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진화는
헤겔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방향도,
어떠한 최종단계도,
어떠한 완성도 있을 수 없는
맹목적인 누적적 인과관계의 체계다.”
- 쇼스타인 베블런
인간이 진보를 이룩해 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중단되지 않고 멈추지 말아야 할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이 시대에 진정한 종교와도 같은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가난했던 옛날을 경멸하고 비웃는다. 오늘날 우리 각자는 고대 로마의 어떤 황제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진보는 나날이 발전하는 새로운 과학과 기계문명의 기적에 의해 명백하게 입증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성취한 수십 년을 앞으로 더 나은 진보와 발전의 예비 단계로 여긴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도 진보라는 개념을 믿었다. “세상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므로 지난 시대는 언제나 고대다. 지금 우리 시대도 지나고 나면 곧 고대가 된다.” 그는 어른이 아이보다 더 지혜롭듯이 후세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고대 문명은 주로 정적이거나 순환적인 우주관을 믿었다. 초기 히브리인들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성경 <전도서>를 보면 그들의 순환관을 알 수 있다. “우주는 어떠한 목적도 없이 영원히 떠도는 하나의 기계다. 일출과 일몰, 탄생과 죽음은 단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순환일 뿐이다. 그리고 ‘태양 아래에서 새 것이란 없다.”(<전도서> 1:9)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인들도 문명이 황금시대를 지나면 몰락한다는 순환론을 믿었다. 군주정은 참주정을 낳고, 참주정은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무정부주의를 거쳐 다시 군주정으로 돌아간다는 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름지기 ‘사회적 생명’은 순환적인데도 사람들이 그걸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사이클 국면이 인간 수명보다 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 중세 사상가들에게도 완전한 지식은 과거에 속했다. 최초 인간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담의 지혜는 이브와 함께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난 후 점차 잊혀졌다. 따라서 중세 사상가들은 진보에 대한 의식이 없었으며, 지식이란 과거 사람들이 알았던 것을 찾아내어 복원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앞선 시기 사상가일수록 아담과 더 가깝기에 아담 지혜를 더 많이 기억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중세 사상가들은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과거 사상가들을 연구했다. 과거 중국인들도 사람이 희망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고대에 있었던 황금시대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자는 자신이 당시 지혜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고 믿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 사상이 새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그의 태도는 전적으로 옳았다. 공자는 깊은 향수에 잠겨 주나라 초기시대, 그보다 오래된 은과 하의 시대, 전설적인 삼황오제 시대를 되돌아보았다. 과거를 바라보는 그런 눈으로, 공자는 당대 핵심문제와 씨름했다. 묵자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익을 안겨 줄 도구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국가는 더욱더 무질서해진다. 교활하고 빈틈없는 행동이 많아질수록 이상한 간계도 많아진다. 법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도둑과 강도도 많아진다. 사람들이 옛날로 돌아가면 거친 음식도 맛나게 생각하고, 검소한 옷도 아름답게, 누추한 처소도 안식처로, 평범한 일도 즐거움의 원천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적 사고로 역사가 진보한다는 진보 사상이 형성되었다. 계몽 사상가들은 각 시대가 새로운 지식을 첨가함으로써 인간 지식과 경험이 더 풍부해진다고 확신했다. 그들에게 역사 진행 속 지식과 경험 축적은 진보를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이 이성에 근거해서 고대시기에 대한 숭배와 교회의 도그마적 신앙에서 벗어나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는 역사에는 우주적 목적이 있으며, 인간은 자연법에 따르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목적의 인도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뉴턴이 행성 법칙을 밝힌 것처럼 역사와 진보의 자연법도 원칙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 내부에는 언제나 이웃 이익을 돌보는 사회적 존재와 자기 자신만 돌보고 성공과 독립을 실현하려는 이기적 존재의 갈등이 있다. 이 항구적인 갈등이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사회적 영역과 개인적 영역에서 모두 진보를 이끌어낸다. 이 창조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려면 강력한 국가로 사회생활을 규제하면서 개인적 자유를 최대한 허용해 개성이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칸트는 진보의 도덕적 개념을 명확히 규정했다. 그 목적은 최대 다수가 자유로이 자신 개성을 구현하면서 이웃을 돌보는 데 있다.
