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프리데만씨는 보모의 부주의로 병을 앓게 된 후 키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 영향으로 평생을 키가 작고 목에 머리를 파묻은 모습으로 살아가죠. 엄마는 그가 21살이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누나 세 명과 함께 삽니다. 성장과정에선 그에게 한 번의 실연이 있었는데요. 그는 더 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합니다. 그 대신 독서, 음악, 연극, 자연에서 그가 느끼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죠.
그가 느끼는 충만함, 행복함!! 누리는 게 당연합니다.
오히려 그가 그 속에서 깊은 기쁨을 느끼고 살아가는 모습은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약간은 우려가 되더라고요.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불구의 모습에 대해 아무런 좌절도 내보이지 않는 모습은 읽는 독자인 제 입장에서도 불안불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랑을 만나게 되죠.. 하지만 그는 대령의 부인인 폰 린링엔입니다. 의도치 않게 프레더만씨는 그녀와 한껏 사이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많이 생깁니다. 특히 음악회에선 그녀에게 반해버리게 되죠. 거기서 프레더만씨는 사랑의 감정을 거부할 수 없는 괴로움과 사랑 앞에 용기 있게 다가서는 행동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그러다 린링엔 가에서 파티에 초대를 받게 되는데요. 거기서도 린링엔 부인과 강가를 산책하게 돼요. 거기서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린링엔 부인의 질문이 참으로 경악스럽습니다. 서로에 대해 안면만 텄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까요.
"프리데만씨, 당신은 언제부터 불구의 몸이 되셨어요?"
...
"그래서 지난 삼십 년 동안, 당신은 행복하지 못했죠?"
그녀의 대담한 질문과 냉소적인 태도가 행복을 누리며 가리어졌던 프리데만씨의 감정을 분노로 바꾸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선택하게 되죠....ㅠㅠ(자세한 건 책으로 확인하세요^^)
사실 철학적으론 뭔가를 이야기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단 이야기 내용 자체는 문장도 짧고 표현도 비교적 쉬웠어요. 일상의 묘사 전개가 기억에 남았어요. 프리데만씨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그 일상의 행복함이 전달되었달까요? 소소하지만, 기쁨을 주는 면면들이 읽으면서도 따뜻하고 푸근하게 다가왔거든요.
사람들이 인생을 '행복한 것'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인생이 그렇게 우리 뜻대로 되어 가든 말든 간에, 어쨌든 인생은 그 자체로 이미 좋은 것 가닌가? 요하네스 프리데만은 이렇게 느꼈으며, 인생을 사랑했다.p.21
그가 얼마나 자신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부정적인 것은 돌아보지 않았는진 모르겠어요. 그의 최후의 모습이 그 정도의 어떠함을 드러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행복을 누리고 살았고, 자신만의 긍정적 태도로 인생을 잘 가꾸면서 살았다고 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