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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평점 :
<죽음의 밥상>
피터 싱어
▪ 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창세기 첫 머리에 신은 인간을 창조하여 새와 물고기와 짐승을 다스리게 했다고 씌어
있다. 물론 창세기는 말[馬]이 아니라 인간이 쓴 것이다. 신이 정말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길 바랐는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인간이 암소와 말로부터 탈취한 권력을 신성화하기 위해 신을 발명했다고 하는 것이 더 개연성
있다. 그렇다, 염소를 죽일 권리, 그것은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와중에도 전 인류가 동지인 양 뜻을 같이 하는 유일한 권리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옮김/민음사, 445면에서 발췌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이자 실천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와 농부에서 변호사가된 짐 메이슨의
두 번째 공저 <죽음의 밥상>의 원제목을 우리말에 가깝게 번역하자면, ‘우리가 먹는 것의 윤리학’정도
될 것이다. 위에서 쿤데라의 가장 유명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용한 부분은
<죽음의 밥상>에서 저자들이 언급하는 윤리적 쟁점 중의 하나인 ‘종차별주의(speciesism)’를 그대로
표현하는 대목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에는 흔히 성욕과
식욕을 언급한다. 이 두 가지 기본 욕구는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볼 때, 거의 언제나 윤리적인 문제를 중요시 해왔다.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혹은 먹지 말아야할 지를 규정하는 것이 윤리적인 문제의 맥락 속에 있었다.
<죽음의 밥상>을 관통하는 주제는 아주 단순화하면, ‘먹을거리의 선택은 윤리의 문제다. 하지만 광신은 필요없다’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세 가정의 먹거리 선택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먹는 식품에 기반하여 먹거리의 윤리학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가족의 식단은, 전형적인 미국인 가정의 식단으로 맥도날드를 이용하고,
월마트에서 닭고기, 소시지 베이컨 등의 장을 보고 디저트로 선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캔콜라를 마시곤하는 가정이다. 어쩌면 현재 한국의 도시에 사는 전형적인
4인 가정의 먹거리 선택과 많이 유사한 면이 있다. 두 번째 가족의 식단은 좀더
세심하게 선정된다. 부부는 칼럼니스트이자 환경운동가, 생물학자로서 교육
수준이 높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환경문제나 먹거리 선택에 상당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채식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되, 인도적으로 대우를 받는 동물로 육식을 하는 가족이다.
세 번째 가정의 식단은 아이들까지 모두 온전한 채식주의자 가족이다. 유제품 뿐만
아니라 벌의 도움을 받는 벌꿀마져 먹지 않는다. 이 책은 미국의 세 가지 유형의 먹거리를 선택하는 가정을
통해 현대 미국인의 먹거리 문화와 식품이 만들어지는 환경, 그리고 이 먹거리의 선택이 타자(동물, 노동자, 소비자,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따져보고 있다. 미국인의 가정과 식단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다소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까운 우리의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음식을 생산하는 과정은 더이상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다. 따라서 미국인의 식단을 통해 우리가 배울점은
여전히 많다고 할 수 있다.
현대 미국인의 육고기 소비는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순으로 이어지며, 해산물은 새우, 연어 등으로 이어진다.
우선 육고기 생산과정에서 닭, 소, 돼지는
일반적으로 공장식 집약 농장에서 길러진다. 이 말은 곧 농가의 수가 급속하게 줄어드는 대신,
수많은 동물들이 한 농장에서 상당한 밀집도로 모여 길러진다는 의미다. 또한 대기업형
농장이 점점 독점화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동물들로부터 얻어내는 고기 생산 방식에는 상당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
동물의 처우에 관한 문제는 물론이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문제, 심각한 공공의 자원 수탈 및 환경 파괴 및 오염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러한 제반 문제들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공장식
집약 농업’ 방식에 있다. ‘저렴한 고기 생산’을 생산하는 일은 결국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이들이 이러한 농업 방식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에 대한 대체 비용을 타자에게 전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환경 오염을 완화하기 위한 연방
정부의 추가 예산(곧 세금 증가로 이어진다)의 필요, 환경오염 및 저질 음식으로인한 건강 문제와 의료비 및 보험료 수가 인상 등의 비용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공장식 농장을 운영하는 ‘인간의
탐욕’ 은 또 새로운 대가를 많이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도 익히 경험하여 알고 있는 조류 독감과 같은 문제가 그렇다. 공장식 집약 운영하에서 닭들은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더 악성으로 변이되기 쉽고, 유전적으로 동질적인 닭들이 대부분이기에 감염 이후 집단에
대한 확산력이 매우 크다. 또 밀집되고 불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닭들의 스트레스 증가 및 저항력,
면역력의 약화로 훨씬 더 조류독감 같은 문제에 취약한 것이다. 곧 조류 독감 가능성에
대비하려면 또다시 백신이나 약품을 확보하는 문제 등을 비롯하여 연방 정부 및 주 정부의 예산이 들어가고, 결국 이러한 비용은 또 다시 우리에게 전가되는 덧이다. 따라서 이제는 더이상 우리 개개인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시야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 내가 사는 환경을 생각하여
더불어 살아야하는 입장이 필수불가결해지고 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저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동물들의 인도적 처우 문제와 육식을 하는 일의 윤리성에 관해서이다.