초기 사회학자인 생시몽도 진보 이론을 내세웠다. 당시 신흥 사회과학이었던 사회학에서는 진보의 개념이 주요한 초점이었다. 그는 진보를 단지 이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학 탄생은 그 자체로 진보의 일환이었다.) 다음은 잘 알려진 그의 글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황금시대를 인류의 요람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찾은 것은 철의 시대였다. 황금시대는 우리 과거에 있지 않고 우리 미래에 있다. 사회 질서가 완성되는 것이 곧 황금시대다.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고 장차 우리 후손들은 거기에 도달할 것이다. 그 길을 닦는 게 우리 임무다.” 프랑스 혁명의 폭력과 비합리성에 환멸을 느낀 생시몽은 산업화만이 유일한 전진의 길이라는 믿음에서 기계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 특징은 자연과학의 방법과 방식을 처음으로 인간에게 적용하려 한 데 있었다.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은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다. 그 반면에 심리학이나 사회학, 경제학 등 인문과학은 대폭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예측의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 사회과학자들은 지리적 혹은 문화적 성격을 가졌던 ‘지역’에 관한 연구를 법칙정립적 학문들과 융화시키기 위해 천재적인 지적 대안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발전’(development) 개념이었다. 독립적인 단위의 사회가 모두 동일한 기본방식으로 하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가정이었다. 사실 이 요술에는 실용적인 측면이 있었다. ‘가장 발전한’ 국가는 자신을 ‘덜 발전한’ 국가들에게 모델로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였고, 덜 발전한 국가들로 하여금 자신 모델을 모방하도록 부추겼고, 그 무지개 끝에는 보다 높은 수준과 보다 자유로운 정부구조(정치적 발전)가 놓여 있다는 약속을 제시했다.”
우리에게 연 경제 성장률 2퍼센트나 3퍼센트는 낮아 보이지만, 분석에 따르면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사회의 붕괴와 종말은 2030년부터 2070년 사이로 잡고 있다. 부의 축적이라는 꿈은 그때가 되면 악몽으로 뒤바뀔 것이다. 양적인 망상은 ‘복리(複利)의 위압적인 효력’ 하에 우리를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일인당 국민 총생산이 연 3.5퍼센트 증대하면 경제 규모는 100년 후 31배가 된다. 중국의 현재 경제 성장률(연 10퍼센트)를 가정할 경우 경제 규모는 7년 후 2배가 되고, 100년 후에는 736배가 될 것이다. 중국 경제 성장은 또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중국 환경부에 따르면 중국 경제 성장이 유발하는 생태계 파괴의 연간 비용은 그 국내 총생산의 10퍼센트 또는 12퍼센트에 해당한다. 즉 국가 경제 성장률과 똑같은 수준이다. 시간 경과에 따라 경제 성장이 만족스러운 삶을 자동으로 만들어낸다면 지금쯤 우리는 진정한 낙원 속에서 생활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이 아찔할 정도의 경제 성장은 생태계 파괴의 증가를 의미한다. 국민 총생산이 마치 ‘국민 삶의 질의 총계’ ‘국민 쾌락의 총계’ ‘국민 행복도의 총계’ 혹은 ‘국민 완성도의 총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국민 총생산 = 국민 오염 생산의 총계’라는 방정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 일부 ‘진보된’ 지역에서조차 대부분 사람이 가졌던 최고 희망은 그저 육체를 보존하고,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살고, 머리에 지붕이 있는 집이 있고, 충분한 옷을 가지기에 충분할 정도만큼 버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주장은 ‘발전된’ 나라에서도 그다지 동의를 얻지 못했다. 후진지역에서도 진보라는 개념은 환영받지 못한 개념이었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후진지역 사람들에게 진보란 침략이나 기껏해야 착취, 억압, 고향으로부터의 박탈, 떠돌이 생활 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란 특히 도시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외부에서 수입했던 까닭에, 뭔가 개선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옛날의 정착된 방식을 방해하는 그 무엇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이 거추장스러움을 가져왔다는 증거는 엄청나게 많다. 새로운 것이 개선을 가져온다는 증거는 확실하지도 않았고 불투명했다. 세계는 진보하지도 않았고, 진보한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어떤 경우이든 옛날의 지혜와 방식이 최고였으며, 진보란 젊은이가 늙은이를 가르칠 수도 있다는 식의 의미를 함의했다.
