겨줬구나.
연우: 그렇긴 해요. 오빠가 피를 흘리면서 유치원으로 와서 저도 깜작 놀랐어요.
나: 오빠가 너를 괴롭힐땐 미웠지만 아프니 걱정도 돼고 너를 찾으러 와줄땐 고맙기도 하고 그렇지 않니?
연우: 맞아요. 미울때도 많지만 고마울때도 있어요.
나: 연우야, 오빠노릇이라는게 쉽지가 않은거거든. 엄마가 봐도 오빠가 너에게 심하게 하기도 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오빠는 네게 오빠대접도 받고싶고 오빠노릇도 제대로 하고 싶은 모양이야.... 연우야, 나중에 오빠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기면 한번쯤은 오빠가 내게 오빠노릇을 해준일이 있지...하고 기억해줄래?
연우: 네... 그래도 엄마도 제가 오빠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다는걸 알고 계셨나요?
나: 그럼, 엄마가 왜 엄만데.... 연우가 동생노릇하느라 힘든것도 알고 있지...
저도 인정받았다고 생각되는지 연우의 얼굴이 흐믓하다.
손가락이 찢어져 제법 아팠을텐데 그 와중에 연우를 챙기고 엄마에게 놀라지 말고 집으로 곧장 오라고 전화를 하는 건우는 오빠로 인정받고 싶어하며 아이에서 소년으로 진화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