윤리적으로 정말 중요한 문제는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말아야한다’이며, 저자는 끊임없이 농장에서 자라는 동물들의 고통과 관련하여 윤리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연체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에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윤리적인 문제를 따지고
있다. 문어와 오징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인정해야하며, 따라서
이들을 먹는 일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따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토막나 꾸불꾸불 움직이는 산낙지를 먹는 한국인의
경우, 아마도 피터 싱어는 ‘낙지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므로 피하라’고 권고할
것이다. 문어의 고통까지 생각하는 저자는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한 좀더 윤리적인 먹거리를 선택하여 먹어야한다는 것이다.
해산물 또한 육고기 생산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규모가 커진 상업적 어로는 어족을 붕괴하고,
환경을 오염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양식 수산물은 육지에서의
대규모 농장처럼 엄청나게 밀집된 개체들로부터 나오는 오물 등으로 환경오염이 극심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먹어보곤 했던 ‘대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어족이 붕괴되어 원래 수준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안타까운
예이다. 특히나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대구는 레이더를
이용한 공장선에의해 싹쓸이 당하다시피 지구의 바다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제 2000년 이후에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들은 ‘대구’를 앞으로는 먹어보지 못할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현재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해산물은 ‘새우’라고 한다. 새우를 잡는 어로 방식은 트롤망 어선을 이용하여 무거운 추가 달린 그물이
해저를 훑어 가며 잡아들인다. 수만년 형성된 산호초를 초토화 시키는 것은 물론, 그물코가 작기에 원하지 않는 ‘부수적
포획물’이 새우 수의
14-15개까지 잡히고 있다. 그물에 걸리는 해양생물에는 대형 포유류를 비롯,
멸종 위기인 바다 거북 등도 포함한다. 아울러 새우 양식은 바닷가의 해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망그로브 숲을 벌채하기도 하고,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을의 지하수를 고갈시키기도 한다.
텅 빈 지하수에는 염수가 들어차 마을이 황폐화된기도하고, 결국 사람이 떠나버리는
마을을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죽음의 밥상>을 읽으며,
새우를 먹는 일에 이렇게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책을 읽기전까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은 육고기 및 해산물 등의 먹거리 윤리를 얘기하면서, 윤리적인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베건 식단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건은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동물성
음식을 일체 거부한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그렇다치고 아이들을 베건으로 키우는 일은 합당한가에 대한 물음에
저자들은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 소아과 협회와 영양협회의 발표를 인용하며, 베건 식단이 정상적인 아동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으며, 이들 식단은 인생의 모든 시기에 적절하다.
심지어 임신, 수유기, 아동기,
청년기에도 말이다. 이런 베건 식단은 동물과 관련한 제반 윤리적인 논점에서 자유롭다.
나아가 저자들은 잘 짜여진 베건 식단을 통해 단백질, 철분 섭취에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콩류의 음식이 들어간 식단을 통해 추가의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아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체내 생성이나 음식물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비타민 B의 경우, 보강제를 먹으라고 권하고 있다. 아울러 베건인 운동선수(울트라 마라톤 우승자, 육상 메달리스트 칼 루이스 등)를 예로 들며,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곧 베건 식단은
우리에게 건강한 식단이며, 환경문제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곧 저자들은 여러 먹거리의 선택과 이 행위가 주는 영향등을 고려하며 먹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의 경계가 모호한 양심적 잡식주의자들보다도
명확하게 선을 그어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윤리적인 식생활을 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아지만 이런 논점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의 경우, 곧 유기농산물이나 인도적으로 길러진 고기나 달걀등에 추가로 값을 지불할
여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 적절한 윤리적 쟁점으로 보인다. 물론 저자는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조건에 접근하기
힘든 점을 고려하여, 얼마간은 육식을 하여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허용하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견지한다.
이쯤되면 우리는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의 ‘너무나’ 유연한 윤리관을 비판할 수도 있겠다.
이런 가능한 비판에 대해 저자들은 역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한다. 곧 ‘윤리적 사고는 상황이
관건이다.’라는 것. 예컨대 부유한 사람들이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는 일이 가난하여 이를 구입하지 못하는 이들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먹을 거리에 대해 보다 타당한 접근은 우리가 무언가를 먹거나 먹기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이 음식을 안먹는 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나의 선택은 나와 타자 곧 다른 이들이나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라는 것이다. 곧 이것을 나는 ‘태도’의 문제라고 이해했다. 저자는 ‘개인이 규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가가 핵심이 아니다. 동물 학대를 지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곧 <죽음의 밥상>은 고착화된 원칙을 지키느라 도그마에 빠지지말고, 주어진 상황을 언제나 민감하게 고려하여야
윤리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던저 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은 곧 윤리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