사실 인류는 전진하거나 후퇴할 수 없다. 인류는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합적 실체는 의도나 목적을 지닐 수 없다. 스피노자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목적론으로 결부시키는 시도를 거부했다. “사람들 편견은 모든 자연물도 어떤 목적을 위해 작용한다고 추측하며, 게다가 신이 모든 만물을 어떤 목적에 따라 이끈다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신이 인간을 위해 모든 만물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록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은 자신에게 아무런 목적도 설정하지 않으며, 모든 목적인(目的因)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도 인류 진보는 열정과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과학 지식 발전도 이러한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진보를 믿는 사회민주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자나 과학기술을 믿는 실증주의자는 윤리와 정치를 과학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미래 진보를 가져온다고 믿으며 사회 발전은 누적된다고 믿는다. 즉 하나의 악을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 악을 제거할 수 있고 이 과정이 영원히 반복된다. 하지만 인간사는 그렇게 누적되지 않는다. 이미 성취한 것이라도 눈 깜박할 사이에 잃어버릴 수 있다. 인간 지식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결과 인간 문명 수준이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든 형태의 야만에 빠질 수 있다. 지식 성장은 인간의 물적 조건을 향상시키지만, 인간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의 야만성 또한 증폭시켰다.”
문명 수준이 더 높고 진보했다고 믿는 현대인이 윤리 측면에서 원시인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는 설득력있는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한번은 영국인이 ‘원시인’ 사모아인에게 런던 빈민에 관해 이야기 해 주자 그 ‘야만인’은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요? 음식이 없다고요? 친구도 없어요? 살 집이 없다고요? 그 사람이 자란 곳이 어디인데요? 그의 친구가 가진 집도 없어요?” 그들에게는 마을 어딘가에 옥수수가 자라는 한 음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원시인’ 호텐토트족 경우,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자가 있으면 모두 똑같아질 때까지 잉여분을 나누는 것이 관례다. 이들은 배고픈 자를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받느니 차라리 자기 배가 고프고 마는 편을 택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생각한다.
‘진보’라는 목적론이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설명이 가능한 건 필연이고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우연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진보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역사가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역사에 어떤 법칙이 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내재하는 법칙에 의해 역사 흐름이 필연성을 띠고 발전해간다는 것을 말한다. 근대 역사철학은 그런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이론적 증명이다. 원래 목적론은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목적에 비추어 설명하면 결과가 원인이 되는 순환론, 동어반복 성격을 탈피할 수 없다. 현상에서 목적을 빼면 생성만이 남는다. 현상은 목적을 향해 접근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연으로 점철된 변화의 과정이며, 무한한 생성의 흐름이다. 생성이 연속적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어서 어떤 면에서는 강조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실증주의자들이 그런 상식을 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연속성이란 시간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살아 있는 것은 생명의 흔적을 시간에 남긴다.’ 그런데 실증주의는 시간 차원을 완전히 배제하고 주체가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언제나 똑같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목적론적 관점(그리스어로 텔로스, 영어로는 끝과 종말을 의미)에서 역사를 파악하는 기독교들은 역사에 예정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역사가 끝나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역사의 종말을 믿었다. 마르크스와 후쿠야마 같은 사상가들은 기독교의 목적론을 이어받아 '역사의 종말(천년왕국)'이라는 주장의 바탕으로 삼았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순환의 통일성을 거부하도록 일반인을 부추기고 ‘우리’와 ‘그들’의 대립구도로 여론을 몰아간다. 서양 전문가들이 의도적으로 잇따라 쏟아내는 경고의 메아리는 언론과 출판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떠들더니 버나드 바버가 지하드(성전) 대 ‘맥월드’(맥도날드적 세계)의 대결을 외친다. 로버트 카플란은 임박한 ‘무정부’ 상태를 우려하고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논한다. ‘악의 제국’ 소련이 붕괴하자 서양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슬람과 중국을 새로운 위협세력으로 거론한다. 악이 파괴될 수 있다는 신념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속한 종말론 분파에서는 핵심적인 신념이었다. 이런 천년왕국 신념이 미국 아들 조지 부시 정부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선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역사에 악이 극복될 종착점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역사를 진보적 운동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했다고 믿어지는 금세기 들어 생산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또 지금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도, 극심한 빈곤이 퇴치되거나 고통받는 노동자 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빈부 격차는 더 심화되고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데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물질적 진보라고 하는 추세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의 필수 요소를 기준으로 볼 때, 최하층 상태를 개선해 주지 못한다. 아니 실제로 최하층 상태를 오히려 압박한다. 물질적 진보는 오랫동안 품어온 희망이나 믿음과 달리 상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삶이 향상되었지만, 하층 사람들은 무너지고 있다.
