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는 어딜 가는 차 안에서

아들이 '왕 단팥빵'을 10번 해보라고 했다.

틀리지 말고 하라는 거다.

입에 힘을 최대한 끌어모아 긴장을 갖추고

틀리지 않고 '왕'에 강세를 넣어 해봤다.

이 책의 제목을 읽으면

아들이 우리에게 내준 발음 테스트가 떠오른다.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

제목 읽기가 어려워서 말이다.


건지는 뭐고 감자는 뭐고

감자 알맹이가 아닌 감자껍질파이는 뭐란 말인가?


책의 배경은

편지를 주고받았던 시기부터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직후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가 되는 건지 섬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했던 유일한 영국의 섬이었다.


건지 섬에 살고 있는 도시 애덤스는

자신이 구한 찰스 램의 책에 적혀있는 이름과 주소를 보고

당사자(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낸다.

도시는 줄리엣에게

건지 섬에서는 책을 구하기가 힘들기에

찰스 램 책 관련 도움을 요청하며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를 통해

독일군들 몰래 돼지를 잡아먹다가

북클럽까지 탄생하게 된 사연도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줄리엣은

건지 섬에 관한 르포를 쓰기로 한다.


1940년 건지 섬에 들이닥친

독일군 행렬과 나치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며

건지 섬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실제로 건지 섬이 점령당하여

자유로웠던 삶을 순식간에 박탈당한

이들의 참담함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수용소에 잡혀갈까 봐

그 불안감은 얼마나 컸을지

상상력을 가동해 보니

소름 끼쳤다.


살아있는 돼지를

병든 돼지로 바꿔치기해

돼지를 빼돌리다 걸렸을 때,

그리고 돼지를 잡아먹으면서

오랜만에 느끼는 그 육즙과 허기를

충만히 느끼고 귀가하던 중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뭐라도 핑곗거리를 대야 했을 때,

짜잔! 하고 나타난

엘리자베스의 순발력과 대처능력!

이 모든 것이 비록 편지글로 전달됐지만

조마조마하면서도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게 건지 섬에서 벌어진

점령당한 이들의 참담함을 이야기해

고통스럽다기보다

억압되는 중에

그들 안에서 일어나는 결속력과

삶에 대한 절실함을 느낄 수 있어서

깊은 감동이 있다.


처음에는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6개월이면 독일군이 물러갈 거라 확신했어요. 그렇지만 그 기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급기야 남은 장작도 떨어졌지요. 고된 노동으로 음울한 낮을 보내고 지루함으로 컴컴한 밤을 지냈습니다. 모두가 영양부족으로 헬쓱해지고 이 상황이 과연 끝나기는 할까 하는 의문으로 침울해 했습니다. 우리는 책과 친구들에게 매달렸습니다. 책과 친구는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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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그들에게 만들어진 모임이,

엘리자베스가 기지를 발휘하여

어찌어찌 만들어진 북클럽이라니!

모두 당황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기에

그들은 모였고, 읽었다.


성의 주인 행세를 한 술꾼 존 부커,

독일군과 연애를 한 엘리자베스,

마법 약을 만드는 미스 이솔라프리비,

손자를 포로로 잃었다가 되찾은 램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순간에 잃은 말수가 적은 도시,

돼지 바비큐 장소를 제공한 아멜리아

등 각기 다른 캐릭터가 책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완성되는 것을 돕기 위해

그들은 줄리엣을 초대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그녀를 맞이한다.


생기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옳지 못하거나 냉소와 비아냥에는

찻주전자도 던질 수 있었던

런던의 줄리엣은

건지섬에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건지 섬의 줄리엣으로 살아간다.



전쟁은 당연히 말로 헤아리기 어려운

상처와 부스럼을 만들었다.

모든 이들을 북클럽으로 묶은 원동력인 한 사람이

건지 섬으로 돌아갈 날을 얼마 안 남기고

수용소에서 총살당하고 말았다.

수용소에서 나온 이는

조롱과 멸시, 그리고 처참함이 트라우마가 되어

상처를 회복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 아이는

가장 소중한 자기 엄마를 잃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건지 섬의 북클럽으로

이 모든 시련을 그들의 방식으로

보수하고 새로이 가꾸어간다.


전쟁에 대한 순기능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전쟁이 아니었다면,

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혹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책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것이 저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었을까?

건지 섬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한 아이가 온전한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책을 찾지 않았다면,

책이 제 주인을 찾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이건 읽어보신 분이나 알 수 있을 말이겠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엘리자베스와 존부커가

독일군들이 있는 창 너머로 들려오는

영국방송의 음악을 따라 왈츠를 추는 장면이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여러 차례 올려다보며

독일군들의 주장처럼 영국도 점령당했을까 했지만,

건지섬은 점령당했어도

아직 영국은 건재함을 알고 안도하는 왈츠가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아직 그들에게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만큼은

왈츠처럼 산뜻하고 행복한 희망을

발견한 심정이었을 거다.


보기드문 서간체 소설이었다.

편지글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이 책이 왜 그리 많은 이들의 입소문을 탄 걸까

의아했었다.

편지형식만으로도 생생하게 상황이 전달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스토리 또한 흥미롭게 전개되어

다음이 궁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지막에 미스 이솔라프리비의 관찰일기의

강력한 한방은

잊을 수 없는 마무리였다.^^

소설이라 하지만,

실제 있는 건지 섬과 세계 2차대전이란 역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어서

좀 더 생생했고

안타까움과 감동이 더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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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2-05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왕단팥빵 ㅎㅎㅎㅎ 너무 귀엽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새 달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렛잇고 2024-02-05 16:26   좋아요 1 | URL
서곡님도 해보세요. 은근 어려워요 ㅋㅋㅋ 네 2월이 시작됐네요! 지금처럼 풍성한 독서 즐기시고요! 구정 연휴도 감사하고 행복하게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