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모틸론 풀리 워시드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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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커피 특유의 묵직함과 함께 은은하게 감지되는 신맛이 있어 좋다. 다크초콜릿같은 진한 원두 색깔에 살짝 긴장했지만 의외로 부드럽다. 콜롬비아 커피중 베스트다. 가을에 어울리는 따뜻한 커피로도, 얼죽아들의 커피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커피 한 잔으로도 가을엔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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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10-0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콜롬비아 커피 중 베스트 ㄷㄷㄷ 저 콜롬비아 커피 매력을 몰랐다가 비교적 최근 들어 알게 된 일인입니다 ㅋㅋㅋ 페넬로페님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10-03 11:39   좋아요 1 | URL
보통 콜롬비아 커피가 그냥 직진하는 진한 맛인데 이 커피엔 여러 맛이 담겨있어 좋았어요.
긴 추석 연휴네요
서곡님
추석 연휴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한가위 보름달같은 행운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레오 아프리카누스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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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역사 안에서 한 인간의 삶과 정체성이 온전히, 자의적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각자 앞에는 양자택일의 선택지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에 의해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무조건 살아남고 가족을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서 란 존재는 없어진다. 종교, 관습, 조국은 한 개인을 죽이기도, 배반하게도 만든다. 사랑과 연민은 욕망과 권력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이 알하산 이븐 무함마드 알와잔 알파시 알자야티에서 조반니 레오 데 메디치로 바뀐, ‘레오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인 레오)’로 불리는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이 남자가 부딪혀야할 변화무쌍한 역사는 곧바로 그의 것이 되어버린다. 온 몸으로 역사가 원하는 대로 삶을 바꿔야만 살 수 있다. 그에게는 어느 것 하나 비껴가는 일이 없고, 요행과 불운, 행운이 따른다. 그리고 용케 끝까지 존재한다.

 

8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 1469년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의 결혼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 있는 모든 가톨릭 왕국을 통합하는 계기가 된다.(p.32) 아라곤과 카스티야는 1480년부터 연합하여 그라나다를 공격했고, 1492년 마지막으로 그라나다의 이슬람 세력을 축출했다. 이 책에는 크리스토발 콜론(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 등장한다. 그는 계속해서 이사벨 여왕과 만나기를 원했고 여왕의 구미가 당기게 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1492년도가 흥미롭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에 그라나다의 이슬람세력은 가톨릭 세력에 의해 영원히 추방된다.

 

이 책은 1488년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라마단 시기에 무함마드의 아들 하산이 할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산이 태어난 때, 이미 그라나다는 흔들리고 있었다. 가톨릭 국가의 침입과 동시에 이슬람 세력 내에서도 7년째 내전을 이어오고 있었다. 어느 세계든 망하기 직전에는 상황이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정말 거기서 거기에 불과하다. 사기열전의 내용을 거의 답습한다.

 

술탄은 후궁, 그것도 기독교도 귀족 가문 출신의 노예에게 반하여 조강지처인 왕비와 아들들을 감금한다. 왕비는 아들을 탈출시켜 아버지 왕을 죽이게 만든다. 술탄이 된 왕자는 향락과 쾌락에 빠져 국사를 등한시하고 측근들은 수탈로 재산을 축적한다. 군인들은 봉급을 받지 못한다. ‘평화를 원하는 파전쟁을 원하는 파로 나라는 분열된다. 왕위 문제로 세 번이나 내전을 벌여 자멸한다. 가톨릭 연합군에 의해 그라나다는 고립되어 기근과 불안에 휩싸인다.

