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주)안온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대출기 앞에 섰다.

책 대출기란, 커피 자동판매기처럼 내가 원하는 책의 '선택버튼'을 누르면 바로 즉석에서 책을 내어주는 신개념 대출서비스 기기다. 다른 사람들이 대출해 간 책을 제외하고는 기계에서 보유 중인 책이라면 24시간 언제든 책을 빌릴 수 있다. 한참을 서성이다. 이 책을 골랐다. 저자 이름 하나보고!


<아무튼 술>과 <전국축제자랑>. <요즘 사는 맛1>까지 읽은 사람들은 안다. 각 주제를 기가 막힌 찰떡 비유에, 특유의 창의+ 유머러스함으로 글 읽을 맛 나게 해주는 작가님이다. 워낙 많이들 좋아하는 작가님이다보니 여러 사람의 손타기와 유행을 지나 이제서야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다정소감이란 책 제목이 낯설었다. 다정함도 아니고, 다정에 소감이 있을 수 있나? 뭔가 뜻은 있겠지만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오는 이 단어에 역시 묘한 게 작가님과 닮았다 생각했다. 읽다보니 당연히 이해가는 (작가님 작품의) 신조어(?)였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 중 내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붙드는 건 결국 다정한 패턴, 다정이 나를 구원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글을 쓰려고만 하면 앞 다투어 튀어나오는 바람에 몇 개만 골라내야 할 정도로. 글을 쓸 때는 뻔하다면 뻔한 패턴에 어김없이 강타당하는 나의 확고한 일관성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지만, 어제는 노트에 모인 쓰지 않은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쩐지 뭉클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던 것처럼, 뻔하다면 뻔한 패턴의 이 이야기들은 결코 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했다. 뻔한 다정이란 없었다. ... 내 안에 새겨진 다정들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서 얻게 되는 건 근육만이 아니었다. 다정한 패턴은 마음의 악력도 만든다. 그래서 책 제목을 '다정소감'이라고 붙여봤다. p.220


역시나 그의 비유는 내 손이 무릎을 치게 했고, 입으로는 키득키득 웃게 했으며, 세심함으로 두루 여기저기를 뚫는 문장에 쾌감을 느끼게 했다. 미괄식의 사람에게 두괄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김솔통'이라니! 처음부터 아주 기가막힌다. 본명인가, 가명인가? 정도로 여긴 김솔통이... 김솔을 받쳐주는 통이라니 참! 거기서 글의 방향을 잡는 작가님도 참 재밌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저자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나타내는 글들은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에 간 중년의 여성들의 여행을 변호하는 글에서, 조상 혐오에서 제사지내는 이들을 향한 통쾌한 디스, 맞춤법, 옛 친구의 이야기까지... 약자(모든 약자에 내가 동의할 순 없지만 어쨋든)에 대해 배려할 줄 알고, 얼굴이 화끈거릴 수 있는 일에도 글로 피하지 않고, 돌이킬 줄 아는 글에서 작가에게 있는 진솔함이 느껴졌다.


이젠 더이상 내게 집주인이란 타인은 없지만, 강한 자를 대비해서 나도 이참에 축구를 배워야 하나 싶기도 하고, 왠지 철봉에 매달려 20개씩 3세트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언니들한테 나도 조언을 좀 받고 싶어졌다. 여초직장에서 첫 비행에 지각한 내 앞에 '황금가면(김동률 음악)'(지극히 김동률님을 좋아하는 리뷰어의 사적인 생각)처럼 내게 나타나준 친구들을 보며 작가님 참 인생 잘 사셨네! 싶기도 했다. <제철음식 챙겨먹기> 글은 이전 작품에서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요즘 사는 맛1>이 아닐까?

