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사탄탱고는 소설이지만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듯했다.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황량함만 있는, 해체된 집단농장 마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최소한의 온기도 없었다. 생산적인 것과 물리적 육체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떠나지 못하는 자들에게 필수적인 알코올과 상실, 경멸, 의심, 비천한 성욕만 있을 뿐이었다. 이 어둠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너무나 잘 부각시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소설은 어떤 계절에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 한겨울에 읽은 사탄탱고는 나에게 한없는 우울감을 주었다. 읽는 내내 힘들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는 가을비와 그로 인해 질척거리고 악취 나는 진흙바다(p.13)’를 마치 내가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망 없음의 허무를 술로 달래는 마을 사람들의 취기역시 늪 같았고, 가난하면 특히 더 열악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어린 소녀들의 하루에 마음이 아팠다.

 

 

이 소설은 1부와 2부와 구성되어 있는데, 2부는 거꾸로 진행되어 결국 소설의 처음과 끝은 똑같은 장면과 문장으로 만난다. ‘원이 닫히며 그 안의 인간들은 영원의 원속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 원을 그리며 결코 구원되지 못할 구원을 바라고 있다. 라슬로가 인용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구절처럼 역설적이다.

 

1980년대 헝가리 집단농장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가는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을 바란다. 소설 전반에 걸쳐 들리는 종소리는 그런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소성당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전쟁으로 종탑마저 무너져 종이 울릴 리 없는데도, 들리는 종소리는 구원을 바라는 그들 마음의 바람이다. 나중에 밝혀진 터무니없는 종소리의 실체는 무의미한 구원의 바람에 대한 뒤늦은 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마을을 떠나야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결단을 내지 못한다. 서로 돈으로 얽혀 있고, 공산주의 사회 특성상 항상 감시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이리미아시는 사실 사기꾼이며 공산당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이리미아시는 권력 앞에서는 약자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희망을 주는 구세주 같은 사람으로 군림한다.

 

[그자들은 여전히 더러운 의자에 주저앉아 저녁마다 감자 요리나 먹으면서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의아해하고 있을걸. 의심에 가득 차 서로를 감시하고 조용한 방에서 큰 소리로 트림이나 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끝도 없이 기다리다가, 누군가 자기들을 속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겠지.....그자들은 옛날 성에서 시중을 들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주인 잃은 노예들인 주제에 명예와 자부심과 용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들 하지. 둔한 마음 깊은 곳에선 저런 덕목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하고 있겠지만 말이야. -p.71]

 

이렇게 마을 사람들을 대하는 이리미아시는 그들이 가진 마지막 돈을 갈취하고자 마을로 돌아온다. 이리미아시는 마을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다만 이리미아시의 조언으로 한 번 돈을 벌게 된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이리미아시를 그들과 다른 존재로 생각한다. 극도의 가난과 계속되는 좌절, 권력으로부터의 심한 감시는 사람들을 수동적이 되게 하며 어긋난 믿음을 갖게 만든다.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다는 것을 아는 이리미아시는 그들을 선동한다. 선동은 생각이 확고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자기 스스로 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인식한 이리미아시는 사람들을 선동하며 그들이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따를 것임을 확신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으며, 그것은 자신의 주체와 자유를 사탄에게 양도한 것과 마찬가지다.

 

마을의 의사는 지식인이며 생활에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다. 의사만이 오늘 하루를 살 걱정이 아닌 헝가리라는 나라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창밖의 농장을 내다보기 위한 집 안의 최적의 장소에 겨울 외투와 이불을 채워 넣은 의자를 놓아두고 거의 하루 종일 앉아있다.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독서하고 일기를 쓴다. 쉴 새 없이 독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집 안팎이 엉망이 되어 가는데도 의사는 칩거하며 술만 마신다. 의사는 주변의 외적인 몰락에 맞서 자신의 기억력만을 지키고자 한다. 농장이 해체되고 정직된 그 역시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몰락에 맞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스스로 자신을 유폐시킨다. 행동하지 못한 기억의 잔존은 그 어떤 의미도 없다. 전의를 상실한 의사는 무기력하며 투쟁하지 않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이리미아시가 온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며 술집에 모인다. ‘몇 년 동안 계속되어온 비참과 불행에 종지부를 찍을(p.194)’ 생각에 희망이 샘솟는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그들을 구하러 목자가 온다는 소식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마시고 또 마신다. 종소리와 함께 이 소설의 중요한 상징인 거미가 끊임없이 거미줄을 치는 술집에서, 그들은 마시며 탱고를 춘다.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술집의 모든 곳에 달려있는 거미줄에 뒤엉켜 잠시 동안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부분이 소설의 정점이다. 결코 끝나지 않을 그들의 어긋난 희망과 구원은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댄다. 작가는 그것을 불행한 사탄탱고라 이름 붙였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리미아시의 보고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설명해준다. 그것을 하나하나 윗사람이 읽기 쉬운 문장으로 다시 고치는 서기들의 모습에 공산주의의 허상이 드러난다. 라슬로는 망해가는 공산주의를 희화화시키며 헝가리의 미래를 예견한다.

 

라슬로가 사용한 문장은 시종일관 비관적이고 암울하다. 마을 사람들이 궤짝에 짐을 싣고 떠나는 모습, 방앗간에서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는 두 소녀 머리와 율리, 어쩔 수 없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어린 소녀 애슈티케, 곧 죽을 것 같은 의사, 뿔뿔이 흩어져 여전히 힘들게 살 마을 사람들....희망이 없는 곳에 구원 역시 없다는 것을 작가는 단호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상징으로 이루어진 종교적이며 현실적인 암시는 지금 이 시대의 나에게까지 연결된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고 매번 생각하는 나에게 라슬로는 쐐기를 박아주었다.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이 한편의 소설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았고, 그가 시도한 소설작법역시 작가의 의도를 돋보이게 했다. 각 인물의 특징과 존재가 두드러지면서 서사로 잘 연결되었다. 이 소설은 약간 어려웠지만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직관적으로 느끼고 이해시키면서도, 읽고 난 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마음을 무겁게 만든 작가의 문장들이 정말 탁월했다.

 

[그는 지금 굶주리고 얻어맞은 몸이 되어, 느닷없이 나타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앉아 있었다. 갈림길이 나와도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낡은 트럭이 자신의 생을 결정짓는 것을 그는 다만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헤어날 길이 없다.’ 무감각하게 그는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망한 거고, 내일은 또 나를 기다리는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 낯선 방에서 깨어나겠지. 마치 혼자 길을 떠난 것처럼 얼마 되지도 않는 짐들을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놓고서....글쎄, 침대라도 있을까....창가에서 불빛들이 꺼져가는 걸 바라보겠지.

-p.35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6-01-18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스트 울프> 분량이 다른 소설에 비해 얇고, 이 책을 추천한 독서 모임 독자를 위해서 3월 모임 때 읽기로 했어요. <사탄 탱고>와 <라스트 울프>를 읽어봤는데,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애먹었어요. 눈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문장을 쫓아가듯이 읽었는데, 팍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어려웠던 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6-01-18 22:46   좋아요 0 | URL
네, 조금 어려웠어요.
헝가리 역사를 세계사의 흐름에서 약간만 알고 있으니 작가가 사용한 상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직관적으로 의미를 이해했어요. 차차 다른 작품 읽어가며 조금씩 더 알아가리라 생각했어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저는 작품이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