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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가려진 세상 - 생각실험으로 이해하는 양자역학
최강신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1월
평점 :
《우연에 가려진 세상》
최강신 지음
| [MiD]
20세기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가장 큰 발전을 이룬 세기일 것이다. 과학분야만을 보더라도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고전 물리학의 문제점들에 관한 논의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켰다. 인류는 비행기를 만들어 땅 위에서만 이동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20세기의 중반에 해명된 DNA 구조를 시작으로 새로운 과학, 유전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생물학의 길을 열기도 하였다.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달에 발을 딛기도하고, 태양계 외부로 나가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으며, 20세기에 발견 및 고안된 각종 과학이론을 토대로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현재 우리 삶이 각종 전자기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매일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 폰만 하더라도, 20세기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양자역학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은 사물이다. 스마트 폰에 내장된 GPS기능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모두 사용하는 대표적인 부산물이며,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칩, 스마트 폰의 두뇌인 프로세서,
디스플레이 등은 모두 양자역학의 발전과 이해가 없었다면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생각해보는 <우연에 가려진 세상>은 바로 양자역학에 대한 본격적인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를 읽고나면 언제나 드는 생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역시 양자역학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고, 둘째는 양자역학을 대중에게 쉽게 쓰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은 직간접적으로 양자역학과 절대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자각이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까지 이야기했던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상기해보면, 오랜 시간 물리학 연구에 노력을 쏟고, 학문적 훈련을 해온 학자들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분야가 양자역학일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를 읽는다면 우선 바로 이해가 가지 않다고 하더라도 바로 책을 덮을 필요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만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양자역학이라고 해도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해서 과거
20-30년 전과는 또 다른 생활을 해나가고 있지 않은가.
본 책의 저자와 같이 오랜 시간 물리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연구자라면 물리학 관련 강의나 책을 쓸 때, 대상이 누구인지를 예상하고 이에 따라 준비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 남았던 것은 대상 독자에 대한 설정이 다소 모호하지 않았나하는 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에서 학부생들을 가르치며 수업시간에 논했던 양자역학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므로,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의 독자가 물리학과 학부생이나, 물리 특히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을 것이다. 곧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진, 대학 학부생 수준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갖는 일반인을 최소한 염두해두었을 것이다. 책의 시작은 흥미진진하게 물리학 강의 노트로 유명한 세 권짜리 파인만 강의집 중에서 양자역학을 다룬 제 3권의 시작과 유사하게 시작한다.
다시말해 고전적 대상(축구공)과 양자적 대상(전자)의 겹실틈(이중슬릿)
실험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2부에서 양자적 대상의 입자-파동 성질의 이중성을 소개하기 위해 파동 물리학을 잠시 소개한 후 이를 양자역학의 맥락에서 연결짓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천천히 따라갈만 했지만, 3부 부터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지 수없이 새로 등장하는 물리적 개념에 대한 소개가 대체로 없이 나아가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저자도 책의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듯, 양자역학 분야에서 아직도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는 측정과 관련한 ‘얽힘’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는데, 이는 쉽지 않은 시도였을 것같다. 저자의 고충이 어느 정도 느껴지면서도 어떤 독자를 주로 대상으로 하고, 수업에서와는 달리 어떤 부분을 배려하여 독자들의 독서를 도울 수 있을지 좀더 고민을 하고 반영이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저자가 언급한 바대로 이 책에서는 양자역학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마련했던 코펜하겐 학파의 견해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검토하고 있다. 코펜하겐 학파에 대한 소개가 책의 앞에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인데, 코펜하겐 학파는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사람들이 속해있는 학파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학파의 주요 멤버로는 고전적인 원자론에 대한 문제점을 파동과 양자개념의 도입으로 양자역학적 원자론을 탄생시켰으며 상보성 원리를 주장한 닐스 보어를 주축으로, 불확정성 원리를 창안한 하이젠베르크 등을 우선 떠올릴 수 있겠다. 그리고 이들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 현상에 대한 해석은 양자물리학의 표준적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다시피 했던 점을 우선 저자가 상기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코펜하겐 학파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판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해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수많은 개념들을 고려해보면 단행본 교양서에 담기에는 지면의 제약이 많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다만 저자가 많은 내용을 담아내려고 하다보니 놓치는 부분이 점점 더 많아진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초반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코펜하겐 학파와 물리학사상 가장 격렬했던 논쟁의 상대자는 크게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로 대표되는 물리학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한 바에 따르면 코펜하겐 학파가 양자 현상에 대해 주장하는 물리적 해석의 기본 특징 중 하나는 그 해석의 성격이 ‘확률적’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 <우연에 가려진 세상>에 사용된 ‘우연’이라는 개념은 아마도 양자역학의 해석에 있어 ‘확률적’인 개념을 반영하는 ‘코펜하겐 해석’을 지칭하는 것이고, ‘우연에 가려진 세상’은 이 코펜하겐 해석이 표준해석의 위치로 자리매김해온 정황을 염두해둔 표현이 아닐까한다.
한편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물리적인 대상을 ‘측정’함에 있어 이 ‘측정행위’자체가 조사하려는 대상의 상태를 기본적으로 바꾸어버린다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삼는다. 따라서 과정을 되돌릴 수 없이 영구적으로 변형되어 버리는 ‘비가역적’인 특성을 함께 갖는다. 반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던 아인슈타인의 경우, 우주의 원리를 ‘확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알려져있다.