조상혐오를 멈춰달라는 글에서는 왜 저런 생각을 못했었던가 작가의 글에 깔깔거리며 시원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조상들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이해심 있는 인간형으로 상정하면서, 애먼 조상들은 자손의 피곤한 일상이나 사정 따위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밥만 찾고 인사받기만 바라는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아오고 어떤 인품을 지녔는지와 상관없이 죽어서 조상이 되는 순간 애정 결핍에, 밥 집착증에, 속 좁고 개념 없는 악귀나 괴력난신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이거 어디 억울하고 무서워서 마음 편히 죽을 수 나 있겠나. 내가 조상이라면 밥을 못 얻어먹는 것보다, 그깟 밥 안 차려준다고 후손의 삶을 망가뜨리고 저주를 내릴 평균 이하 인격체로 취급당하는 것이 더 화가 나 제사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다. p.85


미니멀리스트의 시련에서 존경스러워지려는 찰나, 캐리어 회사에서 캐리어를 옛날 것과 새 것 두 개나 받게 된 '금도끼 은도끼' 상황에선 웃음이 대 폭발했다. 한편으로 추억이 담긴 걸 버리지 못하는 남편과 사용 zero인 건 버리자는 나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떠올랐다. 그때 좀 내가 양보할 걸 강행했던 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거대한 농담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지. 다음 날, "본사에 신혼여행의 추억이 깃든 소중한 물건이라 새것 대신 망가진 걸 그냥 받겠다는 고객님의 뜻을 전했더니 모두 크게 감동하셔서 정책상 사실 안 되지만 고객님의 물품과 함께 새 상품도 보내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라고 메시지가 온 것이다. 뭐라고? 그래서 지금 대형 사이즈 캐리어 두 개가 함께 올 거라고? 맙소사. 그 회사는 뭐 산신령이야? 지금 이거 금도끼 은도끼야? T는 정말 감사하다며 담당자에게 신경 써서 고른 기프티콘을 선물로 보내고 있었고, 저렇게 한쪽에서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데, 낭만도 피도 눈물도 없지만 캐리어는 두 개나 갖게 된 미니멀리스트는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애매한 기분에 휩싸인 채로 머리를 싸맸다. 이게 뭐야! p.162


무심코 지나갈 사람의 생각을 글로 훑어버리는 놀라운 세심함과 남다른 시선으로 웃음 대 폭발하게 하는 김혼비 작가만의 글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놀랄 정도로 털털한 B급 유머가 살아숨쉬는 글이 좋아서 이번에도 이책을 골랐는데, 역시나 잘 읽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약자에 대한 여러 진지한 그의 생각까지 고이 담아진 글이 기억에 남는다.

현재 코로나 앓이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여서 여기까지만,,, (뭔가 내용이 이상하더라도 용서해주세요.ㅠ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06-19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고생하십니다 무사히 회복 잘 하시길요!!!

렛잇고 2023-06-19 09:11   좋아요 1 | URL
서곡님~~ 이렇게 댓글 주신 마음써주심감사드립니다!!^^ 오늘 덥다는 게 시원한 하루 보내셔요!!
 
깨끗하고 밝은 곳 쏜살 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고전은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얇고 재미진 것을 주로 읽으라'는 주변 지인분의 조언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서 바로 이 책! 얇고 작은 책을 골랐죠. 헤밍웨이하면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한 문체가 떠올라 선뜻 들 수 있는 책은 아니예요. 하지만 언제부터 '고전'에서 가독성을 기대했나... 싶죠.ㅎㅎㅎ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조금 더 곱씹어 읽기로 한 책으로 간주하며 읽어보았습니다. 그나마 이 책은 굉장히 얇으니까요.^^


수록 작품은 다음처럼 5편의 단편입니다.

- 깨끗하고 밝은 곳

- 살인자들

- 병사의 집

- 킬리만자로의 눈

- 프랜시스 매코어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

하나하나 제가 어떻게 읽었는지 이야기 해 볼게요.


