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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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카페에서 누군가 이 책으로 만든 드라마를 소개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왓챠에서 22년 나온 휴먼 웹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였다. 한석규 배우가 주연이라기에 '언제 이런 드라마가 있었던가?' 싶으면서 담담한 독백체 대사, 요리하는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 아내의 반응을 기다리는 표정 등 모두가 너무도 자연스러워 빠져서 봤다.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였다.


암 투병을 하는 아내를 위한 요리를 하는 과정, 음식 재료의 속성과 영양 등 아내를 향한 섬세한 고심이 담겨있다. 페이스북에 글로 담아냈고, 편집자를 통해 책으로 묶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낸 책이었다. 드라마와 책의 내용은 약간의 설정을 제외하고 음식이 다뤄진 것은 흡사해 보였다. 특히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건 '돔베 국수'편이었는데, 책에서는 돔베 국수를 만드는 과정과 아내가 친정 자매들과 함께 간 제주도의 내용이 담겨있다. 드라마에선 여러 차례 실패? 후 최후에 만든 국수로 아내는 제주도에서 먹었던 돔베 국수와 제주를 떠올리며 아이처럼 기뻐하며 국수를 먹는 장면이 가미되어 있다.


요리를 위한 계량이 아닌 먹는 이를 배려하고, 사랑의 마음을 담아 재료를 넣었기에 그의 음식은 언제나 1인분이 아닌 2인분만큼 넘치게 나왔다. 음식을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는 글에서 상대를 향한 사랑과 배려가 느껴지고, 맛있게 맛보고 즐기는 이에게서 만든 이를 향한 감사가 그려져 마음이 도닥여진다.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게 여길 일상이 적혀있다. 음식 중간중간 아내의 암 투병 주기가 오고 가면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나또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붙들게 하는 책이었다.


담담하고 소박해 보이는 글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암 투병의 아내와 함께 긴장과 일상을 오가면서 한고비 한고비 넘기는 데에 나도 함께 안도하면서 일상이 소중하고 또 귀하게 여겨졌다. 그의 레시피에서는 식재료가 온전히 내어주는 건강함이 느껴졌고, 재료 본연의 맛이 담겨 상대를 향한 마음이 음미되어지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울컥하고, 또 그러면서도 피식하고 웃게 되는 그런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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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8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4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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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단으로 다산 책방에서 새로 나온 토지 1권을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조금 우습지만, 그 이후가 궁금해 도서관으로 야금야금 매달 두 어권씩 희망도서로 신청했었다. 예산 부족으로 23년 말에는 희망도서를 받지 않았고, 24년이 되어 신청을 재개했다. 그에 따라 나 또한 희망도서 신청을 재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그런고 하니, 올해 초에 도서관에서 다산 책방의 토지 전권을 (알아서?) 이미 보유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마음 편히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됐고, 도서관에서 전권을 마련해 주셨으니(그게 내가 꼭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책임을 갖고 읽을 동기가 생긴 셈이다.


그간 등장했던 모습, 즉 독립군에 동학군 그리고 불교의 스님이 가담한 듯 보이는 기세가 내겐 썩 흥미롭진 않았다. 뻔히 보이는 암담한 일제 치하의 상황, 쉬이 나아질 줄 모르는 백성들의 현실이 조선 말고 간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삶(탄생)과 죽음이 오가고, 숨겨진 비밀들이 드러나고(환의 정체) 이제 최서희가 평사리로 돌아갈 준비까지 하는 상황이니 꽤 술술 읽혔다.


공노인은 하동 등 조선을 거닐면 서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사방으로 돕고 있다. 조준구와 만나면서 환을 사주관상 봐주는 도사로 조준구에게 소개하면서 서서히 조준구를 몰락시키는데 환이 기여한다. 서희는 이미 길상과 두 아들, 환국과 윤국을 낳았다. 서희는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만, 길상은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어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공노인은 (서희가 부여한)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고, 그의 조카딸 월선은 서희가 보내준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린다. 홍이가 아버지 용이를 데려오려고 편지도 보내고 아버지에게 가고서야, 용은 자신의 일을 다 마친 후 월선이 죽기 전에 그녀를 만나 그녀의 임종을 지킨다. 서희가 모든 장례 비용을 책임질 뿐 아니라, 장례식에 참석해 (신분이 자신보다 미천한) 용이에게 맞절을 하며 월선의 죽음을 애도한다.

