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처음으로 시집을 사보기도 하고 문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문학 밖에서 살아왔던지, ‘문학동네라는 출판사도 올해 처음 알게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 가까이 참으로 무식하게 살아온 같다. 그동안의 반성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아뭏든 올해 나는 문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에겐 변화다. 사사키 아타루가 <잘라라, 기도하는 손을>에서 말한대로, ‘책을 읽는 다는 ’, 그리고 문학 읽는다는 (물론 아타루는 문학을 음악, 미술 등의 예술과 , , 철을 아우르는 폭넓은 의미에서 사용했다.) 하나의 혁명이라고 말했듯이, 나에게는 혁명 시작이었다( 믿고싶다). 물론 이제 책을 열심히 읽자라고 마음먹은지 1년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금방 그렇게 바뀔리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글못쓰기로 말하자면 해도해도 너무한 이공학도 아니었나.

 그동안 소설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필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되었는데, 문체를 나름 주목해가면서 읽어가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읽으면서 간결하고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는 문장이 어떤 것인가 조금은 알게되었다. 아울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읽으면서 김훈 작가의 문체가 나에게 주는 느낌과 헤밍웨이의 문제가 주는 느낌이 비슷한 부분이 일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아주 간결한 주어-동사 형태의 건조한 문장이 이어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헤밍웨이의 문체는 하드보일드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문체까지 관심을 가지면서 읽게 되니, 빨리 읽지는 못해도 나름 색다른 재미를 느끼면서 읽게되었다.  나아가 올해는 국내의 출중한 여러 젊은 작가를 처음 알게되었는데, 김연수, 김영하, 김애란, 박민규 등의 작가들이었다(사실 아직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다.). 최근에는 김영하 작가의 글에 재미를 느끼게 되어 조금씩 읽고 있다.

  김훈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김영하 작가의 문체는 어떨까 궁금했다. 그래서 읽어보게 소설이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짦은장편소설이었지만, 당황스럽기도하고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흥미와 혼란을 함께 소설이었다. 이런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할까.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잔인한 살인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조금씩 오싹오싹한 느낌도 주는 것이, 조이스 캐럴 오츠의 <이블 아이> 나오는 단편소설 같은 느낌도 주었다. 장면을 이끌어가는 1인칭의 화자는 마치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처럼 의식의 흐름들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살인자의 입장에서 일관되고 치밀한 의식의 흐름들을 모아둔 기록의 형태가 아니다. 그보다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도 파악이 안되는 나약한 인간의 혼란스러운 기억을 기록하고 있는데, 특히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에 놀라기도 하고 감탄하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기억이라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중요한 기능이기도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며, ‘기억 통해 지식의 축적과 전수 그리고 사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억이라는 요소가 빠진 알츠하이머 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않고 기억해내기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자신의 병에 굴복하게 된다. 의식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던 화자의 인식 체계가 뒷부분에가서 한순간에 무너지고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이 진행되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계의 즈음 발견되는 여자의 부위는 이따금 나를 섬뜩하게 만들며 강한 인상을 남기고있다.

  김영하 작가의 문장 특성을 소설 하나로 파악하기는 힘들겠지만, 문장이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간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김훈 작가의 문체처럼 길고 짧은 문장의 호흡을 의식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했다. 속도감있게 읽혀지는 이유는 아마도 김영하 작가의 간결한 문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마무리에서 보여지는 극도로 혼란한 상태는 소설에서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과연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을 것인지에대한 막연함때문이 아닐까. 마치 알츠하이머 환자의 머리 속에 들어갔다 나온 같은 김영하 작가의 고민과 연구의 흔적을 느껴본다. 소설을 읽고 당황스러운 막연함과 혼란 속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나를 김영하 작가가 본다면 성공이군!’하면서 좋아하실지 모르겠다. 나에겐 짧지만 모호하고 쉽지않은 소설이지만,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작중 화자의 상황과 성격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핍진성 강한 인상을 받았다.

(7면)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48면)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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