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5
에밀리 브론테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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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폭풍의언덕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테스>, <폭풍의 언덕> ...

중고등학교 시절 책을 읽는다는 친구들은 이런 책들을 읽고 있었어요. 그 당시엔 책의 두께에, 작은 글씨까지 저는 선뜻 시도하지 못한 책들이었는데요. 한참 후가 된 지금에서야 이런 책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아무리 그래도 예스러운 말투와 시대, 배경에서 선뜻 집어지지는 않긴 하죠. 그래도 '이런 고전들을 이제는 좀 읽어봐야겠다' 시도하게 되는 건, 고전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어 번역과 표지로 독자들을 유혹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앤의 서재'에서 나온 이 책 <폭풍의 언덕> 또한 고풍스러운 배경색에 세련된 핑크색이 조화를 이루는 책 표지가 눈길을 끄는데요. 500여 페이지나 되는 줄은 생각하지도 않고 충동적으로 제가 이 책에 달려들게 된 이유기도 합니다.


'1801년. 방금 집주인 댁에 다녀왔다.'

이 책의 첫 문장입니다. 에밀 브론테가 태어나기도 20여 년 정도 전이되겠네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인 그 해의 이야기를 써 낸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녀는 어디에서 저 시기의 배경을 알 수 있었을까요?


줄거리


록우드는 히스클리프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빌려 살기로 합니다.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에 살고 있는데요, 록우드는 인사차 그 집을 방문합니다. 집안 분위기가 뭔가 이상합니다. 손님인 록우드에게 쌀쌀맞고 예의 없으며, 손님에 대한 배려조차 이들은 모르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히스클리프, 그의 며느리 캐서린, 헤어턴, 조지프, 질라가 그렇습니다. 그 집안의 상황을 궁금해하며 알고 있을만한 사람을 찾던 차에 록우드는 자기가 머무는 집에서 딘 부인을 찾아냅니다. 몇 차례의 딘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워더링 하이츠'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듣게 되죠.

(딘 부인, 넬리가 일하는 집의) 주인 언쇼는 리버풀로 갔다가 한 집시 소년을 데려오며 폭풍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그저 그가 갈 곳 없어 불쌍해 보인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로 히스클리프예요. 히스클리프가 들어온 이후, 이 집의 장남인 힌들리는 아버지로부터 신뢰를 잃어요. 반대로 히스클리프는 신뢰와 보호를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힌들리는 억울해 하고 히스클리프한테도 당하죠. 그 와중에 히스클리프와 힌들리의 여동생 캐서린 언쇼는 굉장히 친밀한 사이가 되어갑니다. 아버지 언쇼와 어머니가 죽고, 집의 주인이 된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이때다 싶어 종처럼 부립니다. 그동안 아들로서 자신의 사랑을 앗아갔다고 보는 히스클리프에게 못되게 굴죠. 캐서린도 히스클리프와 친하긴 하지만, 자신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에드거 린턴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에드거의 프러포즈를 수락한 캐서린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조건을 선택해서 결혼하는 데에 혼란을 느끼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넬리(딘 부인)에게 토로해요. 그 대화를 히스클리프가 듣고 집을 나갑니다.

힌들리는 결혼을 했지만, 사랑하는 부인이 아기(헤어턴)을 낳고 죽었어요. 캐서린은 에드거와 결혼해서 시누이 이사벨라와 함께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히스클리프가 돌아오며 다시 폭풍의 전조가 보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는지 몰라도, 히스클리프는 돈을 벌어 자신의 복수의 대상인 힌들리 언쇼의 집으로 세를 살겠다며 들어가죠. 히스클리프는 캐서린 린턴에게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보입니다. 가출해서 소식을 알 수 없던 히스클리프가 돌아오자, 병에 걸려 아팠던 캐서린은 활기를 찾게 돼요. 하지만, 둘의 만남, 그게 너무 과했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자주 캐서린을 찾아오려 했고, 그게 캐서린의 남편인 린턴은 맘에 들지 않았죠. 그리고 그 상황에서 린턴의 여동생인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를 짝사랑하고요.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는 아내가 죽고 망상과 알코올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재산을 탕진해갑니다.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와 결혼하지만, 그건 캐서린의 남편 에드거 린턴을 도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캐서린이 오랜 병과 함께 정신병으로 아기(딸 이름도 캐서린)을 낳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녀의 오빠 또한 머지않아 세상을 떠납니다. 히스클리프가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됩니다. 이사벨라는 그(히스클리프)로부터 도망쳐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 죽습니다. 결국 그 아이를 히스클리프가 키우게 됩니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아들과 에드거 린턴의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계략과 협박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데요. 그들은 결혼할 수 있을까요? 히스클리프의 잔행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


제가 생각하는 <폭풍의 언덕>이란 책은요, 그 책의 가장 정점은 남녀 간의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정말 <폭풍의 언덕>을 하나도 몰랐으며 대단한 착각을 했던 거지요. 제가 생각하는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리다면 어릴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사랑은 한결같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어요.


"너랑 에드거가 내 심장을 찢어놓았어, 히스클리프! 그래놓고 둘 다 되레 불쌍한 건 자기들이라는 듯 나한테 와서 한탄을 하네? 천만에, 난 네가 불쌍하지 않아. 넌 날 죽였어. 나를 죽여 네가 살았나 보지. 네 목숨은 참 질겨! 내가 죽고 나서 얼마나 더 사시려고?"

