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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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을 매개로 한 지적 탐구의 역사

- 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2025)

 




요즘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챗GPT를 비롯하여 AI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미 AI를 활용하여 쓴 책을 판매하고 있는 저자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 인류에게 AI라는, 이제는 일종의 이 되어버린 기술이 우리의 삶 속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한편에서는 AI에 대한 위기의식을 말하며 AI가 가져올 수 있는 미래를 경고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AI가 가져올 인류의 미래상에 대한 논의와 기대감이 함께 공존한다. 이 모든 혁신과 혁명적인 삶의 조건들을 압축적으로 일구어낸 성취의 근간에는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지적 전통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전통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에게 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책은 인류가 발명한 문자를 기록하고 인간의 지성을 키운 요람이었다.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과학 분야의 도서들에 관한 서평을 많이 게재하는 사이트 파퓰러 사이언스의 편집자 브라이언 클레그의 책이다. 인류의 고전에 속하는 도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과학 저술가답게 저자는 인류사에서 큰 영향력을 미친 과학책 150권을 추려내 소개하고 있다. 고대에 문자를 기록한 역사로부터 과학적 전통의 맥락에 닿아있는 분야의 도서들과 그 저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풀어 놓았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무엇보다 본문에 수록된 풍부한 그림 자료들이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책은 전문 필경사들의 손에 의해 옮겨졌다. 당시의 지적 유산은 이들의 관점에 의해 재해석되고 기록에 남게 되었다. 따라서 필사된 책들은 인류 지성사의 최전선에 있었던 필경사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거울인 듯도 했다. 지식을 매개했던 당사자들의 영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상상해 보라. 500년 전 천체 망원경도 없던 시절, 육안으로 천체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황도12궁과 함께 화성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도록 정교한 수치를 담은 표를 수록한 천문학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과학책의 역사를 통해 단순히 책 제작의 역사를 넘어 인류의 지적 전통을 견인한 지성사의 여러 장면들을 실감하고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한편, 이 책은 고금의 위대한 과학책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다분히 서양 과학의 전통이 중심을 이룬다. ‘과학분야가 서양의 지적 전통으로부터 크나큰 영향을 받아 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반면 이 책에는 동양의 과학적 전통으로 AD200년 경에 완성되었다는 중국의 <구장산술>이나 7세기에 인도에서 발간된 <우주의 창조에 관한 해설서>의 소개 정도로 비서양 문화의 과학책이라는 관점에서는 제한적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서양에만 과학적 전통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아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인도에서 출현하여 아라비아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서양의 지적 전통, 특히 과학 분야의 전통이 중세 이후 본격적으로 일어나기까지는 지금의 지중해 및 중동 지역의 지적 전통을 고려하지 않고서 과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도 과학의 역사는 결코 서양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발전시켜 온 과학의 역사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좀 더 다양하게 서술될 여지는 충분할 테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동서양의 여러 과학사가들이 과거에 인류의 과학적·지적 전통을 이야기할 때 답습해 온 서구 중심의 과학사관에서 탈피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정황을 발견한다. 저자의 관심사로부터 이 책에서도 일부나마 이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갖는 제약에도 이 책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매력들이 상당함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우선 과학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여 전 세계의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또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과학책을 만나는 장()으로서, 인류 지적 편력의 역사를 일별하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보다 과학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유명한 과학책을 둘러싼 뒷이야기가 과학책의 역사에 관한 책읽기에 풍성함을 더한다. 여기에 더하여 독자는 인류 지성사에 큰 영향력을 지닌 과학책의 원서 표지와 내부 삽화 일부도 볼 수 있다. 책에 수록된 다양한 책에 대한 지식을 풀어 놓는 저자의 입담과 폭넓은 관심 분야에 번번이 놀라기도 하지만, 번역서임에도 저자의 위트와 유머를 곳곳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을 만나보자.