환은 간도로 와서 공노인을 통해 길상을 먼저 만난다. 서로 비슷한 처지이기에 서로를 위로하고, 여행도 가고, 같은 뜻을 품고 있음을 알고 지낸다. 길상을 통해 환은 서희도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은 간도를 떠나 하얼빈의 독립투사들을 만난다. 고향으로 갈 시간은 다가오는데 길상은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서희는 계획대로 하동 평사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장남 환국이는 아버지 없이 안 간다고 떼를 쓰지만, 결국 서희는 간도를 떠나고 만다.


이 편에서 인상적인 사건은 역시 월선의 죽음과 서희의 귀향이다.

사랑하는 이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으나 부부로는 연을 맺지 못했다. 그의 아들만이라도 품에 두었던 월선. 참 가련하고 안쓰러운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용이가 돌아올 것을 믿었고, 그를 기다렸다. 그가 온 후에야 숨을 거뒀다. 무슨 사람 심보가 저러나 싶을 정도로 죽음을 앞둔 월선에게 쉬이 가지 않고 버티는 용이를 보고 처음엔 어이없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에게 가하는 징벌이었고, 월선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는 용이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뭐 그래도 이해는 안 된다만....ㅎㅎㅎ


서희가 등장하여 할머니 때부터 이어진 월선네와의 인연을 끝까지 책임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서희는 평사리의 공주급이었을 텐데, 그런 신분차에도 용이에게 맞절을 하는 모습이 그 당시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그걸 콕 짚고 넘어가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음이 분명한 장면이었다.


이 권이 되면서 서희는 아들 둘을 낳은 상황이었다. 주변인들에게는 친일파 소리를 들으면서도, 결국 조준구에게서 자신의 땅을 하나하나 거둬들여 되찾고야 말았다. 결국 그녀는 해냈다! 최서희는 현실적이면서 목표 지향적으로 집념과 감각이 남다른 인물이다. 그녀의 할머니 윤씨 부인을 쏙 빼닮았다. '친일' 자체만을 볼 때 그녀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살짝 달리 보게 됐다. (친일을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나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라를 잃으면 누구나 '조국 독립'만 답으로 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최서희에게 평사리는 선조들이 유일한 혈육인 자신에게 남긴 정신이었고, 가치였으며, 생명이었다. 제목과 같이 바로 그곳 '토지' 그것이 최서희에겐 전부였다. 반드시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 자신이 끝까지 지켜야 할 유산이다. 그랬기 때문에 '친일'은 그녀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택이었다. 평사리가 그녀의 목표가 아니었더라면, 그녀에게 목표가 조국의 독립이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가 되었을까? 그 이야기의 개연성에 과연 납득이 될까? 의문도 든다.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다는 건, 보편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확실히 최서희는 이상보다는 지금 눈앞에 마주치고 있는 현실을 본 인물이다. 문득 최근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 떠오르는데, 스칼렛 오하라가 딱 그랬다. 그녀 또한 이상보다는 생존, 현실이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서 지키려 애썼던 게 바로 땅, 타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상은 그녀와 다른 가치와 꿈을 가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길상의 처지이기에 그가 이해도 된다. 그래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어미로 서희를 생각할 때면 아들과 아내를 저버리고 있는 길상이 원망스럽다. 모든 수치와 모욕을 이겨내고 결국 목표에 다다랐지만, 함께해 주거나 기뻐해 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선 서희의 모습은 못내 쓸쓸하고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버지가 함께 가지 않으면 자기도 안 가겠노라고 고집부리는 아들을 두고 함께 목놓아 우는 서희의 고독, 수차례 너(길상)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서희의 이를 가는 분노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윤씨 부인이 느꼈던, 별당아씨가 느꼈던 그 고독이 서희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긴 여정이었다. 아직도 꽤 남았지만.

여태 달려온 여정을 향해 뒤를 돌아본다. 평사리를 거쳐 간도로 그리고 이젠 다시 평사리로 간다.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행렬에게서 아직도 그들이 가야 할,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여정을

아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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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50
마거릿 미첼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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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영화가 아니라 책으로 봐야 돼!"

새침하게 말하는 폼에 나는 옆집 언니가 내 앞에서 좀 더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땐 거슬렸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시기쯤이었던 것 같다. 옆집 언니네 집, 따뜻한 온돌방 이불 속에 다리를 넣고 앉아 나무 통에 들어있는 TV에서 나오는 비디오 영화로 이 작품을 접했다. 그때 봤던 영화는 사진같이 한 장 한 장으로 장면만 기억날 뿐이다. 책에서는 모든 대사를 영화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읽어주는 듯 읽혔다.


