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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수업 -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질문
박웅현 외 지음, 마이크임팩트 기획 / 알키 / 2015년 6월
평점 :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 노예로 살지 않기위해 끊임없이 물어야하는 질문일 것이다. 이에대해 고미숙 선생은 동양철학적 시각에서 접근한다. 우선 우리를 삶의 노예로 만드는 두 요소로 ‘두려움’과 ‘충동’을 말한다.
두려움의 원인은
사회구조나
인간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권력관계
그리고
이
구조로부터
억압과
소외를
겪기
때문이다. 영화 <스타워즈>식으로 말하면 나를 파괴할 수 있는 ‘어둠의 힘’이
곧
이
‘두려움’일 것이다. 한편 저자는 동양사상에서 좀더 근본적인 두려움의 원인은 ‘생로병사’라고 말하고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우리가 겪는 모든 보편적인 경험들이 될 것이다. 특히나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죽음에대한 공포는 우리가 죽음을 잘 모르기때문일 것이다.
우리를
삶의
노예로
만드는 또다른
충동의
원인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즉 식욕, 성욕이다. 나아가 지배욕, 인정욕은 이러한 기본적인 욕망의 변형이라고 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빈번하게 접하는 지도층의 성범죄(정치인, 대학교수 등등)는 ‘자신의 희생을 쾌락으로 보상받아야한다는 signal이 몸에 내재화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고미숙 선생은 분석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법을 만들고, 이를 개정하거나 사회제도를 바꾼다고해서 개인인 내가 두려움과 쾌락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 그러므로 ‘내적인 접근을 통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고 말하며, 고미숙 선생을 이를 위해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과 ‘우주’를 같이 연구했으나, 서양철학은 일찌감치 이를 분리하여 연구하여 분석에는 뛰어날 지 모르지만 그 요소들을 종합하는 데는 미숙한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곧 ‘우주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가볍게 얘기하는 관상학, 사주명리학에서는 본인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읽어내야 비밀을 풀 수 있으며, 내가 어떤 리듬을 갖고 내 운명을 창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년말 혹은 매년 초, 소위 ‘점집’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내년에는 나의 운세가 어떠할지, 나의 배우자는 어떤 사람일지, 나의 사업은 어떻게 될지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주명리학과 관상학을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들은 ‘고객’에게 더 큰 진실을 얘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기때문일 것이다. 고미숙 선생은 중요한 것은 이 지도를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나의 지도를 ‘결핍과 상처’로 간주하게 되면 이 지도는 무용해진다는 것. 모든 사람이 모든 장점을 골고루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넘치는 건 조율하고, 모자란건 채우는 것’이라고 후천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것이 진정한 공부이자 수행이며 이를 하지 못하면, 두려움이 자라고 나아가 영혼이 잠식당한다는 것이다. 괴테가 고뇌와 슬픔을 노래와 글로써 승화했으며, 니체가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스스로를 극복해나가라고 외쳤듯이, 우리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하라고 주문한다.
인문공부를
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
중의
하나는
우리가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인간’이 되는 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유로움은 구속 내지는 소속을 전제한다. 우리를 속박하는 대상으로부터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거리를 둘 수 있는 행위는 대상을 남과 다르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왜 그럴까? 만약 이게 아니라면? 하고 의문을 던지는 일로부터 우리는 삶의 자유로운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강연기록의
마지막에는
고미숙
선생과
청중과의
질의응답이
들어있는데,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고미숙 선생의 답변이 있다. 질문자의 철학과 선배는 취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과를 했는데 이렇게 외부적 요인에 의한 두려움에 어떻게 맞서야하는지를 물었더니, 고미숙 선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인류의
미래는
백수다. 백수밖에 없다. 앞으로 웬만한 일들은 모두 기계가 할 것이다. 하지만 백수가 자유인이 되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인문학을 알아야한다. 철학하는 백수. 이것이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내적인 접근을 통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내가 어떤 리듬을 갖고 내 운명을 창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사주명리학을 언급하면서)
(관상학을 언급하며) 중요한 것은 이 지도를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나의 지도를 결핍과 상처로 간주하게 되면 이 지도는 무용하다.
(사주명리학이나 음양오행론이 알려주는 사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오행에 치우쳐 있으므로, 모든 이의 팔자는 평등하다. 모든 걸 골고루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해야할 일은 넘치는 건 조율하고, 모자란건 채우는 것이다. 이것이 공부이자 수행이다. 이를 하지 못하면 두려움은 자라고, 강박증, 분열증을 통해 영혼이 잠식하게 된다. 두려움은 정면으로 돌파해야한다.
자유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즉 운명애를 갖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과 충동이라는 삶을 노예화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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