그녀를 안으려고 한쪽 무릎을 꿇었던 히스클리프가 일어서려 하자 아씨는 그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억지로 앉혔어요. ...

"이렇게 널 잡아두고 싶어! 우리 둘 다 죽는 그날까지 이렇게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네가 얼마나 괴롭든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네 고통 따위 내가 알 바 아니지. 왜 너는 괴로우면 안 돼? 난 괴로운데! 너는 날 잊을 셈이구나? 내가 땅에 묻히면 넌 행복할까?...."

...

"그만해! 나까지 너처럼 미쳐야겠어?" p.276-277


주고받는 말은 또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한지요. '나는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너는 몰라주지? 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걸? 내가 이러는 건 순전히 너 때문이야!' 이게 그들의 사랑의 주된 표현이었어요. 물론 평생 서로를 못 잊고, 각자에겐 세상에 오직 유일한 사랑이기도 했다는 점만은 감동적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들이 만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과연 결실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열정적이며 한결 같긴 했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잔혹하고 끔찍했어요.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같았죠.



사랑에 미친 광기의 아이콘,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리고 폭력적인 모습에 한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마치 요즘 말하는 죄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1800년대 판 '소시오패스'를 보는 듯했죠. 로맨스 소설로만 알았는데, 이 책은 '히스클리프'란 인물 하나 때문에 공포 스릴러를 보는 듯했어요. 히스클리프가 사람을 폭행하고, 억압하며, 감금하는데 제가 마치 당하는 것인 것처럼 두렵고 끔찍했어요. 물론 그를 상대하는 이들 또한 괴기스럽고, 상식을 벗어난 듯한 행동과 말들이 많이 보이긴 했는데요. 그들은 히스클리프처럼 '악'에 집요하거나 집착하진 않았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지켜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와는 분명 다른 점이예요. 네! 유독 '악'을 향해 앞서 나가는 인물이 바로 '히스클리프'였어요. 사랑받지 못한 상처와 짐승처럼 취급받으며 당한 멸시가 한 사람의 분노를 어디까지 치닫게 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신랄하고 다듬어지지 않았을까?


위에서 말했듯이 (말과 행동에서) 히스클리프만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몇 인물(딘 부인, 에드거 린턴, 캐서린 린턴(딸)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충격적인 운명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듯 보였어요. 물론 '정신병'도 큰 이유에 속하죠. 그들의 말과 행동에선 어떠한 필터도 없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보였어요. 인간의 내면과 욕망,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작가의 의도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유로 인물들이 그렇게 잔인하게 거침없이 말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사회화' 교육이 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기도 했어요. 예의와 매너를 배우는 사회에서는 교육된 말과 행동으로 인간의 속내가 많이 가려질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와 '워더링 하이츠'라는 그 좁은 사회에서 각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교육이 제공되었을까요? 그들만의 사회에서 '예의'와 '배려'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가왔을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좁은 사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거침없이 발설한 건 아닐까요? (작가의 의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저 혼자 생각해 본 것이니 이런 견해도 있구나 하고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초라한 결말이야, 그렇지? 내 맹렬한 분투가 참으로 우습게 끝나버렸어! 두 집안을 박살 낼 쇠지레와 곡괭이를 구하고 헤라클레스 같은 능력을 갖고자 나 자신을 단련하는데, 막상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힘이 생겼을 때는 어느 집이고 간에 지붕의 돌판 하나 들어낼 의욕조차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 거야! 난 옛 원수들에게 지지 않았어. ... 지금이야말로 그 후손들에게 직접 복수하기 알맞은 때지.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무엇도 날 막을 수 없고. 한데 다 무슨 소용이지? 난 관심도 없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귀찮아! 이러니까 마치 내가 관용이라는 멋진 자질을 과시하려고 이제껏 그리 용을 쓴 것처럼 들리는군. 그건 절대 아니고..... 이제는 그들을 무너뜨리는 게 통쾌한지도 모르겠고, 쓸데없이 누굴 무너뜨리려 하기엔 내가 너무 게을러. ... " p.558


복수의 끝을 치닫고 있는데 히스클리프는 어느 순간 멈춰버립니다. 앞뒤 없이 휘두르던 칼날이 이렇게 멈추는 걸까요? 복수가 우리에게 남기는 결말은 무엇일까요?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어떻게 넘겼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잘 읽었습니다. 히스클리프 집에 살던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된 건가 하나도 알 수 없었는데, 딘 부인을 통해 하나하나 타래가 풀리는 듯 이해가 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리도 복잡한 몇 가정 속 서사의 폭풍에 제가 다 휘말려있다가 빠져나온 느낌이에요. 다 읽고 나니, 폭풍이 휘몰아치는 날씨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던 '워더링 하이츠'가 한 고비를 넘기고 굳건하게 서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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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9-08 0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기와 폭력이 난무하는...그럼에도 완전 멋진 소설이죠! 에밀리 브론테... 어쩜 이런 글을 쓸수 있었을까요. 저도 완전 애정하는 작품입니다.
소장욕구 뿜뿜이네요^^

