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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평점 :
<고백 그리고 고발>
안천식 지음 | 도서출판 옹두리
한 편의 소설같은 일들이 대한민국의 어느 한 구석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대기업의 무모하고 정정당당하지 못한 소송으로 한 개인의 기본권이 무참이 짓밟힌 사례를 나는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내렸다. <고백 그리고 고발>은 변호사인 저자가 10여 년 간 겪었던 한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한 대기업과 개인사이에 있었던 부동산 관련 계약에 얽힌 사건이었다. 대기업은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위조하고 개인의 막도장을 만들어 해당 위조계약을 체결하여, 헐 값에 개인의 땅을 사들였다. 나아가 소송에서 회사에 직접적으로 적을 두고 있는 혹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을 증인으로 세워 위증하게 하였다. 여기까지 벌어진 일들은 분명 흔히 들어본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들을 취급하는 법원, 판사들의 행방을 보면서 법을 모르는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형평성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일들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보게 되었다.
보다 간단히 이렇게 정리해보자. 만일 여러분이 시가 40억원의 땅을 갖고 있는데, H건설과 같은 대기업이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고 여러분의 땅을 매입하는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H건설이 매매계약서를 위조하여 9억원 정도의 금액만 지불하고,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공표한다. 땅 소유주인 여러분은 물론 당연히 황당해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지지부진한 공판 과정에서 대기업은 문서를 위조하고, 자기 측 사람을 증인으로 만들어 위증을 하게 한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번번히 위증하는 증인의 말만을 증거로 인정하여 여러분의 권리를 짓밟는데 아무런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기간이 길어진 만큼 H건설은 건물의 철거가 H건설에 있는데도, 다시 계약서를 위조하여, 건물주가 아닌 여러분에게 철거의 책임을 떠넘기고, 다시 3억원의 돈을 가로 채었다. 그런데도 H건설은 자신들의 전관 변호사, 대형 로펌의 법률가를 대동하여 모든 소송에서 승소한다. 무리한 H건설의 소송으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지 못한 법률에 무지한 한 사람은 자살하고, 여러분은 희귀한 불치병에 걸려 몸과 마음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여러분은 어디 하소연할 데 없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사회의 루저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바로 이런 일이 이 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단순히 정리해본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사람(저자)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의 후반에는 숱한 재판과 기각, 증거 수집을 하는 고생을 한 후 결국 승소를 할 줄 알았는데, 맥이 탁 풀렸다. 대한민국의 사법 환경에서 이런 기대에 부합하는 소송이 있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 이 책에는 10여 년 간 18차례 계속 패소한 ‘패소 전문 변호사’가 경험한 사법 현실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저자가 제출한 상고 사유서에 대한 법원의 대응(주로 재심 기각, 증인 신청 기각 등)을 보면서 뭔가 이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법원과 변호사 사이의 소통자체가 되지 않는, 아니 이를 거부하는 듯한 법원의 행태에 젊은 변호사로서 저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마도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통 방법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답변의 생략인 듯 합니다.”(355면) 저자의 당황스러운 감정과 회한에 찬 듯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답답한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법원의 존재이유를 고민하며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론을 언급한다. 몽테스키외는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되 재판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어있지 않을 때 시민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사법독립에 관해 언급하였다. 우리의 사법 독립은 과연 가능하기나할지 의구심만 든다.
이 책을 읽는동안 자세한 법률 용어와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과 판결문의 대의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니 글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벌어진 실제 사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증거를 착실히 수집하여 추가하고, 법리를 연구하고, 논문을 섭렵하는 등 변호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 이의 외침에 법원은 그저 회피와 침묵, 거절로 화답한다.
나는 여기서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성장하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힘들게 공부하여 판검사 및 변호사가 되어 권력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는 전문가들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또한 보게 되었다. 다시 정리한다. 안천식 변호사의 <고백 그리고 고발>에 등장하는 10여 년간의 재판 과정은 대기업과 법원이 어떻게 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유린하며 약탈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막중한 권한은 직간접적으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할 책임이 있다. 저자의 언급대로 ‘법관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법원의 대응을 보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결 및 그 사유를 공공연하게 발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고등법원, 대법원의 판사들이 일관되게 대기업에 의해 매수라도 당한 것일까? 아니면 법원에서의 일처리 관행이 이렇게 이어져내려오는 것인지? 사실 어떤점에서보면 특정 판사가 매수당하는 경우보다 이러한 일처리 관행이 존재한다면 이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첫 하급법원의 공판 결과를 상급법원에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관례인 것일까? 끝없는 의문이 든다.
시민의 기본권, 시민의 자유는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당연한 생각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법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법률가들이 기타 시민의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헌법으로 보장된 권한과 책임이 하나의 권력이 되면서 사법권의 독립성 마저도 크게 손상을 입은 것같다. 대한민국의 법원 및 법률가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데에는 한홍구 교수의 <사법부>와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은 왜?>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들을 통해 대한민국 지식인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고, 특히 사법부의 역사와 그 체질을 좀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으므로 겹쳐 읽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좀더 면밀히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 <고백 그리고 고발>의 속편 <찢어진 통장>이 나온다고 한다. 이 책들은 시민들 뿐만 아니라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읽어보고 고민해봐야할 문제들을 담고있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군복무시절(태평양 전쟁 당시) 폭격기를 조종하며 당시에는 자신이 투하한 폭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삶을 짓밟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상에서 폭격을 당해 가족을 잃고, 사람들의 터전이 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신이 한 일이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법관들은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체계인 ‘법’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 그 파괴력을 분명히 이 사례에서 살펴보고 고민하고 반성했으면 한다.
프롤로그에도 언급하지만, 저자가 10여 년 간 쓰라린 경험을 한 후, 이를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속내를 드러내었다.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은 후 젋은 변호사로서 개업을 하며 맞닥드렸을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을 저자는 자신의 세포 하나 하나에 각인해두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말들을 가슴에 묻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한가지 당부를 덧붙이며 끝내고 있다.
“사법부가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04면)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난 10여 년간의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의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었고..." (프롤로그)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단지 법에 대한 무지 때문일까?"(227면)
"현실도 모르면서 혼자서 진실을 밝혀보겠다고 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구경꾼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며 비웃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29면)
"힘 있는 자에게는 여러모로 편한 세상이고, 힘없는 자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자체가 그러한 세상이었다. 나는 즉각 검찰 항고를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기소유예도 아닌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불기소 처분이었다. 재항고를 해봐도 소용없었다." (264면)
*법원의 행태에 대한 저자의 비판
"아마도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통방법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답변의 생략인 듯합니다." (355면)
"역시 그들만의 소통방법인 과감한 생략과 이유있는 항변에 대한 침묵과 무시였습니다." (375면)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론 인용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되 재판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어있지 않을 때 시민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394면)
"법관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 (403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가하는 당부
"사법부가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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