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행복 #2
cyrus님의 만원의 행복이란 페이퍼를 보고
예전에 이 제목으로 페이퍼를 쓰려고 찍어둔 사진을 묵정밭처럼 방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마음은 퇴색했지만, 이어달리기에서 바톤을 받아쥐는 마음으로 생각을 불러온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만원의 행복'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텨야 하는 출연자는 온갖 궁상을 떨며 누군가에게 빈대 붙어 사는 것을 봤다.
누군가는 만원을 하찮게 여기지만, 또 누군가는 만원의 행복에 울고 웃던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크게 욕심부리지 않는 우리 가족은 만원의 행복을 누렸던 추억이 있다.
2009년 12월, 우리 가족이 송년 외식을 하던 레스토랑에서는 1인당 만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요즘 물가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 2009년 이후 레스토랑에서의 송년 외식은 갖지 못하지만...
2010년 1월, 다섯 식구가 수면양말을 신고 인증샷~ 한겨울 추위를 녹여 준 만원의 행복이다.
이 수면양말은 지금도 우리가족의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누구의 발일까?ㅋㅋ
2010년 2월, 우리남편이 일곱 켤레에 만원을 줬다며, 아주 싸게 산 줄 알고 좋아했던 만원의 행복.ㅋㅋ
물가를 모르는 아저씨들을 상대로 정체되는 도로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
2011년 2월, 여고생이 되는 막내와 기숙사에 들어간 고3 아들의 양말 10켤레를 만원에 샀다.
사진에는 열한 켤레지만, 회색 키티 양말은 막내 교복을 산 곳에서 서비스로 주었다.
일년이 다 된 지금도 이 양말들은 멀쩡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어, 만원의 행복은 1년내내 유효했다.^^
우리 가족이 어쩌다 한번 시켜먹는 쟁반짜장도 만원의 행복이다.ㅋㅋ
면을 골라 먹고 짜장 소스에 하얀 쌀밥 - 평소엔 현미밥을 먹는데, 쟁반짜장을 주문하고 속성으로 한 하얀 쌀밥- 을 쓱쓱 비벼먹는 맛은 만원의 행복에 덤으로 따라 오는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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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우리동네 빵집에서는 오랫동안 밤 11시가 되면 40% 세일을 했다.
한달에 한두 번, 심야에 빵을 사러 나가던 우리 아이들은 꽤 오래 만원의 행복을 만끽했지만, 지금은 그 빵집이 없어졌다.
2010년에 9,900원 하던 피자 한판~ 1년에 너댓 번은 만원의 행복을 누렸지만, 지금은 18,900원이나 한다.ㅜㅜ
2012년 1월, 우리 아들이 빵집에서 알바하게 돼서 그동안 맛보지 못한 비싼 빵을 골랐더니 여섯 조각에 만원이다.
하지만 새로운 빵맛을 보면서 만원의 행복은 잔잔한 물결처럼 입가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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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욜부터 토욜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우리 아들은 시급 5천원에 네 시간을 일한다.
설 전에 7일 동안 일하고 14만원을 받아왔다.
만원의 행복을 몸으로 깨달은 아들은 이렇게 세상을 경험하는 중이다.
고등학교 독서회원 빵집인데 처음엔 일주일만 해보자더니, 나름 신임을 받았는지 알바를 계속한다.
일한지 열흘, 녀석이 어찌하는지 궁금해 저녁참에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아들이 착하고 때묻지 않았다면서, 하나를 가르쳐주면 알아서 잘 한다고 칭찬해서 엄마 맘도 흐뭇했다.
'제 귀염 제 하기 나름'이라는 옛말이 그르지 않은 듯...
2월까지 꾸준히 하면, 제가 대학에 들어가 쓸 용돈은 제법 모을 거 같다.
만원의 행복이 삼천포로 빠져 아들 자랑하는 페이퍼로 마무리 된다.ㅋㅋ
만원의 행복으로 검색하니, 이런 책들이 뜬다.^^
그래, 욕심을 덜어내고 욕망을 내려놓으면 만원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손님들에게 덤도 잘 주는 빵집 사장님,
날마다 우리아들 손에 빵을 들려보내서 덕분에 잘 먹는데, 신경숙 단편집이라도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