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어보고 왜 당시에 내가 이 작품이 좋다 여겼을까 생각했다.
먼저, 주란의 상황과 성격이 나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주부로써, 외벌이 가정으로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는 상황이 비슷했다. 나보단 상대적으로 꼼꼼하고 세상을 잘 읽어내는 남편이 많은 결정을 하다 보니, 주란이 취하는 수동적인 모습들 하나하나가 낯익었다.
소설 속 안정적인 가정에서 살고 있는 주란의 상황과 반대로 그녀는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했다. 20대엔 불의의 끔찍한 사고로 친언니를 잃었다. 주란이 가정을 꾸리고 난 후에도, 그 사건은 주란의 정서와 판단에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가족을 잃을 그녀의 아픔은 (그런 경험이 없는) 나와는 다른 면이긴 하다. 그런데, 주란이 갖는 불안과 비교의식, 자신에 대한 불신이 내가 아기를 키우던 당시의 정서적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걸 섬세하게 캐치해서 묘사된 문장들을 읽는데 속이 후련했달까? 공감이 갔달까? '아 이래서 소설을 읽는구나' 알았다. 나도 몰랐던 불편한 내 감정을 책으로 읽게 되니 내 정서와 감정이 공감받는 느낌이었다.
또, 공포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일까? 가독성 있는 작품이라 다음에 일어난 일이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책을 많이 접하지 못한 내게는 구성이나 반전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끔찍할 수 있는 장면도 적나라한 묘사가 아닌 점은 누군가에겐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읽기에 덜 부담됐다. 상은의 무심하고 악의적인 모습이 초반에 훅 들어와 당황은 했지만, 마지막의 반전까지 나는 드라마 한 편 보듯 생생해서 빠져 읽었다.
물론, 독서 모임에서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던져 주는 여러 가지 떡밥들이 나중엔 별거 아니었다는 건 조금 김빠지기도 했다. 뭔가 의미 있는 인물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