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심 없이 이 소설의 제목인 비행운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꼬리 모양으로 생성되는 구름이라는 뜻의 飛行雲으로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때, 또는 더 높아서 비행기는 보이지 않고 비행운만 보일 때 드는 감정은 언제나 한결같다. 아련함과 왠지 모를 슬픔, 막막함과 동경.다 늙어버린 지금도 그 모습만 보면 어릴 때 느꼈던 것과 똑같다. 살풋한 희망도 섞인 그 눈부심은 결국 어지러움만 남긴 채 사라지지만 여운은 길었다.

 

김애란 작가는 이 책 어디에도 제목에 대한 한자어를 남겨두지 않았다. ‘비행운이란 단어는 <하루의 축>에서 인천공항 청소부인 기옥 씨가 이륙한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을 안도의 긴 한숨 자국(p.176)’으로 표현하는 문장에만 한 번 나올 뿐이다. 나머지는 다 이미지와 상징으로 숨겨져 표현된다.

 

작가는 모질게 작정한 듯 여기에 수록된 8개의 단편에 불행을 심어 놓았다. 소설이 아닌 르포를 읽고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자세하고도 집요하게 어떤 이들의 쫓겨남과 비루함, 막막함을 드러낸다.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사람 사는 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의미로 제목인 비행운은 불운이나 고달픈 현실을 뜻하는 非幸運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飛行雲非幸運은 뜻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통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동경과 희망은 모두에게 성취될 수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지독하며, 거기에 자본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불운한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간 비행기가 남긴 흔적만 볼 수 있도록 남겨졌다.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좋은 이웃><빗방울처럼>의 소재와 비슷한, 이 책의 <벌레들><물속 골리앗>은 집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에게 먹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집이 부의 상징이자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 것은 고대에서부터 있어온 일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다만 월급 받아 아껴 성실히 저축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무서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작가는 가감 없이 서술한다.

 

나머지 단편 역시 다양한 소재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지만, 모두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많이 바라지 않고 그저 의식주의 기본만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좌절하고 배반한다. 어쩔 수 없어서, 잘못된 선택으로, 그저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김애란은 그 잘못된 행위를, 변명으로 읽힐 수 있는 것들을, 쉽게 나쁜 것이라 단정하지 못하게 한다. 다시, 더 깊이 생각해 그들을 수긍하게 만든다. <하루의 축>에서 기옥 씨는 아들인 영웅이 범죄자가 되고 한 가족의 단란이 이렇게도 시시하게 망가지는 것이 어찌 이리 쉽냐고 반문한다. “엄마, 사식 좀.”이라는 영웅의 편지에 무너지지만, 그 사식을 위해 저녁 근무를 신청하는 기옥 씨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가 김애란의 글은 꼭 필요하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물속 골리앗이었다.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 내용의 흐름이 완벽히 들어맞았고 그 절절한 문장에 전율이 일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거기에 고립된 소년과 그의 어머니, 타워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 죽은 소년의 아버지, 끝내 죽어버린 어머니를 녹색 테이프로 칭칭 감던 모습, 모든 것이 물에 잠긴 곳에서 거친 물살에 그만 놓쳐 버린 어머니의 시체, 물속에서 골리앗처럼 서 있던 타워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발견한 사이다와 라면 한 봉지. 구조를 바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년.그 모든 것이 너무 슬펐고 아름다웠다. 여기에 온갖 의미를 다 갖다 붙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김애란 작가의 문장만으로 모든 것이 느껴진다.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일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을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에 뜬 노란 달을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달이었다. 비록 흐릿하긴 했지만 그걸 보니 엄마, 나무뿌리에 안겨 떠내려간 엄마 생각이 났다. 녹색 테이프에 감긴 얼굴로 오랫동안 내 쪽을 바라보던 모습도. 어머니는 지금쯤 어디 계실까. 어디쯤 가셨을까. 부디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 좋을 텐데.그러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조그맣게 중얼댔다. “누군가 올 거야.” 칼바람이 불자 골리앗크레인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p.126]


비행운을 읽으며 영화 <만약에 우리>를 봤다. 소설과 영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서른>에서 만난 힘겹게 사는 청년들이 영화에 있었다. 정원(문가영)과 은호(구교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가난하다. 가난한 사람이나 연인에게 들이닥치는 여러 악재가 이들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나 부족한 돈이 그들을 헤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그저 변명일 뿐이다. 사실 그들이 헤어진 건 마음 때문이다. 특히 힘들어진 은호의 뒤틀림은 결국 정원을 떠나가게 한다.