짧은 시간이 담아내는 영화에 비해 책은 더욱 길고, 깊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내놓았다.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으며, 짧은 시간이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상황이 내재되어 있었으며, 인물의 심경에는 얼마나 여러 가지의 감정과 상황이 개입되고 뒤섞여 행동과 말을 자아내던지. 옆집 언니가 했던 저 한마디가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책으로 봐야 돼!"



(하)권의 줄거리

아버지 제럴드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스칼렛은 자신의 또 하나의 목적을 향해 애슐리에게 제안했다. 애틀랜타에서 자신의 제재소를 맡아달라고 말이다. 윌과 스칼렛의 여동생이 결혼한 만큼 더 이상 타라에 남을 이유가 없어진 애슐리는 북부로 떠나 스칼렛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지만, 스칼렛은 임신을 했다는 것을 핑계로 애슐리를 더 가까이 자신에게 두려고 애틀랜타로 오게끔 한다. 멜라니는 자신의 고향인 애틀랜타로 돌아와 비록 작은 집이지만, 자부심을 갖고 꾸미며 다른 이들을 초대하고 여러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스칼렛은 프랭크의 딸을 낳고, 다시 제재소로 복귀하고자 한다. 프랭크는 출산 후에도 양키와 흑인과의 대립관계 중에도 외출을 감행하는 스칼렛이 양키와 흑인에게 위협을 당하고 오자 클랜이란 이름으로 양키들을 제지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프랭크와 함께한 애슐리 및 남부인들에게 위기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을 레트가 정리해 준다. 레트는 더 이상 스칼렛을 놓칠 수 없어 프랭크의 장례가 끝난지 얼마 안 된 스칼렛에게 청혼을 하고 스칼렛과 결혼한다. 레트와 스칼렛은 티격태격했지만, 그들만의 티키타카였고 딸 보니까지 낳아서 그들의 결혼생활은 잘 유지되는 듯했다. 그런데, 애슐리의 생일날, 스칼렛과 애슐리가 어쩌다 했던 포옹이 주변인들에게 발각되고, 스칼렛의 임신이 유산이 되면서 레트와 스칼렛은 조금씩 사이가 벌어진다. 딸 보니로 이어졌던 그들의 관계였지만, 보니가 승마에서 장애물을 넘다가 목 부상으로 죽으며 스칼렛과 레트에겐 크나큰 실연과 아픔이 된다. 이어 멜라니가 연약한 몸으로 임신을 해서 죽는데, 여기서 스칼렛은 레트와 서로 사랑하는 마음임을 확인했지만, 레트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 그렇게 그 둘은 헤어지게 된다.



전쟁의 두려움 그 이후


남북전쟁으로 남부인들은 북부인들에게 패배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남부인들은 전쟁 이전을 그리워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전쟁에서 가족을 잃고, 집을 잃었으며, 배고픔과 가족을 떠맡은 책임감으로 생존이 절실했던 스칼렛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고, 그렇게 증오하던 양키인들과도 손을 잡았다. 스칼렛이 분명 표독스럽고 이기적이며 물불 안 가리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생존'이란 단어 앞에서는 과격하면서도 극단적인 그녀의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모두가 살기 위해, 모두가 그녀만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스칼렛은 '생존'을 위한 최선의 행동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스칼렛을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스칼렛이 자신의 엄마 엘런에게서 배워왔던 가치와 현실에서 갈등하고 고민했듯, 엄마 엘런의 조언과 충고(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박애 정신 등등)는 과연 전쟁이 끝나 살아내야 했던 이들에도 적절한 것이었을까?


소설의 주제는 생존이다. 재난을 만나도 쉽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있고 강하고 용감한데도 굴복하고 마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격변에서 그렇다.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의기양양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없는 특징이란 무얼까?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말하는 <불굴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뿐이다. 그래서 불굴의 정신을 지닌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마거릿 미첼-

<책 뒤표지 중>


애슐리한테 왜!!! 납득이 안 가네?


그 와중에 스칼렛은 이 책의 상중하의 대부분에서 오직 '애슐리'만 바라본다. 영화에선 몰랐는데, 애슐리란 인물 이렇게 무기력하고 비현실적인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좋다니 어쩌겠나? 사랑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독자의 입장에선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사랑이다.

