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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읽으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고, 읽고 난 뒤에도 책의 내용에서 받은 복잡한 감정과 여운이 많이 남아 있다. <연수>, <미라와 라라>는 내가 경험한 것과 추구하는 것이 들어있어 생각할 것이 많았고, <라이딩 크루>는 하도 기가 차 소리 내어 웃었으며, <동계올림픽>에선 방송사 인턴인 선진이 너무 짠해 눈물이 나왔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데도 우리는 늘 다른 사람에 비해 뒤쳐져있다고 느낀다. 죽을 만큼 노력하는데도 타고난 머리와 눈부신 외모를 가진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 언제나 돈이 부족해서 허덕이며 살지만, 남들은 비싼 호텔 빙수가 만만한 듯 너도나도 먹어봤다는 사진을 올린다. 순간적 기지와 말발로 넌지시 남을 누르며 자신을 부각시키는 얄미운 사람이 승진도, 결혼도 잘한다. 세상은 용납될 수 없는 불평등과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함으로 가득 차 있어 한번쯤은 망하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잘만 돌아간다. 분명 좋은 성격으로 태어났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마음은 꼬이고 질투가 생기고, 상처투성이로 변해간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연수』에 실린 6개의 단편은 적나라한 삶의 현장에서 힘들게, 인내하며 살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학기만 마치면 졸업을 하게 되는 취준생인 딸아이도 그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장면에선 딸아이가 앞으로 가게 될 세상이 시베리아 벌판 같아 기분이 서늘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표제작인 <연수>는 처음에 사람 이름인줄 알았다. 제목 ‘연수’ 밑에 한자 ‘硏修’가 있어 어떤 연수인지 궁금했는데 자동차 운전 연수에 대한 내용이었다. 운전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도 같이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또 올림픽 경기처럼 내가 잘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도로위의 변수에 시시각각 빠르게 대응을 잘 해야만 한다. 운전을 무서워하는 빅 폄의 구년 차 회계사인 주연은 자가 운전의 필요에 의해 외제차를 사고, 운전 연수를 신청한다.
주연은 유능한 강사의 실용적인 매뉴얼에 따라 차근차근 운전을 배우지만 여전히 자신감이 없다. 강사는 주연이 운전을 잘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연은 강사에게 추가 연수를 신청하지만 강사는 거절한다. 운전은 결국 혼자 하는 것이라고, 연수만 받을 수는 없다고 한다. 운전이든 다른 것이든 연수(硏修)라는 말 아래 놓여 진 것들은 모두 혼자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응원과 가르침이 필요하다.
<공모>에서의 모든 것은 모호하다. 김 부장이 천사장이 운영하는 호프집인 ‘천의 얼굴’만 회식 장소로 고집하는 것도, 천사장의 클리비지의 역할도, 현수영이 천사장과 ‘천의 얼굴’을 불편해 하는 이유도 딱히 명확하지 않다. 현수영은 마음에 들지 않은 회사를 다니며 어쩌면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여기며 나름 정확하고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생각한 것이 나중에 또 다른 모호함을 가져오며 이것 역시 아닐 수도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무엇이 옳은지, 내가 보는 것이 정확한지, 나의 판단이 모두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항상 흔들린다. <공모>의 마지막 장면인 천사장과 김 상무(예전 김 부장)의 포옹까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수영이 천사장의 딸인 세원에게 갖는 희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어느 날, 호되게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
<라이딩 크루>는 영화 ‘곡성’의 유명한 대사인 ‘뭣이 중한디?’가 생각나게 했다. 무엇이 중요한가? 어느 순간 목적과 객관성이 사라지고 맹목적인 것에 홀려 거기에 말려들 때가 있다. 감정에 치우쳐 내가 잃어버릴 것을 미처 보지 못한다. 나중엔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고 그냥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회한만이 남는다. 질투와 불신, 꼬임과 자존심이 한꺼번에 표출되어 내가 나를 그르치고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한밤중, 두 남자가 알몸으로 자전거 경주를 하고 그것을 옆에서 인정하는 또 한 사람의 바보를 보며 정말 많이 웃었다. 웃으면서 혹시 내가 두 남자 중의 한사람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했다. 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런 준비도 해주지 않고 무조건 가서 성과를 내라는 명령, 그 결과로 인턴 사원에서 정식사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협박, 자식이 힘들게 번 첫 월급을 봉투째 받아 기분이 좋은 부모, 두 번째 월급에서 핸드폰과 발렌타인 삼십년을 사달라는 부모.…<동계올림픽>에서의 어른들은 이렇게 선진의 어깨를 짓누른다. 한파가 닥친 날에도 변변한 패딩하나 없이 청카바 하나만 입고 다니는 선진의 현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선진은 꿈속에서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상상 한다. 잠깐 좋은 어른들도 만난다. 그들에게 따뜻한 보살핌과 패딩을 얻어 입고 나온 선진은 여전히 추운 바깥에 서 있다. 선진이 만난 잠시 동안의 온정이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에게 그나마 힘이 되었을까?
그 길로 가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길로 꼭 가야하는 사람이 있다. 능력이 안 되지만, 그것을 해야만 행복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라와 라라>에서 미라는 소설을 쓰고 싶어 32세의 나이에 국문과에 다시 들어온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이과형 인간이 소설을 쓰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아예 쓰지 못할 수도 있다. 미라는 이과형 세계에서 이미 성공도 했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녀는 미라보다는 소설을 창작하는 ‘라라 ★’로 살기를 원한다. <펀펀 페스티벌>의 ‘나’는 원하는 세명 그룹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다른 중견기업에 취업했다.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것과 원하는 대로 가지 못해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에 똑같이 좌절과 힘듦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에게 ‘내 쪼’대로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에서 장류진은 글을 쓰는 동안의 자신의 여러 어깨 모습을 얘기했다. 그만큼 이 글들이 고통 속에서 힘들게 나왔다는 말일 거다. 힘들게 나온 만큼 여기에 실린 소설들이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내가 희망을 절망으로 오독했는지는 모르지만 읽고 난 후에도 여운이 많이 남아있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읽다가 말았다. 그가 쓴 문장이 너무 깍쟁이 같아 정이 들지 않았다. 꺼내 다시 읽어야겠다.
[어쩌면 당연했다. 너무도 오래전 일이었다. 한 사람의 입맛이 변할 정도로 오래된 시간, 내 기억이 실제를 왜곡했거나 아니면 과장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뒤이어 그게 아니라 내 모든 기억이 사실이라고 해도....그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고작 그 음영 하나에 시시덕거리고 십수년간을 들락날락하며 법인카드 갖다 바친 놈들이 한심한 놈들일 뿐. 애초에 거기까지만 싫어했으면 될 일이었다.
-p.153, ‘공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