 

정원과 은호는 헤어진 후 각자 자신이 원했던 길로 잘 간다. 그렇게 잘 가면서 왜 같이 있을 땐 안 되었던 걸까? 먼 훗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정원과 은호는 만약 그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헤어지지 않았을지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어 소용없지만,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우리 모두가 많이 하는 질문이다. 만약에 그때, 정원과 은호, 비행운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지금의 인생이 좀 더 나아졌을까? 힘들어도 마음만은 단단히 잡아 흔들리지 않은 너와 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내 집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은호야.

-정원

 


작년에 김애란 작가의 두 소설과 커피, ‘안녕이라 그랬어표지의 북커버를 서재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이제야 보내주신 책을 다 읽었다. 비슷한 시기에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와 엄마를 여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와 나의 애도가 너무 차이가 났다. 난 담담했지만 그녀는 장례 후 일 년이 지난 후에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하고 따뜻해 난 엄마에게 미안했다. 마음이 점점 굳어지고 냉정해지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비행운을 읽으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친구도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친구가 아니었으면 아마 이 소설을 영원히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좋은 책을 보내준 친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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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8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0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6-03-09 0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소설집의 제목은 수록작들 중에 표제작으로 삼을만한 단편의 제목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죠. 가끔 작가와 출판사가 표제작으로 생각하는 작품이 달라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책 제목 [비행운]은 수록작들 제목이 아닌가봐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군요.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봤지만 이 책과 영화 [만약에 우리]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에 저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저도 이 책과 이 영화를 보고 읽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6-03-09 07:56   좋아요 0 | URL
<비행운>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단편들 내용을 고려해 작가가 따로 정한 것 같아요.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단편들의 느낌을 잘 살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좋았어요.
특히 여자 주인공인 정원 캐릭터가 인상에 많이 남았습니다. 제에게 이제 밥벌이를 해야 할 딸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청년들의 고달픔이 예사로 보이지 않아요.

2026-03-0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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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퍼시벌 에버렛 작가의 소설 제임스를 읽기 위해 먼저 이 두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 동화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은 너무 재미있어 계속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있다. TV에서 방영된 만화도 여러 번 봤다. 특히 톰 소여가 폴리 이모의 명령으로 높이가 3미터나 되는 30m 판자 담장을 회반죽으로 칠해야 할 때, 그의 기지로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담장을 칠하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이 부분은 책의 처음에 속하는데 그동안 내 기억은 딱 여기에서 멈추었던 것 같다.

 

그 뒤의 내용은 이제껏 한 번도 읽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웠다. 개구쟁이 톰,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년은 황당하고도 게걸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머리 회전이 빠르고(조금 나쁜 쪽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먼저 깨우친 톰은 꼬마 갱단의 리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꾀바르고 능청스럽기도 한, 밥 먹듯이 하는 속임수나 거짓이 장난이나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톰은 소년이었고 성장하고 있었다. 마음에 사랑이 피어나고, 가족을 생각하며, 결정적일 때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낼 줄 알았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허클베리 핀은 동네에서 이름난 주정뱅이의 아들이자 부랑 소년으로 서술된다. 동네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제멋대로인 데다 상스럽고 질이 좋지 않은 아이로 소개된다. 심지어 담배도 피운다. 만약 이번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헉을 그렇게만 생각했을 거고 영원히 톰에 붙은 곁가지라고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면 톰의 모험은 딱히 별 거 아닌 게 된다. 톰은 그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헉은 여러 지역을 오가며 모험을 벌인다. 거기엔 흑인 노예 짐이 함께 있다. 헉은 아버지의 폭력과 더글라스 부인과 왓츤 부인의 양육, 학교, 사회의 구속과 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짐은 주인인 왓츤 부인이 그를 다른 사람에게 팔겠다는 말을 듣고 도망친다. 이유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같다. 둘 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다.