<깨끗하고 밝은 곳>

... 물론 불빛도 중요하지만 꺠끗하고 아늑해야 해. ... 도대체 그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 그것은 두려움도 공포도 아니야. 그것은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허무라는 거지. 그것은 모두 허무였고, 인간도 한낱 허무에 지나지 않거든. 모든 것이 오직 허무뿐, 필요한 것은 밝은 불빛과 어떤 종류의 깨끗함과 질서야. 허무 속에 살면서 전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 p.15


"불빛도 꽤 밝고 기분도 좋긴 한데 스탠드를 제대로 닦지 않았군." 웨이터가 말했다. p.16


마감시간까지 브랜디를 마시며 앉아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젊은 웨이터와 나이든 웨이터는 대화를 나눕니다. 젊은 웨이터는 마감시간이 임박함에도 바의 종업원을 배려하지 않는 노인에게 싫은 내색을 하죠. 한편 나이든 웨이터는 노인의 심정을 이해해요. 그 나이엔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라고요. 단지 그(노인)에게 밝을 뿐 아니라 깨끗하기도 한 곳이 필요할 거라고요. 나이든 웨이터도 자신의 바를 정리하고, 다른 바에 들어가 젊은 바텐더의 술을 받아 마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술을 마시는 그 바는 밝지만 깨끗하지 않다고 읊조리죠.


나이든 이와 젊은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은 누려보지 않은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대체로 누릴 건 누려봤기 때문에 모든 것에 흥미를 잃게 마련이니까요. 어느 면에서 '깨끗하고 밝은 곳'이 필요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젋은이와 나이든 이의 관점의 차이는 지금이나 그때나 뚜렷하게 보였어요.


무엇보다 헤밍웨이는 부자들을 자신의 소설 속 인물로 많이 배정해두었어요. 굳이 '부자'라고 그 사람들을 알려 주죠.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나이가 들면 '죽음' 앞에 자신에게 남은 건 나약하고 허망함 뿐인 걸 보여주는 것도 같아요.


<살인자들>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남자 둘을 손님으로 맞이합니다. 이 두 남자, 종업원 닉에게 시덥지 않은 요구들을 하죠. 급기야 주방장까지 부릅니다. 그리고 둘은 묶고, 한 명에겐 손님을 받지 말라고 지시해요. 자신들은 올래 안드레슨을 죽이러 왔다면서요. 결국 안드레슨은 식당에 오지 않았어요. 종업원들은 안드레슨의 집에 가서 그에게 그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알리기로 합니다.


전 여기서 궁금했어요. 물론 이 일.. 안드레슨에게 알릴 수 있죠! 하지만, 어쩌면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며 안드레슨에게 알리러 가는 거잖아요. 그 두 남자가 다음 날도 들이닥치거나 주변에서 맴돌다가 안드레슨의 집에 가는 종업원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요? 안드레슨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이 종업원들에게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 종업원들이 이런 일까지 감수하는 걸까? 궁금했어요. 안드레슨을 향한 주변의 평은 이렇습니다. '참 좋은 분', '참 점잖은 분', '권투 선수' 등이요.


그렇게 닉이 뛰어가서 안드레슨에게 알리지만, 안드레슨의 반응이 더 기가막힙니다. 놀라기는 커녕 심드렁해요. 도망다니기도 귀찮대요. 오히려 주변인들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뻔해보여서 안쓰러워합니다. 그리고 종업원 닉은 이 지역을 떠나기로 하죠. 그의 죽음을 볼 수 없다고요.


이 책의 끝이 제겐 허탈했긴 해요. 그래도 이 짧은 소설이 뭐라고. 안드레슨은 과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올까 긴장감이 감돌더라고요. 식당의 종업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하고요. 헤밍웨이가 안드레슨 집의 여인을 집주인으로 안 하고 굳이 집을 돌봐주는 벨부인으로 바꿔치기(?) 한건 왜일까 질문도 들고요. 상황을 상상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해보는 것도 재밌었어요.



