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짧은 독후감]

 

 <길귀신의 노래>

곽재구 지음

 

 

     곽재구 시인의 산문집은 읽기 시작하면 설레이고 행복한 느낌을 준다.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여행하는 지구별 여행자이다. 그가 위에 서면 어디서든 사람들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표정을 읽으며 의미를 사람들에게 묻는다. 시인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다.

     국민학교(그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나왔으므로) 1학년 선생님의 도시락에 얽힌 추억으로 시작하는 선생님의 도시락 아마도 시인이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타인에대한 따뜻한 시선과 신뢰를 평생 지니도록해준 이야기 것이다. 이웃집에 사시던 담임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시던 시인의 집에 들러 자전거 뒷자석에 시인을 태우고 등교를 하게 된다.  선생님의 등에선 담배 냄새가 났지만 싫지 않았으며, 뒷자석에는 선생님의 따끈따끈한 점심 도시락이 놓여있어 엉덩이가 등교길 내내 따뜻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꼭지를 읽으며 나는 개인적으로 <포구기행>보다 책이 마음에 들었다. 번째 그리고 번째 글을 읽고나서 나는 책을 덮었다.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도시에선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그런 사람사이의 향기를 정말 오래간만에 느꼈다. 향기를 좀더 음미해보고 싶어 책을 덮었다.  프리지아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품에 안고 걸어가던 공중 목욕탕에서 만난 맹인. 모습을 상상해보라. 맹인의 아내마저도 앞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끝의 감촉으로 꽃을 보는이들은 맹인이 아닌 우리들보다도 꽃을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여행자가 누릴 있는 특권을 온전히 누리는 모습이 아닐까. 시인의 이야기들은 삶의 핵심이 지금 여기 있다고 나에게 가르쳐준다.

     한편 아카시아 향기에 이끌려 어렸을 처음 ‘40리를 걸어자신도 모르게 가출하게되었던 이야기도 흥미롭다. 곳에서 만난 아저씨가 어린 시인을 집에 데리고가 3일을 어디서 왔는지도 묻지도 않고 재워주고 같이 밥을 먹은 이야기는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다. 이처럼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人間)에서 배어나는 향기를 맡을 있다. 그가 따스한 햇볕을 밟고 가면 이야기가 그를 따른다. 시인은 마을에서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며 마을의 이정표를 살피고 의미를 곱씹어본다. 그리고 다시 걷고 사유한다. 시인은 위에서 오감으로 장소를 느낀다. 그리하여 시인은 나는 꽃들의 얼굴에 눈을 맞추며 계속을 따라오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시인의 육체와 오감을 통하여 경험하는 삶이자 추억이며, 시인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시인에게 있어 길귀신 시인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길동무이다. 바로 옆에 있는 , 곳에서 만난 이들, 먼저 살다간 이들의 흔적들 모두 시인의 길귀신 된다. 따라서 시인이 길위에 때면 언제나 사랑스런 길귀신들에게 마음의 혼을 모아 다정하게 인사한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길귀신들은 시인의 도반(道伴)들이다. 심지어 처음 보는 시인에게 험한 말을 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힌 사람마저도 시인에게는 삶이란 어떤 고통속에서도 지켜내야 하는 인간의 예의라는 깨달음을 주는 스승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 <길귀신의 노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자신이 꿈꾸는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1년 2년 10년 묵묵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는 그 길을 걷습니다. (...) 고통 속에서 한 인간이 십 년 이십 년 동일한 꿈을 꾼다는 것은 자신의 안에 신의 정원을 빚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정원에 신의 숨결이 머무는 것입니다. (161면)

쫑포에 오면 오래전 전장포 사내의 험한 인사말이 생각난다. 그 덕에 나는 삶이란 어떤 고통 속에서도 지켜내야 하는 인간의 예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이 이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은 결코 쫑나지 않았다. 쫑포는 삶의 은유이며 역설이다. (188면)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은 우리가 매일 시를 읽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큰 기쁨과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 아이들에게는 태어날 적부터 지닌 고통이 있고, 우리는 그들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고통이 있기에 우리 부부는 행복하다. 모든 기쁨은 눈물 근처에 있는 것이다. (193면) 한국인 아이를 입양한 한 프랑스인 부부의 말

나는 눈을 감은 채 길섶을 따라 걸으며 또 한 번 말합니다.
고마워. 우리를 머물 수 있게 해주어서. 그럴 때 나는 흙이 내게 전해주는 아주 따스하고 가벼운 생의 진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살아 있음이란 내게 햇살을 등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 일입니다. (208면)

당신에게 세상의 길 위에서 내가 꾼 모든 여행의 꿈들을 드립니다. 당신이 있어서 어리숙한 지상의 여행이 내내 행복했습니다. (265면)

11월의 나무들이 살점을 뿌린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가 사라진 것이 아닌 달’로 부른다. 얼핏 다 비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의 빛나는 숨결은 끊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29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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