 

책을 읽으려 한 사람 대비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의 비율에 있어서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 비견할 만한 책이 등장했다. 1945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인지과학 교수 더글러스 R.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1979). ‘영원한 황금 노끈이라는 부제와 함께 광범위한 생각을 펼쳐 낸 이 책은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다는 찬사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 왔다.”(291)


마치 나의 책읽기를 저자가 지켜보고 내게 귀뜸해 준 것처럼 뜨끔하기도 하다. 불현듯 학창 시절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읽기에 도전했다가 제대로 이해한 대목이 없어 낭패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나만의 경우는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동지 의식마저 느낀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 기본적인 물리학 지식을 갖추기도 전이었으니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책읽기의 과정에 관해서라면, 나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책을 읽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바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우선 앞에서 나온 관련 내용을 다시 살펴보거나 다음으로 넘어간다. 아니면 책을 덮고 다른 책을 먼저 보기도 한다. 과거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집착하지 않게 되니 오히려 책 읽기가 더 편하게 다가왔다고 볼 수 있겠다. 언젠간 지금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언젠가 이해가 될 순간이 올 것이라 믿으며 읽게 되었다. 저자가 소개해주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는 내게도 색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었다.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가 소개한 과학책 속에도 그 책을 저술한 저자의 삶이 담겨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특히 과학책은 저자가 자연,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았던 관점이나 태도가 저자를 둘러싼 세계와 만들어낸 상호작용의 산물이기도 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과학책과 저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인류의 위대한 지적 전통의 한복판에서 그들이 남겨 놓은 발자국이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인류의 지성이 불과 몇천 년 만에(?) 이만큼 성숙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과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중립적일 수 없는 인간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류의 번영을 앞당겨온 지적 전통이었을 뿐만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지적 전통이 어느덧 도달한 AI의 시대에 과학책의 역사를 통해 과학과 인류의 지적 전통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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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 1949~1992 아티스트웨이 2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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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누기도 하는 하루키. 보다 진득하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물씬 느껴지는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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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끝, 파랑
이폴리트 지음, 안의진 옮김 / 바람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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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다시 환대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 지중해의 끝, 파랑


이폴리트 글·그림

안의진 옮김 [바람북스] (2025)




 

인간의 역사는 늘 사랑과 미움, 전쟁과 평화가 공존해 온 역사다. 지중해 역시 이곳을 무대로 기록된 역사에 숱한 전쟁이 있었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환대의 전통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바다였다. 일리아스오뒷세이아만이 아니라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오랜 이야기에는 늘 먼 곳으로부터, 혹은 공동체 밖으로부터 방문한 나그네들이 누군가의 환대를 받고, 그들의 사연이나 경험을 들려주는 전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상대의 정체를 알기 전에 이미 음식을 대접한 후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던 전통을 떠올려보게 된다. 고대인들에게는 이러한 의례의 과정이 상대방의 삶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유구하고 훌륭한 문화가 이제는 쉽게 발견하거나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 된듯하다. 특히 환대의 전통을 떠올리게 해 주었던 지중해에서는 오히려 침묵만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이폴리트는 이런 현실을, 그래픽노블의 형태를 빌어 인상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림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책 지중해의 끝, 파랑에서 다루는 주제는 현재 지중해에서 발생하고 있는 난민/이주민 문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부분 아프리카 북부의 리비아에서 목숨을 걸고 보트로 탈출하여 지중해를 표류하는 난민들을 구조하는 구조선 ‘SOS 메디테라네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저자 이폴리트가 함께 승선하여 취재한 ‘SOS 메디테라네의 운영비는 98%가 개인의 기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루 필요한 운영비의 액수도 놀랍지만, 바다 위를 표류하는 이들을 구하는 구조대에게는 무엇보다 시간은 돈이라기 보다, ‘시간은 생명이었다. 지중해 주변 국가들에 의해 구조선이 억류되어 발이 묶인 시간만큼,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수많은 생명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는 그 무게감이 상당히 다르게 전해졌다. 특히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전 세계인들이 고통을 받았던 코로나 봉쇄기간이었기에 그렇다. 우리가 겪은 전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는 취약한 이들의 삶을 더 무겁게 내리누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삶이 예기치 않게 제약을 받거나 위기에 처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이들은 무엇에도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이었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로서 취재 노트에 해두었을 법한 메모가 구조팀의 존재 이유를 말해준다. “국가들의 무책임은 SOS 메디테라네가 존재하는 이유다.”(108)라고.