애슐리가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여기서 그눔의 '사랑'이란 걸 발로 뻥 차 버려서 지구 밖으로 보내버리고 싶게 어이없는 단어다.

문제는 스칼렛이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그 두 남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거다.

깨달음도, 사랑도 뒤늦게 찾아왔으니 어찌하겠는가? 그저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을 한탄할 뿐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두 남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에 그들을 잃었다. 이제 그녀는 만일 조금이라도 애슐리를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를 사랑하지 않았겠으며, 레트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그를 절대로 잃지 않았으리라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녀는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자기가 정말로 이해한 적이 있었을까 막연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p.1835



엇갈린 사랑은 붙잡을 수 있을까?


뒤늦게야 깨달은 사랑... 정말 내가 다 울고 싶었다.


"남자로서는 한 여자를 그보다 더 사랑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생각을 당신은 단 한순간이라도 해봤어? 마침내 당신을 얻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내가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걸 아느냐고? 전쟁 동안 난 멀리 떠나서 당신을 잊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를 않아서 항상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전쟁이 끝난 다음에 난 체포되리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을 찾으려고 돌아왔어. 어찌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난 그때 프랭크 케네디가 죽지 않았더라면 내 손으로라도 죽여 없애고 싶은 심정이었지. 난 당신을 사랑했지만, 그런 마음을 당신이 깨닫게 하기가 힘들었어.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무자비해, 스칼렛. 당신은 그들의 사랑을 볼모로 잡아서 채찍처럼 휘두르니까. p.1822


"나는 내가 아는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지만,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 난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어, 스칼렛. 만일 당신이 나한테 용납만 해주었다면, 난 한 여자를 사랑한 어떤 남자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다정하게 당신을 사랑했겠지. 난 당신이 내 진심을 알게 하고 싶지가 않았어. 그리고 언제나 - 언제나 애슐리가 문제였어. 그게 날 미치게 했지. 내가 아니라 내 자리에 애슐리가 앉았기를 당신이 상상하는 줄 알면서 저녁마다 식탁을 가운데 놓고 당신과 마주 앉으면 난 견디기가 힘들었어. ..." p.1825


그눔의 애슐리! 그눔의 애슐리!! 걔가 너한테 뭘 해 줬다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이마 X를 한대 치고 싶을 만큼 깨닫지 못하는 스칼렛,

'여기선 그런 조롱과 비웃음 조금만 거둬줘!'라고 내가 앞을 막아 부르짖고 싶었던 레트의 행동과 한마디들....

남들은 다 아는데, 자신들은 서로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들의 엇갈린 사랑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스칼렛은 아플 때 '레트'의 이름을 불렀고, 그와의 하룻밤에 새 신부처럼 설렜으며, 그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지 않나 기다렸다. 레트는 스칼렛의 모든 행동과 말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녀의 진심은 언젠간 자신에게 올 거라고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그 사랑을 온전히 딸 보니에게 바쳤다. 완벽한 딸바보 아빠였다.

뒤늦게 진실을 고백하는 레트의 말에 가슴이 녹아버리는 줄 알았다. 뒤늦게 스칼렛이 레트와의 사랑을 착착 정리하는 걸 읽으며, '어서 가서 말해!! 당장 레트에게 너의 마음을 이야기하라고!!' 나는 스칼렛을 닦달하는 마음을 담아 눈을 부라리며 거칠게 책장을 넘겼다. '제발! 영화의 마무리가 내가 읽는 책에서는 바뀌어 있어라!' 빌면서....



모두가 속편을 이런 마음으로 기다렸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편이 영화로 나오고, 캐스팅에 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어 웃음이 난다.

이렇게 엇갈린 사랑을 제발 돌이키고 싶은 마음은 모든 독자들의 염원이었을 거다. 솔직히 그 속편의 내용은 뭔지 모르겠지만, 책의 막판을 읽는데 한 가지 희망을 발견했다. 부디 속편이 나오길 바라는 나도 바라는데, 과거 독자들은 얼마나 간절했을지 상상이 됐다.


레트가 하는 말에 스칼렛이 애슐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레트의 말을 이어가는 장면이 있다.(p.1832-1833)

레트는 그때 자신의 마음과 연결된 데에 스칼렛에게 살짝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그건 언젠가 오래전에 애슐리가 -옛 시절에 대해서 했던 말이에요."

라고 스칼렛이 눈치 없이 말해 셀프로 판을 깨고 만다.

독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나도 "야아!!!"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으니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사라졌다.

