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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 여행 중독자가 기록한 모든 순간의 여행
추스잉 지음, 김락준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추스잉 지음 | 김락준 옮김 | 책세상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나오는 방문지나 ‘맛집’을 찾아 다니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한다면 말이다. 이런 여행을 할거면 여행 가이드를 따라다니고, 준비된 차로 이동하며 ‘편하게’ 다니는 것이 더 낫다.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다. 따라서 타인의 추천지를 따라다니고 여행책에 나온 곳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나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의 저자 추스잉이 자주 언급하고 있는 ‘나에 대한 탐색’으로서의 여행 경험이 되려면 보다 나의 호기심과 관심사가 반영된 시간이 되어야 한다. 물론 나는 그 방법을 모른다. 다만 나는 나의 관심사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여행지에서 순간 순간 나의 반응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영혼을 단련시키는 최고의 수단이다.”(44면)
저자의 이 발언에 기본적으로 동의를 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도 한다. 여행을 ‘영혼의 단련’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보는 시각보다는 여행의 과정을 통해, 그리고 이러한 체험이 나와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통해 내게 각인되고 형성되는 자아의 성장을 발견하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여행이 수단이라기보다는 과정으로서,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에게 주는 영향을 평가해볼 수 있다라고 보는 관점이 나에겐 더 편하게 다가온다.
저자 추스잉의 자세한 여행 경력을 일일이 다 확인하지 않아도 전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음을 간접적으로로 확인할 수 있다. 여러 행사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NGO단체에서 봉사하는 일 뿐만 아니라 잠시 친구를 만나러 태평양을 건너는 등 저자는 세계를 종횡무진한다. 저자가 풍부한 여행경험을 통해 발견한 ‘매혹적인 세계’는 곧 ‘다름의 세계’였다.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시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문화는 저자에게 문화상대주의적인 시각을 일찍부터 일깨워주었다. ‘내 상식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매우 큰 인생의 자양분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있다면, 상대방이 옳다고 믿는 것을 인정해줄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표현해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좀더 나아가 ‘차이를 발견하는 경험’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한가지 더 나의 여행 경험을 떠올리자면 내가 처음 해외 여행(물론 여행이 반드시 ‘해외여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을 떠났을 때, 나 역시 나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피부로 느낀 기억이 있다. 심지어 두려움이 들정도로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이국적’이라함은 곧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낯선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는 대상에 대한 ‘무지’를 반영한다. 그러나 새로운 장소에서 일정기간 정착하고 나의 삶을 이어나가기 시작하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나 역시 이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후의 시간은 나와 다른 ‘차이점’을 발견하는 시간이 아니라 놀랍게도 나와 공유하는 ‘동질성’ 내지는 ‘보편성’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인간의 사회에서 언어와 문화, 역사가 다르다고는 해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결국 인간이기에 공유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물론 나는 저자 추스잉의 여행 경험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이 ‘인간의 조건’에 대한 보편성을 깨닫는 경험은 여행이 아니면 얻을 수 없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여행을 통한 문화의 상대성을 발견하는 저자의 경험에서 내가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이집트의 자리앉기 상식에 관한 지적이다. 이집트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비어 있던 자리에 앉기보다는 누군가 앉았다가 방금 일어난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집트에서 한낮 기온이 섭씨 45도를 넘지만 사람의 체온은 그보다 낮은 36.5도 수준이기에 방금 일어난 자리의 온도가 더 낮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더운 곳에서 보다 시원한 장소나 자리에 앉으려한다는 우리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 이집트라는 특수하고 다른 환경에서 완전히 다르게 전개됨을 관찰하게 된다. 다른 지역과 문화환경에서 각기 다른 현지인들이 찾아낸 생활의 지혜는 현지인들만의 것이다. 이 현지의 지혜는 그 특수한 환경에서만 유효할 수 있다는 점과 현지에서는 내게 익숙한 지혜보다 현지의 지혜를 따르라는 두 가지 교훈을 여행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탐색하는 여행 그리고 여행 DNA】
저자가 자신의 풍부한 여행 경험을 통해 크게 할애하고 있는 부분은 여행을 통한 ‘자신의 탐색’이다.