 

자유를 찾으려는 그들의 여정은 험난하다. 백인이지만 어리다는 것과 도망자의 신분인 흑인 노예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의심과 탐욕의 대상이 된다. 특히 흑인 노예에 대한 그 당시의 가혹한 폭력은 지금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다. 소설 전반에 있는 거짓과 속임은 헉과 짐이 자신들 앞에 놓인 힘들고 어려운 길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부분이 힘들고 지루했다. 하지만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마지막에 황당하지만 톰이 등장했던 것도 그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그 당시 사회의 폭력과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악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선한 방법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인인 헉은 짐이 도망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도와준다. 백인은 누군가 다른 백인이 도망자인 흑인 노예를 고발하지 않는다면 깔봐도 되는 시절이었다. 헉은 평등주의자도 아니고 거창한 인류애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헉은 짐을 고발하지 않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거두고 교육시켜준 왓츤 아줌마에게 지독한 짓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이 비열하고 비참해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마저 든다. 그럼에도 헉은 자유를 갈망하는 짐을, 자신을 도와줘 고맙다고 말하는 짐을 고발하지 못한다. 자신을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자 가장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짐을 도와주고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요즘 아이들은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잘 모른다. ‘흔한 남매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톰과 헉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미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로 그 시대를 살렸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과 여러 실제 인물이 녹아 있어 우리가 그 시대로 들어가 이 글을 읽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이 두개의 소설 내용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과연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헉은 짐이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살다 살다 이런 검둥이는 난생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헉과 짐이 솔로몬 왕의 재판에 대해 얘기할 때, 짐은 솔로몬이 아이를 반쪽으로 나눠 두 여자에게 준다는 판결에 분노한다. 그것은 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반쪽짜리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재판은 반쪽이 아닌 완전한 애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짐은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웃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이의 진짜 엄마를 찾아주겠다고 한다. 헉이 짐에게 요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자 짐은 요점 같은 소리 하지 말랑게 그러네! 내사 알고 있는 건 알고 있다고 생각헝게. 정말이지, 요점이라는 건 좀 더 멀리, 좀 더 깊은 데 있는 거제. 그건 솔로몬이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당께. 솔로몬에게는 애새끼 하나둘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랑께라고 말한다.

 

솔로몬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할 수 있다. 요점은 좀 더 깊이 있는 것이고 사람은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결국 헉과 짐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운명을 거부하고 모험을 시작하지만 그 둘의 끝은 다르다. 짐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의 소유주인 왓츤 부인의 유언으로 자유를 찾는다. 반면 헉은 교양 있는 세계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인디언이 사는 지역으로 떠난다. 장난꾸러기 톰이 신사의 세계를 선택했다면 헉은 톰과는 정반대의 길로 간다. 문명과 속박에 얽매이지 않은, 야생에서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결국 자유를 찾은 헉과 짐의 여정은 헛되지 않았지만 능동과 수동의 차이는 엄청나다. 짐의 자유는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자유는 불안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수록된 삽화,

전자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다운로드 함






 

 







2024 전미도서상커커스 프라이즈, 2025년 퓰리처상브리티시북어워드를 수상한 제임스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소설이다. ’허클베리 핀이 백인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제임스는 철저히 흑인 노예 짐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제임스는 짐의 완전한 이름이다. 짐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이름이 불린 적이 없다. 그런 이유로 여기에는 마크 트웨인의 글보다 훨씬 더 많은 흑인 노예의 비참한 삶이 들어있다. 그들을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대하는데 거침없는 백인들의 생각과 행동도 그대로 전달된다.

 

소설 제임스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과정이 거의 그대로 진행된다. 이 두 소설이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그 두 소설에 등장하는 똑같은 사람인 흑인 노예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제임스는 헉보다 훨씬 더 아는 것이 많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구속하는 잘못된 법과 볼테르, 루소, 로크의 자유론과 관용론을 비교할 수도 있다.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제임스에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계급 사회의 모순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고 그것에 대한 합리적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제임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숨기고 흑인의 말을 사용해야 하며, 무조건 백인에게 순종해야 한다.

 

영화 노예 12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악랄한 백인 주인이 일요일에 목사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흑인 노예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진행하며 천국에 대해 설교한다. 참고 견디면 끝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노예들에게 심어준다. 제임스는 그런 종교를 비판한다. 백인 주인은 언젠가 하느님이 줄 보상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이 받을 처벌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는 그저 그들이 편리할 때만 신봉하며 사용하는 통제 수단일 뿐이라고 제임스는 말한다.