렛잇고 2023-09-08 18:41   좋아요 0 | URL
은하수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아하시는 작품인가봐요!!! 그러게요. 광기와 폭력 그럼에도 정말 멋지고 강렬한 느낌이 아직 남아있어요. 여리여리해 보이는 에밀리 브론테의 초상화와 너무 달라요. ㅎㅎㅎ 네 책이 예뻐서 시리즈로 수집욕구가 들죠.^^
 
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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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소리 없이 닥치는 고통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아픔과 충격을 난 가능한 한 덜 받고 싶어 몸을 추슬렀다. 그러려면 고통을 이해해야 했다. 내게 고통의 의미를 알게 해주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극복할 수 있게 도운 건 종교였다. 고통을 두 손 벌려 환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겐 없을 리가 없는 고통을 받아들이기 조금 더 쉬웠고 견딜 수 있었다. 한순간 평안이 오더라도 언젠가 닥칠 고통을 순간순간 대비하고 싶어 기회만 된다면 '고통'을 이렇게 수시로 접하려고 한다. '고통'을 바라보고 '고통'을 조금 더 이해하면 '고통'에 조금 익숙할 수 있을진 않을까?


이 책은 2022년 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최종 후보로 오른 작품 <저주 토끼>를 쓴 '정보라'작가의 4년 만에 낸 장편 신작이다. 초등학교 때 공포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저주 토끼> 단편만 읽었었다. 그다음 작품에서는 속이 거북해져서 이후 작품까지는 이어 읽지 못했다. <저주 토끼>에서의 단단한 문장, 거침없는 진행, 그리고 묵직한 내용만큼은 인상적이었다. 그때 받은 '정보라'작가의 작품 스타일을 기억하며, '고통'의 의미를 헤아려보고 싶었다.


간단한 줄거리


한 남자가 드론을 띄워 보내 제약회사를 폭발시켰다. 제약회사의 폭발로 그(태)는 범죄자가 되어 평생을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태'는 교단의 지시를 따라 회사 건물 폭발을 주도했지만, 그는 범죄 이후 교단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범죄를 시작으로 탈세, 테러까지 온갖 혐의로 교단도 해체됐다. 그의 앞에 자신을 수사하던 형사들이 12년 만에 나타났다. 두 명의 남녀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남녀에게서 제약회사의 약물이 검출되어 '경'에게도 형사들이 나타난 것이다. 형사들과 의사, 그리고 태, 현, 경 은 회사에서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폐쇄된 제약회사 실험실로 간다. 이 사건,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 고통... 무슨 관계가 될까? 그리고 고통은... 고통은 무엇인가?


특이한 인물 이름, 구성

등장인물의 이름이 다른 작품과 달린 외자다. '륜'(綸), 순(盾),,, 한자의 뜻에 걸맞게 인물의 성품이나 특징이 드러난다. 외자가 주는 강렬함과 멋스러움에 지면에 효율적이기까지 해서 새로운 시도라고도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한자의 뜻이 떠올라 어떤 사람일지 파악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기도 했다.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걸 꺼려 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작품 속 대사에서도 살짝 엿보인다), 이름에서 성별의 판단이 쉽지 않고, 2자 혹은 3자의 인물명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외자 이름이 살짝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들은 왜 고통을 다루고 있나?


사람이 가장 연약해질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어떤 외부의 강한 압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 때, 그것이 개인에게 주어질 때일 것이다. '고통'이란 게 인간에게 가해질 때, 사람은 가장 연약해지게 되지 않을까? 인간이 연약해지면 의지할 곳을 찾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에는 '약'이 해결책이고, 감정 정서에 가해지는 고통을 겪은 이라면 '종교'가 의지가 될 것이다. 고통의 통로를 지나기 위해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제약회사는 부작용을 최대한 줄인 진통제를 개발하고, 단계별로 교인들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교단에선 고통을 극복하라고 하며,'구원'이란 희망을 제시한다. 왜 이들(제약회사, 교단)은 고통을 다루고 있을까? 왜 이리 사람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들이 발 벗고 나섰는가?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면 겪을수록, 제약회사나 교단이나 이득이 있다. 인간에게 고통이 있어야 그들에게 사람이 몰려온다. 그리고 돈이 들어온다.


설마 했던 이 책에!!! 그의 존재의 의미는?


중간중간 외계인과 일루미나티(계몽주의가 대두되던 1776년 프로이센에서 조직된 비밀 결사 조직으로, 신 중심의 중세 질서에 반대하고 가톨릭 체제의 불평등에 저항했다. 이후 정부와 교황의 탄압으로 해산됐으나 현대에 와서 세계 정치와 경제 등을 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등장한다.[네이버 지식백과])란 단어가 등장해서 난 의아했다. 이는 교단에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나 이 책에서도 나온다!!! 그 존재가!!!