 

1492년 술탄 보아브딜은 카스티야-아라곤 연합군에 항복한다는 그라나다 조약에 서명한다. 그라나다의 몰락으로 알람브라 궁전을 가톨릭의 왕들에게 내주고 수많은 궤와 천으로 싼 물건들을 실은 말과 노새와 함께 술탄 보아브딜은 떠난다. 비참한 신세로 떠나는 보아브딜이 그라나다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는 순간에 거기서 눈물을 글썽이며 한참을 망연히 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카스티야 사람들은 실각한 술탄이 거기서 치욕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그 언덕배기를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이라고 불렀다.(p89)

 

몇 년 후, 하산 가족은 알메리아 항구에서 북아프리카의 페스로 몰락한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다. 그 뒤 하산은 페스에서 카이로로, 다시 로마로 여정을 떠나야 했으며 그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외교관인 외삼촌을 따라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으며, 외교관, 사업가, 여행가로 활동했지만, 메카에서 튀니지로 돌아가던 중에 해적에게 납치되어 로마로 보내진다. 로마에서 교황 레오 10세의 눈에 들어 가톨릭으로 개종해 레오 아프리카누스라는 세례명을 받는다. 하산은 그 긴 여정을 기록한 아프리카 지리지라는 연대기를 쓴다.

 

레바논 사람인 작가 아민 말루프는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1976년 프랑스로 귀화했고 프랑스어로 소설을 집필한다.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저자의 첫 작품이다. 이 책에는 1488년부터 1527년까지의 하산이 지나온 곳의 역사가 치밀하고도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다. 레오 아프리카누스 말고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실존했던 인물들과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이 소설을 썼을지 짐작이 간다. 정말 대단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하산이지만,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종교, 국가, 관습, 사회, 문화, 인종이 다른 집단이 서로 뒤얽히는 상황에서, 죽고 죽이며, 정복하고 빼앗기는 과정에서, 하루를 버티며 살아내야 했던 그 무수한 사람들의 삶엔 각각 특별한 거대한 운명적 서사가 있었을 것이다. 한 발짝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부질없고 비합리적이지만, 태풍의 눈 안에서는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먼저 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정작 신의 뜻을 따르지는 않는 인간들의 모습도 아이러니다.

 

이 책은 소설인데도 한 권의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이슬람지역에서 사용하는 여러 용어를 비롯해 소설의 내용에 나오는 지역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좋았다. 다만 너무 많은 역사적 내용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묘하게 힘을 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모든 것이 산화되는 기분이 들어 아쉬웠다. 별로 여운이 남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아민 말루프 작가와 비슷한 운명을 가졌던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과 비교되었다잔지바르가 혁명으로 인해 탄자니아의 일부로 편입되어 이슬람 박해가 심해지자 그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영어로 글을 쓰는 구르나 작가 역시 자신의 뿌리인 동아프리카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다. 개인적으로 구르나 작가의 작품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한 경험의 일부에 지나지 않거늘. 나는 창조주께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창조주께서 내게 빌려주신 시간. 나는 그 시간의 40년을 여행길에서 보냈다. 로마에서는 지혜로운 세월을 보냈고, 카이로에서는 열정적인 세월을 보냈고, 페스에서는 불안의 세월을 보냈고, 그라나다에서는 그저 순수한 세월을 보냈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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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9-27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바람돌이님 서재에서 본 책인데 ㅋ 저도 보관함에 넣어놨어요~!! 이슬람 문화가 좀 생소하긴 해서 어려운데 묘하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페넬로페 2025-09-27 15:02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바람돌이님의 소개로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어 좋았어요. 그냥 역사책으로 읽는 것 보다 소설로 읽으니 훨씬 더 쉽게 다가왔어요^^

레삭매냐 2025-09-27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만난
책이었는데... 산화된다는 느낌
에 아주 공감합니다.

16세기판 <포레스트 검프>라
고 해야 할까요.

여러 제국들이 흥하고 망하는
역사적 순간들에 그렇게 개입
할 수 있었는지 말이죠.

페넬로페 2025-09-27 19:06   좋아요 1 | URL
정말 포레스트 검프 같았어요. 역사적인 상황이 엄청 흥미있었는데, 그래도 이 작품이 소설이라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동을 기대했었는데 그 부분에서 조금 아쉬웠어요. 그럼에도 잘 짜인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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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24) 12월 초, 작가(황정은)는 여전히 글을 썼다. 직업이 소설가이기에 당연히 글을 써야 했을 것이다. 세면대 밸브에서 물이 세는 것을 발견해 기술자에게 전화도 했다. 나는 기껏해야 2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임종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체로 복잡하고 버거운 일상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123,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나서 책을 읽고 있었다. 딸아이가 와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인스타가 난리라고 했다. 아직 귀가하지 않고 있던 남편에게 빨리 집에 오라고 전화를 했다. 제일 먼저 서울 시내를 줄지어 지나가는 탱크가 연상되었다.