 

헉과 제임스는 같이 자유를 찾아 떠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제임스가 헉을 떠나지 않는다. 오로지 절체절명의 생존 자체가 목표인 제임스를 위해 헉은 여기서도 계속 거짓과 속임수를 사용한다. 가장 좋은 친구 사이인 그들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백인과 유색 인종의 경계적 인물인 헉은 보다 더 성숙한 노예해방론자가 되어 있다.

 

이 책은 가독성이 좋다. 원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재해석도 성공적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억지스러움과 황당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퍼시벌 에버렛 작가는 그런 모험적인 시도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불평등은 잘못된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사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엔 수만 가지의 법과 철학, 사상이 동원되어야 한다. 다만 떠나고 투쟁하며 쟁취하기 위한 기본이 읽고 쓰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한 노예의 죽음으로 얻은 몽당연필과 훔친 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중인물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은 다름 아닌 미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이다(p.650, 작품 해설 중에서)‘ 이러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미국 정신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여전히 유효한가?

 

[믿음은 진실과 아무 관련도 없어. 좋을 대로 믿으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 백인 소년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어도, 어쨌든 백인 소년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 어느 쪽이든 달라지는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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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26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니 빠진 허크 씩씩한 소년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 저 멀리 증기선이 부웅~ 붕........
허클베리 핀 만화영화 주제곡은 아직도 기억나네요.

제임스는 영화의 스핀오프를 떠올리게 하네요. 독립적이지 않은, 시점 전환된 스핀오프 느낌이랄까요. 흥미로운 소설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6-02-26 21:00   좋아요 0 | URL
제가 위의 글에도 썼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어요.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 했어요. 소설 제임스 덕분이었어요.
이 작품이 스핀오프 맞는데, 심하게 전환된 면도 있어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잘 만들어 진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6-02-26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심장이 쫄깃할 때도 제법 있었구요. 제임스가 말 똑바로 할 때 좀 통쾌했어요. 근데 진짜 그 백인들은 흑인들이 짐승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페넬로페 2026-02-26 23:1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좋았어요.
마크 트웨인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세밀하게 잘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아유, 그럼요.
백인들이 흑인에게 가했던 폭력은 정말 우리가 상상도 못할 것들이 수두룩 할거예요.

감은빛 2026-02-27 0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핀오프 라는 개념은 주로 미국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봤었는데, 문학 작품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고, 또 상을 받고 유명해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이 책을 읽기 위해 마크 트웨인의 두 소설을 먼저 읽으신 페넬로페님 대단하세요. 덕분에 제가 읽었던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에 대해 한참 기억을 떠올려봤는데, 어릴 때여서 별로 생각나는 장면이 없네요.

페넬로페 2026-02-27 08:12   좋아요 0 | URL
어릴 때 동화로 재미있게 읽은 이 소설들에 제가 기억하지 못한 다른 내용들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몰랐어요. 그 시대 미국 남부의 모습이 저랬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제임스 읽으면서 백인이 가한 흑인 노예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다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yamoo 2026-02-27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합니다~~^^

페넬로페 2026-02-27 11: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6-02-27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톰 소여의 모험 만화 영화 엄청 좋아했었는데 저도 떠올려보면 톰이 벌을 받아서인가? 담장에 페인트 칠을 하던 장면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리고 허클베리 핀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도 떠올라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핀을 싫어해서 나도 어린 맘에 세뇌를 당했던 듯도 하고…부랑자같은 모양새도 좀 그랬었고..ㅋㅋ
근데 책을 읽어보면 그동안의 편견을 확 깨버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안그래도 며칠 전 아기공룡 둘리 이야기를 우연찮케 유튜브로 보다가 고길동 아저씨에 대한 편견을 깨게 되었어요. 어릴 땐 고길동 아저씨 엄청 못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봤었거든요. 근데 둘리 일당들이 엄청난 말썽꾸러기들이더라는…
암튼 이 책은 인종 차별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겠군요.

페넬로페 2026-02-27 19:03   좋아요 1 | URL
그때는 어린 마음에 폴리 이모가 톰을 구박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모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ㅎㅎ
허클베리는 이번에 제대로 읽었는데 이 소설에 이렇게나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어요.
둘리 이야기도 새롭게 들려요. 저도 고길동 아저씨가 너무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임스 읽어보니 그 시절 흑인 노예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겠더라고요.