우리가 의지하는 정보나 지식은 인간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계획한 것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고 예측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이다. 과연 이 관점이 인간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데 도움이 될까? 인간을 바라볼 때, 객관적이려면 인간이 아닌 존재가 그들을 관찰해야 한다. 인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봐 줄 이가 필요하다. 신본주의 시대가 아닌 인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은 이미 그 신뢰를 잃었다. 아마 그 잃은 신뢰를 말하기 위해 이 작품에 '종교'인 교단도 끌여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신'보다는 '외계인'이 더 나았을 거다. 하지만, 외계인도 아는 걸 우리는 모르고, 그러기에 내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이고 있다. '신'과 같이 '외계인'이 그들을 징계했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

- 사람들이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나에게 찾아와 구원을 바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나는 실험을 계속했을 뿐입니다. p.284


-나는 그들이 교단의 이름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고 그 고통의 의미를 빼앗아 자신들의 권력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에 죽였습니다. 그들은 타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하여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 상당히 중한 것으로 여겨지는 처벌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감옥에서 나와서 똑같은 짓을 또다시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모아서 자신들이 그 사람들의 고통 위에 서려 했습니다. p.287


역시나 다뤄지는 소수자

최근 작품들에서 단 하나라도 주어지는 '소수자'의 등장은 이제 낯선 것도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소수자'들의 행동과 선택을 존중하는 모습이 더러 보인다. 요즘 문학에선 그렇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작품에서도 있을지까진 예상 못 해서 흠칫했다. 외자의 이름으로 성별을 파악하기 힘들었는데, 이름으로 성별을(성별 뿐 아니라 그 존재가 누구인지까지도) 함부로 추측하는 걸 방지하고자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선 생각지도 못하게 트랜스젠더도 있고, 레즈비언도 있다. 그들은 결혼도 하고, 아기도 갖는다. 그들의 애정 행동,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생명 등이 내 가치와는 반해서 이런 것들이 편하게 다가오지 만은 않았다. (소수자에 대해 관대한 시선도, 주장도 최근 많이들 인정하듯, 나 같은 시선과 비슷한 사람도 있을 거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썼다.)


그 밖에도 ...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경(여)'이 '태(남)'에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인 데에는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지 난해했다. 또한, 물론 '태'가 피의자이고, '경'은 피해자의 가족이기도 하지만, '태'에게 조금 지나치다 싶게 우위에 있는 모습은 왜 그럴까 싶었고, '경'의 주도하에 둘이 섹스를 나누는 장면도 나로선 이해가 어려웠다. 반대로 '현'앞에서 '경'은 왜 그렇게 소심하고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인지 그런 '경'의 이중적인 태도와 모습은 무엇인지 이 책을 읽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부분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욱을 떠났다. 욱의 곁을 떠났다가 돌아온 온 사람들은, 그리고 심지어 욱의 곁을 계속 지킨 사람들도, 욱이 겪은 것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욱의 투병과 회복을 경험할 수 없었으므로 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은 욱을 더욱 깊이 고립시켰다. 질병과 싸우고 있을 때 욱에게는 통증을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온전하게 표현하여 전달할 언어가 없었다. 그저 '머릿속을 칼로 긁어내는 것 같은', '온몸의 신경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몸이 끓는 것 같은' 등의 비유와 비교를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비유와 비교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흔히 그 의미가 왜곡되었다. 신체의 고통이 그러할진대 마음의 절망을 표현할 언어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의 발달도 지식의 진보도 제아무리 충실한 의료 지원체계도 인간이란, 생물이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채로, 죽음을 언제나 똑바로 바라보는 채로 하루하루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p.127


고통을 받는 이들의 깊은 아픔과 어쩌지 못하는 답답함을 글로 잘 표현된 것이 읽으면서 좋았다. 그 고통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경험. 혹 그 고통이 같은 것일지라도 당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제약회사의 '약'도 '종교'의 고행도 그 고통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없다. 시작(가정)부터 잘못된 자신의 고통에서 도피하기도 했고, '태'와 같은 고통이라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경'이 탐색을 포기하게 된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이고 큰 믿음을 갖도록 길러졌는데, 그건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삶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도록 교육받았고, 그것 역시 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길러지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지만, 그게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춰진 상태로 저에게 주어졌는데 이제 와서 믿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p.196


'태'의 경우, 잘못된 믿음으로 길러져 죄를 짓고 난 후에나 교단을 향한 믿음을 버렸다. 죽음만이 남은 그에겐 더 이상 인생에 있어 희망이 없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런 삶에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에게 '당신의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나에게도 선택이 아닌 믿음이 생긴 것은 무엇이 있는지 돌아 봤다. 내게는 '신앙'이 그와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는데, 이것이 만약 '믿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한다면? 내게 신앙은 무엇이고, 난 왜 그걸 갖고 있는지 고려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고통에 관하여, 사회적인 여러 모습에 대하여, 어떤 선택에 대하여...

내가 알고, 내가 보고, 내가 진리라 여기는 것들과는 역시 많이 달랐다. 요즘 가치 흐름과 나는 분명 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과 다르다면 (이 책과 이 시대에) 당연한 것이 나에게 있어서 뭐가, 어떻게 다른지를 곰곰이 되짚어 보게 되었다. 내용이 어려운 만큼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고 몇 부분은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동의하는 것은 있다. 고통은 나만 알 수 있는 나만의 것이고, 반드시 나만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다.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비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강렬한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즉각적인 유대감을 맺기는 불가능했다. 고통과 고통의 탐색은 오히려 경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켰다. p.302


초반에 말한 대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고통'이란 것에 더 익숙해졌을까?

아니~~! 여러 가지 부분(몸이든 영이든 정서 감정이든)에서 고통이 오고, 사람마다 처하고 경험하는 고통이 각기 다른 데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한계가 있다는 점만 알았지, 고통은 여전히 내게 익숙하지 않아 내 인생에 찾아올 때면 많이 놀라고 또, 많이 아플 것 같다.

