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매일 일하라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 86면)

 

 

우리는 매일 일해야 한다.

그것도 늘 힘들게 일해야 한다.

차이점이라면 무슨 일을 하는가에 있다.

 

 

하루의 힘든 일을 마치고 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순수한 기쁨이다.

 

 

무슨 물건이든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누군가의 힘든 노동이

낳은 결실임을 기억하라.

그것을 망가뜨리거나 쓰레기통에 던진다면

그것은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지옥은 즐거움 뒤에 숨어 있고

천국은 노동과 고통 뒤에 숨어 있다.

 

 

- 톨스토이는 육체노동을 매우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매일 매일 그것도 힘들게 일하라고 말하는데, 톨스토이는 두 손으로 일하는 목수나 요리사를 만나면 부끄럽다라고 하기도 했다. 매일 매일 힘든 일을 마치고 누리는 휴식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기쁨이라고 단언한다. 나는 이 글에서 매일 매일의 노동이 중요하다는 말보다 사물에대한 태도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주목을 하게된다. 내가 쓰고있는 물건은 누군가가 힘들게 일한 결과임을 기억하는 것이 이 물건을 만든이에대해 그리고 이를 사용하는 나의 노동에대해 존중하는 태도라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를 경물(敬物)하기라 할 수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박노해 시인의 시 경운기를 보내며이다.

 

 

 

경운기를 보내며

 

11월의 저문 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개

막걸리와 고추 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 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경물敬物할 줄 모르는 자는

경천敬天도 경인敬人도 할 줄 모른다는 듯

물건에 대한 예의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남아 있을 리 없어

 

 

사람을 쓰고 버릴 때 어떻게 하더냐고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아픔도 없이

돈만 알고 경쟁력과 효율성만 외치는 자들은

이미 그 영혼이 폐기처분된 지 오래라는 듯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393)

 

 

- 시는 지금과 같은 11월의 어느 날 농부인 김씨가 23년간 함께해온 경운기를 폐기처분하기 전 경운기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장면이다. 나는 시를 잘 감상할줄 모르겠지만,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 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여러 가치를 보여준다. 자신이 오래 써온 물건에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김씨는 성실한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3번 째 연의 김씨의 말로 보이는 부분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평생 함께해온 배우자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부부의 모습처럼 숙연해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톨스토이가 말한대로 김씨의 경물하는 태도는 곧 자신의 노동과 경운기를 만든 누군가의 노동에 대한 크고 깊은 존중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물건에대해 이러한 존중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에대한 자세를 의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시카고 경제학파가 중심이된)의 핵심 인물인 밀턴 프리드만의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현재, 나는 이들이 주장한 경제이론들이 지닌 가장 크고 중대한 결함은 여기에서 인간에대한 가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순수한 상태로의 방임, 무역장벽 철폐 등등의 구호 속에서 이들의 수익성효율성제고를 위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경쟁상대로 몰아가고있는 모습밖에 찾아볼 수가 없다. 평생직장이 이제는 사라진 것도 결국은 인간 자체를 또 하나의 상품으로 보기에 인간을 쓰고 버리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대기업에 취직하기위해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4년동안 긴장한 상태로 취업준비생이 되고,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라는 기준에 우리는 스스로를 상품화하여 우리를 최적화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리고는 극소수의 직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40대 중반에 권고사직을 통보받기 전까지 죽어라 일하고 받은 월급은 빚갚느라 털린다. 이게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다. 톨스토이의 글을 읽다, 시를 떠올리고 다시 삼천포로 빠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이라는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쌀쌀해진 11월의 마지막 주말 아침, 사람의 온기를 더 많이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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