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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토머스 브라운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10월
평점 :

17세기 한 인간의 메멘토 모리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토머스 브라운 지음
공진호 옮김 [아티초크] (2026)
17세기 영국의 대문장가이자 지성인으로 인정받았던 토머스 브라운의 글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이하 《뼈의 운명》)을 읽는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저자가 50세 즈음 되었을 당시에 노퍽주의 올드 월싱엄 들판에서 발견된 40여 개의 유골 항아리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 주제에 대해 쓴 것이다. 17세기에 50세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유교 중심의 우리 문화에서 50세는 ‘지천명’의 나이라고 한다. 대략 자신의 운명, 자신의 수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 해석할 수 있는 이 관념에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50 이하가 대부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평균 수명이 50이 넘은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도달한 숫자일 뿐이다. 예수는 33살에 죽었다. 이 나이의 의미는 이미 성인으로서의 정점, 혹은 인간으로서 완성의 나이에 도달한 나이임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17세기에 50세를 넘은 시기의 토머스 브라운에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을 것이 틀림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보다도 더 말이다. 그렇기에 17세기에 50대가 된 대문장가가 유골 항아리에 대해 논하는 이 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50대의 나에게 상당히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소개글에 인용된 작가 가운데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의 언급이 보인다. 토머스 브라운을 ‘반쯤 정신 나간 대천사’라는 표현을 편지에 쓸 정도로 멜빌은 브라운의 글을 탐독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토머스 브라운은 <경뇌유와 향유고래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까지 썼던 모양인데, 멜빌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작품 <모비 딕>의 ‘발췌록’에 인용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32장의 ‘고래학’이라는 제목의 장에서는 고래에 관해 글을 쓴 인물들을 주욱 나열하고 있는데, 본문에도 토머스 브라운의 이름을 잊지 않고 수록해 놓았다.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토머스 브라운은 후대의 작가 멜빌의 창작 과정에 영향을 주었으며, 작품 속에서도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연결고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흥미로운 점도 처음에는 책에 보이는 토머스 브라운의 놀라울 정도로 박식하고 유려한 문장과 어떤 연결고리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당시에 발견된 유골 항아리에 관한 소식으로부터, 저자는 매장 문화와 화장 문화를 비교하고, 장례 문화의 역사까지도 정리하고 있어 마치 야심만만한 조사 보고서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를 테면,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 그리고 게르만인들은 화장 문화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반면 이집트인들은 화장에 대한 거부감으로 육신을 매장하되 이를 보존하는 법을 고안했다. 나아가 이 관념은 지중해를 건너 시칠리아 지역의 피타고라스에 영향을 준 모양이다. 이들은 화장 대신 매장을 선택한 셈이다. 피타고라스를 방문하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플라톤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았을 법하다. 왜냐하면 후대에 그리스도교인들이 화장을 거부하고 매장을 선택한 배경에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리 체계를 세웠던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문화의 양상을 뚜렷한 한 가지 기준으로 매끈하게 분리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어쩌면 우리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대략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에 익숙하다면, 우리는 이를 장례 문화로 이렇게 구분할 수도 있겠다 싶다. 말하자면 헬레니즘은 화장 문화와 연결되고, 헤브라이즘은 매장 문화에 보다 가깝다고 보는 것도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아서다.
다만 매장 대 화장에 관한 브라운의 논지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매끈하게 끝나지는 않는 듯하다. 장례 문화에서 이 두 가지 유형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토머스 브라운에 따르면 고대 인도인 중 사제 계급인 브라만은 산채로 불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고귀한 길’로서 여겼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장례 문화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인도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고대 페르시아의 마기(Magi, 사제 계급)는 화장을 거부하고 육신을 새나 개의 먹이로 내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사례는 발레아레스인의 사례다. 저자에 따르면, 발레아레스 제도의 사람들은 망자를 화장하지 않고 시신을 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다양한 장례 문화를 일별하면서, 줄곧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다 읽고 책을 여러 번 들춰 보고서야 ‘아!’하는 순간을 맞은 것은, 결국 토머스 브라운의 어느 한두 문장을 다시 만나면서부터다. 이 책의 마지막은 로마의 시인 루카누스의 말로 다음과 같이 끝난다. “육신을 부패가 녹여 없애든 화장으로 태워 없애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130) 저자가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 문장에 담겨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다양했던 장례 문화를 일별하다보니 저자는 숱한 차이점을 보다가도 결국은 필멸자 인간의 삶으로 수렴해 들어가지 않았을까. 인간이 삶 속에서 부여되고 타고난 조건은 사람마다 무수한 차이를 낳는다. 모든 인간은 결국 각자의 짐을 숙제처럼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반면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공평하게 부여되는 과제, 혹은 숙명은 모든 인간의 ‘죽음’ 그 자체였던 것이다.