"말끝마다 애슐리로구먼." 그가 말했고,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p.1833


여기서 아무리 레트가 스칼렛에게 더 이상 사랑이 안 남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스칼렛을 향한 약간의 사랑!! 내가 여기 찾았다고!! 그의 사랑에 희망을 품게 된다. 속편을 읽으면 되나요? 여기서 더 이야기 없나요?

누가 레트랑 스칼렛 좀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ㅠㅠ 울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이 책은 다 스칼렛 뜻대로 됐다.(멜라니도 죽었고, 애슐리도 스칼렛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레트도 분명 돌아올 거라 믿는다!! 스칼렛! 당신의 집념(집착)을 믿어요!! ^^:;;


드라마고, 영화고, 책이고 내가 너무 완성되는 사랑만 봐 온 걸까? 그게 익숙해져서 인지, 이렇게 엇갈리는 사랑에 나는 적응이 안 됐다. 어쩌지 못하고 감정이 복받쳐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차라리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끝맺음하는 거라서 다행일 텐데, 이렇게 영원히 연결해 주지 않는 엇갈린 사랑이라니!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우리 이제 헤어지네요' 백지영 노래의 가사가 절절히 가슴을 파고드는 듯 너무 아팠다.

그래서 이 소설이 그 절절함에 여운이 더 남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연결이 안 되어 너무 안타깝게 썼지만, 남북전쟁과 그 전쟁으로 남부인들이 겪었던 고초가 생존과 함께 결부되어 삶의 서사를 깊이 헤아릴 수 있었던 소설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인종차별과 더불어 철저히 남부인의 시각으로 쓰였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기선 그 점은 배제하고 리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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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2-14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끝마다 애슐리로구먼.˝ ㅋ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오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렛잇고 2024-02-14 10:25   좋아요 1 | URL
레트 입장에서는 진저리 칠 부분이긴 했죠. ㅎㅎㅎ 감사합니다 서곡님 좋은 하루 보내셔요!!^^

stella.K 2024-02-14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중학교 때 읽은 기억이납니다. 재미있어 다행이지 넘 두꺼워 읽기쉽지 않죠. 근데 나이들수록 영화 보단 책이 좋고 깊이가 있더군요. 저도 다시 읽고 싶긴한데 언제 읽을지는ᆢ

렛잇고 2024-02-14 10:27   좋아요 2 | URL
중학교 때 읽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셨네요!!! 맞아요. 재밌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싶기도 하고 새삼 마거릿 미첼이 이런 책을 쓴 게 대단하기도 하더라고요. 손으로 썼을텐데요. 맞아요. 두께가 멈칫하게 하는 책입니다. ㅎㅎㅎㅎ^^ stella.K님 댓글까지 주시고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셔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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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어딜 가는 차 안에서

아들이 '왕 단팥빵'을 10번 해보라고 했다.

틀리지 말고 하라는 거다.

입에 힘을 최대한 끌어모아 긴장을 갖추고

틀리지 않고 '왕'에 강세를 넣어 해봤다.

이 책의 제목을 읽으면

아들이 우리에게 내준 발음 테스트가 떠오른다.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

제목 읽기가 어려워서 말이다.


건지는 뭐고 감자는 뭐고

감자 알맹이가 아닌 감자껍질파이는 뭐란 말인가?


책의 배경은

편지를 주고받았던 시기부터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직후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가 되는 건지 섬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했던 유일한 영국의 섬이었다.


건지 섬에 살고 있는 도시 애덤스는

자신이 구한 찰스 램의 책에 적혀있는 이름과 주소를 보고

당사자(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낸다.

도시는 줄리엣에게

건지 섬에서는 책을 구하기가 힘들기에

찰스 램 책 관련 도움을 요청하며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를 통해

독일군들 몰래 돼지를 잡아먹다가

북클럽까지 탄생하게 된 사연도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줄리엣은

건지 섬에 관한 르포를 쓰기로 한다.


1940년 건지 섬에 들이닥친

독일군 행렬과 나치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며

건지 섬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실제로 건지 섬이 점령당하여

자유로웠던 삶을 순식간에 박탈당한

이들의 참담함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수용소에 잡혀갈까 봐

그 불안감은 얼마나 컸을지

상상력을 가동해 보니

소름 끼쳤다.


살아있는 돼지를

병든 돼지로 바꿔치기해

돼지를 빼돌리다 걸렸을 때,

그리고 돼지를 잡아먹으면서

오랜만에 느끼는 그 육즙과 허기를

충만히 느끼고 귀가하던 중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뭐라도 핑곗거리를 대야 했을 때,

짜잔! 하고 나타난

엘리자베스의 순발력과 대처능력!