#사전서평단

#고통에관하여

#다산북스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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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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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이 맘쯤 읽고 5년 만에 다시 읽는 책이다. 요즘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서 남편이 죽고 짜장면을 먹는 상은의 모습이 화제가 되어 더 유명해진 작품이 되었다. 이 책을 다시 꺼내, 아니 구입까지 해서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독서 모임에서 8월의 책으로 선정되어서였다. 도서관과 중고 매장까지 이 책은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는데, 결국은 구입을 해서야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아이를 낳고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마구잡이로 읽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스릴러의 매력을 알게 해준 책이었다.


줄거리

일단 이 책의 주인공은 주란과 상은이다.

시작은 주란의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오는 장면으로 열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에 친구의 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 자신 또한 그 냄새의 원인을 알았으나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알 수 없는 주란.

그러다 땅 한곳을 파보게 되는데...

놀랍게도 뭔가 삽에 걸리더니 사람의 손가락 같은 것이 보였다. 소아과 의사이자 주란에게 늘 따뜻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남편은 이를 별거 아니라 하듯 여긴다. 땅을 파고 놀란 가슴을 안정시켜주고자 남편은 주란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따끈한 허브티를 준다. 그걸 마신 주란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약속을 취소했다는 남편은 새벽에 그의 침대에 온기조차 없다.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난 아침, 아들 승재는 먹지도 않는 우유가 담겼던 컵을 옆에 두고 곤히 자고 있다. 남편이 정말 수상하다.

남편을 수상히 여기던 중, 남편이 알았던 제약회사 직원이 어느 호숫가에서 죽었단다. 그 직원은 남편이 만나기로 했다가 약속을 취소했다던 사람이다. 이건 또 뭔 일인가? 그 직원의 장례식장에 남편과 함께 갔더니 남편의 아내라는 사람(상은)이 남편과 할 말이 있단다. 무슨 일일까 싶어 그 여자(상은)에게 다가갔더니 그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람이 주란의 남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알게 된 상은과 주란은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 함께 무언가를 계획한다.


이 작품은 김진영 작가님이 단편 영화를 만들고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습작하던 중에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 작품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스토리창작 과정에 지원하게 된 데뷔작이라고 한다.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 (작가 소개 중)


왜 이 책을 좋다고 평했을까?


다시 읽어보고 왜 당시에 내가 이 작품이 좋다 여겼을까 생각했다.

먼저, 주란의 상황과 성격이 나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주부로써, 외벌이 가정으로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는 상황이 비슷했다. 나보단 상대적으로 꼼꼼하고 세상을 잘 읽어내는 남편이 많은 결정을 하다 보니, 주란이 취하는 수동적인 모습들 하나하나가 낯익었다.

소설 속 안정적인 가정에서 살고 있는 주란의 상황과 반대로 그녀는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했다. 20대엔 불의의 끔찍한 사고로 친언니를 잃었다. 주란이 가정을 꾸리고 난 후에도, 그 사건은 주란의 정서와 판단에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가족을 잃을 그녀의 아픔은 (그런 경험이 없는) 나와는 다른 면이긴 하다. 그런데, 주란이 갖는 불안과 비교의식, 자신에 대한 불신이 내가 아기를 키우던 당시의 정서적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걸 섬세하게 캐치해서 묘사된 문장들을 읽는데 속이 후련했달까? 공감이 갔달까? '아 이래서 소설을 읽는구나' 알았다. 나도 몰랐던 불편한 내 감정을 책으로 읽게 되니 내 정서와 감정이 공감받는 느낌이었다.


또, 공포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일까? 가독성 있는 작품이라 다음에 일어난 일이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책을 많이 접하지 못한 내게는 구성이나 반전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끔찍할 수 있는 장면도 적나라한 묘사가 아닌 점은 누군가에겐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읽기에 덜 부담됐다. 상은의 무심하고 악의적인 모습이 초반에 훅 들어와 당황은 했지만, 마지막의 반전까지 나는 드라마 한 편 보듯 생생해서 빠져 읽었다.


물론, 독서 모임에서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던져 주는 여러 가지 떡밥들이 나중엔 별거 아니었다는 건 조금 김빠지기도 했다. 뭔가 의미 있는 인물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드라마완 달라요!


이 책은 드라마와 살짝 결말이 다르다. 얼핏 봤지만, 드라마에선 주란이 재판을 받고 교도소로 가는 장면도 나오지만, 책에서 주란은 '최후의 승자'가 된다.(자세한 말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 정도로만 적습니다.^^;) 진짜 마당의 시체를 죽인 범인 또한 책에선 확실한 듯 확실치 않아 보인다. 아마 독자들의 추측에 맡기는 건 아닐까 싶다. 범인을 확신하시는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주란 남편의 말만 믿기엔 그에게 100프로 신뢰를 할 수 없고, 아들 승재는 이에 대해선 거의 말이 없으므로 나는 범인이 누군지에 대해선 아직 의문이다.


'마당'이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다.


