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경(여)'이 '태(남)'에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인 데에는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지 난해했다. 또한, 물론 '태'가 피의자이고, '경'은 피해자의 가족이기도 하지만, '태'에게 조금 지나치다 싶게 우위에 있는 모습은 왜 그럴까 싶었고, '경'의 주도하에 둘이 섹스를 나누는 장면도 나로선 이해가 어려웠다. 반대로 '현'앞에서 '경'은 왜 그렇게 소심하고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인지 그런 '경'의 이중적인 태도와 모습은 무엇인지 이 책을 읽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부분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욱을 떠났다. 욱의 곁을 떠났다가 돌아온 온 사람들은, 그리고 심지어 욱의 곁을 계속 지킨 사람들도, 욱이 겪은 것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욱의 투병과 회복을 경험할 수 없었으므로 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은 욱을 더욱 깊이 고립시켰다. 질병과 싸우고 있을 때 욱에게는 통증을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온전하게 표현하여 전달할 언어가 없었다. 그저 '머릿속을 칼로 긁어내는 것 같은', '온몸의 신경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몸이 끓는 것 같은' 등의 비유와 비교를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비유와 비교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흔히 그 의미가 왜곡되었다. 신체의 고통이 그러할진대 마음의 절망을 표현할 언어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의 발달도 지식의 진보도 제아무리 충실한 의료 지원체계도 인간이란, 생물이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채로, 죽음을 언제나 똑바로 바라보는 채로 하루하루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p.127
고통을 받는 이들의 깊은 아픔과 어쩌지 못하는 답답함을 글로 잘 표현된 것이 읽으면서 좋았다. 그 고통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경험. 혹 그 고통이 같은 것일지라도 당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제약회사의 '약'도 '종교'의 고행도 그 고통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없다. 시작(가정)부터 잘못된 자신의 고통에서 도피하기도 했고, '태'와 같은 고통이라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경'이 탐색을 포기하게 된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이고 큰 믿음을 갖도록 길러졌는데, 그건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삶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도록 교육받았고, 그것 역시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길러지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지만, 그게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춰진 상태로 저에게 주어졌는데 이제 와서 믿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p.196
'태'의 경우, 잘못된 믿음으로 길러져 죄를 짓고 난 후에나 교단을 향한 믿음을 버렸다. 죽음만이 남은 그에겐 더 이상 인생에 있어 희망이 없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런 삶에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에게 '당신의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나에게도 선택이 아닌 믿음이 생긴 것은 무엇이 있는지 돌아 봤다. 내게는 '신앙'이 그와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는데, 이것이 만약 '믿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한다면? 내게 신앙은 무엇이고, 난 왜 그걸 갖고 있는지 고려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고통에 관하여, 사회적인 여러 모습에 대하여, 어떤 선택에 대하여...
내가 알고, 내가 보고, 내가 진리라 여기는 것들과는 역시 많이 달랐다. 요즘 가치 흐름과 나는 분명 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과 다르다면 (이 책과 이 시대에) 당연한 것이 나에게 있어서 뭐가, 어떻게 다른지를 곰곰이 되짚어 보게 되었다. 내용이 어려운 만큼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고 몇 부분은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동의하는 것은 있다. 고통은 나만 알 수 있는 나만의 것이고, 반드시 나만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다.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기는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p.302
초반에 말한 대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고통'이란 것에 더 익숙해졌을까?
아니~~! 여러 가지 부분(몸이든 영이든 정서 감정이든)에서 고통이 오고, 사람마다 처하고 경험하는 고통이 각기 다른 데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한계가 있다는 점만 알았지, 고통은 여전히 내게 익숙하지 않아 내 인생에 찾아올 때면 많이 놀라고 또, 많이 아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