 

계엄이라고?’

명동에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시스템이 잘 되어있으며, 인터넷 강국인 21세기 대한민국에 계엄이라고? 왜 무엇 때문에? 기가 차고 뜬금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대통령이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깡그리 잡아넣어 다 제거하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계엄을 선포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엄마는 126일 새벽에 돌아가셨다. 127일 국회에서 김건희 특별법, 윤석열 탄핵안에 대한 표결을 한다고 했다. 남편은 계속 그쪽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자주 방 안으로 들어가 TV를 보는 눈치였다. ‘장모와 엄마라는 한 다리 건너의 차이라 그런 것인가?’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만약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내 마음도 남편의 마음과 다를 것이라 생각되어 그를 이해했다.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픈 마음에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이 추가되었다.

 

그곳에서 이재명이 싫어 윤석열에게 투표한 큰 언니도, 이재명은 싫지만 윤석열에게는 투표하지 않았다는 오빠도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의 열렬한 추종자인 남편과 둘째 언니는 당연히 분노를 표출했다. 모두 왜 그랬어야 했는지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면 계엄은 사람들을 납득시키는데 실패한 것이었다.

 

 

작가 황정은은 123일부터 38일 윤석열 석방까지 일기 형식으로 계엄의 시작과 진행 과정, 자신의 느낌을 적어나간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시간에 따라 체계적으로 복기할 수 있었다. 문장의 많은 부분에서 내 생각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단순한 나의 생각에 보태진, 작가의 짧지만 깊은 문장으로 의미와 느낌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계속 화가 났지만 집 안에서만 머문 나에 비해 추운 날임에도 매번 집회에 참석해 힘을 보탠 작가가 대단해보였다.

 

이 책에는 계엄에 관련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나 사회 약자, 이미 국가권력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작가의 일상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단편과 장편 소설을 쓰고, 몸이 아프고, 산책을 하고, 자매들과 밥을 먹기도 한다. 작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읽고 있는 책의 제목도 있다. 항상 남이 읽는, 특히 작가가 읽는 책이 궁금하기에 그 부분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책들을 인터넷 서점과 밀리의 서재에서 검색해 담아 두기도 했다. 그 사이 무안 공항 제주 항공기 사고와 큰 산불이 일어났고, 강동구 싱크홀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습격이라는 끔찍한 일이 자행되었다.

 

 

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조지 오웰의 글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동력 중 하나로 역사적 충동을 들고, 이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라고 규정했다. 우리 시대의 작가들에게서 이런 충동이 희귀해졌다. 그것은 역사학이 할 일 아니냐고? 역사는 세상의 길에서도 흐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도 흐른다. 그 마음의 역사를, 소설가가 아니라면 누가 기록할 것인가.

-P.128,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나는 우리 시대의 작가에게 그런 충동이 희귀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쟁이들은 역사와 사회에 무심할 수 없다. 쓰고 싶은 충동이 강한 사람들이라 안 쓰고는 못 배길 것이다. 요즘 작가가 가져다 쓸 수 있는 거시적 서사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적은 것은 사실이다. 빈약하기에 그리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 시국에 그에 관련된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오히려 독자들이 또 그 얘기냐고!’하며 이젠 지겹고 식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은 밋밋하고 재미없다고도 한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외국작가의 작품에 이런 평가는 드물다.

 

소재가 빈약하고 글의 세계를 위협하는 다양한 매체가 많아 작가들에게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젊은 작가들이 조지 오웰과 신형철 평론가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속에도 흐른다는 말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전쟁이 아니어도, 홀로코스트가 아니어도, 식민지의 백성이 아니어도 지금 우리나라 역사의 한 장면 장면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반복해서 써주면 우리는 계속 잊지 않고 각성할 것이다. 계엄에 대해 황정은 작가가 물꼬를 터주어 고맙다.