나는 내 손으로 나의 제라늄을, 튤립을, 데이지를 망가뜨렸다. 야전삽을 휘두를 때마다 빨갛고 노란 꽃잎들이 떨궈지며 무참히 잘려 나갔다. 꽃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름다움에 개의치 않고 삽으로 화단을 크게 파고 또 팠다. p.265


상은이 남편과 만나는 장면을 몰래 보던 상은은 남편에게서 못 보던 표정을 보고 경악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마당의 꽃과 흙을 다 엎어 버린다. 마당은 남편은 그녀를 위해 꽃을 심어준 예쁘고 사랑이 가득한 공간이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 좋은 집을 마련해서 이사 오게 힘썼다. '마당이 있는' 이 집은 마당에서 보이는 대로 남편의 사랑이 담겨있는데다, 남들은 한 번쯤 꿈꾸는 아름다운 집이다. 그런데 그 마당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상당히 불쾌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 주란은 애쓰지만, 없앨 수가 없다. 이렇게 남들이 볼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주란의 가정은 괴리가 크다. 주란은 그런 보이기에 좋은, 실제론 냄새가 떠나질 않는 '마당'에 사정없이 삽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 마당은 곧, '주란'이었다.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그녀. 행복해 보이는 그녀.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

위 행동에서 주란은 더 이상 남편의 그늘 아래서 사는 자신을, 쇼윈도 속의 남보기 좋아 보이는 과거의 자신을 깨고 나왔다는 상징으로 나는 봤다. 그러면서 주란은 달라지니까.


나에게도 꿈꾸는 '마당'이란 게 있을까?


혹시 나에게도 '마당이 있는 집'을 갖게 됐다가 불쾌한 냄새가 나는 듯 실체를 발견한 적이 있나?

내게 주란과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망상증 환자로 대하고, 내 의지가 발동되지 않는 수동적인 상황을 나는 어떻게 견디고 극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도 생각해 봤다.


드라마와 비교해 보는 독서, 나만의 캐스팅으로 읽어보는 상상의 독서, 단서를 가지고 이것저것 추측해 보며 비판해 보게 해주는 독서... 해볼 만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가독성은 말할 것도 없다!!


딴 말이지만,

캐스팅은 연기력 면에서 김성오 님 캐스팅이 너무 탁월하지만,

선악의 마스크를 가진 '조진웅'님이 맡으셨더라면 어떤 '박재호'가 나왔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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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8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를 봐야겠네요 더글로리로 핫해진 임지연 배우가 나오는군요 오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렛잇고 2023-08-28 21:03   좋아요 1 | URL
사실 드라마를 다 안 봐서 제가 추천은 못 드리겠어요.^^; 임지연 배우의 연기력은 저도 기대는 되네요! 굿나잇 보내셔요 서곡님!

서곡 2023-08-31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다 보고 원작 결말이 궁금해서 전자도서관에서 책의 마지막 장만 읽었습니다 ㅎㅎㅎ 명상하러 가서 이거 썼다는 작가의 말도 재미있었습니다!

렛잇고 2023-08-31 18:28   좋아요 1 | URL
헉 드라마를 다 보셨어요?? 정말 빠르시네요!!!👍👍 이렇게 후기까지 댓글주시고 감사합니다.^^

서곡 2023-08-31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피가 8개밖에 안 되어 후딱 정주행버렸어요 ㅎㅎ 드라마는 이름이 문주란이랍니다 ㅋㅋ

렛잇고 2023-08-31 19:37   좋아요 1 | URL
성까진 몰랐는데 그렇더라고요.^^ 서곡님 여러 분야를 통달하시는 것 같아요.👍

서곡 2023-08-31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며 딴짓하듯이 쉬엄쉬엄 드라마를 훔쳐보았답니다 ㅋㅋ 굿이브닝되시길요 !!!

렛잇고 2023-08-31 19:44   좋아요 1 | URL
넵 굿나잇 되시어요^^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쏜살 문고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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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1- 키 작은 프리데만 씨


키 작은 프리데만씨는 보모의 부주의로 병을 앓게 된 후 키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 영향으로 평생을 키가 작고 목에 머리를 파묻은 모습으로 살아가죠. 엄마는 그가 21살이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누나 세 명과 함께 삽니다. 성장과정에선 그에게 한 번의 실연이 있었는데요. 그는 더 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합니다. 그 대신 독서, 음악, 연극, 자연에서 그가 느끼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죠.


그가 느끼는 충만함, 행복함!! 누리는 게 당연합니다.

오히려 그가 그 속에서 깊은 기쁨을 느끼고 살아가는 모습은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약간은 우려가 되더라고요.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불구의 모습에 대해 아무런 좌절도 내보이지 않는 모습은 읽는 독자인 제 입장에서도 불안불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랑을 만나게 되죠.. 하지만 그는 대령의 부인인 폰 린링엔입니다. 의도치 않게 프레더만씨는 그녀와 한껏 사이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많이 생깁니다. 특히 음악회에선 그녀에게 반해버리게 되죠. 거기서 프레더만씨는 사랑의 감정을 거부할 수 없는 괴로움과 사랑 앞에 용기 있게 다가서는 행동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그러다 린링엔 가에서 파티에 초대를 받게 되는데요. 거기서도 린링엔 부인과 강가를 산책하게 돼요. 거기서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린링엔 부인의 질문이 참으로 경악스럽습니다. 서로에 대해 안면만 텄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까요.



"프리데만씨, 당신은 언제부터 불구의 몸이 되셨어요?"

...

"그래서 지난 삼십 년 동안, 당신은 행복하지 못했죠?"