마힐 2026-03-0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톰이 짐을 구출하기 위해 온갖 기발난 상상과 복잡한 연출로 작전을 꾸몄다면, 허클은 아주 간단히 구출할 수 있음에도 톰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톰이 세계에 의미를 만들려는 인간형이라면 허클은 세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인간형 같았어요. 톰은 사회의 리더나 지도자 같은 역할로 세상을 이끌어가지만 허클은 세상 밖에서 안으로 뛰어들어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이라고 봤어요. 이 두 소년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디지털 시대에도 필요한 인간상이 아닐까 싶어요. 소년을 탄생시킨 마크 트웨인이 그래서 대단한 것 같아요. 전 개인적으로 허클이 너무나 좋았어요.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페넬로페 2026-03-07 22:16   좋아요 1 | URL
톰과 헉에 대한 마힐님의 해석에 공감합니다. 동화로만 접해 단순하게 생각했던 두 소설에 이렇게 엄청난 세계가 있는 줄 몰랐어요. 개구쟁이 톰이 그냥 저냥 살아갈 줄 알았는데 전형적 미국의 제도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놀라웠어요. 그리고 헉의 선택이 주는 의미도 대단했고요. 그 시대 미국과 노예 제도도 다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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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로 되돌아간다. 굳어지고 완고해진, 온전하지 못한 기억 속에서 성기고 희미해진 빛을 따라 움직인다. 기억의 숲에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오래된 빛은 나를 왜곡되거나 잘못된, 또는 혼란스러운 길로 안내한다. 설령 확실하게 다가오는 몇 안 되는 지나간 인생의 밝은 빛조차 완벽하게 재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식으로 해석되고 비틀어진 그 기억들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두고 무슨 단어로 그 느낌들을 생생하고도 자세히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 존 밴빌은 제목 그대로 <Ancient Light>를 따라 한 남자의 50년 전과 10년 전의 과거, 현재를 오가며 집요하게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준다. ’알렉산더 클리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그의 15세 때의 몇 달에 대해-‘머나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우글거리고 대개는 그게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p.14)’-서술한다. 매 페이지마다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했지만, 하이픈으로 연결된 부연설명이 가득한 삽입구가 읽기를 방해했다. 마치 영어 독해를 할 때, 주어 찾기의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기억의 파편 조각들을 짜 맞춰 연결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작가는 그런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거의 끝부분까지 힘들게 따라가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를 했고, 결국 나에게 감동과 여운, 무수한 생각을 하게 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50년 전, 15세의 소년 앨릭스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봄바람에 치마가 뒤집어져 팬티가 노출된 어떤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처음엔 그를 향해 하늘에서 곧장 덮쳐 내려오는 듯한 여신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의 엄마 같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것이 앨릭스와 가장 친한 친구인 빌리 그레이의 엄마인 미시즈 그레이(실리아 그레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 빌리의 집에서, 거울 속에 자신의 나신을 비추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을 또 다른 거울을 통해 엿 본 그는 그녀를 향한 수줍지만 은밀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욕망하지만, 사실 그 대상이 늘 배경에 불과한, 무슨 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의 모습이기도 한 미시즈 그레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친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이 한 사춘기 소년의 성을 자극했고 그는 어떤 다른 여자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테니스 클럽에서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미시즈 그레이는 소년을 차에 태우고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 이렇게 질문한다.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p.61)” 이 말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왜 미시즈 그레이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아들의 친구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소설의 끝에 그 당시 미시즈 그레이의 사정이 조금 밝혀지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관계에 대한 비판이나 도덕적 심판이 아니었다. 계속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드는 의문점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의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한 번의 일탈로 거침없이 시작된 육욕의 향연이었는지, 그 일탈이 소년에게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미안함의 책임이었는지, 답답한 시골구석에 갇혀 사는 중년 여자의 몸부림이었는지.....결국 이 모든 것이 노년이 된 알렉산더의 회상이기에 그 역시 추측과 자신의 생각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알렉산더와 미시즈 그레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10년 전 임신한 채 자살한 알렉산더의 딸 캐스로 인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아내 리디아의 현재의 모습. 또한 악셀 판더(문인, 비평가, 교사)‘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알렉산더와 그의 상대배우인 돈 데번포트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사원인 빌리 스트라이커의 인생에 대해서도 나이 든 알렉산더는 관심을 갖는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날 하루를 감당하며살아간다. 각자 견디며 살아내야 한다. 늙어버린 알렉산더 역시 아픔과 회한을 가진 채 하루를 감당하지만 지나온 세월이 준 쓰라림을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순명으로 승화시킨다. 딸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밤새 광증에 시달린 아내 리디아를 진정시키고 힘들어 둘이 침대에 누웠을 때, 커튼 사이의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빛이 들어와 마치 카메라 옵스쿠라의 형태로 보이는 바깥세상의 이미지는 아름다웠다. 새벽빛에 비친 선명하게 뒤집힌 세상의 모습에서 이 세상에 완벽하게 슬픈 것도, 온전히 기쁜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 오래된 빛에는 몇 개의 단편 소설로 출간해도 좋을 풍성한 내용들이 서로 교차되며 서술된다. 매 페이지마다 단편 소설 하나가 들어있다고 느낄 정도로 생각할 것이 많았다. 단어 하나마다에 들어있는 비유도 좋았다. 구절구절 멈추어, 작가 존 밴빌, 아니 소년 앨릭스 그리고 노년이 된 알렉산더와 얘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고 공감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 많은 아름다운 문장의 감상을 표현하기 어려워 책을 들고 카페에 간 날이 많았다.