 

한편으로, 지구상에 각종 폭력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평화로운 지금의 대한민국이 너무 좋다. 빠르게 발전해가고 편리해진 세상에 사는 행운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 하나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신경 주사로 통증을 빨리 낫게 하고 약을 먹을 수 있어 고맙다. 급하게 필요한 것을 다음 날 새벽에 집 앞으로 바로 갖다 주시는 택배 기사님들에 너무나 감사하다.

 

그들이 있기에 나의 일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먼저 국민의 일상이 평화롭게 지속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 권력과 정치가 제발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위협받지 않고 지켜지는 사회가 가장 절실하다. 절실함을 이해하고 해결해주는 것이 대통령이 할 첫 번째 일일 것이다.

 

[화가 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속이 뒤집힌다. 남의 삶을 조금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 목숨을 이런저런 전선으로 내모는 계획을 세우면서, 사람을 납치해 고문하고 없애라 명령하면서, 수많은 목숨이며 삶을 전쟁에 쓸어 넣을 계획을 세우면서, 그 머리와 가슴에 사람이 없을 수 있을까. 자신 말고 누구도 피 흘리는 생명체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는 그게 될 것이다. 타인의 삶과 고통에 닿는 감각이 발달하지 않는 삶, 그럴 의지도 없는 마음으로는 그럴 수 있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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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9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작가의 남의 삶을 아낄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콱 와닿았어요. 나쁜 놈이라는 말보다 더 실감나는.... 일상의 소중함은 그것이 없어졌을 때 절실한데 그 일상을 잃고싶지 않아요.

페넬로페 2025-09-19 13:45   좋아요 1 | URL
이 책에 들어 있는 많은 문장들이 제 마음을 콕 집어 표현해주는 것 같아 좋았어요.
우리 모두의 일상이 편안하고 잘 돌아가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예요^^

책읽는나무 2025-09-20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 겨울. 아빠가 돌아가셔 애도하느라 비상 계엄 저 기간동안 마음이 좀 복잡했었어요. 뉴스를 보면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 분노가 일긴 한데…겉으론 애써 표출이 안 되니…집회 나간다는 친구를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었고, 친구의 어떤 말 한 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했었죠. 봄이 될동안 계속 슬프고 불안하고 암울했었네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슬픔이 밀려오고 또 부끄러움도 밀려 오고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서서히 잊어 가며 일상을 살고 있기에 페넬로페 님의 말씀처럼 역사의 한 장면을 자꾸 써줘야 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요즘 읽고 있는 소설 곳곳에 팬데믹 상황이 언급되는 걸 봤었는데 잊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려주며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게 있더라구요. 하물며 비상 계엄 같은 역사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이 책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아, 나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지! 또 상기하게 되었고. 또 한 편으로는 작가 견해의 문장을 통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좋았어요.

페넬로페 2025-09-20 12:09   좋아요 0 | URL
그때의 상황이 저와 책나무님이 비슷했기에 그 마음 잘 압니다. 마음이 공허했기에 계엄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조금 떨어져 봤었던 것 같아요. 무력감도 있었고요. 아무리 해도 저 권력 가진 자들이 하는 나쁜 짓들을 막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지금도 계속 버티고 있는 걸 보니 기가 차지만 그래도 정권이 바뀌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이 제 생각을 잘 대변해주어 좋았어요.
근데 전 아직도 엄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아요.

그레이스 2025-09-22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아직도 내란이 안끝났다는 사실! 저는 아직도 불안합니다.ㅠㅠ

페넬로페 2025-09-23 05:40   좋아요 2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으로 본 건, 어릴 때 TV에서 방영한 주말 영화프로그램이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였다. 그 영화에는 지금도 레전드로 꼽히는 유명한 사운드 트랙과 장면이 있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흘러나오며 폴 뉴먼과 캐서린 로스가 자전거를 타는 씬이다. 나 역시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음악과 영상이 너무 좋았지만, 그때부터 난 폴 뉴먼이 아닌 로버트 레드포드의 팬이 되어버렸다. 보는 순간 그냥 처음부터 이 배우에 홀딱 빠져버렸다. 느끼하지 않게 잘 생긴 것이 매력 있었고, 그리 정열적이지도, 과하지 않은 담백한 연기도 좋았다.