그녀의 대담한 질문과 냉소적인 태도가 행복을 누리며 가리어졌던 프리데만씨의 감정을 분노로 바꾸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선택하게 되죠....ㅠㅠ(자세한 건 책으로 확인하세요^^)


사실 철학적으론 뭔가를 이야기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단 이야기 내용 자체는 문장도 짧고 표현도 비교적 쉬웠어요. 일상의 묘사 전개가 기억에 남았어요. 프리데만씨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그 일상의 행복함이 전달되었달까요? 소소하지만, 기쁨을 주는 면면들이 읽으면서도 따뜻하고 푸근하게 다가왔거든요.



사람들이 인생을 '행복한 것'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인생이 그렇게 우리 뜻대로 되어 가든 말든 간에, 어쨌든 인생은 그 자체로 이미 좋은 것 가닌가? 요하네스 프리데만은 이렇게 느꼈으며, 인생을 사랑했다.p.21


그가 얼마나 자신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부정적인 것은 돌아보지 않았는진 모르겠어요. 그의 최후의 모습이 그 정도의 어떠함을 드러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행복을 누리고 살았고, 자신만의 긍정적 태도로 인생을 잘 가꾸면서 살았다고 전 생각합니다.


단편 2.- 타락


<타락> 이 작품에선 4명이 바이젠 베르크의 집에서 모이는 걸로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젤텐 박사가 자기가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죠.

P 도시로 간 한 대학생의 이야기인데요. 이 대학생은 '좋은 녀석'이라고 평가되고, 부드러운 표정과 활기찬 갈색 눈을 가진 순진무구한 남자입니다. P 시의 P 대학교 학생인 그는 괴테 극장에서 연극하는 배우 중 하나인 벨트너 양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1층 상등석 표를 사요.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돈을 부쳐달라고 해서요.^^; 사랑의 마음은 커져가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에게 친구가 연애 조언을 해줍니다. 그의 말을 따라서 그는 벨트너 양의 집까지 찾아가게 되죠. 그리고 또 친구의 한마디에 벨트너 양의 집에 가서 그녀와 사랑을 나눕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그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죠. 그러다 그가 수업을 빼고 벨트너 양의 집에 가고 싶어집니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아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사랑하는 연인을 보고 싶다는데 이유는 만들기 나름 아니겠겠어요? ^^ 그 집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노신사를 만납니다. 모두가 당황하는 상황에서 노신사가 떠나고, 그녀에게서 몰랐던 사실을 듣게 되죠.


"난 결국 별수 없는 배우예요. 난 당신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짓은 거의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에요. 난 성자인 척하기에 그만 질렸어요. 그렇게 하면 종국에는 어떻게 되는지를 난 보아 왔거든요. 그건 안 돼요. 그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런 일이라면 부자들한테나 넘겨줘 버려야만 해요.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손쉬운 일이 우선 무엇인가 하고 살펴봐야 해요. 화장도 해야 하고 그 밖에 모든 것도.... " 그녀는 마침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내뱉었다. "내가 그렇고 그렇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p.104


"그 순간 그는 비통과 격분에서 우러난 성급한 동작으로 미소 짓는 하늘을 향하여 주먹을 휘둘렀으며, 그 거짓에 찬 향내 속을, 그 향내가 풍기는 곳의 한가운데를 잔인하게 콱 움켜잡았다. 그 바람에 라일락 관목이 뚝 꺾어지고 으스러졌으며 그 부드러운 꽃송이들은 짓 찢겨 흩날렸다. p.104


그 대학생은 이 이야기를 해준 젤텐 박사의 청년 때 이야기였습니다. 그 집에서 라일락이 있기도 했지만, 도덕적 판단과 정당성(남녀가 사랑하다 깊은 관계로 들어가면 여자가 비난을 받는데, 거기서 도덕적 판단이 어디 있나?)을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에 아무래도 젤텐박사가 청년 시절 받았던 상처, 그리고 환멸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자네가 아직도 날 이해하지 못했다면 유감스러운 일이지. 오늘 한 여자가 사랑 때문에 망하면, 내일 그녀는 돈을 위해 타락한다. ... 난 그것을 자네에게 얘기하려 했어.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자네가 그처럼 외쳐대는 도덕적 정당성이 아마도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지."p.107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첫 작품이라고 해요. 특히 여기서는 젤텐 박사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에 끼워 넣은 틀 소설로 썼는데요. 토마스 만을 유명하게 한 반어적 기법이라고 하네요. 반어적 서술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전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반어적 서술이란 작가가 어느 한 인물의 입장에 서서 서술하지 않고 사건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가 작중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에 다소간의 거리감을 지니게 하는 기법 혹은 그러한 태도를 말함 p.110) 이와 더불어 초기 토마스 만의 문학은 친가와 외가, 시민성과 예술성, 북독과 남독 등 주로 두 세계의 갈등을 다뤘다고도 해요. 이런 걸 조금 알고 나니 작품이 또한 새롭게 보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여전히 싱그럽고 생생한 자연을 묘사한 부분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토마스 만 하면 그렇게 자연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작가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또한, 해설에서 알게 된 것처럼 두 세계의 대조와 반어적 서술까지도요. 토마스 만의 다음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이런 그의 작품에 특성이라 알게 된 사항을 더 신경 써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다른 작품도 한번 기대해 볼 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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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8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키작은 프리드만 전에 읽은 것 같은데 뒷이야기가 궁금해 펼쳐봐야 되겠습니다 ㅋㅋ 잘 읽었습니다 오늘 팔월의 마지막 월요일 잘 보내시길요!