 

산책길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햇빛에 완전히 노출된 사진보다 빛이 살짝 들어간 사진이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세상 모든 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없듯, 노년에서 바라 본 과거는 전체적인 난파 속에서 건져 낸 무작위적인 표류물(p.14)’일 뿐이다. 그것들로 고해성사를 하든, 미숙함에 대한 어리석음을 인정하든, 지나온 인생의 여정은 그 어떤 것이라도 슬프고 아름답다. 여전히 모호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삶의 전진적인 난파에 부표가 되어주기엔 충분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여러 우주가 있고 그것이 모두 함께 존재하며 모두 동시에 진행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키티의 낙원의 평원과 마찬가지로, 이 무한한 층이 있고, 무한히 가지를 뻗는 현실 안 어딘가에서도 캐스는 죽지 않았고, 그애의 아이가 태어났고, 스미드리가일로프는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는 또 미시즈 그레이가 살아남았고,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젊고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듯이. 어떤 영원한 영역을 믿어야 할까.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나의 모든 죽은 자는 어차피 나에게 다 살아 있고 나에게 과거란 영원히 빛나는 현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다 살아 있지만 사라졌다. 이렇게 말들로 이루어진 연약한 내세에만 있을 뿐.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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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26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이란 빛처럼 한 순간에 왔다가 사라지거나, 또 잠시 길게 남아 있기도 하네요.
올려주신 리뷰글을 읽으니 소설의 이미지가 빛처럼 다가 왔네요. ^^
항상 좋은 책, 좋은 리뷰에 감사드리며,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좋은 글을 말의 등에 태운 것처럼 올려 주세요. ㅎㅎ
감사 합니다.

페넬로페 2026-02-26 11:09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제목처럼 빛의 이미지가 많아요. 어떤 삶을 살았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빛의 이미지로 다가올 것 같아요.
요즘은 과거를 회고하는 글이 그 어떤 내용이라도 좋아요.
삶의 관조와 여운, 씁쓸함이 느껴져 그런가봐요.
항상 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힐님께서도 올 한해 건강하게 보내시고 언제나 타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레삭매냐 2026-03-02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다 말았는데...

도서관에 가서 다시 빌려다
마저 읽어야지 싶습니다.

존 밴빌의 다른 소설인
<블루 기타>의 국내 출간
을 기대해 봅니다.

페넬로페 2026-03-02 18:35   좋아요 1 | URL
읽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전체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저는 존 밴빌의 ‘바다‘를 조만간 읽고 싶어요.
 
부다페스트 - 화려한 영광과 찬란한 시련의 헝가리 역사
빅터 세베스티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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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을 읽기 위해 읽은 책.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격동의 역사를 서술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읽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집약적이고 흥미로운 구성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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