 

특히 지중해 연안의 지역 혹은 국가들, 이를테면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비롯한 아프리카 북부의 국가들은 이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침묵과 무반응으로 대응하고 있다. 난민 구조팀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이러한 냉담과 침묵인 것같다. 이는 문제의 원인을 직시하거나 해결하기를 회피하는 행동이다.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으니, 문제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게 문제가 눈앞에 있을 때, 이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일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에 참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실 국제 사회에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어려움에 처한 난민들의 인도적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서유럽에 중심을 두고 있는 서유럽의 EU 회원 국가들(비교적 부유한 국가)이 이탈리아나 그리스, 리비아와 같은 지중해 국가에 거액의 지원금을 주고 지중해로부터 유입될 수 있는 많은 난민을 막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책에 소개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나 섬이 많은 그리스의 여러 섬에는 열악한 상황의 난민 캠프가 조성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지중해 지역의 난민 캠프는 서유럽 국가들에 유입되는 난민들을 막는 중요한 관문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지중해 주변, 혹은 유럽 국가들의 침묵과 냉담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런 행보를 보이는 부유한 서유럽 국가들을 비난할 처지는 못 된다. 고작 한 차례의 난민을 받을 것인가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고, 난민을 외면하고 내친 적이 있는 우리가 이 국가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적어도 이들은 상당수의 난민/이주민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모여있는 난민들의 인구 밀도가 과도하게 높고 시설은 열악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결속력이 상당히 강한 공동체이긴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타자에 대한 관용도가 그만큼 낮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김없이 존재하는 문제는, 난민/이주민들은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떠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외면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결단코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이 품고 있는 현실, 혹은 내가 책에서 건져 올린 질문은 이렇다. ‘사람들은 왜 떠나야 할까?’ 혹은 그들은 왜 떠날 수밖에 없는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누구는 빈부를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자본의 탐욕을 이야기할 것이다. 또 누구는 보다 보편적으로 인간의 탐욕을 언급할 지도 모르겠다. 자본 자체가 탐욕을 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결국 난민/이주민 문제는 어느 기득권 세력의 현상 유지, 혹은 이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대다수를 희생하게 만들어버린 시스템의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하나는, CNN이 취재하여 보도한 리비아의 노예시장에 관한 언급이었다. 무엇보다 판매 대상이 된 난민 당사자들이 처한 조건을 상상해 보게 된다.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온전히 타인에게 맡겨진 상황이라면, 타인의 몸에 대한 권한을 손안에 쥐고 있는 자는 어떤 행동도 할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바다에서 구조된 어느 여성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하겠다고 말문을 닫아버린침묵의 언어가 구체적인 언어 표현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나는 시리아의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신의 몸값으로 거액을 내고서야 풀려난 후, 다시 목숨을 걸고 바다로 탈출했던 여성 나딘의 삶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임신 8개월이었기에 더 큰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와야만 했다. 그녀가 구조선에 오르기까지 겪어야 했을 삶의 여정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또 수감된 남편을 뒤로 하고 딸 아이샤를 살리기 위해 거친 바다로 나온 마타의 사례도 기억난다. 큰돈을 뇌물로 제공하고 나서야 감옥에서 딸과 자신의 몸을 풀어낼 수 있었던 그녀는 돈이 부족하여 남편을 감옥으로부터 구출할 수 없었다. 언젠간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SOS 메디테라호가 지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저자가 취재한 실제 구조 현장의 사진도 눈에 들어온다. 구조 당시 현장의 혼돈과 흥분을 반영하듯 그림과 사진이 번갈아 등장한다. 마치 저자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만 머물던 캐릭터가 실제로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하여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지닌 존재들이다. 이폴리트가 하나하나의 담요 아래엔 하나의 몸,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삶이 있다.”(165)라고 말하듯 개별적인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어떤 숫자나 분석의 언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날 지중해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해상 이주 경로라고 인식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지중해 바다 어딘가에선 출렁이는 바다에 몸을 맡긴 채 리비아의 해안 경비대가 아니라 ‘SOS 메디테라네와 같은 이들에게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보트피플이 있다. 지중해의 끝, 파랑에서 느낀 것은, 난민/이주민 문제가 단지 지중해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지중해는 인류애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던 이들은 과연 무엇때문인지 많은 독자를 비롯한 현대인들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코 개인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서 내게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구조된 이들이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항구에 하선하는 풍경이 지나간 후 이폴리트가 아들과 통화하는 장면부터다. 인도적으로 난민을 구조하는 활동을 널리 알리고자 저널리스트로 참여한 그였지만, 그 역시 가족이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구조 현장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아이들을 품에 안아 돕기도 했던 그는 내 손은 아기 바구니가, 내 팔은 요람이 된다.”(156)는 심경을 남겼다. 아들과 통화한 후 자신이 머물던 방과 창문을 통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전면으로 그려놓은 장면이 특히 인상 깊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풍경 속에서 천천히 방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저자의 시선처럼 느껴져서다. 자신이 머물던 빈방의 풍경에는 아들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과 함께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저자의 마음이 가득 채우고 있는 듯했다. 이 순간 이폴리트가 중얼거렸을 단어는 이 말이었을 것 같다. “안디아모 뚜띠(Andiamo Tutti, 다함께 가자)!”라고.