“여행 DNA를 키우려면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141면)
나는 ‘여행 DNA를 키우려면’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저자의 이 말의 방점은 뒷부분이다. 곧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상당한 여행 내공(여행 DNA)을 바탕으로 이 물음에 대한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것이다.
“위대한 여행은 온몸과 온 마음을 동원해 탐색하는 여행이다.”(160면)
“탐색하는 여행은 위대한 여행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여행은 자신의 열정을 한껏 표출하는 여행이다.”(165면)
“평범한 사람도 내면의 열정을 따르면 위대한 여행을 할 수 있고, 세상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자기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다. 이때 자아를 탐구한 사람은 여행이 끝나는 동시에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사람이 된다.”(171면)
다소 모호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나 자신을 탐색하는’ 여행의 중요성에는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열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자아를 탐구하는 과정이 여행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아 탐색’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이다. 나에 대해 아직 ‘무지’하기 때문이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는 결국 가장 근원적인 존재(나)에 대한 물음인 동시에 추스잉이 언급하는 여행 DNA라는 것이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추스잉은 ‘여행DNA’를 키우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 철학자가 새긴 이 말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여행 DNA가 잠재되어 있다’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린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가 태어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이 잠재되어 있는 여행DNA를 발견하고 발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탐색했던 몽테뉴 또한 고통스러운 지병인 결석을 앓았음에도 말안장에 올라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음을 상기하면 자아탐색과 여행의 관계를 또 한 번 연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죽음을 생각할 때 말 위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택하겠다.’는 취지의 기록을 남긴 몽테뉴를 ‘회의하는 정신’으로 표현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곧 추스잉이 언급하는 ‘여행 DNA’를 키우는 일은 회의하는 정신을 위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회의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낯설게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말하면 자신을 일정한 거리를 의식적으로 두고 바라보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한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무궁무진한 사람은 여행DNA가 풍부한 사람’이라는 견해에 크게 공감한다. 곧 저자가 알려주는 ‘여행의 기술’은 정보를 잘 찾거나 맛집을 잘 찾고,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해외의 명소를 방문하지 않아도,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는 풍부한 여행의 경험을 할 수 있음도 알려준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호기심하나로 새로움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관점이 마음에 들었다. 남들이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하는 깊은 시골에서도 여행DNA가 성숙한 사람은 자연의 경이와 새로움으로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반면 여행DNA의 ‘발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은 아무리 다양하고 강렬한 자극이 상존하는 외국의 대도시에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금방 따분하고 지루해할 것이다. 아마도 여행DNA가 성숙한 고수 중의 고수를 한 명 떠올리라면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쓴 그자비에 드 메스트로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메스트르는 자신의 방에 놓여 있는 사물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사유를 펼친다. 자신의 일상에서 ‘호기심’이라는 여행DNA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천천히 경험하는 여행을 위하여】
이제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할 때가 된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추스잉과 한 팀이 되어 후지산 기슭에서 손을 호호불며 마마차리 그랑프리에 참여한 것같다. 나도 언젠가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을 가져본다. 추스잉이 언급했듯이 길 위의 여정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승리보다 몇만 배 더 매력적이다. 달리말하면 여행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여행DNA가 더욱 성숙을 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 탐색하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와 같은 끊임없는 탐색이 나를 좀더 성숙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으로 되는데 영향을 주게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행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맛집과 명소를 찍고 돌아와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여행을 벗어나서 자신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자신의 열정이 표출된 ‘느린 여행’을 나도 해보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타인의 욕망이 투사된 타인의 삶, 타인의 여행을 하는 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찾아나서는 내 여행을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