본 책에서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을 언급할 때 잠시 언급되긴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함께 코펜하겐 학파에 대항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크게 부각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물리 현상에 대해 확률적 해석이 아닌 ‘결정론적’이고 ‘통계적’인 ‘앙상블 해석’의 지지자로서 아인슈타인과 데이비드 봄이 좀더 비중있게 부각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전자의 겹실틈 실험을 비롯한 측정과 관련하여 ‘코펜하겐 해석’과 ‘앙상블 해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측정행위’가 측정되는 대상의 상태를 망가뜨리는지의 여부가 될 것 같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측정을 통해 전자가 가지고 있었을 법한 여러 상태 함수들의 ‘중첩’상태가 측정을 통해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어 버린다. 이를 양자역학에서는 파동함수의 ‘붕괴’ 내지는 ‘환원’으로 표현되고 있다. 즉 슈뢰딩거의 고양이 생각 실험에서와 같이 우리가 일정시간이 지나서 고양이를 넣은 상자를 열고 결과를 관찰하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의 상태가 혼재(중첩)되어 있는 상태로 보고 있지만, 관찰행위를 통해 이 상태함수(파동함수)의 중첩 상태는 하나의 결과로 결정되어 버리므로,
파동함수의 붕괴가 필수적이다.
반면 앙상블 해석은 전자 하나에 대한 상태 확률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유사 실험을 반복했을 경우, 설명할 수 있는 비율, 곧 통계적 해석에 기반하는 점이 주요 특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앙상블 해석의 경우는 측정 후에도 상태 함수들의 중첩상태가 여전히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 코펜하겐 해석과 크게 다른점이다.
이 ‘측정’ 문제의 해석에서 코펜하겐 해석과 앙상블 해석 사이의 다른 입장 차이는 빛의 ‘편광’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이 주장한 ‘EPR제안’을 소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앙상블 해석’의 지지자로서 이 세 사람은 ‘얽힘’ 상태를 이용하여 교환불가능한(즉, 측정 순서를 바꾸면 다른 측정값을 얻게되는)
두 물리량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얽힘’이라는 주제는 양자역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보인다. 저자는 ‘얽힘’을 ‘두 개의 입자를 따로 다룰 수 없는 양자 상태’(299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말로 풀이해보면,
‘두 입자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양자상태에 있다’라고 바꾸어 이해해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운동량 보존 법칙의 지배아래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출발한 빛의 편광상태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같은 편광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데, 이를 두 입자가 ‘서로 얽혀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 양자역학에서 이 ‘얽힘’ 문제가 ‘21세기에 이 얽힘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양자역학은 더 발전하게 되었다’(299면)라고 ‘얽힘’문제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얽힘의 문제에 기반한 ‘EPR역설’이 제기한 해석의 문제점은 ‘얽힘’의 중요한 구분 기준이 될 수 있는 ‘국소성(locality)’의 가정 뿐만 아니라 물리적 대상의 존재를 규정하는 ‘실재성(reality)’의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저자는 현대 물리학에서 ‘EPR역설’이 제기하는 문제점이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명쾌히 해결 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한다.
물리학 연구자로서 저자가 전해주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해석으로 자리를 잡고있던 코펜하겐 해석이 그 튼튼한 기반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 나와있는 어떤 해석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일 것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앞으로 물리학자들에게 남은 큰 숙제일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물리학자들이 고민해온 과정에서 우리는 이 양자역학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특히 양자 정보 이론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보다 많은 새로운 응용 및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컴퓨터의 연산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양자 컴퓨터의 이용으로 보다 빠르게 정보를 검색하고 전달하고,
정보에 대한 보안기능이 강화된 정보의 암호화 분야에 대한 전망을 저자는 짧게 언급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특히 ‘철학적’, ‘사변적’으로 보이는 이런 해석의 문제가 전혀 다른 분야로 보이는 ‘블랙홀’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혀주었다는 저자의 설명이었다.
이것은 자연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물리학의 강력한 특성 내지는 장점이 잘 드러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책을 덮으며 다시금 드는 생각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과 이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의 어려움이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저자가 사용하는 수많은 양자역학의 개념과 용어가 보다 면밀히 정의되고 소개되어야함에도, 이 부분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밀톤 역학에서는 속력보다 운동량p가 더 근본적인 양이므로 운동에너지를 *로 쓴다.”(160면 각주)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면 각 물리량에 대한 정의 뿐만 아니라 여기서 ‘근본적’이라는 표현의 말뜻도 보다 명확히 밝혀주고 독자를 안내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책 전반을 통해 저자가 물리학과 학부생을 주요 독자로 상정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저자는 ‘독자가 이미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 책은 저자가 특별한 설명 없이 사용하는 물리 개념과 용어에 대해 독자들이 부지런히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나가는 노력이 없다면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양자역학의 ‘정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같다.
물론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과 앙상블 해석, 여러 세계 해석 등을 이 책에서 소개한 것은 이미 양자역학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해석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보다 새롭게 느껴질지도 모를일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큰 화두인 ‘4차 혁명’의 기저에는 사실 양자역학이 있다는 사실 정도도 아울러 상기해볼 수 있겠다. 물론 ‘4차 혁명’이라는 개념 속에는 ‘인공지능’의 개념이 그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과학으로서 양자역학은 여전히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정보이론,
컴퓨터 과학, 각종 전자기기와 이를 통한 혜택은 모두 양자역학에 크건 작건간에 어느 정도는 빚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아가 같은 맥락에서 <우연에 가려진 세상>을 어렵사리 읽어내는 과정은 양자역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게 ‘얽혀’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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