<병사의 집>

1917에서 1919년까지 참전한 한 대학생 크레브스의 이야기입니다. 참전하고 귀환했지만, 다른 병사들보다 늦게 돌아와서 아무도 자신을 환영해주지도, 파티를 열어주지도 않아요. 자신의 모든 시작인 고향에서 그런 상황을 맞딱드린 크레브스는 고향에서의 모든 것에 무기력한 반응을 보입니다. 반면 자신에겐 아직 전쟁의 잔재가 머리 속에 남아있는데, 고향에서의 주변 사람들 모두는 그가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재촉합니다.


대학생이면 엄청 어리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나이에 뭣도 모르고 참전 용사로 전쟁에 나갔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어쨋든, 살아서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의 수고와 고생을 인정해주지 않죠. 그의 심경을 깊히 헤아릴 순 없지만, 허탈하고 의욕없는 삶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 한편, 제가 아들 엄마인지라 크레브스 엄마의 입장에서도 잠깐 볼 수 있었는데, 그 입장에선 살짝 속이 터지기도 하고요. ^^;


자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크레브스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동생, 그리고 아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응원해도 아들이 다시 일어나 주길 바라는 엄마... 혹시 참전한 경험이 있던 헤밍웨이가 겪은 상황은 아니었을까요? 아버지와의 대화는 쏙 빠져있습니다. 그건 또 왜 그럴까요? 참전 병사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는 좀처럼 보지 못한 이야기라 새로웠던 단편이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눈>

헤밍웨이는 많은 작품에서 '죽음'과 '허무'를 많이 본 작가 같아요. 그 사이엔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부자'가 꼭 등장합니다. 여기서도 등장해요. 바로 주인공 '해리'의 아내죠.


해리는 작가입니다.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작품으로도 유명해진 작가로 보여요. 한때 깊이 사랑하던 여자도 있었지만, 이젠 한 여자에게 정착했어요. 그건 그녀가 '부자'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다 중년 여성치고 아름다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그런 그 여자와 함께 아프리카에 갔어요. 거기서 다리를 다치고, 제대로 처치하지 못한 모양에요. 결국 (파상풍인지 몰라도) 죽음에 달합니다.


해리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게 많은 작가였습니다. 이제 안정적인 삶에서 자기가 원하고 꿈꾸던 작품을 쓰는가 했는데, 이렇게 허탈하게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어요. 죽음 앞에 그의 본능은 폭발합니다. (말이지만) 거칠고 폭력적입니다. 삶을 놓치고 싶지 않고,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태도답죠. 여자는 내일이면 비행기가 올 거라고 위로하지만, 결국 해리는 죽고말아요. 그가 말한 죽음처럼 그는 옛 친구의 모습을 가진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랫 문장이 읽는 제게도 소름돋았어요. 마치 죽음을 본 적 있는 사람처럼 헤밍웨이는 작품에서 '죽음'을 표현했죠? 그(작품속 주인공 해리)의 작품 속에 나온 킬리만자로 눈처럼 그는 그것을 보며 죽게 됩니다. 그(해리)의 작품들은 죽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요.


"사신이 큰 낫과 해골바가지를 갖고 있다고 믿지 말아요. 자전거를 타고 오는 순경 두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새가 될 수도 있어요. 아니면 하이에나처럼 큼직한 주둥이가 있는 놈일 수도 있죠."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바야흐로 죽음이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무런 형체도 없었다. 다만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p.83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프리카에서 사냥의 모습, 그리고 한 공간에서 야생동물과의 어우러진 삶이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미국적인 작가에게서 '아프리카'의 모습이라? 모험에 강했던 '헤밍웨이'니까 가능했겠다 싶은 요소에요.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

이 작품 또한 아프리카에서의 사냥이 나옵니다. 위의 소설보다 조금더 생생하게 사냥의 모습을 보여주죠. 어느 동물보다도 무섭기로 알려진 '사자'가 이 작품에서 큰 공포를 자아내죠.

이 작품에서는 매코머가 부자입니다. 아내 마거릿은 아름다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인으로, 매코머가 부자이기 때문에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사냥을 하는데 조력자인 윌슨은 이 부부 사이에서 긴장감을 갖게하는 인물입니다.