이 모든 것이 비록 편지글로 전달됐지만

조마조마하면서도 안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게 건지 섬에서 벌어진

점령당한 이들의 참담함을 이야기해

고통스럽다기보다

억압되는 중에

그들 안에서 일어나는 결속력과

삶에 대한 절실함을 느낄 수 있어서

깊은 감동이 있다.


처음에는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6개월이면 독일군이 물러갈 거라 확신했어요. 그렇지만 그 기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급기야 남은 장작도 떨어졌지요. 고된 노동으로 음울한 낮을 보내고 지루함으로 컴컴한 밤을 지냈습니다. 모두가 영양부족으로 헬쓱해지고 이 상황이 과연 끝나기는 할까 하는 의문으로 침울해 했습니다. 우리는 책과 친구들에게 매달렸습니다. 책과 친구는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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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그들에게 만들어진 모임이,

엘리자베스가 기지를 발휘하여

어찌어찌 만들어진 북클럽이라니!

모두 당황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기에

그들은 모였고, 읽었다.


성의 주인 행세를 한 술꾼 존 부커,

독일군과 연애를 한 엘리자베스,

마법 약을 만드는 미스 이솔라프리비,

손자를 포로로 잃었다가 되찾은 램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순간에 잃은 말수가 적은 도시,

돼지 바비큐 장소를 제공한 아멜리아

등 각기 다른 캐릭터가 책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완성되는 것을 돕기 위해

그들은 줄리엣을 초대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그녀를 맞이한다.


생기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옳지 못하거나 냉소와 비아냥에는

찻주전자도 던질 수 있었던

런던의 줄리엣은

건지섬에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건지 섬의 줄리엣으로 살아간다.



전쟁은 당연히 말로 헤아리기 어려운

상처와 부스럼을 만들었다.

모든 이들을 북클럽으로 묶은 원동력인 한 사람이

건지 섬으로 돌아갈 날을 얼마 안 남기고

수용소에서 총살당하고 말았다.

수용소에서 나온 이는

조롱과 멸시, 그리고 처참함이 트라우마가 되어

상처를 회복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 아이는

가장 소중한 자기 엄마를 잃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건지 섬의 북클럽으로

이 모든 시련을 그들의 방식으로

보수하고 새로이 가꾸어간다.


전쟁에 대한 순기능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전쟁이 아니었다면,

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혹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책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것이 저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었을까?

건지 섬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한 아이가 온전한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책을 찾지 않았다면,

책이 제 주인을 찾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이건 읽어보신 분이나 알 수 있을 말이겠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엘리자베스와 존부커가

독일군들이 있는 창 너머로 들려오는

영국방송의 음악을 따라 왈츠를 추는 장면이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여러 차례 올려다보며

독일군들의 주장처럼 영국도 점령당했을까 했지만,

건지섬은 점령당했어도

아직 영국은 건재함을 알고 안도하는 왈츠가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아직 그들에게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만큼은

왈츠처럼 산뜻하고 행복한 희망을

발견한 심정이었을 거다.


보기드문 서간체 소설이었다.

편지글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이 책이 왜 그리 많은 이들의 입소문을 탄 걸까

의아했었다.

편지형식만으로도 생생하게 상황이 전달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스토리 또한 흥미롭게 전개되어

다음이 궁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지막에 미스 이솔라프리비의 관찰일기의

강력한 한방은

잊을 수 없는 마무리였다.^^

소설이라 하지만,

실제 있는 건지 섬과 세계 2차대전이란 역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어서

좀 더 생생했고

안타까움과 감동이 더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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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2-05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왕단팥빵 ㅎㅎㅎㅎ 너무 귀엽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새 달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렛잇고 2024-02-05 16:26   좋아요 1 | URL
서곡님도 해보세요. 은근 어려워요 ㅋㅋㅋ 네 2월이 시작됐네요! 지금처럼 풍성한 독서 즐기시고요! 구정 연휴도 감사하고 행복하게 보내셔요!!^^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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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 에세이입니다. 역시나 좋은 문장이 많아 책 이곳저곳이 인덱스지가 붙여져있네요. 박완서 작가님이 참 그리워지기도 하고 애틋해지는 에세인데요. 박완서 작가님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더없이 좋을 책이에요. 책도 너무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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