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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가끔씩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완전히 소멸되고 어느 것도 인식할 수 없다는 것,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섭고 막막하다. 종교를 믿고 있기에 영생의 삶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사실 죽는 순간,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에는 언제나 ‘만약’ 이라는 가정과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작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작가가 상상하는 죽음에 대한 얘기이다. 짧은 분량의 이 소설에서 서술된 죽음은 담담하고 가볍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긴 호흡으로 계속 숨을 내 뱉어야 했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그림처럼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집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고독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요한네스가 태어난 날에 그의 아버지 올라이가 느끼는 감정, ‘다 잘될 거야’라는 축복, 세월이 훌쩍 흘러 요한네스에게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생의 모습들, 의아하고 슬프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요한네스의 막내딸인 싱네....거창한 서사 없이 그저 한 인간에 초점 맞춰진 이 소설은 죽음을 말함으로써 삶을 생각하게 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란 제목처럼 인생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금세 옮겨지며 요한네스가 지나온 무수한 ‘그리고’의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는 것, 힘들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견디며 살아갈 수 있었던, 우리가 다 겪는 삶의 과정이 평범하지만 식상하지 않게 연결된다. 죽음 앞에서 느껴지는 온갖 생각들과 엄숙함, 만감의 교차가 내 의식 속에서도 동시에 일어났다.
이 소설은 문장과 함께 쉼표와 물음표가 반복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어쩌면 삶은 쉼표와 물음표로만 이루어진 과정인지도 모른다.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나이가 들어가도 도통 알 수 없는 ‘인간의 길’을 매번 질문하며 살아가야 한다. 고통에 지배당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인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 것에서 벗어났기에 요한네스는 그의 마지막 날에 오히려 몸이 가볍고, 홀가분함을 느꼈을 것이다.
어부로 살아가며 7명의 자녀를 키워야했던 가난한 요한네스는 돈을 아끼기 위해 친구 페테르와 오랫동안 서로의 머리를 깎아준다. 먼 길을 떠나야하는 요한네스를 친구 페테르가 데리러온다.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지만 위험해서 그들이 섣불리 가보지 못했던 서쪽의 난바다로 그 두 사람은 떠난다. 그들에게 죽음은 가보지 못한 곳으로 향하는, 끝까지 마침표가 없는 새로운 쉼표의 여정이었다.
친구 비아(친구이지만 그녀는 나보다 10살이 어리다)와 커피를 마시며 요한네스와 페테르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우리에게도 이 소설에 나오는 죽음이 주어진다면, 분명 내가 먼저 죽을 것이니 네가 죽을 때 내가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도중에 내 마음이 조금 슬퍼졌다. 죽음은 언제나 슬프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p.15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p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