앞으로도 평생 부자일 것으로 예상되는 매코머이지만, 사자 앞에서 줄행랑을 치며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윌슨도 아내도 그 앞에서는 추켜세우지만 실은 우습게 여기죠. 사지가 바들바들 떨리는 사자 사냥이었지만 간신히 마치게 되요. 다음 날엔 물소를 잡는데 성공을 하며 자신감을 찾는 매코머입니다. 가장 큰 물소 한 마리를 추격하면서 이젠 사냥에 강렬한 의지를 보이는데요. 겁쟁이었던 그가 이젠 달라진 걸까? 싶은데, 정말로 어이없게 그가 죽고 말아요. 왜 일까요?^^


세번째로 이야기하지만, 헤밍웨이의 이 단편들에선 유독 부자들이 많이 보여요. 그들의 모습은 부유한 만큼 인격과 행실이 뒷받침 되고 높은 자존감을 가진 인물이기보단, 나약하고 의존적인 모습들이 자주 보여요. 술에 의존하고, 남자에 의존하고, 어떤 성취에 의존하죠. 헤밍웨이가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그런 부자의 모습을 내비쳤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지만요.


제게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책 이후 이 책으로 두번째 만났다고 볼 수 있어요. 하드보일드한 문체가 사실 거친데다, 아주 재밌다고 느껴지진 않긴 한데요. 사실적인 측면에서 긴장감이 들고, 그런 면에서 객관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여 독자 주관으로 작품을 해석하게 될테니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재미가 나름 있긴 해요. 그의 삶을 이해하고 본다면 흥미롭게 볼 내용이 풍성하기도 할테고요. 그런 의미로 이 책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06-12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고 자세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ㅎ 한 주 잘 시작하시길요!

렛잇고 2023-06-12 14:46   좋아요 1 | URL
서곡님 귀한 시간 제 리뷰 읽는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행복한 한 주 보내셔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 한국경제 흑역사에서 배우는 오늘의 경제 교양
김정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동산, 금융경제하면 알 수 없는 용어와 복잡한 사건의 과정이 드러난 표, 그래프가 생각난다. 그래도 현실을 사는 데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 부담은 늘 있고, 역사에는 흥미가 있는데다, 과거 경제사 용어 몇 가지는 익히 들은 게 있다고 이 책의 소개에 힐끗 눈길이 갔다. 한국경제사를 쉽게, 흥미진진하게 알려준다는 소개에 한국경제사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자꾸 이야기해서 민망하지만) 금융 경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어서 '어피티'가 뭔지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어피티'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경제 미디어로, 그중 <머니레터>는 현재(2023년 4월) 약 2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경제금융뉴스레터다. 이 책의 저자는 <머니레터>를 통해 2년간 경제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연재했고, 28만 구독자가 열광한 시리즈에서 쉽게 알려주는 저자의 경제 이야기는 시작됐다. 이 책에서는 증권파동, 강남 개발부터 빅 테크 버블, 깡통전세 등 경제 뉴스를 따라잡기 위해 알아야 할 한국경제 46개 사건, 부동산, 노동과 복지 등 23개의 주제를 500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다루고 있다.