“현실에서 빈곤이 진보와 함께 나타나는 진정한 원인은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지주가 지대(地代)를 차지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토지 사유제 때문이다. 진보하는 지역에서 생산력이 증대하는데도 임금과 이자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지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향상된 생산력은 지대로 흡수되어 버리고 임금과 이자는 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생산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생산물인 부(富)는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한 대가로 모두 분배된다. 즉 지대, 임금, 이자로 분배된다(부=지대+임금+이자). 이중 “지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부-지대=임금+이자’가 된다. 이처럼 임금과 이자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 중 지대를 공제하고 난 뒤 잔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지대가 같은 정도로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 지대가 지나치게 오르면 노동과 자본은 적은 대가로 만족하거나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생산 중단은 수요 중단으로 나타나고, 다시 또 다른 부문의 생산을 제약한다. 지대 또는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은 토지 소유자가 노동과 자본을 배척하는 효과를 낸다. 노동자가 물자 부족을 겪으면서도 실업이 발생한다.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가장 큰 원인은 지대를 전유할 수 있는 토지소유의 불평등 때문이다.”
헤겔 역사철학의 가장 중요한 논제는 역사를 자유의식의 진보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세계사란 자유의식에 있어서의 진보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 진보 이념이 근대 역사철학 전체에 대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근대 역사철학 자체는 진보 이념과 더불어 탄생하고 진보 이념과 더불어 소멸할 것이다. 진보나 경제 발전으로 너무나 큰 부가 극소수 사람에게 집중되는 바람에 연간 소득 분배는 엄청나게 불평등해졌다. 자본가들이 그 어마어마한 부의 보유에서 얻는 연간 소득은 너무나 커서, 아무리 낭비적이고 사치스럽게 소비를 하더라도 여전히 엄청난 양의 과잉 소득 –또는 저축 –이 남게 되어, 이들은 이를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자본축적에 투자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된다. 소득 분배는 너무나 불평등하여 심지어 노동자 소비 지출 모두에다 자본가가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이들이 아무리 사치를 부린다고 해도 상품을 사와서 소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궁극적 제약 요소가 있기에 그 양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돈을 다 합친다고 해도, 자본가가 강제로 저축하게 되는 양은 여전히 엄청나다. 그리고 만약 이 저축을 모두 생산 설비를 늘리는 데 썼다가는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의 성장 속도가 그 수요(이는 노동자 소득과 자본가가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최대 능력으로 제한된다)의 성장 속도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생산 능력이 소비자 수요보다 빠르게 늘어나면 금방 생산 능력의 과잉 상태(소비자 수요에 비추어)가 나타나며, 따라서 국내에는 이윤이 나올 만한 투자처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해외 투자가 그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모든 공업화된 자본주의 나라에서 이와 똑같은 문제가 존재하므로, 그러한 해외 투자는 오직 비자본주의 나라들이 ‘문명화’되고 ‘기독교화’되며 ‘고상해질’ 때만, 즉 그들의 전통적 제도를 강제로 파괴하고 사람들을 시장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 아래로 강제로 끌고올 때만 가능하다. 이제 자본은 국내시장을 넘어서는 더 넒은 경제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학자 루돌프 힐퍼딩은 자본의 해외수출에서 상품들을 수출하거나 대부자본(화폐자본)을 수출하는 것보다는 해외에서 철도나 공장을 짓는 직접투자가 훨씬 더 경제영역 확대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해외직접투자는 본국으로부터 화폐자본뿐 아니라 생산재 등 상품들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해외직접투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본국 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지원이 필수불가결하게 되며, 자본주의 열강 사이에 식민지와 종속국 등 경제영역을 둘러싼 투쟁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다고 힐퍼딩은 전망한다. 그리고 힐퍼딩은 금융자본의 경제정책인 제국주의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 타도를 통해 경쟁을 완전히 지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