루카누스의 말을 음미하다보니 결국 죽음을 통해 이미 ‘타자’가 되어버린 존재에게 매장이든 화장이든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장례의 방식을 고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살아 있는 이들의 몫일뿐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나아가다보니 비로소 토머스 브라운이 곳곳에 씨를 뿌리듯 남겨 놓은 문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죽음이야말로 참된 생명을 낳아 주는 산파”(120)라는 표현. 그리고 “참으로 산다는 것은 다시 우리 자신이 되는 것”(129)과 같은 표현들에 말이다. 결국 토머스 브라운은 죽은 이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죽음의 교훈’,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설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저자는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를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44년 전 오늘(1682년 10월 19일)에 사망했지만, 그가 설파한 죽음의 교리는 책이라는 ‘텍스트의 항아리’ 속에 담겨 한국의 독자에게 ‘지금 참으로 살아 있을 것’을 당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정리하며 후기를 남기는 오늘은 아버지의 27주기이기도 하여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다. 토머스 브라운이 말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에게 되묻고 싶어지는 밤이다.
[책속으로]
[1] "하나는 시신을 그대로 흙에 묻는 매장이고, 다른 하나는 화장이다. 이 두 방식 중에서 매장이 더 오래되었음은 아브라함이 여러 족장의 옛 사례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 P35
[2] "화장 또한 까마득히 오래되었고, 널리 퍼져 있었다. 왜냐하면 (화장의 기원을 굳이 헤라클레스에게서 찾지 않더라도) 호메로스가 묘사한 그리스인들의 장례식, 곧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격식을 갖춘 장례 의식 속에 화장에 관한 숭고한 묘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P35
[3] "페르시아의 마기(Magi) 또한 그와 유사한 종교적 결벽 때문에 화장을 거부했으며, 오로지 유골을 보존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육신은 새나 개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두었다. 인도에서 지금도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주는 파르시인은 불의 연료인 나무로 만든 상여나 들것조차 쓰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금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 P39
[4] "불과 몇 달 전, 올드 월싱엄의 한 들판에서 마흔 내지 쉰 개에 달하는 유골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이 항아리들은 1야드도 안 되는 깊이의 건조한 모래 땅속에 서로 멀지 않은 간격으로 묻혀 있었다." - P47
[5] "길가에 세워진 로마의 묘비는 망자 자신을 기리는 추모의 기록인 동시에, 길을 지나는 산 자에게 죽음이라는 운명을 일깨우는 경고였다. 그리하여 이의 묘비문은 행인들에게 ‘멈추어라 행자여(siste viator)’라고 간곡히 청하곤 했다." - P82
[6] "호메로스는 영혼과 결합한 몸인 데마스(demas)와 영혼이 떠난 몸인 소마(soma)를 정교하게 구분했다." - P92
[7] "장례식 참석자들이 세 번씩 외치던 마지막 작별 인사 또한 매우 장엄했는데, 이는 매장된 시신 위에 흙을 세 번 뿌리지 않으면 예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그리스도교도의 관습과도 결을 같이 한다." - P93
[8] "모태 속에 있는 두 태아가 장차 마주할 이 세상이 어떠할지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면, 그 대화는 내세를 향한 우리의 무지를 아주 적절하게 보여 주는 비유가 되리라. 우리는 여전히 플라톤의 동굴 속에서 그림자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배아 상태의 철학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P101
[9] "그런가 하면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죽는다는 것이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다. 죽음이 곧 ‘무(無)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02
[10] "만약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 시작하는 존재이며, 장수한다는 것이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길게 늘인 것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삶은 실로 서글픈 혼합물이다. 우리는 매 순간 죽음과 동행하며 살아갈 뿐, 어느 한 찰나에 갑자기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11
[11] 죽음이야말로 참된 생명을 낳아 주는 산파, 곧 루키나여야 하며, 이교도들조차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실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 - P120
[12] "오래가는 기념물 속에 남고, 제가 이룬 것들 속에 살아남고, 제 이름 속에 또 허깨비 같은 환상의 범주 속에 존재하는 것, 이것이 옛사람들에게 기대감과 같은 환상의 범주 속에 존재하는 것, 이것이 옛사람들에게 기대감과 큰 만족을 주었고, 그들이 꿈꾼 엘리시온의 한 부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의 형이상학 안에서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다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29
[13] "루카누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육신을 부패가 녹여 없애든 화장으로 태워 없애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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