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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평점 :
책을 배송받기 얼마 전 나는 공교롭게도 페이스북을 포함한 소셜 미디어/네트워킹 서비스 몇 군데를 영구 폐쇄했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는 30명 수준이었고, 대부분이 가족과
친척 그리고 ‘현실에서 아는’ 친구였다. 막상 영구 폐쇄 신청을
하고 최종 버튼을 누르려니 약간의 미련이 남는다. 폐쇄 신청을 한 후 느꼈던 안도의 한숨도 떠오른다.
내가 올린 몇 안되는 사진들과 조카의 사진들을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이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실제로 조카를 더
자주 보면 된다. 사실 나는 싸이월드에 열중하던 세대이고, 2004년
페이스북이 등장했을 때 페이스북은 나에게 새로운 면보다 오히려 싸이월드에 익숙했기에 불편하기만 했던 서비스였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페이스북이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페이스북
서비스를 시작하던 즈음에는 싸이월드 페인이 무수히 퍼져있던 상황이었기때문이다. 페이스북을 폐쇄한 후 거의
3주가 지난 지금 내가 평소에 친구와 친척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던지, 아무도 페이스북에
내 존재가 사라짐을 의문스러워하지 않는다. 이럴땐 다소 섭섭하다. 하지만
반성하기도 한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이하 페친)를 챙기지 않았던 것은 나였으니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다.
지금 나는 나스스로에게 묻는다. 소셜 네트워크가 그리고 스마트 폰이 나의 삶을 더 의미있게
해주었을까? 페이스북을 비롯하여 4가지 소셜 미디어/네트워크 서비스를 폐쇄해버린 나는 이 무형의 존재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아무도 가상 공간에서 나의 상태(status)를 보고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듯이.
페이스북은 2004년 하버드 학생들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 서비스로 탄생하였는데,
2001년 이후 등장한 애플의 모바일 기기의 영향으로 더욱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다. 페이스북은 이제 많이 사용하는 10개국 이용자 수만 고려해도 5억 3400만명을 넘었고, 올 8월(2015년) 기준 페이스북 하루 이용자는
10억 명이 넘는다고한다. 임상심리학자인 수재나 플로레스는 <페이스북 심리학>에서 이처럼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페이스북이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의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페이스북’으로 검색해보면 대부분이 책들은 페이스북에서의 비즈니스, 마케팅 활용에 관한 책이 줄줄이 검색된다. 하지만 이 새로운 가상 공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논한 책은 손에 꼽는다. 저자는 다년간의
자료수집과 폭넓은 연령대의 사용자들과 인터뷰를 한 후 이를 정리하여 우리 삶에서 페이스북이 갖는 위치와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페이스북은 한병철 교수가 <심리정치>에서 선언했듯이
‘현대문명의 디지털 시나고그’(유대교 예배당)이자 ‘디지털 파놉티콘’(1791년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이 되었다. 우리의 무한히 허락된 자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공개한다. 우리
자신의 고민이나 감정을 쏟아내는 디지털 고해소가 되었다. 현실의 고해소는 비밀을 지키는 신부가 듣는 제한되고
폐쇄적인 고해소라면, 페이스북은 전세계에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가상공간의 고해소인 것이다. 나아가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우리는 한 순간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자진해서 우리 스스로 개인 정보와 현재의 기분과 감정을 드러내며 우리 자신을 편집하고 판단한다. 우리는 곧 우리 자신의 감시자이다 착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언제나 손에 들고 있는 모바일기기를 통해 ‘연결상태’로 존재하는 우리는 페친이 올린 사진이나 글 혹은
나의 타임라인에 보이는 이야기 및 소식에 ‘좋아요’를 눌러댄다. 한병철 교수는 ‘좋아요’를 ‘디지털 아멘’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스마트폰은 스스로를 감시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어버렸다.
<페이스북 심리학>에서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고 배우자를 타박하는 남편, 직장동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내가 모르는 남자의 사진이나
글에 ‘좋아요’를 누른 여자친구에게 화를 내는 남자의 이야기도 보인다. 이 ‘디지털 아멘’은 무수히 많은 질투와 섭섭함을 유발하고 가상의 공간만이 아닌 현실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가 올리는 정보는 나의 극히 일부의 모습 나아가 편집된 자아의 모습만을 올릴
뿐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셀카 사진은 올리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아니라면 사진
편집기를 통해 ‘뽀샤시’한 사진을 올린다. 특히 나의 페친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사진을 ‘태그’하면 짜증이 몰려온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사진과 프로필을 훑어보고 나를 판단한다. 디지털 카사노바들은 여성들을 ‘꼬시기’ 아주 쉽다고 말한다. 그럴듯한 사진과 프로필을 가지고 접근하면 상대방의 얼굴과 분위기를 보지
않고도 나의 좋은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올리는 나의 정보들은 내가 아니다.
나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점을 항상 염두해두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나는 20대의 젊은 친구들과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미혼인 젊은 친구들의 관심사 중의 하나는 당연히 이성과의 교제이다. 소개팅을 하기 전 상대방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 기본적인 정보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상대방의 사진을 찾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름이 흔하지 않은 경우면 다행이나,
흔한 이름이면 낭패다. 외모가 준수해 보이는 맞을 것 같은 상대방을 확인하기위해
사진 이외의 소속관계 정보를 들여다보는데 전해들었던 정보와 다르다. 아! 아쉽다. 이들은 새로운 기대를 갖고 다른 사진을 또 찾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제대로 찾은 것 같으면 다른 사진들과 타임라인을 들여다본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이 친구들이 모여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며 아쉬움과 탄성을 연발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슬쩍 곁눈질을 하며 나도 궁금해한다.