[책속으로]

[1] "함께 간다. 함께 살아간다."
"나는 언제나 거기에 있다." - P14

[2] "관광에는 열려 있지만, 인간에게는 닫혀 있는 바다." - P46

[3] "낭비되는 시간만큼, 생명들이 사라지는 거예요." - P49

[4] "그날 놀라울 만큼 많은 생명을 구하고도, 한 번의 실패가 그의 마음을 전부 움켜쥐고 있었다."

"그럼에도, 닿지 않을 손을 뻗는다. 모두가 외면하지만, 삶을 행해 발버둥치는 그들을 위해." - P79

[5] "안디아모 뚜띠(Andiamo Tutti, 다 같이 가자고!)"
"이곳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외면한다." - P80

[6] "국가들의 무책임은 SOS 메디테라네가 존재하는 이유다." - P108

[7] "내 손은 아기 바구니가, 내 팔은 요람이 된다." - P156

[8] "이 아이들을 전부 품에 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 - P157

[9] "하나하나의 담요 아래엔 하나의 몸,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삶이 있다. 파도는 그 어느 때보다 거세다. 배가 출렁이고, 우리의 마음도 휘청인다." - P165

[10] "우리는 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인류의 요람이 우리의 존엄을 묻는 무덤이 되게 해선 안 됩니다."(203, 교황 프란치스코가 마크롱 대통령에게 전하는 말) - P203

[11] "2014년 이후 중앙 지중해에서는 22,631명이 사망했다."
"중앙 지중해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해상 이주 경로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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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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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딴 섬이 아니다

- 아웃사이더

 


마수드 후사인(Masud Husain)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2025)




 

신경과 의사 마수드 후사인의 임상 기록이자 에세이 아웃사이더의 원제목은 <Our Brains, Our Selves>이다. 우리의 뇌와 자아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다. 반면 번역서의 제목 아웃사이더는 인간의 정체성과 뇌가 만들어 내는 자아와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1.5세대이기도 하다. 런던과 버밍엄의 도심에서 자랐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의 청소년 시절이 대강 그려진다. 자신과 가족이 다른 피부색과 억양만으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매순간 감지하며 살았을 것이다.


 

