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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올해는 시가 ‘들어있는’ 책을 시작으로 시를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를 ‘느껴보려’ 노력중이다. 시를 알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방황하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책이 <시인의 집>이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전영애 교수의 두툼한 책이었다. 독일의 유명한 문인들의 생가며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교수이자 시인인 전영애 교수의 여정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남들처럼 여유있게 여행을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학회 참석차 유럽을 방문하는 와중에 하루 이틀 짬을 내어 바쁜 걸음으로 시인의 집을 찾았다는 전영애 시인.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시를 ‘공부’한 것 외에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시가 도대체 뭔데 산넘고 강을 건너 시인들의 집을 찾아갔던 것일까. 전영애 교수는 본인의 삶의 절실한 물음을 갖고 시인의 집을 찾노라 말한다. 물론 시인에게 개인적인 그 물음들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만큼 절실한 이유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시인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은 마치 출가한 스님이 수행의 과정이고, 여정 중에 만난 여러 인연들은 시인의 도반일 것이다. 시인들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의 교감, 시인이 묻혀있는 묘지의 문이 닫혀있을 때 우연히 만난 동네 여인의 도움 등등 길위에서 전영애 교수가 만나는 인연들의 이야기만 해도 신기하고 흥미로왔다. 말 한마디에도 상대방의 의중을 이해하고 미소로 연결되는 길 위의 인연들은 모두 전영애 교수의 도반이었던 것이다.
책에 나오는 독일의 여러 시인과 대문호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전영애 교수와 직접 함께 에피소드가 나오는 라이너 쿤체 시인의 이야기 일 것이다. 과거 구동독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쿤체 시인은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반체제 작가로 지목되어 해직되었으며 보조자물쇠공으로
일하면서 시작에 전념해왔다고 한다. 체코 출신 독일인인 쿤체 시인의 부인 엘리자베트와의 사랑과 결혼이야기도 흥미롭고 또한 아름답다. 또한 전영애 교수가 쿤제 시인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전영애 교수의 초청으로 쿤체 시인이 방한하여 시낭독을 하기도 한 에피소드를 읽으면 시를 모르는 나도 흥미로웠다. 쿤체 시인이 낸 시집 중에 전영애 교수가 번역한 <보리수의 밤>에 나오는 시 한편이 재미있어 여기에 적어본다.
[동아시아 손님]
「그녀 배가 고픈가?
아뇨
그녀 배가 고픈가?
아뇨
그녀 배가 고픈가?
약간
세 번
산山에다 대고 문 두드려야 한다.
세 번째에야
열린다 –
아주 작은 틈 하나」
이 시는 전영애 교수가 쿤체 시인의 초대를 받고 쿤체 시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시인이 전영애 교수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유머있는 시각을 보여주고있다. 동양적인 예의가 몸에 밴 전영애 교수가 배고픈지 묻는 쿤체 시인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폐가 안되도록 사양하고있고, 이를 눈치챈 쿤체 시인은 세번 묻고 있다. 정제된 언어를 위해 갈고 닦은 그의 시들은 언제나 간결하면서도 거기엔 따뜻함이 흘러 넘치는 듯 하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상상하는 쿤체 시인의 모습은 얼마 전에 읽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독일인 바에르 교수와 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소설에서 바에르 교수가 즐겨부르던 노래는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수록한 시로 ‘미뇽의 노래’로 알려져있다.
「당신은 아시나요, 그 땅을.
레몬 나무에 꽃이 피고
무성한 잎 사이로 금빛의 오렌지가 빛나는 곳.
푸른 천국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상록수 짙어지고 월계수 드롶이 자라는 그 땅을.
당신은 아시나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오, 사랑하는 님이여,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작은 아씨들 >에서 마치 가의 둘째 딸인 조가 바에르 교수를 관찰하고 내린 바에르 교수의 인간성의 요체는 바로 바에르 교수가 타인들에게 품은 순수한 ‘선의’였다. 나이도 많고, 인물이 잘나거나 부자도 아닌 바에르 교수는 언제나 삶에대한 긍정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나누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주려는 사람이다. 같은 독일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상상하는 쿤체 시인의 모습 또한 이런 인격을 지닌 분이 아닐까 상상해보게 된다.
<시인의 집> 을 읽다가 라이너 쿤체의 시집 <보리수의 밤>을 뒤적이다 흥미로운 시를 발견하기도하고, 그러다가 얼마전에 읽은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한 인물마저 떠올려버렸다. 이러니 나는 책을 절대 빨리 읽지는 못한다. 다만 글의 한 꼭지를 놓고 잡생각을 해대며, 상상을 해보고 나혼자 이러고 노는 것이다. 박민규 작가가 그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에서도 외쳤듯이, 지금은 공식적인 지명에서 사라졌지만 인생의 핵심은 삼천포에 있다는 것. 나는 앞으로도 무언가를 계획해놓고 글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그 순간 순간 떠오른 것, 상상한 것, 그 당시에 내가 읽었던 책들이 버무려져서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의 책읽기는 매번 이 모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