 

그 뒤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영화는 거의 본 것 같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출연한 추억과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역할이 너무 차갑고 이기적인 것 같아 마음에 조금 들지 않았지만, 이 배우를 탓할 수는 없었다. ‘추억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사운드 트랙과 영상 역시 내 인생영화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더 좋았던 점은 그가 배우로만 머물지 않고 감독과 영화 제작자, 그리고 저예산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선댄스 영화제를 설립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전공한 딸아이는 올 초 미국 유타주의 파크시티에서 열린 ‘2025 선댄스 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 다녀왔다. 혼자 짐을 꾸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되어 반대하기도 했지만, 내 말을 들을 아이가 아니었다. 비록 자비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갔지만, 무료로 제공되는 훌륭한 숙소와 여러 인종과 나이가 섞여있는 다양하고 친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딸아이는 좋은 영화도 많이 보고 우정도 쌓고 왔다. 그 경험이 플러스가 되었는지 딸아이는 올해 계속해서 한국의 여러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다. 오늘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다.

 

너무나 더웠던 올 여름의 무더위도 어느새 물러나고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늘 세월은 흐르고 세상이 변하지만 아직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 번씩 적잖은 우울과 마음의 허전함을 겪는다. 누군가를 보낼 땐 매번 힘들다.


주말에 자주 같이 영화를 봤던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이다.


-사진출처:네이버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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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9-17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르는 강물처럼>에 그가 나왔나 싶어 찾아보니 감독이었군요.

페넬로페 2025-09-17 20:27   좋아요 0 | URL
감독으로도 성공을 거둔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감독상도 수상했고요^^

다락방 2025-09-17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쩐지 흐르는 강물처럼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페넬로페 2025-09-17 20:28   좋아요 0 | URL
<흐르는 강물처럼>도 정말 레전드죠^^

바람돌이 2025-09-18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을 향해 쏴라하고 스팅
여기서도 연식이 드러나는군요. ㅎㅎ 제게는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졌던 배우입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시기를.....

페넬로페 2025-09-18 23:07   좋아요 1 | URL
저도 연식이 많이 된 사람임이 확실해요 ㅎㅎ 할리우드 키드로서 미국 영화를 엄청 본 것 같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배우는 정말 나이 들수록 멋있었어요. 자기 목소리도 확실히 내었고요^^
 













샬럿 브론테의 소설 빌레뜨는 비극에 가깝다. 고대 그리스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장중하거나 극적이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성이 겪는 은근하고도 끈질긴 힘듦과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노동계급보다 아래인 이급 시민으로 취급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으로서, 특히 부모님은 물론 후견인 한 명 없이 홀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야하는 여성의 여정은 당연히 위태롭고 벅찰 것이다. 작가 샬럿 브론테는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조실부모하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 루시 스노우를 통해 그런 환경에 처해진 여성의 삶을 자세하고도 절절히 묘사한다.

 

작가는 지나치게 세밀하고 자세한 문장을 통해, ‘루시 스노우의 생각이나 행동을 말해준다. 제인 에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샬롯 브론테는 여성도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시대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스스로 이루기 위해 매번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사랑일지라도 자신이 넘볼 수 없는 곳은 절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언제나 감정보다는 이성을 통해 자신을 지키려는 인내심은 보통 사람이면 갖기 힘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층계급이 아닌 여성이 생계수단을 획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가정교사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심리적인 면에서는 일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유모나 하녀의 일까지 겸해서 해야 했으며, 또한 고용주의 다른 피고용인들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 때문에 고립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작품 해설 중에서]

 

이 힘든 것을 묵묵히 견디는 루시 스노우지만 한 번씩 그녀에게 엄습하는 우울과 외로움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정신적 고통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은 주저앉거나 광기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샬럿 브론테는 역시나 이 소설에서도 그것을 극복해내는 또 한 명의 강인한 영국 여성을 만들어낸다. 소설 빌레뜨는 루시 스노우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결국 뽈 에마뉘엘이라는 남자가 만들어 준 것이며, 뒤늦게 찾아 온 유산을 받아서이다. 아무리 의지와 행동이 이성적이고 단단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도 보여준다.