번역서의 제목처럼 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수성(피부색과 억양 등), 곧 고유한 표지들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학교를 오가는 동안에도 혐오와 조롱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볼 수는 있으나,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그저 불안하고 위축되는 기분을 늘 감지하지 않았을까. 때론 절망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법하다. 특히 장차 신경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을 때, 친구가 해준 조언(‘넌 유색인종이니 이방인이고 이 세계(신경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류머티스 분야를 택하라’)은 백인 상류층을 구성하는 영국 신경학계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여 극복하고 결국 신경과 의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로도 활동해왔다. 기득권에 속한 이들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저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30년 동안 저자가 진료실에서 환자와 만난 임상기록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뇌의 문제를 이해하고 질환을 치료하려는 노력에 인간의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더해진 역작이다. 저자가 오랜 시간 만나온 뇌 관련 질환 환자 중에서 대표적인 증상을 보이는 환자 7명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예를 들면, 뇌졸중으로 모든 행동의 동기를 잃거나 한쪽 시야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언어와 사물에 대한 의미를 점점 잃어가는 사람, 기억을 잃거나 가짜 기억을 회상하는 사람, 불쑥불쑥 나타나는 환영이 나타나거나 이상한 복장이나 언행을 하게 된 사람, 한쪽 손과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환자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뇌와 관련한 질병으로 인해 한순간 자기다움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개인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더 중대한 문제는 그 개인이 인생의 한 시기에 집단과 맺어온 관계가 뇌 질환으로인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하고, 더 나아가 그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배제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일어나보니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단지 정치적인 개인의 결정에서 비롯되는 것만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신체의 변화, 특히 뇌질환만으로도 누구나 겪게 될 수 있는 일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인간이 어느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잃게 될 때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환자들의 사례를 보면, 과연 인간이 자각하는 나 그 자체’, ‘자아란 도대체 무언인가, 하는 의문을 되짚어보게 된다. 신경과 의사로서 저자는 뇌의 어느 특정 부위가 아니라 뇌 전체에 긴밀하게 연결되고 얽혀 있는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가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이 모여 우리의 자아를 구성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 수많은 가 모두 나의 자아를 구성하는 실체이기도 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이 이런 다양한 면모들을 모두 포함하는, 보다 구체적으로 내 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지 기능들의 긴밀한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한 가지 더 저자가 잊지 않고 덧붙이는 사항이라면, 이러한 내 안의 여러 자아들은 우리가 속한 환경, 특히 집단과의 의식적, 무의식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다. 나는 내가 속한 환경, 공동체 속에서 결코 피할 길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존재인 셈이다. 이 사실은 개별자 개인을 바라볼 때, 그 개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선이 되어준다.

 


특히 저자와 가족이 아웃사이더가 된 경험, 그리고 이를 극복해간 과정은 이 책의 메시지와 공명하며 더욱 힘을 발한다. 그가 신경과 의사가 되어 진료한 환자 가운데 와히드나 애나, 윈스턴 같은 이들을 떠올려본다. 이들은 20세기, 그리고 영국이라는 시간-공간적 특수성이라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저자처럼 자신이 합류한 공동체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책에 소개된 아웃사이더 되기의 경험들은 우리 사회와 인간성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애나가 자신의 모국어 폴란드어로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혐오가 담긴 언어를 듣고 물리적으로도 폭행을 당했던 사건은, 유독 영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영국 사회의 귀족적-엘리트적 성격, 그리고 일부 이긴 하지만 외국인 혐오의 시선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 장면은 분명 영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집단에 속한 인간이 외집단에 속한 이들에게 가질 수 있는 정서적 반응이나 이질감, 배척 행위를 구체적인 사례로서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이지메라고 불렸던 집단 따돌림도 우리는 직접 겪거나 드물지 않게 보아 왔음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이 소속감, 혹은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짐을 자각하는 정서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구성원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은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큰 물음에 대한 전문가로서 저자의 답변으로 책의 성격을 이해해볼 수 있겠다. ‘우리의 자아는 뇌의 여러 기능들의 총체이면서 이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 혹은 자기동일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자아의 속성이, 때로는 얼마나 취약한지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 각자의 소망 혹은 욕구에도 불구하고, 뇌는 바로 이 자기다움’,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경계이면서, 또한 이 길에 이르는 열쇠일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평생 어딘가에 속해 살아간다. 이러한 자각은 전통적인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넘어 구성원들이 파편화, 원자화 되고 고립되어가는 동시대에 보다 중요한 주제가 된 듯하다. 이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우리를 우리답게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정서, 소속감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뇌 이야기는, 인류가 학문으로서 수행하고 참여하는 모든 활동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와 통찰에서 우리는 신경과학의 한 갈래를 따라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길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생각거리는, ‘자아라는 실체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공동체, 나아가 환경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자아는 작게는 내가 속한 가정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자각을 일깨우는 일도, 우리가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길이 되기도 할 테다. 우리는 결코 외딴 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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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와 사회적 죽음
올랜도 패터슨 지음, 김혁.류상윤 옮김 / 이학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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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렸는데 마침내 나왔군요. 노예제도의 오랜 역사에 대한 책 같아 참여했습니다. 19세기 조선의 노비 인구 비율은 19세기 노예제 의존도가 최고조에 달했던 미국 남부 오예 인구 비율보다 높았다는 대목부터 흥미를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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