이처럼 극히 제한적인 한 사람의 정보를 가지고 우리는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기 쉽다. 책을 일년에 두 권 그러니까 상반기에 한 권, 하반기에 한 권 읽는 사람도 페이스북에서는 나의
취는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거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가상 공간에서의 정보는 어떤 사람의 전부가
아니며 따라서 상대방의 ‘편집된 자아’임을 다시 환기하게 되었다.
한병철 교수는 페이스북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중독’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반면 <페이스북 심리학>에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페이스북에서의 ‘중독’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사람들은
왜 페이스북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탈퇴해버리지 않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우리도 이유는 안다. 내가 들인 모든 노력과 시간, 그리고
나의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탈퇴하지 않는 이유를 간단히 말한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에 중독되어 있기때문.”이라고.
페이스북에서 ‘중독’과 관련한 가장 보편적인 문제는 당연히 ‘인간관계’이다. 결혼한 부부이든, 미혼 커플이든, 학교에서의 교우 관계이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이든 타임라인은 각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기에 가상 공간에서의 인간관계는 ‘중독’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인자이다. 페이스북에서의
‘친구맺기’ 및 ‘친구끊기’는 원래의 기능과 달리 정치적이며 감정의 전달 도구가
될 수 있다. 이 행위들 또한 ‘좋아요’를 누르는 일처럼 질투를 유발하기도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결혼한 부부를 이혼에 이르게하는 단초가 되기도한다.
저자는 페이스북의 극단적인 애정 행위 네 가지를 ‘질투’, ‘스토킹’, ‘강박’, ‘복수’의 유형으로 정리해놓았다. 타임라인을 조금만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적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자신의 기분 상태를 자진해서 올리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결별한 커플의 경우, 이 타임라인은 복수의 공간이 되기도하고,
온전한 ‘헤어짐’을 방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 로그인하면 보이게되는 그 혹은 그녀의 행적을 보면 완전히 한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의 인간관계에비해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의
공간에서는 인간대 인간의 경계가 다분히 현실의 경우에비해 더욱 모호해진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가상 공간에서의
강박적 중독과 더불어 우리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다섯 가지 감정조종자들(파괴자 타입, 나르시시스트 타입, 순교자 타입, 유혹자 타입,
스토커 타입) 중에서 나 자신은 어디에 가까운지 자문해보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약간 ‘순교자’ 유형에 가까운 듯 했다. 특히 이전의
싸이월드나 트위터를 많이 이용할 때 나의 모습을 반추해보면 그렇다. 이 유형은 다른 사람들처럼 가상 공간에서
자주 머무르며 나 자신을 희생자로 묘사하고 친구들의 격려와 동정 내지는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유형이다. 또는 죄책감을 이용하여 관심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다소 기대기도하는 유형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심리학>을 읽으며 그동안 무관심했던 나자신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된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러한 소셜 네트워크/미디어의 영향력에서 좀더 자유롭게 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나에겐 한국형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건 현재 나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다.
아울러 <페이스북 심리학>에서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현재 10대들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들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미국 10대의 경우 ‘페친’수는 평균 300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공간은 우려스럽다. 이들은 이 시기에 자아정체감을
형성해나가기 때문에 중요하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자아정체감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십대들은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불안과 혼란을 느낀다.” 라고 10대 시기의 심리적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데이트 사이트에서
이성에게 작업을 걸고, 섹스 파트너를 더욱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좀더 커서는 운동장에서 몸을 부대끼며 운동하고 놀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가상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상대방을 온라인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대와 새로운 세대들은 식도락가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빈혈상태를 (창백하게) 만들어 판매하는 송아지같은 존재들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나만의 기우일까. 이것은 인간으로서
건강한 남자로 혹은 건강한 여자로서 생을 향유하는 그런 존재들이 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다. 나는 문정희 시인의
시 「다시 남자를 위하여」에 나오는 그런 '수컷 잡놈'이 나올 수 없는 시대만 같아 안타깝다. 스크린을 통해 이성을 파악하고,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이 아니라 ‘진짜 멋지고 당당한’ 수컷 잡놈을 이제 더이상
보기는 힘들 것 같다.
한편 <페이스북 심리학>은 다분히
미국중심적이다. 모든 실제 사례가 미국인들에게 한정되어있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나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즉시 연결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특히 이질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서로의 생활양식이 유형화되어가는 현대에는 문화와 지역마다 전달되고 유행되는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페이스북 이용실태를 들여다보면 그 극단적인 사례들마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며 배울점이 있을 것이다.
내가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내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하였지만, 나는 ‘페이스북’이용자들을 비난하거나 편견을 가질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 모습들은 과거의 한 때 나의 모습이기도 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타임라인을 확인해야 안심을 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기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잘 향유하고, 연결되어있음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정을 나누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유익하고 좋은 정보들도 많다.
하지만 매 순간 이런 정보들을 나 스스로 알아야할 사항이 아닌다음에야 나는 페이스북이라는 창을 통하지 않고서도 이런 정보들을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보다 조금 늦게 그 정보를 알게되면 뭐 어떤가. 나는 나의 ‘고립됨’을 기쁘게 맞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수재나 플로레스도
페이스북에서 상처를 받거나 중독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페이스북을 잠시 떠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우리의 감정이 이용당하거나 소모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온전한 의지대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데에 이 책은 많은 교훈을
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