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뭐랄까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는 ‘필사’문화가 번성했던 해가 아닐까 한다. 사실 책을 그다지 읽지 않은 나는 부끄럽지만, '필사' 라는 단어를 올해 처음 듣게되었다. 반면 신문에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10권을 필사한 80대 할머니가 기사화되어 나오기도 했고, 거리를 지나다보면 성경 필사반 모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새봄 출판사에서 한국 단편을 필사하는 책이 나와 인기를 많이 확보한 모양이다. 나아가 <마음 필사>,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같은 필사책도 나오기도 하고 명시를 필사하며 음미하는 책도 있다. 그런가하면 천병희 교수가 본인이 번역한 고전 중 가려 뽑은 <필사 다이어리>시리즈도 있지 않은가. 문화센터에서는 필사 수업이 생겨나기도하고 아뭏든 올해는 필사가 눈에 띄게 붐을 이룬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문득 기존의 작가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해왔던 필사가 이렇게 폭넓게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우선 글쓰기에대한 관심의 증가가 그 한 이유일 것이다. 글쓰기 책은 유독 2000년대 들어 눈에 띄게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출판되는 책은 어느 정도의 주기가 있는 모양이다. 혹자는 글쓰기에 대한 지대한 관심, 예컨대 글쓰기 책이 잘 팔리고, 대학에서 글쓰기 강좌가 붐을 이루는 이유를 경제난과 취업난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대학에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의 주된 목적이 자기소개서를 쓸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그럴듯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서평 쓰기>와 같은 책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책읽기글쓰기 혹은 서평쓰기에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라면 시행착오도 많을 수록 좋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책읽기글쓰기를 시도해보고, 좌절해보고, 나름대로 다시 도전해보고 하는 과정에서 각자는 나름의 길을 언젠가는 발견해나가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얄팍한 목적의 글쓰기 수업이 붐을 이룬다고 해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입장이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효과를 얻거나 계획된 길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글쓰기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일이다. 독서에대한 중요성의 인식 뿐 아니라, 시험제도로서의 논술이 갖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초중고 및 대학생들의 외국 유학생들이 많아짐에 따른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예컨대 미국에 일찍 유학을 나간 수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방식의 수업방식에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글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에서 이 유학생들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취직이나 연봉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통계를 수도 없이 접했을 것이다. 글을 쓸줄 안다는 것의 힘에대해 그리고 중요성에대해 보다 폭넓은 인식이 생겨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블로그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된 것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인문학 열풍을 타고 독서 모임의 활성화가 책읽기글쓰기에대한 관심이 더욱 증가된 원인이기도 하다. 사사키 아타루가 언급했듯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유신 말기 1978년 부산에서 양서협동조합이라는 독서 모임이 생겨났다. 이 모임에서 나온 인물들이 카톨릭 사제이자 활동가로서 중앙정보부에 48회 이상 체포되면서도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송기인 신부를 비롯하여, 무명의 노동 변호사였던(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도 있지 않은가. 아울러 이 모임은 여러 명의 국회의원도 배출해내어 책을 읽는다는 것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사사키 아타루가 언급한 것처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활동인 것이다. 책을 읽고야 말았다는 것은 책을 읽은 후 독자는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기 전과 다를 바가 없다면 <논어>에 나온 것처럼 책을 읽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 책읽기글쓰기에대한 관심과 더불어 필사와 관련한 출판 서적 및 관심이 증가한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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