구성이 색다른 점이 눈에 띈다. 경제의 역사라고 해서 '초반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지 않았다. 부동산, 노동과 복지, 금융경제 등으로 몇 파트로 구분 지었다. 각 파트의 주제마다 굵직한 두 사건을 다루는데 이 또한 독특하다. 가장 최근의 사건을 먼저 다룬 후, 그리고 과거의 연상되거나 연결되는 사건을 소개했다. 최근 일어난 경제 사건, 주제만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3-40년 전 과거를 연결 지어 설명했다. 그 덕에 과거에서 도출된 현재와 그 흐름을 이해함으로 거시적인 시각으로 한국경제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비유가 조금 과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마치 드라마에서 악당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악당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악당의 어린 시절과 환경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무작정 한 사람을 비판하기보다 전반적인 인생을 바라봄으로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의 경제 사건은 그것을 도출해낸 과거의 원인이 있어서 전체적인 관점으로 보여준다. 경제사건에 대해 폭넓고 깊게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 읽고 봤던 <재벌집 막내아들>로 한국경제사를 훑는 듯 했는데, 이 책으로 개념과 경제 상황 그리고 결과를 한 번 더 짚어볼 수 있어서 내 나름엔 경제사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천당' 위의 분당'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 지금의 성남시가 만들어진 과정들, 대기업들의 연쇄부도, 카드대란, 분식회계, 금융실명제 등(우와 끝도 없이 많음) 드라마에서 언뜻 재미로만 알게 된 내용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속 시원하게 알게 된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진 회장의 장남 진영기가 왜 명동의 사채업자의 큰 손의 사위가 되었는지 이 책을 보고 나니 딱 알겠다. (여기까지만 ^^) 그밖에도 '경부고속도로와 명문고 이전이 이렇게 관련이 있었어?' 놀랍기도 하고, 산아정책 이후 세종시의 탄생과 연관되다니 흥미롭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뉴스에 나오는 이유가 이런 거였어? (읽어보세요!^^)



위에도 말했지만, 500페이지 가까운 책 두께에 지레 겁먹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일단 읽어보면 경제사가 쉬워지고, 재미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뉴스에는 나오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에, 찾아봐도 이해가 안 갈 용어들이 쉽게 이해 되어 신이 난다. 특히 나에겐 자산버블, 공매도 증권금융 관련한 용어가 어려웠는데, 특정 경제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말할 만한 대사들로 대본도 나와 있으니 그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별도의 용어는 따로 상세히 다루기도 했다.

전 대통령 박정희가 나오는 몇 가지 사건들에서는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곳이 있었다. 이 책은 사회, 윤리 분야를 다루는 게 아니라 경제를 다루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내용에 어느 정도 일리 있겠다고 판단을 했다.

유익하고 알찬 경제 정보를 쉽게 다루어서 나도 몇 차례 읽고 싶은 데다, 아이들이 조금 크면 이 책으로 한국의 경제사를 이해했으면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경제하면 무조건 어렵다 하는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책으로 한국경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받았으면 해서 추천하고 싶다. 이와 더불어 '어피티' 뉴스레터도 구독하고, 조금 더 경제에 한걸음 더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해준 책이어서 내겐 의미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 한국경제 흑역사에서 배우는 오늘의 경제 교양
김정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경제사가 이렇게 쉽고 재밌을 수가 있나요? 근현대사에 경제사까지!! 정말 이 책 한 권으로 많은 부분 이해하고 알게 됐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도 전에 '조르바' 욕부터 들었던 책이라서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었어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인생 책으로 여기셔서 이야기하셨고, 저 또한 이 책이 저희 집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이번이 기회다 생각하고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간단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다른 두 인물이 만나서, 함께 사업을 하고 그리고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선 나와 조르바. 캐릭터가 확실한 인물 둘이 나오죠. 어쩌면 조르바를 만나면서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알아가고 찾아가는 성장기와도 같은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책을 읽다 보면요. 등장인물을 보면서 '어떤 인물이 나와 더 가까울까?' 생각해 보게 되잖아요. 저는 '나'에 더 가까운 사람이에요. 아마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나'에 많이들 가까우시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책을 좋아했고요. 책의 유익함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너무나도 많이 들었어요. 책을 안 읽은 상황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제게 훨씬 더 나은 환경과 생각을 줄 거란 기대를 갖고 여태껏 책을 읽었죠.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니 책이 아니어도 성숙하고, 지혜로운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책이 아니어도 이런 분이 있을 수 있다니?' 책에 모든 것이 있다며, 책에 집착해왔던 제가 어땠겠어요? 그런 분들의 존재(?) 자체가 되려 충격이었어요. 조르바를 바라보는 화자인 '나'가 딱 저의 모습 같았어요. 제게는 없는 부분들이 조르바에게 있어서 신기하고, 그런 분들의 삶의 지혜와 새로운 면모들을 봤으니 제게는 신세계를 발견한 것과 같은 거였겠죠. 그런 분들을 동경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조르바가 그러죠?

