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문학작품 읽기/당신의 감성이 언제나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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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How to Read Literature)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문학 작품은 인간의 삶을 다루고, 인간에 대한 작업이다. 문학 작품이 드러내고 우리에게 묻곤 하는 삶의 양상에 대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런 문학작품을 어떻게 읽어야할까라는 갈증을 느껴왔다. 그 때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스스로 터득할 것이라는 막연한 결론으로 나의 독서력의 부족을 탓하곤 했다. 이공학도였던 나에게 ‘분명한’ 정답을 제시해주지 않는 문학작품을 읽는 일은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을 탐험하는 일이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은 여러 문학 작품을 거론하며 문학작품을 읽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구분하자면, 일상적인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읽는’일에 관한 길이 아니라 ‘문학비평’에 관련한 길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보다 ‘면밀하고 주의깊은’ 문학 작품 읽기 혹은 ‘비평적 읽기’에 관한 방법일 것이다. 저자는 문학을 어떻게 읽으면 쉽게 읽을 것인가하는 지름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는 일은 꽤나 도전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테리 이글턴이 제시하는 문학비평과 관련한 여러 전략들 중에서 내가 주목하게되는 공통적인 원리는 바로 ‘언어에 대한 고양된 감수성’이다. 문장의 느낌표 하나에도 몇 문장의 비평적 논평에 달하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텍스트’ 속의 ‘콘텍스트’를 파악하는 일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이런 문학비평의 측면은 ‘극소한’ 측면인데 저자에 의하면 보다 ‘큰’ 문학비평의 문제들로서 ‘인물, 플롯, 주제, 서사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저자는 언급하며, 곧바로 저자는 도입부를 거쳐 인물, 서사, 해석, 가치라는 주요 맥락 속에서 자신의 몇가지 ‘비평적 도구’를 일반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비평적 분석이 문학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제정신일까? 아뭏든 약간의 의혹과 약간의 믿음을 가지고 읽어나가보았다.

문학 이론가이자 정치 평론가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 테리 이글턴이 제시하는 몇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들을 내가 읽지 못했으므로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감수하지 못했다. 나아가 저자는 다른 작품을 이야기하며 앞에서 이야기했던 다른 작품들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데, 작품과 작품을 평론가의 관점에서 긴밀하게 연결시키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고있다. 예컨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등장 인물인 핍(Pip), <올리버 트위스트>의 올리버, 샬럿 브론테의 <제인에어>에 등장하는 제인, 그리고 심지어 근래에 들어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낸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시리즈 속 인물인 해리의 공통점을 언급하는 식이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부모의 결핍’이라는 맥락에서 다시말하면 ‘고아’라는 관점에서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매우 매력적인 소재라는 것이다. 물론 ‘고아’라는 주인공의 입장을 고려한 글들은 많지만 테리 이글턴의 경우,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사유와 지식을 통해 염주를 꿰듯 낱낱이 떨어져 무관해보이는 사실들을 본인의 고유한 시선으로 엮어낸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대한 첫 문장에대한 분석부터 심상치 않다.

“사월의 화창하고 차가운 날이었다. 시계가 열세 시를 울리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지독한 바람을 피하려고 가슴팍에 턱을 붙이고는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재빨리 미끄러지듯 지났다. 그렇지만 모래 섞인 먼지 소용돌이가 함께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민첩하진 못했다.”

테리 이글턴은 시계의 ‘열세 시’를 지적한 면, 먼지와 모래 그리고 바람/소용돌이까지 그 의미를 따진다. 평론가이긴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파고드는 것은 아닐까?(너무나 세심하고 주도면밀한 분석이기는 하지만). 읽어가며 불현듯 떠오른 나의 의혹과 우려를 미리 집작이라도 한듯, 테리 이글턴은 바로 틈을 치고 들어온다. “틀림없이 어떤 독자는 이런 해석이 터무니없이 기발하다고 생각하겠지요. 해석이란 엄밀히 말해서 당연히 기발한 것이이 깨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나의 불편함을 달래고 있다.

“오웰이 먼지를 긍정적 이미지로 그리려 했거나 그런 생각을 혹시라도 떠올린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작가의 의도일 거라고 짐작하는 바에 늘 순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편 테리 이클턴에게 보다 주목을 하게 되는 점은 본인이 독자로서 혹은 비평가로서의 해석이 틀릴 수도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책을 더 읽어가면서 알게 되는 사실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람이 언제나 악의 이미지로 제시된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그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럴 경우에 회의적인 독자들은 그것이 텍스트에 대한 엉뚱한 해석이라고 판단할 다른 근거를 찾아야 겠지요. 그 결론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쯤에서 나는 테리 이글턴의 견해에 공감을 하게되고, 이것이 나아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작품은 아무리 오랫동안 정성들여 퇴고를 거듭하고 작가의 사상과 의도로를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일단 책으로 만들어져 서점에 진열되고 나면 그 작품은 더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작품은 이미 작가의 수중을 벗어나 그 작품을 익는 독자의 것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작가가 ‘이것은 이런 의미이고 저것은 또 다른 이런 의미이다’라고 모든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곧,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와 독자가 받아들이는 간극, 혹은 각자가 받아들이는 진실은 언제나 항상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독자가 읽게되는 문학작품은 온전히 독자의 것이 된다.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의 잘못을 우려하거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독자는 언제나 옳다. ‘언제나 독자의 감성이 정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읽어나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독자의 특정 해석, 감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테리 이글턴은 분명히 ‘자신의 해석이 틀릴 수도 맞을 수도 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독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학작품이 나아가 10대, 20대, 30대…등 다른 나이에 다르게 다가오고 다른 감흥을 줄 수 있단즌 사실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있듯이, 자신의 감성과 해석의 정당성을 믿으며 읽어가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할 점은 ‘당신은 언제나 옳다’라는 것이다.