 

작가 샬럿 브론테는 동생 에밀리와 함께 1842년 벨기에의 브뤼셀에 위치한 에제 부인의 기숙학교에서 학생이자 영어 교사로 생활한다. 그곳에서 프랑스어를 배워 하워스에 학교를 차릴 목적이었다. 소설 빌레뜨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여러 면에 걸쳐 상상도 하지 못할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샬럿은 또한 에제 교수에게 연정을 느낀다. 뽈 에마뉘엘은 에제 교수가 모델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느낀, 작가가 이해 못한 것들은 이 소설에 그대로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지나치게 장황하고 세세한 묘사로 많이 지루했다. 다만 문장의 표현만큼은 기막혔다. 적절한 상징과 비유가 뛰어났고, ‘루시 스노우로 빙의한 샬럿 브론테의 지혜와 위트, 귀여움이 너무 좋았다.

 

[‘이성에 따르면, 나는 빵조각이나 벌려고 일하며 죽음의 고통을 기다리면서 평생 낙담한 채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이성이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이성을 무시하고 이성의 채찍을 벗어나 상상에게 달려가서 빈둥대지 않는가. 밝고 부드러운, 이성의 적이자 우리의 상냥한 구원자이며, 신성한 희망상상에게 말이다. 끔찍한 복수가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따금 한계를 넘어서기도 하며, 또 그래야 한다. ‘이성은 악마처럼 복수한다. ‘이성은 늘 계모처럼 내게 독기를 품고 대했다. 내가 이성을 따르는 것은 애정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이성은 겨울밤 차가운 눈 위로 자주 나를 내쫒으면서 개들이 갉아먹다 버린 뼈다귀나 먹으라며 던져주었다. 자기 창고에는 내가 먹을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 더 나은 음식을 요구할 권리가 내겐 없다고 모질게 굴면서

-빌레뜨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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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9-17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수>에도 벨기에 사람들을 폄하하는 이야기들이 꽤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빌레뜨>는 그 뒤에 읽었는데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 같네요.. ^^;

페넬로페 2025-09-17 00:55   좋아요 1 | URL
<빌레뜨>에 엄청 그런 내용이 많았어요. 물론 작가가 경험한 것들을 서술했겠지만, 영국인의 우월주의가 많이 들어 있더라고요.
<교수>는 괜찮나요?
<셜리>는 빌레뜨보다는 제 취향인 것 같더라고요^^

건수하 2025-09-17 10:23   좋아요 1 | URL
<교수>는 초기작이라 좀 거칠고 여성도 별로 진취적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재미있지도 않았어요.. ^^
저는 <셜리>를 아직 안 읽었는데, 조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5-09-17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레뜨는 장황하죠. 그래서 사실 저도 좀 읽기 힘들었어요. 뭔가 딱 이거다 하는 임팩트가 없었던.... 하지만 제인 에어가 이래서 나올수 있었구나 하는 마음을 줬어요. 그것만으로도 제인 에어의 팬으로서 감사하답니다. ^^

페넬로페 2025-09-17 15:13   좋아요 1 | URL
네, 끝까지 맥락과 임팩트가 부족해서 읽기가 지루했어요. 제인 에어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어요.

책읽는나무 2025-09-17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책표지가 다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책표지가 넘 예뻐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좀 대충 읽고 넘어갔었는데…문체가 몇 군데 끌던 곳이 있었어서…꼭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지. 찜해두긴 했는데 언제 읽을지?….

페넬로페 2025-09-18 08:38   좋아요 1 | URL
책표지가 예쁜데 뭔가 내용과 잘 맞지 않는 느낌도 들었어요. 소설이 너무 장황해 읽기가 지루하기도 ㅎㅎ
책나무님, 굳이 재독까지는~~

새파랑 2025-09-18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론테 전문가 페넬로페님~! 제인에어에 이은 읽기군요. 이 책은 잘 안읽히나 봅니다. 저는 표지가 예뻐서 구매후 초반부만 조금 읽다가 포기했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5-09-18 19:02   좋아요 1 | URL
너무 안 읽혀 조금 힘들었어요. 샬럿 브론테 작품의 주제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표지는 넘 예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