"나는 버찌에 미쳐있었어요. ... 밤이고 낮이고 나는 버찌 생각만 했지요. 입에 군침이 도는 게, 아, 미치겠습디다. ... 어쨋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하지만 웃으면 안 돼요.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 들어요. 터질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 안 돼요, 두목. 악마를 이기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p.289


조르바를 보고, 그의 스타일을 따라도 하고, 조언과 가치를 수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조르바는 조르바고, 저는 저죠. 이 말을 따라 '나'가 그랬듯이 저도 제 자신을 따라 여태껏 했던 것처럼 책을 터질 만큼 제 머리에 처(?) 넣어보려고요. 언젠가 그 끝이 오지 않겠어요?^^

이 책은 지금처럼 끝까지 책으로 가라고 격려하고 안내해 주는 책 같네요.


이 책에서 제게 가장 클라이막스 같은 장면은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이었어요. 그 어떤 책보다 '죽음'이 와닿았어요. 죽음을 대하는 주변의 모습에 씁쓸했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썩어져가는 육신일 수밖에 없는 최후가 서글프게 느껴졌어요.


우리는 말이죠. 흔히 주변의 '죽음'을 접하게 될 때, 죽은 이와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애도가 주(主)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죽은 이의 물건을 하나라도 탐하려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신경전의 긴장감, 그리고 오르탕스 부인네 닭을 잡아서 먹으려는 판이 벌어집니다. 오히려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은 주변인들에게는 '축제'를 앞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에요. 한 생명의 무게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요?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의 입장에서만 이해한 제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충격이었어요.


또한, 한 사람이 죽으면 사후 처리되어 단정한 옷을 입은 모습이 아닙니다. 화장된 후 유골함에 담긴 모습도 아니에요. 구더기가 넘실거리고 파리가 꼬이며 악취로 진동하는 모습일 수도 있어요. "죽고 싶지 않아!"를 외치며, 아픔에 괴로워하는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고요. 생기 돋고 팽팽했던 탄력이 사라진 죽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꺼져버린 듯한 모습일 수 있어요. 중간중간 등장하는 오르탕스 부인의 최후 모습을 보며,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저렸습니다.


드디어 이 책을 읽어봤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엄청나게 뿌듯합니다.

그리고 많이들 욕하시는 포인트 잘 알 것 같아요. '여성'이란 존재가 남성 앞에 한없이 의존적으로 보였고, 여성은 남성들이 갖고 있는 많디많은 도구 중 하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으니까요. '당시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내용들도 군데군데 많기도 했어요.

그래도 조르바의 자유로운 삶의 태도, 어쩌면 제게는 없어서 어느 정도 배울만한 사고방식, 조르바답게 우여곡절 끝에 인생의 빅데이터를 쌓아 해석한 그의 지혜가 있어서 이 책은 몇 번이고 재독해보고 싶은 책입니다. 재독 후엔 지금보다 이 책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네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06-01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여성형 조르바에 관한 소설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이 달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렛잇고 2023-06-02 09:09   좋아요 1 | URL
서곡님 안녕하세요^^ 여성형조르바라니!! 굉장히 신박한 소설이겠어요. 서곡님 댓글 덕에 막혔던 생각이 뻥뚫리는 느낌이네요.^^ 서곡님의 6월 한달의 시작도 응원하겠습니다. ^^

서곡 2023-06-02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렛잇고님 안녕하세요 답글 감사합니다 ㅎㅎ 뻥 뚫리셨다니 시원합니다 ㅋㅋ 이 달 지나면 올 상반기도 가네요 렛잇고 렛잇고!!!! 오늘 잘 보내십시오 저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