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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정운영 선생의 글을 읽는 재미의 반쯤은 말그대로 선생의 `글`에서 비롯된다.
그의 글에는 동굴에서 나는 묵직한 저음의 울림이 있다.
난체하지 않고, 자분자분 얘기해주는 묵직한 저음은 읽는이까지 그 소리에 젖어들게 한다.
언젠가 생전에 빵집에서 만난 선생의 모습은 그만둔지 한참이나 더 된 백분토론을 진행하던 그대로였다.
간혹 주워들은 선생에 대한 주위의 이러저러한 말들 탓이었을까?
동네에서 마주쳤던 생전의 선생은 퍽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 다시 보는 책표지의 선생의 얼굴은 여전히 그러하다.
이책은 칼럼집이다.
그저 수필이라고 하기엔 무겁고, 그뜻이 딱히 적확할지는 모르겠으나 책머리에 있는 칼럼이라는 말은 비교적 어울리는듯하다.
책의 구석구석에는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그리하여 불우라 말할라치면 민망하지만 그와 유사한 삶을 살았던 학자의 넋두리가 있다.
과거 그의 글들에서 보여졌던 날카로움은 이제는 때로 회한으로 읽힌다.
그러나 나는 선생의 그전 글들만큼이나 넋두리처럼 느껴지는 이 글들을 좋아한다.
대학에서, 혹은 언론사에서 그가 무슨 연유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그 내막이야 내가 알길은 없으나 회한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버릴수 없는 선생의 진보에 대한 열정은 가슴시리다.
그리하여 그에게 왼쪽에서 뛰는 심장은 죽을때까지 멍에고 족쇄였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등에이야기라는 글에서의 장하준교수에 대한 글을 읽고 있으면 장하준이라는 이름위에 정운영이라는 이름이 같이 겹쳐진다.
케임브릿지라는 세계유수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국내 모대학에서는 강의를 하지 못한다는 장하준 교수의 언급에서, 나는 우리 사회 주류들의 끝없는 견제속에서 결국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정운영선생의 회한을 읽었다.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는 황폐하다.
생물학적으로 근친상간은 결국은 해당종을 퇴화시킨다.
학문이든, 문화든, 혹은 경제든 한방향으로의 일방통행은 근친상간에 다름아니다.
돌똘 뭉쳐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겉돌았던 선생의 고뇌는 우울한 삽질의 시대에 돌이켜 봄직하다.
이나라의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와 책임투자에 대한 언급을 읽으며 2009년 우울한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분배론논문을 썼다 하니 이력서에는 그리 쓰지 말라했다던 선생의 은사의 말이 아직도 유효한 시대에, 고독한 리더가 되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나는 자꾸만 손이 오그라든다.
오그라든 손을 문지르며 , 나는 지금 누군가를 외롭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무자르듯이 내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돌아볼일이다.
다름을 인정하며, 그속에서 함께 듣고 이야기하는 일이 숨은 천재의 동료인 나의 몫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