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지음/송태욱 옮김

여기서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인용되어있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일부를 연결시켜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보려고 합니다.

 

(301-302)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재인용부분 )

 소심한 모습으로, 수줍게, 어색하게, 도약에 실패한 호랑이처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이 몰래 옆길로 새는 것을 나는 자주 보았다. 그대들은 주사위를 잘못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도박자들이여! 그 실패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대들은 도박자, 그리고 조소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배우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늘 하나의 거대한 도박과 조소의 탁자에 앉아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대들이 비록 큰일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인간이 실패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좋다! 가자!

높은 종족에 속할수록, 완성하는 일은 드물다. 여기 있는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충분히 완성되지 않은게 아닐까?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그대들의 완성이 불충분하거나 반쯤밖에 완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그대들, 반쯤 부서져버린 사람들이여!

그대들 내부에서 밀치락달치락하며 서로 밀치지 않는가-인간의 ‘미래’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어야 할 가장 먼 것, 가장 깊은 것, 별처럼 높은 것, 거대한 힘, 그 모든 것이 그대들 항아리 안에서 서로 부딪치며 부글거리고 있지 않은가.

때로 항아리가 부서지는 일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실로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홍성광 옮김 (펭귄클래식)

(442)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4-15 (사사키 아타루가 인용한 같은 부분)

[14]뛰어오르는 데 실패한 호랑이가 수줍고 부끄러워 어찌할 바 모르는 것처럼,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슬그머니 옆으로 새려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대들의 주사위가 잘못 던져진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 주사위 놀이를 하는 자들이여,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대들은 놀이하고 조롱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나 놀이와 조롱을 위한 커다란 탁자에 앉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대들이 큰일을 그르쳤다면 그렇다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작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작이라면 인류 자신도 실패작이란 말인가? 하지만 인류가 실패작이라면, ! 어서!

[15] 어떤 사물의 속성이 고귀할수록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여기 있는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이여, 그대들은 모두 실패한 자들이 아닌가?

용기를 내라. 그게 어쨌단 말인가! 아직 얼마나 많은 일이 가능한가! 사람들이 웃지 않을 수 없도록 그대 자신을 비웃는 법을 배워라!

그대들이 실패했고 아직 반밖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그게 뭐가 이상한가. 그대들 반쯤 부서진 자들이여! 그대들 속에서 서로 밀치며 부딪치지 않는가-인간의 미래!

인간에게서 가장 멀고, 가장 깊고, 별처럼 가장 높은 것, 인간의 어마어마한 힘. 이러한 모든 것이 그대들의 항아리 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거품을 내고 있지 않은가?

많은 항아리가 부서진다 해도 그게 뭐가 이상한가! 사람들이 웃지 않을 수 없도록 그대 자신을 비웃는 법을 배워라!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아직 얼마나 많은 일이 가능한가!

그런데 참으로 이미 얼마나 많은 일이 성공했는가! 이 땅에는 조그맣고 아름답고 완전한 사물들이, 제대로 된 것이 얼마나 풍부한가!

그대들 주위에 조그맣고 아름답고 완전한 사물들을 놓아두라.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그것들의 금쪽같은 성숙함이 마음을 치유한다. 완전한 것은 희망을 갖도록 가르친다.

: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다 읽고, 아타루의 문체에대해 드는 인상은 솔직히 장석주 시인이 압도적인 문체라고 표현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아무래도 제 나이보다도 더 많은 시간동안 책을 읽고 글을 써오신 장석주 시인이 아타루의 참신한 문체를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파악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제가 받은 문체에대한 인상은 작가의 문체가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는 점입니다. 아타루 자신은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나가며 짜증난다., 수치스럽다, 혐오스럽다, 치사하다 등의 표현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있고 객관적인 것처럼 말하는 작가나 비평가들의 태도에 상당한 거부감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마치 바로 앞에서 말로 강연하듯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다소 머리가 지끈거릴만한 역사나 철학적 소재도 꽤나 빨리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체로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문제에 힘입은바 크다고 봅니다.  이렇듯 말하듯이 글을 쓰는 방식 혹은 이러한 문체는 앞에서 얘기한 솔직한 표현과 어우러지면서 참신한 문체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인용한 부분은 아타루가 재인용한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의 한 부분입니다. 아타루의 책을 번역한 번역가는 일본어로 번역된 니체의 책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라, 독일어 원전을 번역한 다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황성광 옮김)중 동일한 부분을 찾아 비교해보았습니다. 두 인용부분을 비교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긴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일에 실패했더라도 나 자신이 실패자는 아니며, 아직도 가능한 일이 많이 남아있다라고 외치는 내용이겠습니다. 비가오고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 밤에 저의 머리를 도끼로 깨고, 상쾌하게 해준 한 마디였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웃을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비웃는 법을 배워라라는 부분 또한 우리가 유머라고 하는 행위의 본질이라 생각해봅니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를 조소의 대상이 되는 일은 강건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가능한 일일테니까요.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때로 항아리가 부서지는 일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실로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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