렛잇고 2023-08-28 16:17   좋아요 1 | URL
서곡님 안녕하세요^^ 오 읽어보셨군요. 전 부끄럽게도 처음 안 작가예요. 책 첫장을 열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줄 그때 알았어요. ㅎㅎㅎ
네^^ 단편이니 서곡님은 금방 읽으실 거여요. 벌써 팔월의 마지막 월요일이라니 실감이 안 나네요.ㅠㅠ 여름도 다 끝났네요... 서곡님도 좋은 하루 보내셔요^^

서곡 2023-08-28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세계문학전집을 많이 읽지는 못 했는데 읽은 책중에 바로 이 토마스 만 단편집이 있었답니다 ㅎㅎ 같은 역자십니다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지라 지금 수중에는 없어서 전자도서관의 딴 번역본으로 찾아봐야겠어요! 근데 목차를 보니 쏜살문고판에는 노벨상수상연설도 실려 있군요

렛잇고 2023-08-28 17:00   좋아요 1 | URL
아아 그러셨군요. 같은 역자로 해서 민은사에서 새로 냈나보네요.^^ 개정하면서 노벨상연설도 넣었단 역자의 글을 본 거 같아요. 토마스 만을 아시는 분들이 좀 있으셔서 이렇게 알아봐주시니 읽는 기쁨이 크네요^^
 
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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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뻑뻑해진 머리를 식히려고 고른 책이었다.

25세 여자 하나, 남자 둘이 돈을 벌려고 뭉쳤다!!!


인물소개

-구로가와 치에 : 모델 출신. 아빠로 받은 상처를 아빠의 돈을 뺏음으로 되갚아주기도 하고, 그돈으로 여유롭게 카페 하나 차려서 살고 싶다. 거침없고, 불같은데다 털털하지만 남동생에 대한 애정만은 각별한 인물.

-요코야마 겐지: 연애 알선 파티를 열어 공갈협박해 돈도 가로채고, 여성을 연예계나 포르노 비디오 출연에 소개하기도 한다. 나름 사업가다. 일찍부터 돈 맛을 봤다. 거금을 쥐고 화려하게 노는 게 그의 꿈이다.

-미타 소이치로: 명문 게이고 대학을 나와 대기업 미타그룹에 입사했다. '미타그룹의 미타입니다!' 한 마디로 많은 곳에서 의심없이 통과 특권(?)을 받는 인물이다. 암기력과 추리력이 좋아 세 명 중 브레인으로 활약한다. 그의 꿈은 리조트도 없다는 최후의 낙원!! 키리바시 공화국에서 사는 것!



줄거리

<이름을 통일하지 않고 편리한 이름을 사용하겠습니다.>

연애 파티를 주최하던 겐지는 대기업(미타) 사원인데다 이름까지 '미타'인 미타를 발견하고, '아리사'로 유혹하게 만들어 한 건 올리겠다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재벌기업의 아들이 아닌 그저 연필깎이 공장사장의 아들이었다. 이에 실망한 겐지, 뭐라도 미타에게서 얻어내려고 하는데... 마침 겐지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 후루야가 겐지를 협박하며 호화주택 하나를 구입하라고 협박한다. 이 때다 싶어 미타가 생각난 겐지는 그를 이용한다. 후루야의 주택이 도박장으로 사용됨을 각자 알아차린 겐지와 미타는 후루야의 돈을 뺴돌리려는 계획을 꾸민다. 그들이 아니라 제 3의 인물이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한 게 치에라는 걸 알게 된 계기로 이들 셋은 치에네 아빠 시라토리의 돈 10억을 빼돌리기로 한다. 이들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까?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우리나라에선 연애파티?보다는 나이트 클럽(넘 구식인가?ㅋ 요즘은 클럽인가?)이 더 익숙한데, 연애사업을 벌이는 일이 일본엔 실제로 존재하나 싶게 낯선 풍경이기도 했다. 여성들을 상품으로 이용하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지시에 따라 애교 부리고 따르는 모습이 요즘 시대에는 조금 거슬리다 싶은 내용이었다. 물론 나중에 '치에'가 남자 둘을 시원하게 부리긴 해준다. 치에 또한 독립적인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상처로 아빠 돈을 뜯어내려는 모습이 아쉽긴 했다.

난 연연하지 않은 데다 구식인 사람이니 그래 예전엔 이랬을 수 있지 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작가님이 우리엄마보다 한 살밖에 안 적으니... 이런 내용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겐지... 하는 짓은 양아친데, 재즈를 좋아하는 캐릭터라 조금 의외였다.


"페트루치아니의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져." p.147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던 재즈 피아니스트까지 나와서 흠칫 놀랐다. 뭐야? 이 사람?


그저 인물 속에 녹아난 취향을 보여준 거지만, 작가의 취향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 속에 그의 이름을 새겨져 있는 걸 본 나로썬 개인적으론 반갑고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처음엔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지? 잊고 있었는데, 읽다 보니 왜 이 책을 골랐는지 알 것 같았다. 오쿠다 히데오스러운 가볍고 유쾌한 액션에, 찌질하지만 명랑하고 인간미 넘치는 인물들이 어우러내는 소설을 읽으며 이 여름에 나는 킥킥대고 놀고 싶었나보다. 후덥지근한 여름철~ 시원하고 신나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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