나는 저자가 제시하는 ‘문학작품을 읽는 전략’이나 폭넓은 문학작품을 섭렵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부분보다(사실은 내가 읽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문학작품 자체의 ‘읽기’에 관한 대목에 주목해보게 되었다. 읽기의 문제는 나 스스로 일반 독자로서 그리고 문학작품에 경험이 적은 초보 독자로서 큰 관심의 대상이다. 분석적인 읽기 방식으로서 문학 비평의 길을 제시해주는 테리 이글턴은 ‘천천히 읽기’의 방식을 언급하고 있으며 천천히 읽기를 옹호하고 있다. 그는 평론가로서는 의외로 짧게 쓴 서문에서 책 읽기의 전통으로서 100년도 더된 니체의 ‘슬로리딩’을 언급한 점이 흥미롭다. 이 ‘슬로리딩’의 전통이 현재는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아마무라 오사무가 <천천히 읽기를 권함>에서 다독가이자 속독가인 평론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읽는 방식을 비판하고 있는 것 처럼, 과도하게 정보화되어있는 현대 사회에 다시금 ‘천천히 읽기’의 가치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다시 얻는 것 같다. 책을 많이, 빨리 읽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책읽기라는 행위가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에 대한 기대치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책을 보고, 중요한 정보를 얻는 행위로 책읽기를 의도한다면, 이 방식이 분명 효율적일 것이다. 반면 저자가 나누고 있는 생각과 지식, 경험을 들여다보고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읽기를 의도한다면 분명 책을 천천히 읽어야할 것이다. 

아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 이토 우지다카의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윌리엄 파워스의 <속도에서 깊이로>, 에밀 파게의 <단단한 독서>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성과’ 내지는 ‘양(quantity)’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모두 ‘천천히 읽기’에 대하여 그 가치를 전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한 것처럼 장르에 따라 혹은 목적에 따라 다르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는 수긍이 가지만, 쓸모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언제나 동의하긴 어렵다. 그리고 다독에 대한 그의 관점에도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명로진 작가의 <몸으로 책읽기>에서 인상적인 책읽기의 모습을 보여주듯, 온 몸으로 경험하는 책읽기가 문학작품을 읽어나가는 데에 일반독자로서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외국이 배경인 문학작품을 보고 현장에 가기는 힘들겠지만, 작품의 인물들이 드러내는 감정의 양상에 우리를 대치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책의 머릿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는 문학 텍스트의 ‘언어’에 어느 정도 민감하게 ‘반응’해야함을 강조한다. 이는 흡사 사진찍기의 과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 사진찍기에서는 피사체, 곧 대상을 관찰하고, 사진가의 내적인 인식과정과 행동에대한 결정과정을 거쳐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된다. 이 대상을 관찰하고 셔터를 누르는 과정 사이의 영역을 ‘반응’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반응’에 내포된 심상(곧 이미지)의 형성이 문학을 이해하는 ‘반응’과정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다시말해 시각적인 과정을 통해서건, 텍스트를 통해서건 어떤 현상에 대한 의미가 우리의 인식 내부에서 생겨난 과정은 모두 ‘반응’을 공통적으로 수반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문학이든 사진이든 예술활동의 본령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나면 내가 과연 ‘비평적 분석’을 나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모든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적 읽기’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정리해보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서 저자들이 사용하는 ‘언에’에 민감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며 읽을 것, 그리고 ‘천천히’ 읽을 것이 초보 문학 독자로서 보다 유용한 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테리 이글턴처럼 수많은 작품에 대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는 사유의 망은 시간을 들여 이러한 미세한 과정을 거친 이후에 보다 큰 시각에서 작품을 다시금 떠올려 볼 때 가능한 일이겠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나는 중요한 무기를 얻었고, 당분간 이 무기를 사용하여 책을 읽어볼 일이다.  

"희곡이나 소설의 ‘문학적 성격’을 간과하는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는 작품의 인물들을 실제 사람처럼 다루는 것입니다."(97면)

"그 자체로서 연극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에게 겸손의 미덕을 키워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귀중한 미덕입니다."(97면)

"사랑과 샤토뇌프 뒤 파브 포도주가 사라진다면, 그와 더불어 전쟁과 독재자도 사라지니까요."(98면)

"우리는 한 문학 작품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찬동할 필요가 없습니다."(308면)

"눈에 핏발이 선 천재가 새벽 두 시에 퍼뜩 떠올린 생각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인류가 공유한 지혜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어디서나 유사하고, 이 말은 곧 호머가 소포클레스가 인간의 본성을 그려낸 방식에서 진정으로 더 나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327면)

"그리고 문학작품의 해석은, 아무리 무의식적으로라도, 우리의 문학적 가치와 가정에 의해 채색됩니다. 무릇 문학적 고전이란 변함없는 가치를 가진 작품이라기 보다는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산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어떤 비평가는 생각합니다."(3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